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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양 Aug 02. 2019

남자 친구 뒷바라지하는 나의 연애(1)

 

 나는 입학 후 1년만 수강한 뒤 2년을 통째로 휴학했다.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교통사고로 수술비가 막대하게 들어갔고, 장학금에 도전했지만 경쟁률을 뚫기엔 어림도 없었다. 돈이 필요했던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대학교 등록금도 따로 모으면서 아버지 병원비도 모았다. 돈이라는 게 얼마나 모으기 힘든지 그렇게 스스로의 생활력이 길러지곤 했다.


 남자 친구와의 첫 만남은 대학교에서였다. 동기였으면서 서로를 알게 된 것은 입학하고 나서 3년 후였다.

 1학년 때는 왜 서로를 몰랐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2년 휴학과 그의 2년 군대생활이 겹쳐 복학 때 시기가 딱 맞아떨어졌다.

"나는 당연히 후배일 줄 알았는데..."

 그의 입장에서는 그게 당연했을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나는 아무리 같은 학년이라도 후배 녀석이 치근덕 거리며 다가오길래 뭔가 했었다.

 그는 복학하면서 나름 후배 여자들과 잘 지내려 보려고 나와 친해지려고 했던 게, 알고 보니 동기였던 거였다. 그 덕분에 나름 대학생활은 잘 지낼 수 있었다. 다른 동기 친구들은 졸업반이나 3학년이었고 우리 둘은 서로 같이 어울리면서 캠퍼스 생활에 어느 정도 의지하다 보니 사귀기까지 이르렀다. 솔직히 그 과정은 뭔가 얼렁뚱땅 진행된 것 같기도 했었다.


 그렇게 그를 만나면서 어떤 직업을 노리고 공부를 해야 할까 하던 고민은 사라졌다. 그는 입학할 때부터 공무원이 되기 위한 목표가 있었는데, 어째 나도 그의 목표에 자연스럽게 따라가게 되었다.

 졸업을 미루면서 합격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열심히 노력하면 2년 안에 합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합격선은 나를 용납해 주지 않았다. 어떤 경우에는 1,2점 때문에 불합격되는 경우도 있었고, 그 경험 때문에 가산점을 알아보기도 했다.

 공시생의 연차가 늘어날수록 먹는 것도 조금씩 부실해지는 경우도 있었고, 환경은 더 익숙해지는 만큼 더 괴로워지기도 했다.

 그래도 계속 버틸 수 있는 것은 혼자가 아니라, 그와 같이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시 돌아온 대학교 또한 남자 친구가 있었기에 재미있게 보낼 수 있었다. 이제는 그게 공무원 시험 단계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렇기에 시간이 조금 걸려도 해낼 수 있을 거라고 믿어왔다.


"밥 먹자. 집에서 싸왔어."

"언제 다녀왔어? 공부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집중하고 있길래 그냥 조용히 다녀왔어."

 매번은 아니지만, 그는 그렇게 집에 가서 도시락을 내 몫까지 준비해서 가져오곤 했다. 물론 소풍 온 것처럼 두근거리는 도시락은 아니었지만, 나를 생각해 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느껴졌다.

"집에 가서 도시락 싸니까 엄마가 엄청 뭐라 하는 거 있지."

"뭐라고 하셨어?"

"돈 줬는데 사 먹지 뭐하러 도시락을 싸러 집으로 오냐고. 아니면 너랑 같이 와서 밥을 먹고 공부하러 가던가 하지! 라던데."

"그렇겠네. 어머니 입장에선 답답해 보이셨을 수 있겠네."

"답답하긴 무슨. 이런 돈이라도 아껴야 나중에 데이트하러 가지."

 그런 말이 실제상황이기에 씁쓸했다.

 그와의 연애가 3년이 된 만큼 서로 부모님에게 인사도 드렸었다.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안정적인 직장만 있다면 결혼해도 좋을 사람이라고. 그건 시간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기 때문인지, 그의 어머니는 나를 그다지 좋게 보시지는 않았다. 그저 10대 학생들이 사귀는 정도로 여기셨다.

 그 반대로 우리 엄마는 벌써 남자 친구가 사위라도 된 것 마냥 몸에 좋은 것을 지어주던가 가끔 도시락을 직접 싸오기도 하셨다. 아빠에게 필요할 것 같은 건강식이 그에게 돌아가는 경우도 있었고 조금 오버스럽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이왕에 바람 쐰 거, 오늘 영화 보러 갈래?"라고 남자 친구가 말했다.

"안돼. 공부해야지."

"힐링하러 가는 거지."

"거짓말. 그냥 요즘 유행하는 거 보고 싶을 뿐이잖아."

"천만이다 천만. 영화 관람객수가 천만이 넘었는데 우리만 안 봤어."

 천만 관객이 넘었다고 한다면, 의무감을 가져서라도 봐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나는 젓가락을 물고 고민했다. 하지만 한 푼이 아쉬울 때인데, 그 영화 한 편 관람비용을 그저 간과할 수가 없었다.

 지금 시간이라면 당연히 조조할인은 안될 테고 따로 할인 혜택도 없다. 그리고 팝콘이나 콜라를 먹으려고 할 거고 다 보고 나오면, 더군다나 재미있으면 재미있었던 만큼 뒤에 야식을 먹으면서 영화 이야기를 할지도 모른다.

"어차피 히어로 물 영화라는 게 악당을 이기고 끝 아냐? 근데 봐야 해? 한 달 후에 시험인데."

 나는 그렇게 변명을 하고, 어느 정도의 생계를 계산하며 말했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그렇게 한다고 한들, 바로 무너질 때가 있었다.

"내용이 궁금하단 말이야~"

 그러곤 앙탈을 부리며 나를 두 팔로 감싸 안았다.

"자, 잠깐만."

 그는 스킨십도 많고 애교도 많은 사람이었다.

"보.고.싶.다.고~"

 그러면서 내 몸을 잡은 손으로 은근슬쩍 여기저기 만져댔다.

 처음에는 이런 행동에 약했던 시절이 있었지만, 3년이나 만났던 만큼 마냥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그의 행동을 저지하고 허락한 것은 최근에 살이 찌고 삐져나오는 살이 많아지는 만큼 그게 그의 손에 닿는 게 신경 쓰였기 때문이었다.

"알았어 그렇게 문대지 마. 그리고 내가 은근슬쩍 여기 만지려고 하지 말라고 했지?"

"뭐? 어디?"

 하여튼 이 능구렁이 같은 남자. 이거 연애를 계속하고 정말 부부가 되면 그저 능구렁이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2년 하고도 반. 우리의 연애가 5년이 넘어가고 있던 시기.

 결국엔 결과를 얻어냈다.

"미안. 나도 합격했어야 했는데."

 나만, 말이다.

 그는 나에게 죄를 진 것 마냥 말했다.

 내가 합격했던 그 시험은 그 해의 마지막 시험이었기 때문에 다음 시험을 치려면 또 몇 개월을 공부해야 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했다.

"괜찮아. 이젠 내가 도와줄게. 잘할 수 있을 거야."

 분명 그는 불안해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이 순간 정신을 더 바짝 차리지 않으면 더 성적이 안 좋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만약에 내가 남자 친구만 합격하고 내가 떨어졌다면, 그의 길이 밝혀진 만큼 아직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던 나는 불안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게 지금 서로 입장이 바뀌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내가 옆에 계속 있다고 의지를 해도 괜찮다고 지켜줘야겠다는 마음이었다.


 공무원의 삶은 그다지 기대에 미치진 못했다. 초봉이 작은 건 알았지만, 야근 수당이 들어오지 않는 이상은 솔직히 만족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 아직까지 아버지의 병원비가 필요하고 남자 친구를 어느 정도 내조를 하고 저금을 하면 나를 위한 돈은 10만 원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공무원법 상 겸업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게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지 잘 알고 있다.

 그 안에서는 서로가 같이 있으면서 의지하면서 공부를 해왔지만, 내가 그의 곁으로 가지 않는 이상 그는 홀로 싸우고 있다. 내가 분명 그에게 도움을 준 것도 있지만, 나는 그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받아왔기에 제대로 보답을 할 순간들이었다.

 이번에는 내가 직접 도시락을 싸 보기도 했고, 영화관까지 가기는 그렇기에 어느 정도 힐링을 위해서 인터넷 결제를 해서 영화를 보기도 했다. 최대한 시간을 절약하고, 절약한 시간으로 좀 더 쉬거나 좀 더 공부할 수 있게 맞추어 주었다.

"공무원 업무는 어때? 할만해?" 어느 날 그가 물었다.

"응? 할만하지. 조금 야근이 불특정 하게 있는 게 좀 그렇긴 한데. 괜찮아."

"그래."

 그는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장난기가 줄어들어 있었고, 목소리는 기존과는 다른 낮은 톤으로 유지되는 게 일반적이었고, 물을 주어도 활기가 돌아오지 않는 식물처럼 시무룩한 날이 대부분이었다.

 먼저 그가 나를 안으려고 다가오는 적도 줄어들었고, 그의 체온이 느껴지고 싶을 때쯤에는 내가 두 팔을 벌려 안아달라는 제스처를 취하곤 했다.

 어쩌면 그가 포기하고 싶어 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에, 할 수 있다고 내가 옆에 있다고 믿음을 주는 게 내 역할로 자리 잡고 있었다.


출처 pngtree



 하지만 그도 그럴법했다.

 내가 공무원 시험 합격하고 1년 반이 지났다.

 성적은 오히려 더 떨어진 경우도 있었다. 우리의 연애는 어느새 7년이라는 숫자를 세길 예정이었고, 그게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로 뭔가 무력했다. 우리들의 나이는 이미 서른을 넘었다.

 그를 응원하던 엄마 조차도.

"그 정도면... 할 만큼 하지 않았니?" 나이를 먹어가는 나를 걱정하는 모습이었고, 남자 친구가 공무원 준비생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은.

"5~6년이면... 할 만큼 하지 않았어요?"

"본인 생각도 해야 하지 않을까?"

"미안해요. 보기에 안타까워서요."

 라는 식으로 나를 안타깝게 보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전부터 그러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들은 남들 보기엔 안쓰러운 일로 여겨지고 있었고, 나는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해도 노골적으로 다가오는 시선들은 다 막지 못하고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었다. 마치 오히려 세뇌가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그 사람이 좋아서 도와주고 믿고 있는 것은데, 이런 짓을 하고 있는 내가 바보 같은 짓으로 보일 수가 있는 거구나.' 그런 가능성이 담긴 생각은 답답함을 넘어서기도 했다.


 나는 그렇게 타인들의 시선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었다. 무엇보다 나 또한 지쳐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더 이상 우리들의 데이트 또한 특별한 것은 사라져 있었다. 그 특별함이 무엇을 칭하는 거였던 건지도 잘 모르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건 두근거림일까?

 아니면 믿음일까?

 아니면 의지일까?

 시간을 효율적으로 이것저것 하던 행동들은 그저 귀찮음으로 변질이 되어서 집에서 데이트한다는 명목으로 같이 있곤 했다. 그렇기 때문인지, 그와의 성관계 또한 오히려 거부감이 들 때도 있었다. 애초에 그 또한 요구하는 일도 없어졌다.

 무엇보다 한숨이 나오게 하는 건.

"거의 2년이 지나가는데..."

 내 통장에는 아무리 절약하고 저금을 한다고 해도 2년 동안 500만 원 조차 모이지 않고 있었다.

 그 통장 잔액이 뭐라고. 나는 매번 보는 통장의 내역을 조회할 때면 그런 마음이 들곤 했다.

"제발, 이 숫자 때문에 내가 그 사람을 싫어하는 일이 없기를."

 아무리 무뎌졌다고 한들. 그를 사랑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싶진 않았다. 결코 내가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다른 남자에게 눈을 돌린 적은 없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가 공무원 시험의 합격 여부를 떠나서 사람 자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기 때문에, 지금 옥죄어 오는 '합격'을 얻지 못해 괴로운 것뿐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렇게 중얼거리기도 했다.

"그냥... 다른 걸 찾아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기도 한데."

 나는 그만큼 힘들었다.

 애초에 '공무원인 그'를 원하는 것도 아니었다.


  우리들의 데이트는 더 한정적이기도 했다. 사실 기간이 길었을 뿐, 서로 다양한 시간을 함께 한 것은 아니었다. 어디 여행을 간 적도 없었고, 만나서 영화 보고 밥 먹고 카페 가고 그런 방식은 질리도록 해보고 싶었는데 그러지도 못했다.

 우리들의 주머니 사정을 살피면 편의점에 앉아서 바람 쐬며 맥주 한잔 하는 게 전부이기도 했다. 이젠 인터넷으로 영화 보는 것도 싫증이 나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는 편의점으로 갔고 생필품도 같이 장바구니에 담았다.

"잠시만, 나 전화 왔어." 그리고 직장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기 위해서 그에게 장바구니를 맡기고 편의점을 나왔다. 하여튼 야근을 안 시키면 이렇게 전화를 걸어올 때도 있었다. 보통은 이런 경우도 없지만, 후임이 들어와서 일을 가르쳐 주다 보니 이런 일도 잦았다.

 그 통화시간도 얼마나 길어졌는지 거의 20분이 다되어가는데 그는 아직도 편의점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나는 무슨 일이 있는가 싶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무엇을 하는 것인지 구석에서 쭈뼛쭈뼛 서 있었고 아직도 계산하고 있지 않았다.

"... 뭐해?"

"아, 어떤 게 더 싼가 싶어서."

 그게 변명인지 진짜인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좀 너무한다고 생각은 했다.



 그리고 겨울이 왔다.

 조금 있으면 한 살을 또 먹는다.

 직장을 다니면 역시 하루하루가 비슷하게 흘러가다 보니 나이 먹는 건 더 빠르게 느껴졌다. 지금처럼 커피 한잔 마시는 것도 완전히 습관이 되어버렸다.

 집에서는 언제 결혼할 거냐, 계속 그럴 거냐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눈에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버텨온 거 끝까지 버텨야 할 것 같은 '의리'같은 게 생기는 것 같기도 했다.

'정말... 의리로 남아있는 건가.'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애초에 공무원이 아니더라도 그에게 미련이 있기에 놓지 않는 거였다. 공무원인 남자가 필요했던 거라면 직장동료분들에게 통해서 맞선을 하거나 해도 상관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던 것도 무색하게 주변에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남자 친구랑 헤어졌죠? 혹시 괜찮으면 소개 안 받을래요?"

 라는 질문에 나는.

"저... 남자 친구 있는데요..?"

"네? 언제? 어느새에?"

"어느새에 라뇨. 오래됐는데요."

"설마 아직도, 그 남친이랑 사귀고 있는 거예요?"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어떻든 상관없었고, 나만 행복하고 내 의지만 있으면 괜찮았다.

 그만큼 나는 남자 친구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기에 꿋꿋하게 넘길 수 있었다. 그 의지가 증거였지만, 지금의 나는 그 사람만 보고 있지 않았다.

 그렇게 그런 시선과 속삭임은, 나의 벽안을 다녀가고 있었다.



 그 후 그의 부모님을 만났다.

 그것도 남자 친구에게서 약속을 전해받은 게 아니라 그의 동생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형이 얘기 안 했어요? 나는 얘기한 줄 알고 말한 건데."

 라고 말이다.

 그 해명에 그는 말했다.

"고민하고 있었어. 그래서 아직 말하지 못하고 있었어."

 그의 부모님은 나에 대한 태도가 바뀌셨다.

 예전에는 그냥 사귀고 말 여자 친구겠지 싶었는데, 예전에 받아보지 못한 예비 며느리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주시곤 그랬다. 그 자리에서 내가 억지로 웃은 건지 정말로 웃은 건지 잘 알 수 없었다. 억지로가 아니라 정말로 좋아서 웃을 수도 있었지만,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건 그 자리에 있는 그가 제일 불편해했기 때문이다.

 예비 며느리로 생각하고 있다면 그저 잘 지내기 위해서 기분 좋을 이야기만 해도 괜찮을 텐데, 내가 그의 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마치 이 자리는 나에게 사죄를 하기 위한 자리인지 부모님들은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씀만 하셨다.


 그렇게 그의 부모님의 시선이 바뀌었다.

 마치 10대 어린애들이 연애하는 것처럼 본 것 같이 느껴지던 게 몇 년 전이었는데, 이제는 마치 내가 그의 미래까지 쥐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들 정도로 과한 시선을 느꼈다. 반대로 엄마는 달랐다. 나도 모르게 맞선 상대를 찾아보려고 하는 경우도 있었고, 그렇게 아빠보다 더 챙기던 남자 친구 얘기를 꺼내시지 않은 것도 오래였다.

 이건 정말. 그저 그가 '합격'이라는 것을 얻지 못해서 생긴 것뿐인 걸까.


 그리고 그가 처음으로 내 직장까지 찾아왔다.

"밥 먹었어?"

 그리 정돈된 모습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깔끔해 보였고 쓰지 말라고 했던 때가 탄 모자를 또 쓰고 와서 거슬렸다.

"웬일이야? 이 점심시간에."

"그냥 좀. 보고 싶어서. 도시락 싸왔어."

 나는 그 내용물을 보았다. 어디에서 사 온 것도 그의 어머니가 준비한 것도 아니었다.

"네꺼는?"

"나? 나는 괜찮아. 그냥 이거 주려고 왔어."

 그는 그렇게 나에게 도시락을 건네주고 손을 한 번 흔들고 바로 돌아섰다.

 그 어떤 말도, 어떤 표현도 따로 하지 않은 채.

 그게 어째, 우리는 같이 시간을 내서 같은 자리에서 같은 도시락 하나 먹지 못하는 사이가 되어버린 것 같아서, 점점 멀어지는 그의 뒷 모습이 우리들의 거리감 처럼 느껴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오늘은 혼자서 그의 도시락을 먹었다. 하루 종일 공부만 하는 사람이 요리실력은 얼마나 더 괜찮은지 정말 혼자 만드는 건가 싶기도 했다.

 분명 그도 힘들 텐데, 이걸 만들면서 생각을 좀 정리한다던가 비우려고 한 게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먹던 도중 물을 챙기러 자리를 옮기려고 하던 와중, 내 이름이 들려왔다. 한순간에 직감할 수 있었다. 이건 내 얘기라는 걸. 그것도 남녀가 섞여 있는 목소리였다.

"아 그 사람이 유림 씨 남자 친구라고요?"

"왜 왔었대요?"

"뭐 주러 온 모양이던데, 딱 보니 공시생이더만."

 그리고 미묘한 웃음기가 귀에 확 들어왔다.

"몇 년 차라더라?"

"몇 년이지? 5~6년?"

"에이 더 넘었을 걸요?"

"엑? 그 정도면 그냥 다른 길 알아봐야 하지 않나?"

"합격 못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인데 쯧."

"남자 친구 있다는 말 진짜였구나. 나 그냥 튕기려고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그들은 그런 시절이 없던 것 마냥 비아냥거렸다.


 그렇게.

 나의 직장동료라는 사람들은 오늘 처음 보는 것으로 나와 그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들 앞에 나서서 욕하지 말라고 얕잡아 보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러기엔 내가 필요한 게 용기인 건지 분노인 건지 어떤 감정인 건지 알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럴 기회는 있었다.

 그저 가만히 서 있었을 뿐인데, 그들이 나를 발견했다.

 그들은 당연히 당황스러워했고, 나는 따끔따끔 뜨겁게 울려오는 목에서 억지로 목소리를 짜내었다.

"그 사람... 당신들이 그렇게 함부로 말해도 되는 사람 아니에요..."라고.


 그리고 두 달이 지났다.

 나의 직장생활은 소외에 가까운 일상이 되었고, 남자 친구와의 관계 또한 변함이 없었다.

 후회가 있다면 그때 더 당당하게 말할 걸 그랬다는 거였고, 남자 친구가 공무원 시험 준비과정에서 다른 고민이 있거나 부담이 있었다면 그저 나를 의지하면서 풀어나가게끔 하는 게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줄 걸 하는 생각이었다.


 더 이상 우리의 사랑에는 행복함은 남아 있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추억만 떠올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심지어 그와 함께 있을 때도.

 어쩌면 그와 나의 사랑에는 '의리'가 묶여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건 결국 그 앞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하기에 의리가 엮이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나에게는 그 앞의 사랑이 남아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마치 언젠가 쓰지 않을까 하면서 남겨두었지만, 결국엔 분리수거함에 버리지 않은 잡동사니처럼, 내 사랑도 그런 것 같았다.

 



- 이번 이야기는 남녀의 입장 중 여성의 시선에서. 그리고 다음 글에서 공시생 남자의 시선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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