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더운 날이었다.
매일 날씨는 35도가량 찍고 있었고, 그 와중에 요리사의 일을 하는 나로선 화로의 앞에 있는 만큼 더위를 먹기 딱 좋았다.
이번 쉬는 날에는 뭘 하면 좋을까 생각하던 와중, 그런 더위를 이기기 위해서 아주 심플하게 카페에 들어가서 시원한 에어컨을 즐기기로 했다.
마침 카페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 줄 알았지만, 한쪽 구석에는 남녀 한쌍이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마스크를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눈에는 한쪽에는 분노, 다른 한쪽에는 무심함을 맞부딪치고 있었다.
나는 한 좌석을 뛰어넘어 거리를 두며 좌석에 앉았다.
두 사람은 커플인 모양이었다.
나의 귀에는 이어폰이 끼워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목소리는 잘 들려왔고 남자는 꽤나 차분했고 여자는 화가 난 목소리였다.
그렇게 보면 남자가 잘못한 것처럼 보였지만, 흘려버리지 못하는 귀는 그 사실들을 담아내고 있었다.
"내가 그날 다른 남자애들이랑 늦게까지 놀고 술 먹었다는 건 잘못했다는 거 인정해. 근데 그렇다고 내가 그랬다고 너도 다른 여자애들이랑 늦게까지 놀고 술 먹은 건 아니잖아."
"그럼 너는 그래도 괜찮고 나는 그러면 안된다는 거냐고."
"내가 잘못한 건 인정한다고. 그게 잘못인 것도 알고 있다고. 근데 나랑 똑같이 그런다는 건 너도 나한테 똑같이 상처 주는 거잖아."
"그럼 내가 받은 상처는 어쩌고."
"..."
"..."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두 사람은 뭘 생각하고 뭘 바라보고 있었던 건지 옆에 있던 내가 더 불편해질 것 같았다.
그리고 마침내 여자가 떨리기 시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꼭 그렇게 상처를 돌려줘야만 했던 거야?"
"애초에 문제를 만든 네가 잘못한 거잖아."
대충 어떤 상황인지 이해가 가는 것 같았다.
여자 쪽이 잘못을 했고, 그 잘못에 화가 나 남자 또한 같은 짓을 하며 복수한 느낌이었다.
여자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었으며, 그렇다고 똑같은 잘못을 그렇게 되돌려 줄 필요가 있었냐고 잘못을 따졌다. 하지만 남자 또한 여자가 똑같은 잘못을 해놓고 자신에게 뭐라고 할 자격이 있냐고 맞받아쳤다.
여자는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고, 남자는 떳떳한 듯 목을 빳빳이 세우고 있었다.
"그러니까 네가 말하고 싶은 건 결국에, 네가 얘기한 데로 내가 잘못했으니까 너도 그런 잘못을 하겠다. 이거잖아. 애초에 내가 잘했으면 그만이라 이거잖아."
"..."
"그럼 우린 대체 왜 사귀고 있는 거야?"
"..."
"그럼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기면 서로 또 이렇게 대화하고 이렇게 오해하고 또 이렇게 싸울 거 아니야."
"..."
남자는 여자의 잘못을 똑같이 되풀이한 것에 후회는 없었던 걸까.
떨려하는 여자의 목소리와 반전되는 남자의 목소리를 들으면 그런 건 없어 보이지만, 뒤에서 보는 남자의 발밑은 불안함이 있는 건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있었다.
과연 이 두 사람은 카페를 나가고 다시 손을 잡고 걸어 나갈 수 있을까.
아마 두 사람에게선 서로를 이어주고 있던 신뢰가 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신뢰라는 건 유리창과 다름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편이다.
유리는 얇고 투명하게 만드는 과정까지 섬세한 작업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만들어져 새워진 유리는 안팎을 서로 통과해 마주할 수 있으며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유리라는 건 충격으로 인해서 금이 가기 시작하면 그 금은 지울 수 없으며 어떻게든 다시 붙이려고 해도 언제 떨어져 부서질지 모른다. 그런 금을 지켜보는 서로도 불안하기 그지없다.
나는 신뢰라는 건 그런 유리창이라고 생각한다.
한번 금이 가면, 금이 가게 된 충격을 떠올려 불안을 지우지 못하게 만드는 그런 유리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