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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회중년생 Aug 29. 2024

Firenze : 쿠폴라에 올라, 랄라!

4월 19일 (19일차)

이제는 우리를 아시는지 방긋 웃으시는 조식 담당 매니저 아주머니. 미소에도 희소성의 법칙이 적용되는 것인지, 평소 깐깐해 보이는 분의 가끔씩 보여주는 미소는 뭔가 더 진심 같고 따뜻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제는 조식 먹으러 내려오는 길이 익숙해졌고, 크지 않은 규모의 호텔이라서인지 식당에서 마주치는 다른 관광객들도 낯설지 않아 조금 더 편안하게 느껴졌다. 카푸치노와 꼬르네또, 햄, 치즈, 요거트 등을 먹고는 마지막엔 여느 때처럼 에스프레소 한 잔씩으로 마무리했다. 다시 방으로 돌아와 씻고 옷을 골랐다.  “오늘도 가 볼까?” 중년생은 양 손가락 깍지를 끼고 하늘 위로 밀어 올리듯 시원하게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사회도 결의를 다지듯 양 무릎에 양손을 올리고 시계방향으로 천천히 돌리면서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2023년 4월 19일 수요일)

그렇다. 오늘은 필리포 브루넬레스키(Filippo Brunelleschi)가 설계했으며 현재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큰 석재 돔으로 알려져 있는,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의 두 주인공의 약속과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 피렌체의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여 언제 가도 관광객들로 붐비는 피렌체 대성당의 쿠폴라(Cupola)에 오르는 바로 그날이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피렌체 대성당을 둘러보는 여러 가지 티켓 중에 브루넬레스키 패스(1인 30유로)를 예매해 두었는데, 사실상 모든 것을 둘러볼 수 있는 자유 이용권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 티켓에만 쿠폴라 관람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높은 곳을 오르지 못하거나 이미 쿠폴라를 와 본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 이 패스를 선택해야 했다.

-참고로 브루넬레스키 패스는 쿠폴라 관람일을 개시 시점으로 계산하여 이로부터 2박 3일 간 유효하다. 그리고 쿠폴라는 날짜는 물론 시간까지 미리 정해서 예약을 해야 관람이 가능한 시스템이다(2023년 4월 기준).-

우리의 예약시간은 오전 9시 입장-오전 9시 45분 퇴장이어서 사회와 중년생은 아침의 두오모를 한 바퀴 돌며 감상하다가 정각에 쿠폴라 입구로 다가갔다.

쿠폴라 등반(?)을 위한 입구와 주변, 그리고 고개를 들어 올려다 본 하늘과 비행기의 모습

시작부터 펼쳐지는 나선형으로 된 돌계단. 점점 높아지는 시야를 즐기며 관광객들이 나란히 줄 지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대부분이 웃고 떠들더니 하나 둘 말 수가 줄어들고 이마에 땀이 맺히다가 결국에는 숨을 헐떡이기 시작했다. 사회와 중년생도 마찬가지였다. 기껏 해야 10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거의 수직으로 오르기만 하는 구조여서 그런지 제법 힘들었다. 베네치아 산 마르코 광장 종탑의 엘리베이터가 그리운 순간이었다. 그 순간, 평지가 나타났다. 정확히 말하면 돔 모양이 둥글게 좁아지기 시작하는 부분의 둘레를 따라 내부로 나 있는 평평한 통로 부분이었다. 위쪽을 바라보니 엄청난 작품이 돔 내부 천장 전체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보였는데, 알고 보니  조르조 바사리의 작품 ‘최후의 심판’이었다. 사회와 중년생은 난간을 따라 한 바퀴 돌며 명작 감상과 잠깐의 휴식을 함께 했다. 뻥 뚫린 아래쪽도 바라보니 성당 1층이 그대로 보였다.

난간 통로에서 중년생의 눈높이로 바라본 쿠폴라 내벽의 모습(좌), 올려다본 쿠폴라 꼭대기와 최후의 심판의 자태

맺혔던 땀 방울이 식을 즈음 관광객의 행렬은 이제 다시 계단으로 향하고 있었다. 한 번 더 힘을 내서 오를 차례였다. 사실 오르는 시간으로 따지면 별 거 아니라 엄살이라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건장한 젊은이 기준이고, 어린 아이나 어느 정도 연세가 있는 어르신들에겐 쉽지 않을 수준이었다. 올라갈수록 계단의 폭도 좁아지는 데다가 한 칸의 두께도 두꺼워서 체력과 관절건강이 받쳐줘야 등정이 가능한 곳이었다. 다행인 점이 있다면 후반부에 걸린 등반 시간도 10분 정도를 넘진 않았다는 정도?

한 가지 특징적인 것은 이때 오르는 계단은 돔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마련된 둥근 외벽과 내벽 사이의 공간에 만들어선지, 공간의 모양과 상태에 따라 변화무쌍했다. 사회는 몸을 숙이거나 옆으로 기울여야 갈 수 있는 계단을 오르고 있자니, 무슨 첩보 영화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 같았는지 신이 난 듯 보였다. 그때였다. 갑자기 곧장 하늘을 뚫고 나갈 듯 공격적으로 나 있는 좁고 수직인 계단이 나타났다. 느낌적으로 이 계단을 오르면 쿠폴라 정상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구조가 얼마나 복잡하고 경사가 심했는지 보여드리기 위해 내려오는 길에 찍은 쿠폴라의 계단

“와아!!!!!!!” 중년생 앞에서 오르던 사회가 먼저 소리쳤다. 몇 걸음 후, 중년생도 자연스레 같은 탄성을 질렀다. 질렀다기보다는 ‘질러졌다’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무조건 감탄사가 나오는 풍경이 360도로 눈앞에 펼쳐졌다. 구름이 조금씩 떠 있는 눈부신 파란 하늘아래 동서남북 어느 방향을 보나 모두 멋스러운 붉은 지붕들이 피렌체를 뒤덮고 있었다.

가파른 계단과 어두운 통로의 끝에 갑자기 펼쳐지는 피렌체의 황홀한 장관

난간 바로 아래쪽이 궁금해서 바라보니 돔의 규모가 워낙 커서인지 돔 지붕이 미끄럼틀처럼 둥글게 꺾여있는 정도만 보일 뿐 눈에 다 들어오지 않았다. 사회와 중년생은 사진도 찍고 일광욕도 하면서 피렌체 전체를 눈에, 그리고 가슴속에 담았다.

좌측부터, 아래를 내려다보면 미끄럼틀처럼 살짝 보이는 쿠폴라의 모습, 피렌체 대성당의 긴 지붕과 지오토의 종탑, 쿠폴라 전망대에서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본 모습

20여 분 정도 있었나? 정말 짧아서 아쉬웠지만 다음 관람 시간이 있어서 우리는 다시 내려가야 했다. 내려오는 길에 문득, 쿠폴라에 올라서서는 정작 쿠폴라를 제대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재미있게 느껴졌다(쿠폴라의 그림자는 볼 수 있다). 반대로, 건너편 지오토의 종탑은 시야에 정확히 잘 들어왔는데 말이다. 타인의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척척 제시해 주는 사람도 정작 본인의 고민은 제대로 못보고 갈팡질팡 하는 일이 다반사라는 생각이 들어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인간이 살아가는 이치와도 똑같은 것이 아닌가?

두오모 밖으로 나와보니 10시가 넘은 시각. 아직 오전이었고 브루넬레스키 패스로 볼 수 있는 것들이 코 앞에 있었지만, 일단 우리는 휴식이 필요했다. 그렇다고 호텔에 가긴 뭐해서 일단 주변 골목을 설렁설렁 다니기로 했다. 그러다가 들어간 곳이 레고 상점. 피렌체에 온 첫날부터 눈에 들어온 것들 중 하나가 알록달록한 레고를 파는 상점이었는데 평소 레고 마니아도 아니고 다른 볼거리도 많고 해서 딱히 가 볼 일이 없었다가 시간도 많은 참에 휙 들어가 본 것이었다. 정말 셀 수 없이 많은 블록 시리즈 박스가 쌓여 있었고, 상점 중앙에는 각종 블록을 조합하여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든 후 살 수 있는 DIY 존도 마련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사회와 중년생의 눈길을 가장 사로잡은 것은 레고 블록으로 만들어진 게시판이었다. 게시판 상단에 레고 블록으로 ‘Rebuild the World’라고 적혀 있었고 그 밑으로는 여러 나라의 국기, 사람 이름, 알 수 없는 그림들이 역시 레고 블록으로 표현되어 있었다. 레고로 낙서를 했다고 하면 딱 맞는 표현일 것이었다. 순간, 우리도 뭔가 흔적을 남기고 싶었지만 워낙 빽빽하게 차 있어서 빈 공간을 찾을 수 없었다.

피렌체 시내 한복판에서 만난 아기자기하고 창의적인 레고 낙서판(?)

“에이, 그냥 가자!”, “그래, 나 배고파졌어!” 사회와 중년생은 거리로 나와 곧장 목적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대화를 나눌 필요 없이 점심 메뉴는 정해져 있었다. 어제 겨우 하나를 둘이 나눠 먹어 너무 아쉬웠던 곱창 버거 ‘람프레도또’였다. 이미 오늘 아침 나올 때부터 중앙시장의 네르보네에 가기로 단단히 약속했던 두 사람이었기에 걸음은 빨랐고 망설임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젠 가는 길도 어느 정도 익숙해서 오래 걸리지 않아 도착했다. 가게 앞에는 역시 예상대로 줄이 늘어서 있었다. 이 정도 맛이라면 기꺼이 서주겠노라! 말은 안 했지만 서로의 눈빛으로 다짐하는 두 사람이었다. 처음엔 둘이 같이 줄을 섰다가 곧 계획을 변경하여 사회는 먹을 자리를 맡기로 했다. 어제는 처음이고 정신없어서 잘 몰랐는데 먹는 자리도 가만히 보면 좀 더 깨끗하고 여유로운 공간이 있어서 그쪽을 미리 선점하기로 한 것이었다. 작전 성공! 중년생이 서 있던 주문 줄이 거의 줄어들 때쯤 사회는 좋은 자리를 맡을 수 있었다. 중년생은 곱창 버거 2개와 하우스 레드와인 4분의 1병을 주문했고 곧 받아서 사회가 확보한 자리에 도착했다. 어제, 곱창 버거와의 첫 만남 때는 맛이 어떨지 몰라 냄새와 비주얼로 탐색하는 시간이 살짝 있었는데, 맛을 알아버린 오늘은 이미 두 사람의 입안 가득히 침이 고여버린 상태였다. 아는 맛이 무섭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찹찹찹- 꿀꺽꿀꺽- 쿠폴라에서 등산 아닌 등산을 하고 나서인지 와인을 곁들여서인지 어제보다 몇 배는 더 맛있게 느껴졌다. 13유로의 터질듯한 행복은 불과 10여 분만에 그렇게 입 속으로 깨끗이 사라졌지만 거리로 나온 이후에도 입 안과 입술에는 한동안 여운이 맴돌았다.

“뭔가 아쉬운데? 마무리할 거 없을까?” 입맛을 다시며 사회가 말했다. “그렇다면, 젤라또지!” 둘은 의견 일치를 확신하듯 하이파이브를 세게 하고선 함께 웃었다. 너무 세게 해서 손바닥이 콘서트 장에서 박수를 세게 쳤을 때처럼 저릴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방금 전까지는 분명 둘 다 지쳐있었는데 바로 힘이 넘치는 걸 보니 역시 내장 요리가 품고 있는 에너지는 엄청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렌체 내장요리의 발달은 어제저녁에 먹었던 스테이크, 즉 소고기 요리의 발달과 맞물려 있다. 처음에는 품질이 좋고 비싼 이쪽 지방의 소고기를 소비하는 층이 당연히 귀족이었으니 고기를 손질하고 남은 내장은 먹지 않고 버렸는데, 돈이 부족한 서민들이 그 내장을 가져다가 먹을 수 있도록 조리하기 시작했던 것이 점차 기술이 발달하여 지금 우리가 줄 서서 먹는 명물 요리로 거듭나게 된 것이었다. 귀족들의 소고기 소비가 늘수록 나오는 내장의 양도 늘어나는 구조이니 결국 서로 맞물려 함께 발전했다고 할 수 있었다.

오늘도 방문한 네르보네의 곱창버거(람프레도또)와 레드와인의 잊지 못할 자태

사회와 중년생은 힘이 난 만큼 걸음도 빨라 금세 목표한 젤라또 가게 앞에 다다랐다. 앞선 두세 번은 우연히 들른 한 가게에 꽂혀 같은 젤라또만 먹었었는데 이번엔 모처럼 검색해서 나름 오래되고 유명한 가게를 표적으로 삼았다. 다행히 사람이 많지 않아 주문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너무 기대를 해서인지 아니면, 우리가 거의 20일 동안 제법 많은 젤라또를 접해 봐서인지 맛은 생각보다 놀랍지 않았다. 그래도 당연히 완전 맛있었다. 이탈리아의 젤라또니까!

가게 주변을 걷다 보니 피렌체의 첫날밤 가이드와 함께 지나간 골목이 보였다. 가이드도 현재 쓰고 있는 가죽 지갑을 파는 가게 앞을 스쳐 지나갔었는데, 당시에는 밤이라 문이 닫혀 있어 아쉬웠던 기억이 났다. 가까이 다가가 봤다. 오늘은 불이 켜져 있어 쇼윈도 너머로 진열된 가죽 제품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진열대 너머 내부 깊숙한 곳으로 눈길을 돌리니 각종 가죽 원단과 재단 도구들이 큼직한 나무 테이블 위에 올려진 채로, 정말 장인의 작업대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들어가 볼까?” 중년생이 잠시 고민하고 있는데 사회가 말했다. “안에 사람이 없는 거 같은데?” 사실이었다. 문도 잠겨 있었다. 어차피 맘에 들어도 오늘은 살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나중에 다시 와서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돌리려는 찰나, 건너편에서 누군가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알고 보니 가죽상점 주인이었다. 그때가 낮 1시가 넘은 점심시간이어서 건너편 작은 곱창버거 가게(이 집도 맛있어 보임)에 줄을 서 있다가 우리를 보고 다가온 것이었다. 우리는 웃으며 식사하시라는 제스처와 함께 나중에 꼭 다시 오겠다고 말하고는 서둘러 골목을 빠져나왔다. 밥 먹을 때는 절대 아무도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것이 사회와 중년생의 평소 굳건한(?) 지론이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호텔에 들어가 쉬기로 했다. 아침부터 쿠폴라에 올라 힘을 뺐고, 지금은 배불리 먹었기 때문에 이다음엔 잠이 몰려올 차례라는 것을 직감했으니까 말이다. 돌아가는 길에 작은 상점에서 물 한 병을 사서(2유로) 방으로 올라갔다. 크로스 백과 외투를 벗고 침대에 걸터앉자마자 피로가 전신을 덮쳤다. 정말 덮쳤다는 표현이 정확했다. 한눈에 봐도 넘을 수 없는 높이의 파도처럼 그렇게 피로는 두 사람을 덮쳐왔고, 사회와 중년생은 저항하지 못한 채 낮잠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역시나 맛있는 젤라또(좌)와 다음을 기약하기로 한 가죽 상점(우)의 모습

낮잠의 쓰나미를 헤치고 먼저 눈을 뜬 것은 사회였다. 누운 채 자연스레 스마트폰을 켜고 일기를 적는 사회. 사실 완벽한 일기라기보다는 있었던 일들이나 지출 내역을 그날그날 간단하게 메모장에 적어두는 습관이 있었다. 얼마나 더 시간이 흘렀을까? 사회가 뒤척이며 이것저것 하다 보니 잘 만큼 잠을 자서 수면의 깊이가 얕아진 중년생도 조금씩 꿈틀대다가 스르륵 눈을 떴다. 처음엔 흐리멍덩했던 중년생의 눈동자가 의식을 찾을수록 점점 또렷해졌다. 시간은 벌써 오후 5시가 넘어 있었다. “어우~ 이대로 하루를 마감할 순 없다. 나가자!!” 자신에게 하는 말인지 사회를 향해 던진 말인지 모르게 중년생이 소리쳤다. 나가서 바로 향한 곳은 역시나 두오모. 그중에서도 피렌체 대성당 바로 건너편에 붙어 있다시피 한 산 지오반니 세례당(Battistero di San Giovanni)이었다. 브루넬레스키 패스로 갈 수 있는 6곳 중에 오늘 한 곳이라도 더 가야 내일 일정이 조금 더 여유로울 것 같아서였다. 사실, 패스는 2박 3일간 유효하므로 모레까지 나누어 관람하면 전혀 문제 될 게 없었지만 모레는 다른 일정이 있었다.

12세기 초에 완공되어 현재, 피렌체의 가장 오래된 세례당인 이곳은 메디치 가문의 사람들과 단테가 세례를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로렌초 기베르티가 구약의 10가지 이야기를 새긴 동쪽 청동 문이 유명한데, 미켈란젤로에 의해 ‘천국의 문’이라는 별칭이 생겼을 정도로 화려하다. 현재 이 동쪽 청동 문은 복제품이고 진품은 바로 인근 ‘피렌체 두오모 오페라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길 바란다. 내부 천장 팔각형 돔에 창세기를 표현한 황금빛 모자이크도 유명한데 사회와 중년생이 갔을 때는 보수 중이어서 천막으로 가려놓은 바람에 감상하지는 못했다. 아쉬웠지만 뜻밖에 얻은 수확도 있었다. 바로 세례당 바닥의 장식인데 패턴과 문양이 다양하고 화려하면서도 너무 고급스러워서 두 사람 다 만족스러웠다. 보는 것만으로 영감이 떠오르는 느낌이었다. 세례당 내부는 하나의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에 관람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고개를 숙여 바닥을 봐도 화려하고 기품있는 산 지오반니 세례당

밖으로 나온 사회와 중년생. 슬슬 저녁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며 자연스럽게 와인을 사기 위해 아르노 강변 쪽으로 걷기 시작했고, 가급적이면 가보지 않은 골목을 지나는 코스를 선택해서 걸었다. 낯선 골목에는 기념품 상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그중 우리가 들어간 곳은 피렌체 문양이 가득한 노트와 메모지 및 필기구 등을 판매하는 상점이었다. 전부 수제인 듯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예쁜 곳이었다. 한참을 구경하다 결국 메모지와 작은 기념품을 구입했다(총 14유로). 소소한 행복감이 밀려왔다.

천천히 대화를 나누며 아르노 강변의 다리를 건너 우리는 그제도 방문했던 와인샵에 도착했다. 이제 두 번째일 뿐인데도 단골집인 듯 익숙하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고르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탈리아의 3대 와인이라 불리는 와인 중 하나인 브루넬로 디 몬탈치노는 맛봤으니 이번엔 다음 차례가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마로네와 바롤로 중 우리는 어렵지 않게 아마로네 델라 발폴리첼라를 선택했다(49.90유로). 어차피 내일이든 모레든 다음은 바롤로를 맛볼 테니까 뭐를 먼저 경험하든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계산을 마치고 밖으로 나온 순간부터 예쁜 병 디자인에 벌써부터 설레기 시작한 두 사람. 하지만 호텔로 돌아가기 전에 곁들일 음식과 음료를 사러 마트부터 들러야 했다. 역시 그제도 방문했던 코나드(Conad)에 간 사회와 중년생은 폭풍 쇼핑을 하기 시작했다. 기대되는 와인에 부족하지 않을 만큼 다양한 프로슈토와 치즈, 파스타 샐러드 류, 거기에 가지와 파프리카 요리까지 먹고 싶은 건 다 담았다(총 41.65유로).

결국, 하루의 마지막은 와인과 음식이라니. 기행문이 아니라 점점 먹방문이 되어가서 죄송.

하루하루 와인과 이탈리아 음식의 매력을 알면 알수록, 먹고 싶은 음식의 가짓수는 늘어만 가고 있었다. 마트를 나와 빠르게 호텔로 복귀해서는 더 빠르게 씻고 그제와 같이 세팅을 마쳤다. 벌써 밤 8시 40분이었다. 얼마나 먹는데 집중했는지 그 이후로는 이날 찍은 사진이 없지만,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이날 마셨던 아마로네의 향기였다. 고급스러운 향기가 훅 치고 들어왔다가 깊고 부드럽게 온몸을 휘감고 빠져나가는 기분. 와인이 아니라 아름다운 선율을 가진 음악을 맛보는 기분이었다고 해야 할까? 쨌든, 이탈리아의 와인은 마셔보면 마셔 볼수록, 지금껏 우리가 마셔왔던 와인은 무엇이었나?라는 생각을 계속 들게 했다. 와인만큼이나 강렬했던 하루가 와인처럼 붉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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