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연양 Jul 26. 2019

나의 과거 연애사를 아는 사람과의 연애

 나에게 좋지 않은 술 주사가 있었다.

 그건 나의 연애사를 스스로 떠벌리는 것이었는데, 평소에도 남에게 들려주고 싶지 않은 과거일인데도 누군가가 알고 있다면 그건 분명 내 주사 때문이었다.

 애초에 주사가 있는지도 몰랐지만,

"언니 저번에 술자리에서 그런 얘기 했었는데요?"

"내가 진짜로? 정확하게 뭐라고 했어?"

"22살에 31살 만나기도 했고, 누구 좋아하면 내가 다해줄 수 있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좋아한다고요. '남편이 백수가 되어도 내가 먹여 살리면 되지.'라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이런 말을 듣기 때문에 주사가 있다는 것을 알 수밖에 없었다.


"어제 술이 많이 들어갔나 보네. 제정신인 줄 알았는데."

"왜?"

"아니, 잘 걷고 편의점에도 잘 들어가고 메로나 아이스크림 사 먹길래. 제정신인 줄 알았지."

 그것까지 주사다. 나는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술을 마셨을 때면, 늘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다. 왜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매번 그랬다.

"선배. 내가 무슨 얘기 했어...?"

 그리고 그는 나를 계속 쳐다보더니 말했다.

"아니 그냥 뭐가 재미있는지 웃기만 하던데. 그리고 남자 친구가 데리러 왔었잖아."

 그랬었다. 그건 기억이 난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남자 친구에게는 그런 실수를 한 적이 없다. 내 주사는 상대에 따라 다른 모양이기도 했다. 술자리가 즐거운 만큼 과거사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남자 친구에게 그런 실수를 한 적은 없었다. 그건 분명 같이 퇴근길에 따라가 주면서 이미 주사를 부려왔기 때문에 그런 걸지도 몰랐다.


 이러다가는 직장동료들한테 못 볼 꼴 보여주게 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들었다.

 술자리는 줄일 수 없더라도, 술은 역시 줄여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알고선 그냥 넘어가는 것일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전날 술을 진탕 마시고 숙취로 업무 하나하나에 고통이었던 당일, 점심은 콩나물이 들어간 매운 라면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회사 주변에는 그렇게 시원하게 매울 것 같은 음식은 없을 것 같았고 숙취가 없는 사람은 자장면을 먹으러 가자는 말에 질색을 하곤 했다.

 그렇게 나름 신경이 서 있었다.

 그리고 걸려온 전화. 남자 친구였다.

 평소라면 그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괜찮아? 어제 역시 술 한 병만 마셨다는 거 뻥이지?"라고 말이다.

 그게 평소의 그의 모습이다. 아주 일반적인. 하지만 들려온 목소리는 낮게 깔려있었고 꽤나 강압적인 느낌의 말투였다.

"속 괜찮냐? 약이든 뭐든 좀 챙겨 먹어라."

 그가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분명 스피커 폰으로 말하는 건 아니지만 주변 사람들 시선 때문에 그런 식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위세가 있는 모습을 보이고 싶은 건지 뭔지,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땐 내가 그한테 잡혀 사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하는 이유를 따로 알려주지 않았지만, 마냥 나로선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설령 지금 숙취가 없더라도.

"일부러 그렇게 말하려고 전화했냐? 속 안 좋을 거 뻔히 알면서?"


 꼭 그렇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니지만, 나는 그의 그런 행동을 잘 받아주지도 않았다.

 잘 받아주지 않는다고 그가 화낸 적도 있었다. 그의 말대로 라면 그게 거짓 행동이라서 남자 친구의 내조로 할 수도 있는 거겠지만, 이유도 알려주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이해를 해 주길 바라는 것도 원하는 결과는 아니다.

 아무리 좋아한다고 모든 걸 이해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지금 내 기분 자체가 엉망인데, 그걸 알면서도 그렇게 말하는 건 아무리 이해를 해 줄 수 있더라도 하고 싶지 않기도 했다.

"그러니까 술 그렇게 많이 마시지 말라고 했지? 어? 오늘은 일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가."

 그는 끝까지 그런 식으로 말했다. 그리고 그렇게 끊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다시 전화를 걸어 화를 내고 싶었지만, 차라리 대화를 안 하고 마는 게 낫겠다 싶었다.


"기분으로선 당장 술이라도 퍼먹고 싶지만, 술 생각만 하면 속이 다 올라올 것 같네."

 나는 그날은 하루 종일 매운 것과 단것을 옆에 두고 퇴근시간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버티다 다가온 퇴근 시간.

 이 시간은 또 얼마나 얄미운 건지. 속이 허해서 빨리 뭐라도 넣어달라고 싶을 정도로 배가 고파졌었다. 그 이후 남자 친구에게서 연락이 계속 오긴 했지만 받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갑자기 치킨이 먹고 싶어지기도 했다.

"하, 씨. 이러니까 살찌지."

 대체 내 머릿속에는 절제라는 게 있을까 싶었다.

 그렇게 다른 동료들과 뭘 먹으러 갈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던 도중. 다른 선배는 우리를 저지했다.

"니들 그러다가 내일 또 뒤집어진다. 안 그래도 팀장님 화났었는데, 내일 진짜 뒤지어 엎어지려고 그래?"

 단체로 술을 마시고 속을 엎은 만큼 우리들의 일 또한 역시 적지 않은 지장을 주기도 했다. 그 부분에선 팀장님이 이해를 해주기도 했지만, 그걸 무시하고 내일까지 그 꼴을 보이면 그림은 훤했다.

 그럼에도.... 마실 녀석들은 마시러 갔다.

"저, 저, 저 미친 것들."

"애들 어려서 그래. 어려서 숙취도 덜하겠지. 네가 제일 심하더만."

"안 그래도 성질 건드리는 놈도 있었어 가지고."

"누구? 남자 친구?"

"하, 씨. 선배 나 진짜 배고픈데 우리 밥이나 먹고 가자."

"그래도 상관없냐? 남자 친구 냅두고?."

"몰라. 아..."

 하지만 분명 꼬투리 잡힐 일을 만들면 나도 내 주장을 할 수 없는 순간이 만들어질 수 있으니. 선배의 말대로 이건 아니다 싶었다. 약점 잡힐 일은 하지 않는 게 좋다.

"아니다. 그냥 오늘은 집에 가서 밥 먹을래. 걸어갈 거지?"

"그렇지 뭐."

"가면서 얘기나 하자."


 그 선배와 나는 집이 10분 거리밖에 되지 않았다. 회사도 근처였고, 출근길에는 자주 마주치거나 퇴근길은 같이 가는 편이었다. 그런 모습이 남자 친구에게 보이면 오해를 살까 봐 선배는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모르는 사람인척 피해주곤 했다.

 딱히 말하지 않아도 그렇게 신경 써 주는 것은 그놈에게 왜 없는 건지 가끔은 고개를 젓게 만들곤 했다.

 그리고 이 순간은 솔직히 나름 스트레스가 풀리는 순간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을 두고 남자 친구를 욕보이는 이야기를 하는 건 좀 아니긴 했지만, 그에 대한 불만을 그에게 말한다고 해서 고집불통인 그는 되려 화를 낼 뿐이었다.

"요즘 시대가 어느 때인데, 나를 두고 가부장질을 하려고 그런다니까."

"가끔 남자들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위세를 떨고 싶어 하는 순간이 있긴 한데, 그래야 하는 순간도 있을 수도 있고."

"그럴 수도 있지만, 평소에 나랑 의논도 잘 안 하고 뭐든 물어보지만 자기 혼자 생각하고 결정 내리는 편이거든. 어떨 땐 통보를 하기도 해."

"그게 익숙한 거겠지. 그건 고쳐야 하는 게 아니라 바뀌어야 하는 건데."

"아니, 예전에는 약속 장소에 언제 오냐고 물으니까. 대답도 없었다니까."

"그래서 뭐라 했어?'

"왜 늦게 왔냐고? 오는 걸 알아야 할 거 아니냐고 말하니까."

"어차피 약속했고 오기로 했는데, 내가 가고 있는데 오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으면 되지. 이랬다니까?"

"진짜? 좀 심한데? 뭔가 말도 안 맞는데, 오기로 했는데 안 오니까 연락했는데 오겠지 생각하라니."

 그러면서 선배가 웃는 모습을 보면, 괜히 남자 친구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런 부분은 조금 내가 실수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변명을 하자면, 맞장구를 잘 쳐주다 보니 쌓였던 게 계속 술술 나와버린 것 같았다.

 그만큼 그와 나 사이에는 문제가 많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뭐가되었든 남자 친구와 그를 비교했으면 안 되었다.

"결론적으론 나한테는 아무것도 알려주지도 않으면서 이해해 달라는 게 전부라니까."

"힘들겠네. 서로 좋아라 해서 만나고 있는 걸 텐데. 그런 거 아냐?"

 선배가 그런 말을 하니. 할 말이 없어졌다.

 이런 이야기를 당사자와 이야기하면 좋을 텐데. 안 해본 것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내 이야기를 듣더라도 변하는 건 없었던 사람이었고, 어김없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강압적이었다. 그의 한결같지 않은 모습은 늘 불만이었고 적어도 이야기라도 잘 통했으면 하는 마음이 늘 있었다.





 그렇게 결별을 선택했다.

 그리고 뒤늦게 후회하기도 했다.

 선배에게 그의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었다.

 말이 잘 통했다는 게 치명적이었던 것이었고, 반대로 그에게 원하는 걸 선배가 역할을 해 주다 보니 그와의 결별과정에는 그 선배와 비교를 하는 것도 있었다.


 그 이후에 미안하다며 잘하겠다는 말에 다시 만나기도 했지만, 달라지는 것이 없어 오래가지도 않았다. 그걸 본인도 알았는지, 두 번째는 없었다.

"나는 사랑하면 뭐든 다 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완전히 아닌가 봐."라고 그가 말했다.

 그게 그 사람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내가 변한 건지, 잘 알 수는 없었다. 아니면 애초에 그러지 않겠나 생각만 했을지도 모른다.


 그 이별이 슬프기도 했지만 마냥 눈물이 흘리거나 하지 않았다. 정말 괜찮은 사람이기도 했지만 싫은 점도 명확하게 있었기에 뭔가 감정이 공과 사로 나뉜 것처럼 스스로 감정을 조절하는 게 가능했다. 그런 적도 처음인 것 같기도 했다.



 주변 직장동료들은 내의 결별 소식에 위로한답시고 술을 마시러 가거나 노래방에 가거나 퇴근 후에 같이 시간을 보낼 변명거리를 만들었다. 단지 어색한 게 있다면, 늘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서 마중 오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는 게 귀찮은 게 덜해졌다기보다는 뭔가 허전하다는 느낌이 더 강했다.

"뭐해? 메로나 필요해?" 하지만 집에 돌아가는 길에는 역시 선배가 있었고, 내가 술에 취했다고 생각했는지 편의점을 가리키곤 했다.

"아니 필요 없어. 애초에 나는 술에 취하면 아이스크림 먹는 기억도 없다고."

 그래도 이런 사람이 옆에 있어주니 마냥 외롭진 않았다.

 사실 괜스레 미안한 적도 있었다. 아무런 말없이 전 남자 친구가 오해하지 않도록 퇴근길에도 모르는 척을 해주고 알아서 거리를 벌려주는 것을 보면, 내가 피해를 주는 것 같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무엇보다 언제나 불만도 많고 이야기 상대가 필요할 때면 늘 상대해주며 스트레스도 풀어주고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게, 그런 것도 없었으면 회사에서 히스테리를 부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선배, 닭발 먹으러 갈래? 나 그거 엄청 땡기는데?"

"뭐 지금? 이게 미쳤네?"

"왜?"

"내일 출근할 거는 생각 안 하고. 11시 반인데 더 놀려고?"

"그 정도면 아직 괜찮지 않나?"

"팀장이 대체 우리 팀원들은 한 명도 술냄새가 안 나서 출근하는 적이 없냐고 그러더라."

"그래. 그러면 아이스크림 하나 먹고 가."

"이거... 취했었네..."


 출퇴근도 같이하고, 늘 화기애애 한 모습을 주변 사람들이 보다 보니 그런 말이 들리곤 했다.

"응? 뭐?"

"둘이 사귀는 거 아니냐고, 아니 비밀연애하는 거 들켰다고 소문났던데요?"

"아니, 나 얼마 전에 남친이랑 헤어진 거 몰라? 근데 그런 소문이 난다고?"

"사실 둘이 사귄다는 것보다는, 언니가 그 선배 때문에 전 남친이랑 헤어진 게 아닌가 하는 말도 있던데."

"그건 좀 심하지 않아?"

 살짝 찔리긴 했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고, 정말 그게 계기가 되어서 헤어진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선배가 잘못한 게 아니라 전적으로 마음의 영향을 받은 내가 받아들여야 할 문제였다.

 분명 나의 일을 다 안다면 주변에선 X년이라는 말이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이 시기는 결별을 하고 3주가 지났을 때쯤이었다.

 그리 큰 회사도 아니었지만, 그렇기에 서로의 얼굴을 아는 편이라 소문은 쉽게 돌고 돌았다. 시작은 워낙에 사이가 좋고 같이 출근하고 같이 퇴근하는 시점에서 뭔가가 있지 않았나 하는 점인 것 같았다.


"그냥 친한 것뿐인데, 좀 몰아가는 거 아냐? 설마 선배랑 너희들이 짜고 치는 거 아니지?"

"짜고 치는 건 아닌데, 애초에 그 선배가 왜 판을 짜요. 아니 정말 그런 거면 선배는 마음이 있는 거고, 언니는 아니에요? 늘 좋아 보이던데."

"좋아 보이긴 무슨."

 마냥 그럴 수가 없었다.

 물론 그 선배는 좋은 사람이라는 건 틀림없다. 내 머릿속에도 그렇게 인식이 되어 있었다. 그게 분명 전 남자 친구와 비교를 하게 되면서 그렇게 된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해도... 그건 좀 어려웠다.

"서로 좋아하는데, 사귀지 않는 건 대체 뭐지..?"

 마치 분위기는 어린애들 마냥 서로 사귀라고 몰아가는 것 같은 것 같았다.

 초등학생 중학생도 아니고, 이런 느낌도 참 오랜만이었다.

 

"너라면 가능해? 네 남자 친구가 어떤 여자랑 만나고 어떤 연애를 해 왔는지 알게 되면 사귈 수 있어?"

"그야... 어떤 사람인가에 따라서 다를지도?"

"고민한다는 시점에서 이미 문제가 있는 거잖아. 그리고 헤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이것저것 따지는 걸 보면, 애초에 그만큼 마음에 있는 것도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우리는 뭐 좋아 보여서 그렇게 말한 거긴 한데. 워낙 그 선배가 순둥이라서 놀려먹는 재미도 있고."


 뭣보다 신경 쓰이는 건, 내가 그에게 보이는 호감이 전 남자 친구와 비교를 하게 되면서 좋은 면을 부각되어 보게 되어서 생긴 단순한 현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더 큰 문제는 그는 내가 어떤 남자와 연애를 하고 어떤 연애들을 해왔는지 알고 있다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전 남자 친구가 나를 데리러 와 주었을 때 좋아라 껴안고 키스까지 하며 난리부르스를 떤 적도 여럿 있었는데, 그 선배가 본 적이 없을 리가 없었다.


 아니. 근데. 내가 왜 그 부분을 걱정하고 있는 거지.

 신경 쓰이긴 신경 쓰인 모양이었다.


"아, 술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숙취가 올라오는 것 같아."

"괜히 소문 때문에 어색해지는 거 아니에요?"

"당연히 그렇겠지. 내 귀에 들어왔는데 선배 귀에는 안 들어갔으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퇴근길은 여전했다.

 소문을 듣지 못한 건지, 신경 쓰지 않는 척하는 건지. 내가 아는 한 그렇게 표정을 잘 숨기는 사람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선 긋지 마. 네가 말했잖아. 자신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을 위해서 뭐든 다 해줄 수 있을 거라고.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고. 결국엔 몰랐잖아."

"선배는 그러면 나를 어떻게 보고 있었는데? 내가 남자 친구 있었을 때 어떤 심정이었는데? 짝사랑이라도 하고 있었어?"

"내가... 더 잘해 줄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했어."

 그리고 그는 생각보다 정직하게 다가왔다.

"뭐? 진짜로? 놀리는 거 아니고?"

"내가 그렇게 쓸데없는 짓 할 것으로 보이냐."

 솔직히 내 감정 그 이전에, 선배가 이러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내가 이쁜 모습을 보여준 것도 아니었고, 잘해준 것도 별로 없었다. 오히려 같은 퇴근길에 못 볼 꼴을 더 많이 보여주었고, 그가 정말 나를 좋아한다면 꼴도 보기 싫을 모습도 보게 되었을 텐데.


 어떤 사랑을 해왔는지 다 떨 벌려 놔 놓고선, 결국 내 과거를 다 아는 남자와 그 부분에서 별 탈 없이 잘 사귈 수 있을지. 어쩌면 늘 싸울 때면 내 과거만 잡고 싸우게 되는 게 아닐지 지레짐작만 계속하게 되었다.


"난, 잘해줄 자신 있을 거 같은데, 네가 뭘 싫어하고 뭘 좋아하고 어떤 거에 존중받고 싶고 어떤 거에 괴로워하는 걸 아니까. 미리 연습해 본 것처럼 말이야."

"정말, 내가 생각이 많고 딱딱한 건지 모르겠네. 이렇게 나오니까."

 사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정말 연인이 되고 싶다면, 결별 후의 기간이 뭐 중요하겠냐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걸리는 건 정말로 내가 누군가를 사랑했던 모습을 바라본 사람이 과거의 일로 나를 괴롭게 만들지 않는 게 가능할까 하는 부분이었다. 사실 그게 염려되어 있기에 핑곗거리를 만들고 있기도 했다.

"오늘은 어째 좀 쌀쌀하다 그렇지?"

 나는 그렇게 말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그리고 그 자리에 서서 선배의 신발 쪽을 바라보면서 다시 생각해 봤다.

"그래도, 난 역시. 아직 잘 모르겠어. 선배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도 알지만, 남자로서 좋아하는 건지 사람으로서 좋아하는 건지도 역시 아직 확신이 안 들고. 선배랑 만나면 편하고 재미있을 것 같지만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확실히 드는 것도 아니야. 그러니까..."


 그런데 웃긴 건, 그 와중에도 마냥 놓치고 싶지 않은 기분도 있었다.

 내 욕심은 또 왜 이렇게 많은 건지. 조금 곤란했다.

 그게 없었더라면 나는 뒷 말을 더 이어 붙이지도 않고 선을 그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미안하다는 말도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난.

"조금만 시간을 줘. 나, 지금 생각이 너무 많아."

"그래?"

"응. 지금은 뭔가. 정말 행복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거든."

 그건 아직 결별 후의 시간이 아직 진행 중이라 그런 생각이 든 건지도 몰랐다.

 정말 행복해지고 싶다는 것은 별다른 게 없었다.

 소소하게든 아주 특별하게든, 분명하게 즐길 수 있는 행복을 원하는 거였다. 선배와의 연애는 나로선 분명 불안감이 있기 때문에 마냥 행복하기만 할 것 같지도 않았다.


 그저 간단하게 말하자면, 내가 X년이 될 것 같다는 기분도 들었다.

'하아. 이미 그럴지도.'



 그날부터 우리는 나란히 걷던 퇴근길에 거리가 생겼다.

 그리고 언젠가, 그의 넓은 포복을 따라잡기 위해서 나는 더 빨리 걸었다.


 정말 나의 연애 과거를 아는 사람과 그것에 대해서 아무런 문제 없이 행복할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보수적인 사랑을 하게 된 과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