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8일 (18일차)
피렌체 호텔에서의 고작 두 번째 아침인데도 눈을 뜨자마자 늘 그래왔던 루틴마냥 자동으로 조식을 먹으러 계단을 내려가는 두 사람. 꼬르네또와 치즈, 햄, 요거트와 꿀, 레드오렌지주스, 삶은 계란, 카푸치노를 능숙한 손놀림으로 물 흐르듯 세팅하고 맛있게 먹은 후, 입가심으로 에스프레소 한 잔씩을 더했다. 평소 호텔을 예약할 때 가급적이면 옵션을 조식 불포함으로 선택하는 중년생인지라, 무조건 조식이 포함되어 있는 옵션뿐인 이 호텔에 약간의 불만이 있었는데 이 순간 오히려 예약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년생이 호텔의 조식을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퀄리티는 높지만 어디를 가나 비슷비슷해서 진짜 ‘현지식’의 느낌이 다소 부족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래서 여행할 때 아침에 길거리로 나가 현지인들이 먹는 아침식사 가게를 찾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런데, 피렌체에서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깔끔하고 만족스러운 현지 스타일의 조식을 만나니 고민 없이 아침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상당한 장점으로 다가왔다.
(2023년 4월 18일 화요일)
더구나 오늘은 아침 8:30분에 시뇨리아 광장에서 가이드를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이른 시각, 호텔 안에서 바로 해결 가능한 조식이 특히 고마웠다. 피렌체는 꽃과 같은 아름다운 도시임과 동시에, 중년생에게는 우연한 계기로 호텔 조식에 대한 선입견을 깨뜨려 준 도시로도 기억되게 된 것이다. 사회와 중년생은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올라가 씻고 준비하고 길을 나섰다. 약속 장소인 시뇨리아 광장은 숙소에서 도보로 5-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거리였기 때문에 급하지 않고 여유롭게 산책하듯 약속 장소로 향할 수 있었다. 가는 도중에 가이드에게서 문자도 받았다.
안녕하세요. 우피치 미술관 가이드 ooo입니다. 잠시 후 분수대 앞에서 뵙겠습니다!!
문자를 받은 후부터 약속 장소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기분이 점점 더 설레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관을 현지에 직접 와서 관람하고 싶다는 상상이, 현실이 될 시간이 코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착한 분수대 앞에서 가이드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미술관 투어를 함께 할 사람도 1분 뒤면 온다고 했다. 오늘 투어는 단독 투어로 예약한 것이 아니어서 일행의 규모가 얼마나 될지 몰랐는데, 운 좋게도(가이드에게는 불운일지 모르지만) 사회와 중년생 말고 단 1명밖에 더 없었다. 자세한 설명을 들으려면 인원이 적을수록 유리한 것은 당연지사. 오늘은 출발부터 예감이 좋았다.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시뇨리아 광장의 다비드 상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가볍게 우피치 미술관 입구로 이동했다.
가이드 말에 따르면, 우피치 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은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의 명작들이 가득한 곳으로, 처음에는 메디치 가문의 사무실로 건축되었다. 이탈리아어로 Uffizi가 사무실을 뜻하는 것만 봐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러던 것이 메디치 가문의 몰락 이후, 가문이 소장한 미술품들을 피렌체 시에 기부했고 이곳에서 1765년 시민들에게 공식적으로 개방되었으며 1865년에 이르러서는 정식 박물관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라파엘로, 카라바조, 보티첼리 등 미술에 관심이 없다 해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당대를 대표하는 쟁쟁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빼곡히 전시되어 있는 곳이라 일 년 내내 관광객들로 붐비는 피렌체의 필수 코스라고 할 수 있다.
입구로 들어가 복도의 조각상들과 천정벽화를 지나니 지오토(Giotto)의 오니산티 마돈나(Madonna in trono col Bambino fra angeli e santi ‘Maesta di ’Ognissanti’/1306-1310)를 시작으로 쉴 새 없는 그림들의 향연이 시작되었다. 넋을 놓는 시간들이 계속됐다. 우피치는 전문가가 아닌 이상, 무조건 가이드 투어를 하는 것을 추천드린다. 그냥 보면 ‘아, 예쁘네!’ 정도로 지나쳤을지 모를 작품들을, 시대적 배경과 의미는 물론 채색 기법까지 아우르는 가이드의 설명과 함께 감상하니 한 작품 한 작품이 너무 큰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우피치 미술관의 입장권 이미지로도 채택된 필리포 리피(Filippo Lippi)의 두 천사와 성모자(Madonna col Bambino e due angeli/1460-1465)의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표현력에 감탄하다가 보티첼리(Botticelli)의 봄(La Primavera/1480)의 고급스러운 색감에 넋을 놓다가를 반복했다.
특히나 유명한 보티첼리(Botticelli)의 비너스의 탄생(La nascita di Venere/1485)을 실물로 마주했을 때는 너무 깜짝 놀랐다. 어릴 적부터 교과서나 책자에서만 보던 그림이라 크기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생각보다 엄청 컸다. 더구나 파스텔 톤의 부드러운 그림 정도로만 예상했던 작품의 실물의 색감은 너무 천재적이어서 완벽하게 압도되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카메라로 담으려 해도 절대 담을 수 없는 아우라. 직접 이탈리아 피렌체까지 방문해서 이 미술관에 와야 하는 이유임에 틀림없었다.
중간중간 창문을 통해 미술관의 외관과 아르노 강변, 베키오 다리를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숨겨진 묘미였다. 관람한 지 1시간 반쯤 지났을까? 너무 집중을 해서인지 체력 소모가 심해서 피곤이 몰려오던 참이었다. 가이드가 다가와서 이름 모를 노란색 포장지의 캔디를 하나씩 건넸다. 꿀 들어간 사탕인데 지금쯤 하나 드시면 좋을 거라는 말과 함께. 달콤한 꿀 캔디 하나가 들어가니 정말 거짓말처럼 힘이 나기 시작했다. 역시 경력자! 우피치 투어를 수없이 반복해 왔을 가이드의 명의와도 같은 처방이었다.
과연 나중에 다 기억이나 날까? 할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 계속 이어졌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그중에서도 이후에도 두고두고 생각났던 작품은(순전히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지만)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의 초기 견습생 시절의 작품인 수태고지(Annunciazion/1472-1475)였다. 성경의 한 구절을 묘사해서 그리는 당시의 인기 소재 중 하나였던 수태고지는 말 그대로 마리아에게 천사가 날아와 예수를 잉태할 것임을 알려주는 순간을 묘사한 작품으로, 수많은 당대의 화가들이 그렸기 때문에 같은 이름의 작품이 정말 많다. 그런데 유독 이 작품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영문 모르는 마리아의 담담하면서도 고고한 표정, 방금 날아와 앉은 듯한 천사의 모습과 그로 인한 바람에 흔들리는 풀까지. 계속 바라보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작품을 견습생 시절에 그렸다니. 천재라는 말 밖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이어지는 라파엘로(Raffaello)와 미켈란젤로(Michelangelo)의 작품들. ‘이 시대에는 천재가 흔했나?’라는 생각과 함께 왜 사람들이 그토록 르네상스 시대를 부르짖는지 알 것 같았다.
미술관의 후반부에서 눈에 띄는 작품은 카라바조(Caravaggio)의 메두사(Testa di Medusa/1597)와 바쿠스(Bacco/1595-1597)였다. 이 두 작품은 묘사가 너무도 생생하여 소름 돋을 정도였다. 목이 잘린 순간의 메두사가 바라보는 시선은 그림의 차원을 뛰어넘는 실물과 같은 생동감이 있었고, 중성적으로 표현된 술의 신인 바쿠스는 정말 묘한 느낌이었을 뿐만 아니라, 바쿠스가 들고 있는 와인잔에 담긴 와인의 섬세한 터치는 정말 황홀할 정도였다.
이 외에도 셀 수 없는 명작들이 많았지만 여기에 적는 내용은 순전히 개인적인 감상이므로 우피치 미술관의 작품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전문 서적이나 인터넷, 가이드 분들을 통해 접하시길 추천드리는 바이다.
수많은 경험을 통해 사람들이 더 이상 볼 수 없겠다 싶을 정도로 체력이 고갈되는 순간을 정확히 알기라도 한 듯, 투어도 함께 종료되었다. 정오가 다 된 시각. 세 시간 반 정도의 벅찬 시간이 마무리되었다. 엔딩 선물로 가이드가 피렌체의 각종 맛집 정보를 문자로 전송해 주었다. 우리의 체력을 연명해 주었던 꿀 캔디의 정보도 함께. 이 페이지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바로 마트 들러서 같은 캔디 한 봉지를 샀다.)
사회와 중년생의 다음 목적지는 어디였을까? 너무 쉬운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선택의 여지없이 식당이었다. 두 사람은 최대한 힘을 짜내어 빠른 걸음으로 어제 들렀던 피렌체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오늘의 목표 지점은 2층 푸드코트가 아닌, 1층의 상점이었다. 이름은 네르보네(Nerbone). 1872년부터 영업해 온 유명한 곱창버거 전문점이었다. 도착해서 보니 녹색 나무 간판에 적힌 클래식한 상호만 봐도 유서 깊은 맛집 기운이 풀풀 풍겼다. 이 집은 찾기 위해 헤맬 필요가 거의 없는데, 그 이유는 거의 항상 길게 줄을 서기 때문에 가면, 바로 어딘지 저절로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평소 줄 서는 것을 질색하는 두 사람이었지만 언제 또 올지 모르는 곳이 아닌가? 기꺼이 행렬에 동참했다.
람프레도또(Panino con Rampredotto)라고 부르는 이 음식은 푹 익힌 소곱창을 잘게 다지고 양념해서 빵 사이에 넣어 먹는 그야말로 곱창버거였다. 하지만 우리는 일단 1개(5유로)만 주문해서 먹어보기로 했다. 맛있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평소 곱창도 좋아하지만, 피렌체의 곱창요리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무턱대고 하나씩 주문했다가 입맛에 맞지 않아 그대로 남기는 사태를 예방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버거 하나의 크기가 생각보다 큰 탓도 있었다. 이 밖에도 우리가 무리해서 주문하지 않은 이유는 더 있었다. 오늘 이른 저녁시간으로 식당이 이미 예약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잠시 뒤에 다시 다루기로 하겠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어 버거 1개를 주문했고, 눈앞에서 뚝딱 만들어서 바로 받았다. 가까이서 보니 크기가 더 커 보였다. 배고팠던 우리는 식당 맞은편에 마련된 간단히 먹고 갈 수 있는 장소에 앉아 곱창버거를 개시했다. 한 입씩 베어무는 순간, “어?”, “대박!!”, “뭐야, 이 버거?”, “미쳤는데?” 글로는 다 담을 수 없는 날 것의 표현들이 사회와 중년생의 입을 오가며 난무했다. 한마디로 정말 정말 최고였다. 냄새가 나기는커녕 너무 부드러웠고 맛있었다. 곱창을 적시는 축축한 양념이 적절히 베어 들어 빵까지 더 부드럽게 만들었다. “2개 시킬걸!”하고 잠시 후회했지만 아직 피렌체에 머물 날이 많기에 또 오기를 다짐하며 순식간에 버거를 먹어 치웠다. 맞은편에서 곱창버거 가게를 바라보니 벽 쪽으로 와인을 파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 배고파서 생각도 못했는데 다음에 먹을 땐 반드시 하우스 와인도 곁들이리라 다짐하는 사회와 중년생이었다.
먹고 나서의 행선지는? 호텔이었다. 지치고 배도 진정시켰으니 필요한 건 낮잠이 딸린 휴식이었다. 저녁 6시쯤 예약한 음식점에 쾌적한 상태로 가려면 일단 돌아가서 편히 쉬어야 했다. 호텔로 가는 길에 참지 못하고 젤라또를 하나씩 입에 물었다. 아무리 저녁 식사를 위함이라지만 버거 하나로는 턱도 없었던 것이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포기할 우리가 아니었고, 젤라또는 역시 맛있었다. 이탈리아는 젤라또의 나라니까. 호텔로 돌아와서는 조금 쉬자며 침대에 걸치듯 누운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이후로 의식 두절. 깨보니 오후 5시가 넘어 있었다. 다행히 피로도 싹 날아간 채였다. 하늘 위로 쭉 뻗은 양팔 중 하나로 다른 팔꿈치를 잡아 목 뒤로 당기는 스트레칭 동작을 양쪽으로 몇 차례 반복하며 의식을 또렷하게 깨우면서 사회가 말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가 볼까?” 내뱉은 말에는 기대감을 넘어 비장함까지 서려있었다. “가자!” 중년생의 외침과 함께 두 사람은 최소한의 소지품만을 챙긴 채 가벼운 차림으로 호텔을 나섰다.
저녁 식사 예약 장소에 도착하니 6시가 되기 조금 전이었다. 전에도 말했지만 이탈리아는 저녁 피크타임이 밤 8-9시 정도로 우리나라보다 1-2시간 정도 늦기 때문에 6시면 식사시간이라고 하기엔 너무 이른 시각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식당 앞은 사람들로 바글거렸다. 우리가 간 곳은 다름 아닌 피렌체 스테이크 전문점으로 입구부터 숙성된 소 부위들이 가들 매달려 있어 장관이었다. 사람들은 많았지만 우리는 예약이 되어 있어 바로 테이블로 안내를 받아 들어갔다. 우리는 고심 끝에 티본스테이크를 선택했다. 양이 적은 사회이기에 최소 주문 양이 많은 티본을 주문하기엔 조금 무리가 아닐까 고민하긴 했지만, 잘 먹는 중년생을 믿고 선택한 것이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고른 품종은 흰 황소 중 끼아니나(Chianina)였다. 비스테까 알라 피오렌티나(Bistecca alla Fiorentina)라고 부를 정도로 피렌체의 스테이크가 유명한데 그중에서도 끼아니나(Chianina)는 현지 토종 품종이었다. 먹을 거면 제대로 먹자는 두 사람의 의기투합이 빚어낸 선택. 우리는 곁들일 루꼴라 샐러드 하나와 하프 사이즈의 끼안띠 와인 한 병도 함께 주문했다(총 106.40유로). 드디어 실물 영접. 상상은 했지만 그 이상으로 두께가 두꺼웠다.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엄청난 두께. 하지만 신선한 기름과 어우러져 씹기에 부담스러움이 없었다. 고기 한 점을 썰어 올리브 유를 듬뿍 적셔서(뿌리는 수준이 아니라 적시는 수준이 되어야 최고다) 한 입. 레드 와인 한 모금. 그리고 치즈가 더해진 루꼴라 샐러드 한 입 순으로 먹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배불러도 계속 들어가는 마법이 우리를 완벽하게 지배하고 있었다. 정말 지금까지 내가 먹었던 스테이크는 뭐였나 싶을 정도로 다른 수준의 음식이었다. 우리에게는 지불 금액이나 음식의 양 둘 다에서 큰 도전이었던 저녁이었다. 계산하고 나올 때쯤엔 “과연 우리가 걸어서 나갈 수 있을까?”라는 말을 농담기 없이 진지하게 나누기도 했다. 다행히(?) 걸어지는 다리를 이끌고 산책을 시작한 두 사람. 이 정도 레벨의 배부름이면 산책은 옵션이 아닌 생존을 위한 필수 과정이었다.
사회와 중년생은 며칠 전 볼로냐를 떠나 피렌체에 처음 도착했던 장소인 산타 마리아 노벨라 역 쪽으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걷다 보니 역 건너편에 자리한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다가가서 성당 뒤 편으로 돌아가니 나타나는 예쁜 광장. 산타 마리아 노벨라 광장(Piazza Santa Maria Novella)이었다. 여유롭고 한적하고 참 예쁜 광장이었다. 파란 하늘과 구름 사이로 보이는 붉은 노을이 레이어드 되어 하나의 작품을 이루고 있었다. 너무 예뻤다. 우피치에 걸릴만한 명작들이 피렌체 곳곳에 현존하고 있는 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쉽사리 꺼질 리 없는 배를 붙잡고 우리는 다시 걸어 이번에는 두오모 쪽으로 향했다. 아침에 봐도 저녁에 봐도 흐린 날 봐도 맑은 날 봐도 언제나 무지막지하게 아름다운 두오모를 감상하며 한 바퀴를 돌았다. 어느덧 밤이었다. 배가 조금은 꺼지는 것이 느껴졌다.
“에스프레소 한 잔?” 슬슬 화장실도 가고 싶고 추위도 느껴졌던 중년생이 사회에게 제안했다. “카페질리?” 사회가 화답했다. 우리는 망설임 없이 레푸블리카 광장으로 걸었다. 카페질리의 야외 테라스와 실내 자리를 모두 누려봤으니 이번엔 바에서 서서 마시는 에스프레소를 경험해 볼 차례였다. 주문과 동시에 계산을 먼저 하고 하얀색 바에서 접시에 담긴 에스프레소를 받아 들었다(총 2.6유로). 밤이라 그런지 바에는 칵테일을 즐기는 관광객들이 많았다. 차가운 몸을 녹이는 진한 에스프레소. 편견 없이 맛을 봐도 이곳의 커피는 정말 맛있다고 생각했다. 화장실도 갔다가 좀 더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밖으로 나섰다.
시간은 온전이 우리 마음대로의 것. 느긋하게 아르노 강변까지 걸었다가 천천히 다시 광장으로 돌아왔다. 불빛이 들어온 영롱한 회전목마가 돌아온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빙글빙글 도는 빛의 흐름에 제자리에서 멍- 하니 서 있다가, 기념으로 사진도 몇 장 찍고 한참을 쉬다가 천천히 호텔 쪽으로 걸었다. 길 중간 바닥의 한 구역(허가를 받은 곳으로 보이는)에는 거리의 화가 한 분이 바닥에 매우 디테일한 소녀의 그림을 막 완성한 참이었다. 표정과 손동작, 목에 건 목걸이까지. 캔버스가 아닌 바닥에 그렸는데도 저 정도라니 수준이 예사롭지 않았다. 옆에는 돈을 놓고 가도 되는 작은 박스와 함께 인스타그램 주소가 적혀있었다.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도시에서도 홍보 방식은 현대적이라는 점이 조금은 낯설었지만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 것을 지키는 것도 지금 것을 발전시키는 것도 모두 중요한 일이지만 칼 같이 구별하기보다는 함께 어우러지는 방법을 찾는 것이 어쩌면 더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소화를 다 시키고 호텔로 돌아오니 거의 밤 10시였다. 들어오기 직전에 젤라또를 하나씩 또 먹은 것(총 6유로)은 우리만의 비밀 아닌 비밀이었다.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라고 했던가? 만족스럽고 만족스럽고 만족스럽고 또 배부른 하루가 기분 좋게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