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메인에 올랐습니다. 에디터의 픽과 여러분들의 관심에 감사합니다.
어느 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대학교 동기에게서 문자가 날아왔다.
"너 남자 소개받을래?"
그 말에 나는 칼같이 답장했다.
"별로. 생각 없어."
한참 심난한 시기였다. 대학교 3학년이 되고 1학기의 학점에 위험이 생겼었고, 지금은 연애나 개인 사생활보다는 학업에 신경을 써야 할 시기였다. 시험 결과를 받아보니 더 심각했기에 스스로에게 경각심을 줄 필요도 있었다.
그 후로 매일 같이 학교 강의가 끝나면 도서관에서 계속 공부를 하고, 주말에는 자격증 시험을 치고 영어공부를 하곤 했다. 그렇게 똑같은 일상 도중에 매일 함께했던 건 기숙사의 밥이었다.
이미 기숙사에 들어가면서 미리 지불한 돈이 있었던 만큼, 먹지 않으면 손해였기에 꼬박꼬박 챙겨 먹었지만 그렇게 맛이 있던 것도 아니었던 탓에 기숙사 밥이 마냥 환영할 수 없었다.
배가 고픈 시기라도 편식은 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내 동기는 아르바이트 때문에 기숙사 밥을 챙겨 먹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 녀석의 성격에는 돈 한 푼이라도 아까워서 억지로 먹을 텐데 그러지 않는 걸 보니 다른 곳에서 먹을 게 있는 모양이었다.
동기의 말은 그랬다.
"저번에 내가 소개해준다는 사람 있잖아?"
"어? 언제?"
"며칠 전에 있어. 네가 단칼에 거절하길래 그 이후로 말을 안 했지."
그 동기가 소개해주겠다고 한 남자는, 동기가 일하는 곳의 요리사였고 사장님 눈치를 이리저리 보면서 식사를 잘 챙겨주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저녁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밥을 챙겨주다 보니 기숙사 밥은 별로 시선을 두고 있지 않았다고 했다.
"좋겠네. 그런 것도 공짜로 먹고."
"너도 와. 손님으로. 내 친구라고 하면 서비스도 줄걸? 저번에 보니까 피자 한판도 그냥 주시던데."
결국엔 꿀꿀하던 요즘 기분을 달래서 외식을 할 겸 다른 친구와 함께 동기가 아르바이트하는 곳에 식사하러 갔다. 그곳은 하얀 바탕에 모던한 느낌으로 인테리어가 되어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파스타보다는 리조또가 유명한 곳이었지만, 오랜만에 밥이 아닌 면을 포크로 말아보고 싶은 욕구가 마구 생겨났다.
저녁시간 한창이라서 그런지 그 안은 꽤나 바빴고 아르바이트하고 있는 동기와 인사도 아주 짧게 지나쳤다. 그래서인지 주방에 있는 요리사가 직접 나와서 서빙까지도 하는 모습을 보였고, 나의 테이블 위에도 다른 아르바이트생이 아닌 하얀 와이셔츠에 버건디색의 앞치마를 매고 있는 요리사 분이 양손에 피자 한판과 파스타를 하나씩 들고 다가왔다.
"여기, 쉬림프 로제 파스타와 부라타 치즈 피자 드릴게요."
그리고 맛있게 드시라는 말과 함께 인사를 하고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
다른 친구는 말했다.
"여기 엄청 바쁘네."
"그러게."
"손님도 다 여자들 뿐이야."
"그것도 그러네."
서빙을 하고 있는 홀 아르바이트생이나 홀 매니저나 전부 여자인 데다가 손님들까지도 다 여자들 뿐이었다. 마치 주방 빼곤 다 여자들밖에 없는 것 같은 그런 분위기였다.
사실 그럴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지만, 왠지 그를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을 읽은 건지 아니면 똑같이 느낀 건지, 같이 온 친구는 나에게 말했다.
"근데 방금 서빙해주신 분, 겁나 분위기 있던데. 그렇지 않냐?"
"잘생겼던데."
"거기까진 모르겠는데, 인상이 좋더라."
나는 포크를 빙빙 돌리면서 주방이 있는 홀 쪽으로 자주 시선을 돌렸고, 마침 동기와 이야기를 나누던 그의 모습이 자주 보였고, 내쪽을 가리키는 게 뭔가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내쪽을 보는 그와 아주 잠깐 눈을 마주치고, 그가 고개를 까딱 하길래 나도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그를 멀리서 살펴보았다.
솔직히 말해서는 꽤나, 아니 아주 마음에 들어왔다.
일전에 학점을 신경 쓴다고 소개받는 것을 거절한 것을 후회할 정도로.
나는 그렇게 그날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온 동기에게, 다시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우리 둘은 동기의 주선으로 만나게 되었고, 대학생인 나와 직장인인 그였던 만큼 만남은 어려울 것 같았지만, 마냥 한가하게 있을 수 없던 나로서는 오히려 부담스럽지 않아서 더 좋았다.
그에게서 놀란 점이 있었다면, 꽤나 동안이었던 탓에 생각보다 나이가 있다는 점이었다. 추가적으로는 소개를 받고 정식으로 만나 2주가 지나서야 알게 되었던 것은 나와의 연애가 첫 연애였다는 것이다.
그는 꽤나 인상이 좋은 편이었다.
그건 웃는 얼굴을 자주 보이는 편이기 때문이었고, 일터에서는 꽤나 까칠한 편이므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걸 알 수 있는 것은 주방 안에서를 제외하면 말투와 행동 자체가 온순하기에 같이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마냥 이해가 되는 편이라고 했다.
하지만 반면에 본인은 '호구상'이라고 말도 하기도 했다.
정말로 어느 날은 번화가로 나가서 그를 만나기로 했는데, 그 번화가에는 횡단보도가 없었다.
찻길을 하나 두고 그는 저쪽에서 나는 이쪽에서 전화 통화를 하고 서로를 바라보고 앞을 살피며 걷고 횡단보도가 있는 쪽까지 이야기하면서 걷기로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 그는 정말로, 정말로, 누군가에게 옷깃을 잡히는 경우가 6번이나 있었다. 나와 전화 통화하면서 걸어가는 그 사이에.
그 사람들은 대학교 동아리에서 설문조사에 참여해달라고 붙잡는 사람들이었는데, 그에게는 그런 게 붙잡히는 게 반드시 한 번은 있다고 말했다.
내 눈의 그는 그 정도로 순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웹툰 '금세 사랑에 빠지는'에서
하지만 그를 만나면서 제일 불안한 게 하나가 있었다.
그건 상상 이상으로 여자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는 타이밍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사람들에게서 자신이 그 사람을 좋아하고 있다고, 착각을 하게 만들었던 경우도 몇 번 있었다는 것을 듣게 되기도 했다.
그런 점을 또 알게 되다 보니 그가 나를 좋아하는 것보다, 내가 그를 더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만큼 그의 과거에는 과연 몇 명의 여자가 지나쳐갔을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또 아이러니한 게 나와의 스킨십이 계속될 때마다 나보다도 더 부끄러워하는 경우를 보게 되는 경우가 자주 이어지곤 했는데, 그런 나는 이런 질문을 했다.
"오빠, 나 말고 연애해 본 적은 언제였어?"
"글쎄 기억이 안 나네. 꽤나 오래됐는데."
"그게 언제인데?"
"그냥, 뭐. 진짜 오래됐어. 잘 기억 안 나."
그는 그렇게 넘기려고 하는 듯한 모습에 나는 더 집요해져 보았다.
"기억 안 날 리가 없잖아. 왜 말해주기 싫어서 그래?"
그러니 그는 당황하기보다는 머쓱해하던 그는 조금 곤란한 듯한 얼굴로 말했다.
"그때 그것도 연애라고 한다면 모르겠지만, 나는 제대로 된 연애를 한 적이 없어. 진짜 나도, 너도 서로를 좋아한다고 느끼는 건 지금이 처음이야."
그를 생각하면 쉽게 늦게 시작한 첫 연애라고 할 수 있는 나이.
그 사이에서 진짜로 누군가를 좋아한 게, 내가 처음.
뭔가 기쁜 것 같기도 하지만, 좋아해야 하는 건지 아니 또 안 좋아해야 할 건 뭔지, 뭔가 신기함이 섞인 듯한 기쁨을 느꼈다.
"지금 나 기분 맞춰주려고 거짓말하는 거지?"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 생각해. 나는 너한테 거짓말하고 싶은 생각 자체가 없었으니까."
라고 말했다.
믿고 말고 할 것도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처음이니 아니니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래도 한 번 생겼던 궁금증은 왜 그리 쉽게 지워지지 않는 것인지, 좋아하는 사람에 대해 관련돼서 더 그런 것인지, 왜 그에게 과연 그동안 여자 친구 한번,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하지 못한 걸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곤 했다.
분명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하고 사랑해서 편견이 생길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멀쩡히 나와 이렇게 알콩달콩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을 보면 마냥 그럴 것도 없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또 그런 쪽의 이야기를 꺼내면 기분 나빠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고, 왜 자꾸 그런 이야기를 꺼내냐고 거슬려할 것 같아서 그냥 궁금했던 것들 중 하나로 정리하기로 했지만, 생각보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타이밍에 그의 이야기는 술에 취한 그의 친구로부터 우연찮게 듣게 되어버렸다.
"이거. 이놈. 예전에. 진짜 어릴 때. 초등학생 때. 어떤 여자애를 막 때린 적 있었거든요~"
"아..."
그는 친구를 한 번 바라봤지만, 딱히 별다른 눈치나 말은 하지 않았다.
그 사이에서 나는 더 이야기해달라고 말할 수 없었지만, 그의 친구는 술에 취할 만큼 취한 건지 알아서 다 말해버렸다.
그에게는 트라우마와 비슷한 것이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에 유치하게 이어온 주변 동급생들의 이간질로 인해서 한 여자아이를 때려버리게 되었고, 그게 부모님들끼리의 다툼은 물론 학교 전체가 시끄러워지는 큰 일로 번졌다.
그는 지금까지도 그렇게 어린 시절의 그녀에게 미안해하고 있다. 그렇게 마음속에 두고 있다 보니 여성 자체에 조심스러워지고 조금 더 눈치를 보고 더 신경 쓰기도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미안함이 속죄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이어져 있다 보니, 그런 나쁜 짓을 했다 보니 누군가가 자신을 좋아한다고 해도 믿기가 어렵다고 했었다.
그런 과거가 있다 보니, '자기 자신이 충분히 다른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하며, 돌아가는 길에 그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거 진짜야?"
나는 물었다.
"뭐? 내 친구가 말한 거?"
"응."
그리고 그는 생각보다 뜸을 들일 것도 없이 답했다.
"맞아. 그랬었어. 그랬었지."
그런 사실이, 사실 충격적이기도 하면서 그다지 받아들이지 못할 것도 아닌 것 마냥 무덤덤해지기도 했다.
아직 그를 만난 기간이 그리 긴 것도 아니고, 이제 한 달이 지나가려고 하지만, 충분히 그가 폭력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폭력은 누구나 할 수도 있는 거지만, 그걸 싫어하는 사람이라는 것 또한 느낄 수 있었다.
자기 잘못에 후회하는 사람이,
내가 반했던 그 보기 좋은 웃는 얼굴을 보여줄 수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가 나를 택시에 태워줄 때 마주쳤던 눈이 계속 생각났다.
뭔가 자신을 실망한 게 아닐까 하는 그런 눈빛.
나는 물었다.
왜 그런 사실에 어떤 말도 하지 않냐고.
그는 대답했다.
나를 계속 만나면 결국 알게 될 일이고 사실이니까, 받아들이는 대로 받아들일 거라고.
그는 그런 겁쟁이었다.
그건, 그런 적도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렇게 무서워하면서 이해해 줄 사람을 만날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 걸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말시험이 다가왔다.
그러다 보니 우연찮게 그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뭔가 좋지 않은 타이밍이 된 거 같아 불안하기도 했다. 그래도 평소처럼 연락을 하고 목소리를 들었다.
시험공부에 집중하면서 연락의 빈도는 당연스럽게 주기도 했고, 한 주에 한 번도 마주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다시 인식하게 되는 그 좋지 않은 타이밍 때문에, 오히려 시험까지 망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오히려 아예 신경을 쓰지 않은 날도 있었다.
이번 기말고사는 대체 왜 이리 긴 시간 동안 치러지는 것인지 몇 번을 책상을 두드리곤 했다.
그렇게 그 사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될 시간을, 아주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었다.
어쩌면 지금 제일 불안한 건 그 사람이 아닐지, 하면서.
그렇게 기나긴 시험을 끝나고 아직 한창 일하고 있을 그가 일하는 레스토랑을 향했다.
마음 같아선 불쑥 나타나서 깜짝 놀래 주고 싶었지만, 그의 직장인만큼 장난을 칠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그렇게 그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그에게 인사를 하고 그가 만든 음식을 먹고 기분을 풀었다. 빨리 그가 퇴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사장님이 신경 써 주었는지 1시간 일찍 퇴근시켜주시기도 했다.
웹툰 '금세 사랑에 빠지는'에서.
그렇게 오랜만에 길거리를 같이 걸었다.
한동안 말이 없기에 나는 물었다.
"무슨 생각해?"
주변에는 사람들의 소리 때문에 시끄러웠지만, 그래도 그는 내 말을 곧바로 들은 모양이었다.
"그냥. 그때 그런 내 이야기를 듣고, 이젠 어떻게 생각하나 싶어서."
"어떻게 생각할 게 뭐 있어. 어릴 때 그럴 수도 있는 거지. 예전에 나는 말야 엄마 주머니에서 내 용돈 챙기려고 얼마씩 빼낸 적도 있었는데."
그 말에 그는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흐핫. 그래."
그리곤 다른 곳을 구경하기도 했다.
내 손에 이끌려 화장품 가게도 들렸고, 오랜만에 하도 말을 많이 해서 그런지 커피를 마시러 들어가기도 했고, 다음에 만날 땐 뭘 볼지 미리 영화관에 들러 상영 중인 영화들을 살피기도 했다.
그 와중에 그는 내가 바라는 얼굴을 한 번도 해주지 않았다.
무엇이 마음에 걸리냐는 나의 질문에 그는 그렇게 말했다.
"나에 대한 자신이... 잘 없어."
묘하게 이상한 그의 어감에 조금씩 감정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
마치 이별을 예고하는 것 같은 그런 불안감처럼.
"그동안 누군가에게 사랑을 표현해 본 적이 없어서. 미안한 일을 계속 만들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해."
"나는 오히려 그래서 좋아."
"혹여나. 그런 실수를 또 하지 않을까..."
"괜찮아. 나 그런 걱정 안 해."
그는 마치, 아직도 아물지 않았던 상처가 계속 아프다 보니, 그 고통에 익숙해진 사람처럼 보였다.
첫 연애가 늦는다는 게 뭐 어떻다고.
처음부터 신경 쓰지도 않았고, 오히려 내가 처음이라는 것도 좋다.
그리고
"그렇게 그렇게 버티고 버텼으니까. 나랑 이렇게 만났으니까."
그 말이,
그 오글거릴 수 있는 말을 왜 이렇게 담담하게 말 할 수 있는지,
아무리 강하게 그를 안아도 부서질 것 같지 않았다.
그 정도로 꽉 끌어안아 주었다.
"괜찮아."
그 순간만큼은 내가 연상이 된 것 같은, 어린아이를 달래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이 글은 아래의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나를 좋아했으면'에 수록되어 있는 글이지만, 수번의 교정이 진행되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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