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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회중년생 Sep 05. 2024

Firenze : 두오모는 언제나 이쁨

4월 20일 (20일차)

어제와 같은 구성에 역시 어제 만큼 만족스러운 조식을 먹고 방으로 돌아와 외출할 채비를 마친 사회. 냅킨 하나를 꺼내어 아랫부분을 3분의 1 정도 접고서는 그 사이에 잘 보이도록 5유로짜리 지폐를 끼워 넣었다. 그러고는 냅킨 상단에 볼펜으로 GRAZIE MILLE :)라고 적은 뒤 테이블 위에 반듯하게 올려두고 방문을 나섰다.


(2023년 4월 20일 목요일)

우리나라처럼 이탈리아의 팁 문화도 필수가 아닌 탓인지는 모르지만 이번 호텔도 우리가 외출할 때 테이블 위에 놓아두는 1~2유로 동전을 팁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가져가지 않는 일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콕 집어 ‘팁’이라고 알려줄 필요가 있었다.

가져가 주세요. 깨끗한 객실 관리에 대한 정말 감사의 마음이랍니다.

오늘 우리의 옷차림은 그야말로 스포츠 용이었다. 사회는 편안한 반팔 티셔츠 차림에 아주 얇은 기능성 바람막이 점퍼를 챙겼고, 중년생은 땀 배출이 용이한 기능성 티셔츠까지 찾아 입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첫 일정은 지오토의 종탑(Campanile di Giotto)에 올라야 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도 어제 별생각 없이 두오모 쿠폴라를 올랐다가 땀이 너무 나서 힘들었던 것이 오늘 옷차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결과부터 말하자면 이 착장은 1,000% 적중했다. 계단이 큼지막해서 얼마 오르지 않았는데도 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기능성 티셔츠가 아니었다면 땀자국이 엄청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아찔했다. 바람막이는 벗어서 허리에 두르고 계속 올랐다. 다행히 중간중간 밖이 내다 보이며 쉴 수 있는 공간들이 있어서 땀도 식히고 여유도 찾을 수 있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힘이 들어 그렇지 사실 따지고 보면 오르는데 총 20분도 안 걸린 것 같았다.

지오토의 종탑에 오르는 중간 중간 밖으로 보이는 두오모와 쿠폴라의 자태 (feat. 촬영중인 사회)

드디어 정상이 나타났다. 사각형으로 되어있는 종탑의 둘레를 따라 걸으며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구조였다. 어제처럼 한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움 피렌체의 전경. 하지만 어제와는 사뭇 느낌이 달랐다. 위치만 조금 옆으로 바뀌었을 뿐인데도 시선이 바뀌니 다른 도시 같았다. 그리고 가장 좋았던 점은 여기서 봐야 두오모 쿠폴라의 어마어마한 아름다움이 한눈에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어제는 쿠폴라 자체의 꼭대기에 오른 것이어서 피렌체 시내는 감상하기 좋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피렌체의 제1 명물인 쿠폴라는 볼 수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단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안전을 위함인지 전망대 전체(난간뿐 아니라 하늘 부분까지)에 철망이 씌워져 있어서 시야를 방해한다는 점이었다. 그래도 볼 수 있는 것에 감사하긴 했지만.

철망이 씌워져 있어 아쉬웠던 지오토의 종탑 전망대의 실상(좌), 그 촘촘한 철망 사이로 찍어 낸 쿠폴라의 눈부신 모습(우)

철망 중간중간에는 누군가 사랑의 맹세를 한 듯 이니셜이 적힌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그때, 사회가 쿠폴라 전망대 쪽을 가리켰다. 어제의 우리처럼 쿠폴라에 오른 관광객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올라오길 잘했다.” 사회가 말했다. 따지고 보면 쿠폴라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비슷한 높이의 전망대여서 몸도 피곤한 마당에 지오토의 종탑은 생략할까로 잠깐 고민했던 사회였다. 쿠폴라 전망대 가장 위로 올려진 아름다운 황금색 구와 십자가를 바라보던 중년생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 오르지 않았다면 저 눈부신 꼭대기는 못 봤을 거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어제 올랐던 쿠폴라 전망대에서는 아무리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봐도 진짜 꼭대기는 보이지 않았으니까. 게다가 쿠폴라는 워낙 인기가 높아 시간 예약까지 하고 관람해야 하는 반면에 이곳은 시간제한 없이 자유롭게 관람이 가능했기 때문에 사회와 중년생은 한참 여유를 부리다 천천히 내려왔다.

쿠폴라의 외관을 제대로 자세히 보고 싶다면 지오토의 종탑에 올라라!

시계를 보니 11시경이었다. “시내 한 바퀴 돌아볼까?” 지쳤을 법한데 사회가 제안했다. “고고!” 평소 산책을 심하게 좋아하는 중년생이 넙죽 받았다. 땀이 식자 생각보다 쌀쌀한 날이라는 것이 피부로 와닿았다. 허리에 묶어둔 바람막이 점퍼는 어느새 입고 지퍼까지 채운 채였다. 파란 하늘을 수많은 구름이 거의 가려버린 피렌체의 거리에는 약간 쓸쓸한 기운이 깔려 있었지만 여행객의 시선에는 이 또한 운치가 있었다. 걷다가 갑자기 사회가 소리쳤다. “저거다!!!” 사회가 반갑게 가리킨 손가락 끝에는 ‘Tutto 99 cent’라고 적힌 간판이 있었다. 직역하자면 ‘전부 99센트’라는 말로, 99센트 샵.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따지면 1,000원 샵 같은 가게인 셈이었다. 안 그래도 천 원 샵 같은 게 여기에도 있으면 편하고 좋을 텐데라며 아쉬워했던 사회였는데 걷다가 우연히 발견했으니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두 사람은 냉큼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문구류부터 그릇, 생활용품 등등 다양한 품목의 제품들이 대부분 개당 0.99유로에 판매되고 있었다. 천천히 구경하던 중년생이 갑자기 한쪽 코너로 성큼성큼 다가가서 거침없이 물건을 집었다. 그릇 코너에 있던 작은 와인잔이었다. “이것도 0.99유로네!” 기쁜 듯 바로 잔 2개를 바구니에 담는 중년생. 요 며칠 와인샵에서 좋은 와인을 사 와 호텔에서 마실 때마다 잔이 아쉽다고 부르짖었는데 정말 안성맞춤이었다. 잔의 크기도 오스떼리아 같은 식당에서 하우스 와인을 내올 때 쓰는 정도의 작은 크기라서 여행 내내 가지고 다니기에도 좋을 것 같아 더 마음에 들었다. 와인잔 2개와 필요한 잡화 2개를 구입한 후(총 3.96유로), 일단 호텔로 돌아가기로 했다. 와인잔을 들고 계속 돌아다니기는 아무래도 무거울 테니까.

크진 않지만 알차고 여유로운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의 입구

잠시 호텔로 돌아와 짐을 내려놓고 이번에는 두오모 바로 옆에 위치한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Museo dell’ Opera del Duomo)으로 향했다. 입구의 데스크에서는 오디오 도슨트를 대여해주고 있었는데 중년생이 무심코 지나치려는 순간, 사회가 소매 옷깃을 잡으며 말했다. “검색해 보니까 한국어 도슨트가 있네, 여기.” 당연히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반가운 소식이었다. 도슨트 대여는 두 개에 8유로. 스마트폰 기계 자체를 대여해 주는 형식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이어폰을 연결해야 들을 수 있는데 우리의 이어폰과는 맞지 않는 기계였기 때문이었다. 망설이다가 직원에게 물어봤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 처음에는 무슨 소린지 못 알아듣더니 눈치로 알아챈 직원. 친절한 미소와 함께 이어폰도 대여가 가능하다며 큼지막한 헤드폰 두 개를 우리에게 건넸다. 대여비는 무료였고 심지어 새 거였다.

내부로 들어가면 로렌초 기베르티(Lorenzo Chiberti)의 천국의 문(Porta del Paradiso) 진품이 그 위용을 뽐내고 서 있는 것을 중심으로 여러 조각 작품과 회화 작품이 여유롭게 전시되어 있었다. 모든 작품이 대단하고 저마다 의미를 담고 있겠지만, 그중에서도 중년생에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위층에 전시된 피렌체 대성당의 설계 변천사를 나타낸 도면과 나무 모형들이었다. 초기 설계단계와 완성된 후의 대성당의 모습은 많이 달랐다. 천천히 보고 있자니, 수많은 사람들의 평생을 녹여 만들어진 역작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뭉클했다.

셀 수 없는 사람들의 인생이 담겨 완성된 피렌체 대성당의 스케치와 모형들

그리고, 작품을 떠나 사회와 중년생의 마음을 사로잡은 공간이 하나 있었다. 옥상층의 야외 테라스였는데, 뻥 뚫린 야외 테라스에 돌로 만든 벤치 몇 개가 있을 뿐인 공간이었지만 박물관 위치가 쿠폴라 바로 뒤여서, 쿠폴라를 아주 가까이서 관람할 수 있는 명당인 셈이었다. 게다가 사람이 아무도 없다. 365일 바글거려야 마땅한 관광객들이 하나도 없는(우리가 갔던 때뿐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정말 조용한 최고의 관람 스폿. 사회와 중년생은 이 공간에 매료되어 박물관 내부보다 더 오랜 시간 여기에 머물며 쿠폴라 조망과 함께 일광욕을 즐겼다.

한적한 곳에서 우연히 마주친 색다른(?) 쿠폴라의 뒷태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 옥상 테라스

오전만 해도 많았던 구름이 거의 다 사라지고, 그 자리를 꿰찬 눈부신 햇살이 우리에게 쏟아지고 있었다. 박물관에서 뜻밖의 여유를 즐긴 두 사람. 2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 밖으로 나왔지만 오늘은 별로 배고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어젯밤 아마로네 한 병과 함께 너무 많은 음식을 먹어치운 탓이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것도 뭣해서 결국 선택한 것은 젤라또(총 6유로). 근처 광장에서 콘을 할짝거리며 약간의 당을 섭취하니 컨디션이 좋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중년생은 오랜만에 한국에 있는 가족에게 전화도 한 통 넣었다. 사실 그저께 하려고 했는데 우피치 미술관 관람일이어서 너무 바쁘고 피곤한 탓에 미뤄둔 통화였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우피치로 핑계를 댔지만 감정이 올라올 것 같아서 이틀 정도 미뤄둔 통화였다. 한국이 7시간 빠르니까 지금 서울은 밤 9-10시 정도일 것이었다. 그제는 아빠와 엄마의 결혼기념일. 정확히 말해서, 작년 말 우리 곁을 영원히 떠나신 아빠가 엄마 곁에 없는 첫 번째 결혼기념일이었다. 신호가 가다가 멈추자 곧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엄마를 위로하기는커녕, 본인이 울어버릴까 봐 언급조차 못하고 내내 밝게 떠들어대기만 하는 중년생. 통화하면서도, 말이 중년생이지 스스로가 어린애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없는 여행 중에 잊고 있던 현실의 조각이 고스란히 살아나 수화기 너머로 잠시 찾아왔다가 안부 인사를 끝으로 다시 서서히 희미해져 갔다. 고개를 들었다. 피렌체의 파란 하늘이 축축한 슬픔의 기운을 뽀송뽀송하게 건조시켜 하늘로 날려주는 기분이었다. ‘여기서는 여기 생각만 하자.’ 다짐 아닌 다짐을 하는 중년생이었다.

젤라또를 먹었던, 한국의 가족에게 전화를 걸었던, 따뜻했던 피렌체의 어느 작은 광장

충전된 사회와 중년생은 다시 피렌체 대성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브루넬레스키 패스로 갈 수 있는 곳은 오늘 모조리 갈 생각이었다. 대성당 내부 1층에서 쿠폴라 천정의 최후의 심판 작품을 바라보니 느낌이 또 달랐다. 너무 가까이서 볼 때는 웅장함은 컸지만 제대로 보이진 않았는데, 떨어진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전체가 보이면서 너무 아름다웠다. 지하층에는 브루넬레스키의 무덤을 포함하여 당대 유명한 사람들의 묘가 있었다. 오랜 시간이 쌓인 공간을 걷고 있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경건함을 넘어 건물도 사람들도 모든 것이 살아있는 기분이었다.

피렌체 대성당의 내부 모습(좌), 같은 위치에서 바로 올려다 본 쿠폴라의 내부 모습과 천장 벽화(우)

다시 밖으로 나왔다. 이번에는 먹구름이 하늘을 지배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늘의 기분이 바뀌어도 두오모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언제 봐도 감탄을 자아내는 쿠폴라를 또 한 번 눈에 담으며 두 사람은 또 다른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 이번 목적지는 어제 점심쯤 들렀던 가죽 지갑 상점이었다. 문은 열려있었고 주인은 중국 관광객으로 보이는 가족 손님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안에 들어서서 본 상점 내부는 정말 멋스러웠다. 가죽 냄새가 진동하는 작업대와 만들어지는 중인 작업물들. 쇼윈도 앞 테이블과 서랍에는 색색깔의 완성품들이 빛을 내고 있었다. 동전 지갑, 카드 지갑, 펜케이스 등등 다양한 가죽 제품들을 구경하다 결국 중년생이 집어든 것은 카드 지갑 두 개였다. 녹색과 파란색. 두 개에 78유로를 지불했다. 1937년부터 이어온 가게로 현재 주인은 3대 째인 듯했다.

가죽 상점 내부의 작업 공간의 모습(좌), 쇼윈도 앞 진열대에 놓인 아기자기한 가죽 소품의 자태(우)

만족스러운 쇼핑을 마치고 또다시 길을 나선 두 사람. 갑자기 배가 고프고 힘이 들기 시작했다. 아무리 전날 배불리 먹었다고 해도 젤라또 하나로 버티기엔 벌써 오후 5시였다. 마침 눈앞에 에노테카(Enoteca/간단한 음식도 파는 로컬 와인 상점) 하나가 보였다. 이탈리아에 온 뒤, 종종 인테리어도 멋스럽고 현지인들이 많아 보이는 에노테카가 눈에 띄었었는데 용기가 없어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었다. 입구에 아페리티보 10유로라고 쓰여 있기도 해서 들어가 볼까 망설이던 두 사람. 그때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피할 곳은 여기밖에 없기도 해서 에노테카에서 마련한 작은 야외 테라스 자리에 자연스레 앉게 되었다. 곧 레드 와인 두 잔에 프로슈토와 샐러드, 치즈, 빵이 담긴 간단한 안주가 서빙되었다. 정말 꿀맛이었고 너무 행복했다. 지나가던 노부부가 우리 쪽을 바라보고 상의하더니 자리에 앉아 직원에게 아페리티보를 외쳤다. 우리 장사도 아닌데 우리 때문에 들어온 것 같아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비도 피하고 배고픔도 피했던 에노테카와 아페리티보

배가 고파서인지 다 먹는 데는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둘 다 아직 배가 전혀 차지 않았다. 맛을 알게 된 요즘이라 와인도 한 잔으로는 아쉬웠다. “안 되겠다. 가자! 저녁 먹으러.” 사회와 중년생은 하이파이브를 하고선(자꾸 왜 하는지는 우리도 모른다.) 얼마 전 우피치 미술관을 안내한 가이드가 알려준 오스테리아로 향했다. 줄을 서야 하고 먹는 자리도 좁고 불편한 네르보네 말고, 곱창 요리를 즐길 수 있는 현지 음식점. 입구로 들어서 안내해 주는 지하로 내려가니 오래된 가게라는 것이 확 느껴졌다. 지하층은 정말 동굴(과장이 아니라 정말 돌로 이루어진 진짜 동굴 안에 테이블이 놓여 있는)이었다. 너무 멋져서 무슨 유적지에서 식사하는 느낌까지 들었다. 우리는 애피타이저로 으깬 내장을 바게트 빵 위에 올린 요리를 선택했고, 본식으로 으깬 감자요리와 트리빠(Trippa)라고 하는 소의 벌집양 부위를 이용한 내장요리를 주문했다. 물론, 하우스 레드 와인도 함께. 맛은 과장이 아니라 어마어마했다. 너무 맛있고 황홀해서 취하지 않았는데도 필름이 중간중간 끊긴 느낌까지 들었다. 분위기에 취한다는 말이 딱 맞는 순간이었다. 우리는 음식이 너무 마음에 들어 다 먹고는 에스프레소도 한 잔씩 마셨다. 현지인들에게는 당연한 코스겠지만, 사회와 중년생에게는 음식점의 음식이 마음에 들었을 때만 에스프레소까지 마시고 나오는 것이 하나의 룰이었다(벌써 연재 중 몇 번은 말한 듯합니다만). 그런데 모두 합쳐 35유로라니 가격까지 만점이었다.

동굴 안에서 먹는 맛의 향연! 행복하고 행복하고 행복하다

시간은 이미 저녁 7시를 넘어서고 있었지만 동굴 밖으로 나오니 아직 하늘은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배도 부르고 아직 밝으니 조금 더 걷기로 한 사회와 중년생. 그렇게 기차역 쪽으로 슬슬 걷고 있는데 갑자기 두 사람의 그림자가 사라지더니 급격한 어두움이 느껴졌다. 하늘을 보니 삽시간에 거짓말처럼 뒤덮은 먹구름. 심지어 돌풍 같은 바람까지 엄습했다. 오늘 피렌체 날씨는 정말 변덕의 끝이었다. 그러다 급기야는 툭- 툭-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 어디로 피하지?” 주변에 불이 켜진 곳은 서점 하나뿐이어서 일단 그리로 몸을 피하기로 했다. 며칠 오고 갔던 길 위에 이런 곳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서점은 상당히 규모가 컸다. 밖을 보니 비가 그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아서 가볍게 한 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우리나라를 소개한 여행 책자도 있을까?” 궁금해진 두 사람은 여행 책자 코너로 향했다. 있었다. SEOUL이라는 영어가 큼지막하게 적힌 작은 여행 책. 이탈리아어로 적혀 이해할 순 없었지만 기념으로 사고 싶어 져서 집어 들었다. “어? 저건 또 뭐야. 달력이네. 예쁘다!” 하나를 사려고 마음을 열었더니 잠자던 구매 욕구가 연이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피렌체에 있는 명소를 펜으로 스케치한 듯한 콘셉트의 2024년 달력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선물로도 주고 싶었다. 그렇게 몇 분 후 우리는 달력을 5개나 담아버리는 기염을 토하고 만다. 결국 달력 5개와 여행책 1권에 63.9유로를 지불하고 나서야 끝이 난 우리의 쇼핑. 나와 보니 비도 끝이 나 있었다. 사회와 중년생은 지는 해를 등지며 가벼운 걸음으로 호텔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아침부터 바빴던 오늘 하루도 어느덧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었다. 차가운 바람이 코를 스쳐 지나갔다. 상쾌한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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