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주방이 그런 건 아니었지만, 분기별이나 계절이 바뀌는 시기가 오고 제철이 있는 재료가 나올 시기면, 신메뉴를 만들기 위해서 각자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 보는 날이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창조적이거나 특별한 요리를 만드는 것도 아니며 강제적으로 참여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좋은 아이디어가 있는 사람의 한해서였다.
그때는 그런 요리가 나왔다.
치즈크림과 블루베리가 들어간 피자.
굴이 들어간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
연어와 리코타 치즈가 들어간 그라브릭스 (연어 그라브릭스란 간단하게 말해서 연어를 절인 음식)
신선한 시금치를 넣은 아마트리치아나 파스타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베이컨이 들어간 매운 토마토 파스타. 맵지 않은 아마트리치아나 파스타도 있다.)
그중에서 나는 네 번째인 아마트리치아나 파스타를 내놓았다.
사장님은 굴이 들어간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를 내놓았으며,
최종적으론 연어 그라브릭스에 리코타 치즈를 올린 요리를 추가하기로 했고, 조금 더 디테일을 살려서 메뉴에 올리기로 했다.
나름의 그런 시스템이 있었다.
좋아하는 레스토랑에 가서 매번 똑같은 것을 먹는 것보단, 신메뉴를 먹어보고 싶은 손님도 분명 존재할 테니 그런 니즈를 충족시켜드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던 어느 날
메뉴판을 새로 만들기 전에 다른 직원이 물었다.
"저기. 하루만 시간 주실 수 없으실까요? 내놓고 싶은 요리가 있어요."
우리는 그 직원의 의견을 존중해주기로 했다. 물론 다음에는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확실히 말을 하라는 조언도 덧붙이면서 말이다.
그가 보여주고 싶어 했던 요리는 뇨끼였다.
삶은 감자를 미세한 텍스트로 으깨어 밀가루와 섞어 만든 반죽으로 수제비를 연상시키는 감자 반죽 요리다. 그는 예전부터 준비를 했던 모양인지 철저함이 보였지만 뭔가 불안해 보이는 느낌도 있었다. 자신감의 문제가 보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성격상 결단력이 부족한 직원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다른 직원들이 비번이고 자신이 최고 선임일 땐 불안해하는 모습도 종종 있었다.
그의 뇨끼는 그러했다. 감자 반죽을 한 뒤 노릇하게 구워내면 고소한 맛이 그 뇨끼에 안에 머물게 되는데, 그 위에 볶을수록 수분이 나오지 않는 채소(콩류)를 넣어서 숟가락으로 떠먹기 좋은 음식으로 만들 예정이었다.
"이 뇨끼가 볶으면 볶을수록 엄청 고소해지더라고요."
그 점은 동의했다.
하지만 뇨끼는 문제가 있었다.
빨리 내보내야 하는 식당의 입장에선 뇨끼는 반죽을 매일 아침 일찍 만들어 두지 않는 이상 전날에 만들어 놔서 얼려놓던가 하는데 (다 팔리지 않는 경우도 대비) 그러면 수분이 날아가서 볶는데 문제가 생기기도 하며, 아침 일찍 만들어도 인건비와 피로도에도 문제가 되어서 뇨끼는 이미 한번 제외되었던 요리였다.
그럼에도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 직원은 고소해진다는 점만 고려하다가 뇨끼들이 갈라지는 문제가 일어났다. 그만큼 덜 볶거나 반죽 비율의 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채소와 섞었지만 굳이 뇨끼들이 찢어지지 않더라도 비주얼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도 않았다.
이미 먹기 전부터 모두들 '실패'라고 여기고 있었다.
"다시 해 볼래?"라고 사장님이 물었지만. 그 직원은 괜찮다고 죄송하다고만 말했다.
그 날은 분명 모두가 퇴근을 뒤로하고 그의 요리를 기다렸다.
실패는 어쩔 수 없었지만, 일부러 기회를 주면서 모두가 기다려왔는데 제대로 맛도 보지 못하고 기분만 좀 상할 뿐이었다.
애초에 결단력도 별로 없고 스스로 쉽게 실망하는 사람이다 보니 그러려니 하는 직원들도 있었다.
"아니. 실수는 할 수 있지. 누가 실수를 안 해? 아직 제대로 된 것을 맛보지도 않았는데. 다시 한번 해봐." 나는 그렇게 설득했다.
그 말에 그 직원은 고민했다.
그러곤 다시 주방에 들어가면서 감자 반죽을 만지작 거리더니. 한참을 고민하는 듯했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하지 않겠다고.
결국 우리는 다음날 다시 메뉴판을 원래 바꿀 것으로 바꾸기로 했다.
근데 그날 그 직원은 다시 말했다.
"저기. 오늘 다시 뇨끼 만들어 보면 안 될까요?"
부탁을 하듯이 말이다.
순간 사람들은 짜증이 섞인 표정이 드러났다.
아마 이 직원은 스스로 만족하지 않는 이상 마냥 물러설 수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다른 사람에게 민폐가 될 거라는 것도 잘 아는 모양이었다. 그렇기에 결단력이 없는 친구가 더 고민도 하고 어느 한쪽을 확실히 하지 못하고 매번 그렇게 말이 하루아침 달랐다.
자신이 이길 때까지 하는 가위바위보 같아 보이진 않았지만, 그 누구도 그의 어중간함, 결정장애에 힘을 실어줄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2018년부터 2019년 초까지 연재되었던 '사랑할 때와 사랑하고플 때'가 책이 되어 찾아왔습니다. ^^
브런치의 추천작품으로서, 또 연재되기 이전부터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던 이야기가
소중하게 간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어서 너무 기쁘네요 ㅎㅎ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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