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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양 Feb 01. 2021

첫사랑에게 먼저 연락을 얻는 방법. 그리고,


 어릴 땐 다이어리를 하나 구입해서 간단하게나마 일기를 쓰는 게 좋았다. 꾸준히 하겠다기보다는 하루하루 익숙해진 평범한 일상을 아무런 흔적 없이 넘기는 게 마냥 싫어지고 있었던 때였다. 그렇게라도 추억을 되새길 수 있을 만한 것은 다이어리에 일기 같은 것을 쓰는 것이었고 그렇게 시작했던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어떠한 방식으로든 하루의 기록을 남기는 방법을 바꿔가곤 했다. 시대가 흐르면서 다이어리에서 미니홈페이지, 미니홈페이지에서 SNS의 사진으로. 조금 더 원활하고 편리할수록 나의 기록은 더 남겨지기 쉬운 법이었다.


 그동안 내가 어딜 여행했었고,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휴일엔 무엇을 하고 어떤 게임을 했는지, 이젠 어떤 것에 흥미를 가졌고 어떤 취미를 가지게 됐는지 하나하나 기록한다는 것은 추억의 앨범을 보는 것 같아서 스스로 재미를 느끼기도 했다. 그건 글을 쓰는 일기보다 되돌아보기에도 재미있었고 작성하는 것도 나름 즐거워 꾸준하다 못해 중독스럽기까지도 했었다. 나름 사진도 잘 찍어서인지 SNS의 친구들의 시선에 이목을 끌기도 했다.

 하지만 그리 머지않아서 나의 SNS 일기는 친구들만 볼 수 있도록 일부 비공개로 전환시키고 말았다. 

"야. 이거 네 사진 아니야?"

 누군가가 내가 올린 사진들을 보정해서 자신의 계정에 올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말이다.

 그 사람은 내가 여행을 가면서 찍은 사진들을 골라서 내 사진과는 다른 색감으로 보정했고 자신의 것 마냥 올렸다. 그래서 이제는 내가 아는 친구들끼리만 서로 게시물을 공유하기로 했었다.


 하지만 웬걸.

 내 사진을 가져간 사람이 내 사진을 보지 못하도록 비공개를 돌리고 차단했었음에도, 그는 내가 이전에 올렸던 사진들을 미리 저장이라도 해놨었던 것인지 과거의 사진들을 차례차례 올리고 있었다.

 결국 나는 그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사진이 필요하다면 말씀을 주세요. 저작권을 주장하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이렇게 마음대로 쓰면 어쩌자는 거예요? 최소한 말씀은 주셔야죠."

 그리고 그 사람은 나의 메시지를 읽었음에도 답장을 하지 않았다. 

 염치가 있었던 걸까? 자신의 행위에 겁을 먹어서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정말 답변이 없자 외면하기로 했다. 그러고 3시간 정도 지났을까. 그 사람은 사과가 아닌 다른 말을 먼저 했다. 그 사람의 첫 말은 오히려 내가 할 말이 없게 만들었었다.

 그는 사과하기 이전에 자신을 먼저 나에게 소개하기 시작했었다.



 나의 옛날 사진들을 계속 보정해서 올리는 사람의 정체는 내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그때는 썸이라는 단어는 없었지만, 서로의 마음을 제대로 표현만 했다면 분명 사귀었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런 애매한 사이었다.

 그 이후로 우리는 SNS를 통해서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엥? 너 결혼했었어? 그런 소식 들은 적도 없었는데." 나는 그의 소식에 놀랐다. 그는 말했다.

"결혼했었는데, 이혼했어. 둘 다 최근이야."

 첫사랑의 기준은 어떤 거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처음으로 좋아했던 사람이 첫사랑이라고 불러야 할지, 처음으로 서로 사랑을 주고받았다는 것을 첫사랑이라고 불러야 할지, 아니면 애초에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깨우치게 된 순간을 말하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에 대한 감정은 분명 나를 깜짝 놀랄 만큼 두근거렸기에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결혼을 했고 이혼도 했다니. 이전부터 그가 지금은 어떤 생활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했었지만, 갑작스럽게 그의 상황을 알게 되니 기분 또한 묘했다.

 나는 장난 삼아 말했다.

"혹이 애기도 있어?"

"아니 없지."

"깜짝 놀랐네. 갑자기 나타난 사람이 너고 결혼도 했고 이혼도 했다고 하니. 차라리 처음부터 너라고 직접 말하지 그랬어." 나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럴걸 그랬나..."

 라며 내 말을 무마시키려는 듯했다.

 분명 요새는 쉽게 결혼해서 쉽게 이혼하는 쌍이 많다고 들었기는 했지만, 내가 아는 지인이 그럴 줄은 몰랐다. 그게 또 별난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조금씩 결혼하는 친구들이 늘었다는 건 인지하고 있어도 이렇게 이혼을 했다는 지인이 생길 거라곤 생각한 적은 없었다.

 나는 이내 다시 SNS를 공개할까 싶었지만, 역시 고개를 저으면서 실제 친구들과 소통을 하는 것으로 이용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여전히 그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서로 SNS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뿐, 전화번호를 교환하거나 카카오톡 아이디를 알려줘서 자주 연락을 하진 않았다. 그와 직접적으로 얼굴을 마주하면서 보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고 그러지 않기로 마음먹고 있었다.

 나는 옛날 그 옛날의 첫사랑을 추억하고 싶지 않았다.


 첫사랑은 처음 느껴보는 사랑이 너무 특별하기에 너무나도 낯설었던 감정을 소중하게 간직하려고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첫사랑의 기준은 아마 그런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짝사랑이든 어떤 사랑이든.

 그 대상은 그 사람이라는 건 부정하지 않는다. 분명 그때 풋풋한 10대의 첫사랑의 상대는 그 사람이라는 것을 머리와 마음으로 기억하고 있다. 

 누구는 첫사랑을 떠올리면서 괜히 그립기도 하고 추억하기도 하지만, 나는 역시 그러고 싶지 않다.


"최악이야."

 나는 그 사람을 생각할 때마다 찜찜했다.

 괜히 그가 어떤 이유로 이혼을 했었을지 궁금하기도 했다. 이제 곧 20대의 끝을 달리는 시기였기 때문에 더 궁금했다.



네이버 웹툰 <커피도둑> 작가 '유지별이'님 제공 


 그를 처음 좋아했을 때에는 분명 싸이월드라는 미니홈피가 크게 유행했을 때였다. 엄마에게 이제 고등학생이니까 제발 좀 휴대폰 좀 사달라고 졸랐었고 컴퓨터가 있으면 미니홈피를, 컴퓨터가 없으면 폰으로 친구들과 메시지를 주고받는 데에 시간을 쏟아붓는 그런 시기였다. 휴대폰이 생겼던 만큼 다른 남고에 있는 남자애들을 소개받기에도 편했고, 그렇게 그 애를 만났었다.

 수업시간에는 그 애와 몰래 문자를 주고받기도 했었으며, 학교의 야간 자율학습을 끝나면 늦은 밤에 잠깐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기도 했었다. 

 남녀공학의 중학교를 다녔던 남자 동급생들을 마주하는 것과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언제 어디서든 볼 수 있었던 때와는 다르게 수업 중에 몰래 연락을 주고받고 서로 휴대폰으로 큭큭대며, 학교를 마치고 나서야 볼 수 있다는 게 오히려 그 애를 더 보고 싶다는 느낌을 강하게 만들었다. 그건 분명 그 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오죽했으면 서로 다니지 않던 학원도 같이 등록을 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런 풋풋했던 시기가 있었다. 풋풋함은 이제 와서 그때의 순수한 추억을 꺼낼 수 있어서 풋풋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는 걸 다시금 생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런 추억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지금 나에게 연락처를 알려달라고 말하는 그 남자에게 말했다.


"너, 그러는 거 여전히 버릇 못 고쳤구나." 나는 생각할수록 화가 날 것 같아서 그의 이혼사유를 맞춰보겠다고 말하려던 걸 참았다.

"뭐가?"

 나는 그가 내 SNS의 사진을 도용해서 올린 것을 떠올랐다. 그중에서 아마 내가 맞추고 싶지 않아도 이미 그는 내 예상대로 행동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야기 꺼내고 싶지 않았지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이전의 사진들을 계속 올렸다는 점에서 내가 올렸던 사진들은 전부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물론 타인들이 보라고 올린 사진들이었지만, 개인적으로 소장한다는 건은 불쾌함이 먼저 들었다. 이제는 성추행을 당하는 것 같다는 기분까지 드는 것 같았다.


"한참 싸이월드가 유행했을 때에도 그랬었잖아. 그때도 그러더니 지금도 그러고 있냐."

 그는 내 메시지를 읽었다는 표시가 드러났지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계속 이어 말했다.

"미니홈피에 올렸던 사진들 죄다 복사해서 소유하고, 그거 하나씩 나한테 큭큭 대면서 사진 보냈었던 거 기억 안 나? "

"언제 적 이야기를 지금 하는 거야?"

"그냥 그랬으면 또 몰라. 너 그때 그거 가지고 다른 남자애들한테 보여주면서 성희롱도 하고 다녔다는 거 다 알고 있거든?"

 이건 비록 다른 친구들에게서 들은 이야기였지만, 결코 입에 담고 싶지 않을 만큼 철없는 10대 애들이 성적 험담이 오가고 있었다고 전해 들었다. 아마 그때부터였다. 그때의 그 아이에게서 거리를 두기 시작했던 것. 

 성적 호기심이 많았던 시기라고 10년이 더 지금이야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의 나쁜 손버릇은 여전했다.

"사람은 고쳐서 쓰는 게 아니라고 학습했거든."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렇기에 나는 첫사랑의 기준을 명확하게 두고 싶지 않았다. 분명 나에겐 그때의 그 아이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아이였으니까. 그리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후 그의 미니홈피에는 나의 사진이 업로드되곤 했었다. 비록 비공개되었지만 몰래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불쾌함만 들었다.

 그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었다. 그저 미니홈피와 SNS의 차이일 뿐.

"지금 네가 그때 그렇게 다가오고 있잖아. 그게 얼마나 소름 끼치는지 알아? 철 좀 들어."

 그때의 그 아이도 지금의 그는 한결같이 똑같은 변명을 했다.

 아마 그는 결혼을 했을 때 분명 행복했을 것이다. 아마 여자 쪽에서 견디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식으로 관심을 받으려고 하지 마. 그때 네가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 사이가 어떻게 이어졌을지 몰라."

 그건 그의 결혼생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 그와 연락은 일절 없었다. 그의 SNS 활동도 멈추고 있었다.

 그렇게 더 이상 그와 연결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며칠 뒤. 내가 SNS에 올렸었던 나의 사진들, 그중에서 비키니 수영복을 입었던 것도 포함해서 자신의 계정에 올리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글쓴이 우연양입니다.

이번 글로 이렇게 만나 뵈어 기쁘고, 또 뵙게 되어 기쁩니다.


 독자분들이 '자신이 여태까지 [얼마나] [어떤] 사랑을 받아왔는지 되새겨 보게 될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나를 좋아했으면'이라는 책을 내었습니다.

브런치에서 글을 쓰면서 책이 탄생하는 일을 맡아 너무 행복했습니다. ^^

부디 많은 분들에게 닿기를 바라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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