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한지 얼마나 되신 거예요?"
가끔은 그런 질문을 받곤 한다.
그래서 나는
"전문적으로 요리를 한지는 그리 오래된 건 아니지만, 처음 요리를 해 본 건 아마 열두 살? 열세 살쯤이었을 거예요."라고 말하곤 했다.
애매했다.
언제부터 요리사로서 요리를 해왔다고 말해도 괜찮은지 나의 경력은 중간에 끊김이 많았다.
그 이유는 너무나도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곳에서는 한 달 동안 휴일도 없이 출근을 한 적도 있었고, 어떤 곳에서는 12시간 이상을 근무를 한 적도 있었으니. 그때마다 도망가고 싶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
무엇보다 그때엔 최저시급을 잘 지켜주던 시기도 아니었기 때문에 3~4시간을 일해야 기껏 만원을 벌 수 있었던 정도였으니, 나로선 너무 무자비한 직장이었다.
그럼에도 요리에 관련된 곳에 일하게 된 이유는, 학창 시절부터 연관되었다.
중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에는 생활이 어려워져 급식비를 면제받기 위해서 점심시간만 되면 급식실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학년이 오를 때마다 했으니 5년 이상을 동급생들에게 밥을 나누어주었다. 처음으로 한 아르바이트도 식품 공장이었고,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일하기도 했고, 군대 또한 간부 취사병을 하기도 했다.
거기다가 대학교 조차 식품공학이었으니, 나의 주변은 생각보다 먹을 것에 관련된 일들이 즐비했었다.
그래도 힘든 건 힘든 거였다.
좋아하는 것도 일이 되면 힘들어지는 게 있기 마련이다. 애초부터 음식 관련의 일을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나는 그저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음식을 만들어 주는 게 좋았을 뿐이었다.
그걸 깨닫는 게 조금 오래 걸렸다.
처음 요리를 해 보았던 것은 참치가 들어간 김치찌개였다.
집안이 어려워지기 시작하면서 엄마 아빠와 따로 살게 되고 나와 동생은 어린 나이에 할머니에게 맡겨졌다. 그때 할머니도 어려운 시기였을 것이다. 할머니의 나이도 나이지만, 할아버지도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다. 거기다가 이사를 하게 되었고 낯선 곳에서 낯선 환경 속에서 손자들을 돌봐야 했으니.
그때 할머니에게 생활비를 가져다주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은행에서 부모님이 보낸 돈으로 할머니에게 가져다주었고, 나는 그 돈 속에서 주변 마트에서 장 볼거리를 사곤 했다.
어느 날은 집에 돌아오니 동생도 할머니도 없었다.
기다리기는 따분했고, 새로운 곳에 이사를 온 만큼 친구도 없었기에 TV를 보는 것 말곤 할 것도 없었다. 아마 그때 나는 할머니가 동생을 데리러 초등학교에 갔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픈 허리로 그런 길을 나선 할머니가 힘들 거라는 생각에 나는 처음으로 가스레인지를 켰다.
요리를 하는 건 TV 속에서도 봤고 엄마가 하는 것도 봤기에 쉬울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저 물을 끓이고 그 안에 김치를 넣고 더 끓으면 참치캔을 뜯어서 마저 넣은 뒤 계속 더 끓였다.
"엄청 쉽네."
나의 첫 요리에 대한 콧방귀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맛이 없을 김치찌개였을지, 간도 되지 않았고 육수를 따로 쓰는 것도 아니었고 채소들이 들어간 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끓인 물에 김치와 참치를 끓인 물이었다.
그리고 분명 할머니는 이런 나를 대단하다고 말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놀란 얼굴로 다시는 가스불을 켜지 말라고 당부를 하기만 했다.
"이걸 니가 왜 하냐? 가스렌지가 얼마나 위험한디?"
그 말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후로 15년 뒤,
할머니는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내가 일을 하고 계시는 동안 돌아가셨다.
소중한 사람이었음에도, 할머니의 마지막의 모습을 보기가 괴로울 것 같아 곁을 지켜봐 주지도 않았었다. 그래서 어른들이 준비한 장례식장에 걸린 할머니의 영정사진은 묘한 기분을 들게 만들었다.
마냥 슬프지도 괴롭지도 않았다.
나는 그게 그저 내가 지금 일하고 있는 게 너무 힘들고 괴로워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요리고 뭐고 너무 힘드니까 그만두고 싶었고, 거기에 도망치며 다른 일을 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때 그 순간만큼은 할머니와 함께 했던 기억들을 되새기곤 했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와의 추억이 얼마나 많았던지, 지금 눈앞에 있는 영정사진은 그냥 할머니의 살아있는 그대로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았다.
"형. 괜찮아?"
동생이 물었다.
"뭐가?"
"별로 상태 안 좋아 보여서."
"내가?"
"어."
나는 아닌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보인 모양이었다.
나는 좀 더 할머니의 얼굴을 보다가 옆에 있는 동생에게 말했다.
"아. 진짜. 진짜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싶은데."
"뭐가?"
"진짜 뭐 같거든. 진짜 너무 힘들거든 그거."
"무슨 얘기야?" 동생은 계속 되물었다.
요리의 일은 정말 너무 힘들었다.
매일 12시간 동안 1시간의 정해진 휴식도 없이 손님들을 기다리며 음식을 만드는 게, 마치 기계 같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다 보면 내가 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거지라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그러다가 지금 이 순간에서야 생각이 나고 말았었다.
"요리사가 꿈은 아니었지만, 요리를 하고 먹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기쁜 일이었던 건지. 알게 해 준 게 할머니였는데."
나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건조했던 눈에서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할머니처럼 내가 만든 음식을 먹고 좋아해 준 사람들 덕분에 요리사를 시작했었다.
그게 얼마나 행복한 일이었는지, 잊고 있었다.
마냥 잊어버리기도 했다. 맛있게 드시고 간 손님들이 맛있게 잘 먹었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갔던 기억들도.
그깟 힘든 게 뭐라고 그런 소중한 것들을 잊었던 건지. 참 내가 못났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소중한 사람들은 소중한 무언가를 일깨워주곤 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대체 나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남겨주고 가시는 건지.
보고 싶고 또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