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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양 Apr 01. 2020

엄마 아빠가 안늙어갔으면 좋겠다.



 몇 년 전에 외삼촌이 위암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외삼촌은 위의 일부분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고, 남은 평생 음식물을 제대로 소화 시키지 못하는 몸이 되어버려 매번 식사한 것을 토해내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때까지, 나는 노화로 인한 건강상태의 저하가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잘 알지 못했다.


 서른 살이 된다는 건 뭔가 기분이 오묘했다. 앞자리가 2에서 3으로 바뀐다는 게 더이상 젊은 사람이 아닌 것 같았고, 금방 지쳐가는 게 혈기로 버틸 수 있는 시기가 지나가고 있다는 것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그 계기로 건강에 좀 더 신경을 쓰게 되었고, 하지도 않던 운동도 시작했다. 하지만 내 몸은 그렇게 시작한 운동도 받아주지 않고 있었다.

 나는 결국 운동 도중에 몸이 아프다는 걸 느껴서 내과를 찾았고, 식도염이 생겼다는 진단을 받았다. 너무 급작스럽게 과한 운동을 한 것이 원인인 것 같다고 의사 선생님은 진단해주었다. 나는 물었다.

“제가 다른 건 몰라도 음식 소화는 정말 잘 시키는 편이거든요. 이렇게 위액이 역류한 적도 없었구요.”

그러자 의사 선생님은

“전에 그러지 않았다고 앞으로 그러지 않는다는 건 없어요. 사람의 몸은 나이를 먹을수록 약해지는 법이니까요.”


 걱정스러웠다. 이제부터 건강에 신경 쓰지 않으면 언제 암 같은 질병에 걸릴지 모르고, 보험도 들어야 할 건 들어둬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나는 작년에 건강검진을 받지 못한 것을 크게 후회했었고, 당장 다닐 헬스장도 알아보곤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엄마가 끙끙 앓아서 눕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괜찮아? 죽이라도 사다 줄까?”

“아니 소화가 안 돼서 싫어. 어제 저녁을 늦게 먹은 게 탈이 났나 봐.”

“그거뿐이야? 다른 데 아픈 건 없고?”

“머리가 좀 아픈 건 말곤 괜찮아. 그냥 자면 돼.”

 그 모습을 보자 나는 더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내가 나이를 먹는다는 건 우리 엄마도 우리 아빠도 나이를 먹는다는 말이 된다. 내가 서른살이 된 만큼 아빠도 육십대가 되어가기 직전이었고, 엄마는 매번 이렇게 앓는 날이 많아지고 있었다. 나는 아빠에게 엄마와 같이 건강검진 꼭 받으라고 재촉했고, 결국 내시경까지 하면서 건강검진을 받았다. 엄마는 소화가 워낙에 잘되지 않았고 혹여나 외삼촌처럼 가족력으로 암이 발병나는 게 아닐까 걱정도 들었다. 

결과적으론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고, 나는 잠시 안심했다.

그때는 몰랐던 외삼촌의 암 진단이 얼마나 무섭게 느껴졌던지, 엄마가 크게 아프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의사선생님의 확진이 나오기 전까진 불안해서 나의 일도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하곤 했었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 아빠는 말했다.

“그렇게 걱정하지 마라. 나도 내가 이렇게 육십 대가 되어갈 줄 몰랐지만, 이렇게 나이 먹고 늙어가는 게 당연한 걸 어쩌냐. 그리고 나도 엄마도 아직 젊다. 그리 늙은 것도 아니야.”

“알아 그런 게 당연하다는 건.”

“그러면 그렇게 먼 것만 보고 걱정하지말고 지금 것만 생각해. 불투명한 미래를 걱정한다고 지금 행복하지 못하면 어떡하자는 거냐.” 


 나는 다시 운동을 시작했다.

 잠시 중단했던 산책코스를 이용해 가볍게 운동하기 시작했었다. 엄마와 아빠에게 같이 하자고 권유하기도 했지만, 귀찮다고 따라오지도 않았다.

‘불투명한 미래를 걱정한다고 지금 행복하지 못하면 어떡하자는 거냐.’ 아빠의 그 말이 계속 떠올랐다. 그 말은 틀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지금 행복해질까 생각해보기로 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며 집으로 돌아갈 코스로 발을 움직였다. 그때 시간은 오후 8시 반이었다. 주변 주민분들을 위해 가로등은 있지만, 점점 어두워져 주변은 잘 보이지 않았는데, 누군가가 있는지 운동기구를 사용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곳을 흘끗 보았다. 누군가가 몸을 공중에 띄워서 양팔로 지탱해 팔을 굽혔다 폈다 반복하는 운동을 하고 있었다. 

‘와. 저거 엄청 힘들텐데’라고 생각하며 지나치면서 계속 보았다.

 근데 착각이었다. 나는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지나가야 보이지 않았던 걸 볼 수 있었다. 

 그분은 공중에 떠 있던 게 아니었다. 날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었지만, 그분의 한쪽 다리에는 무릎 밑으로 있어야 할 종아리가 없었다. 그래서 공중에 뜬 거라 착각했었다. 반대쪽 다리는 바닥에 닿고 있었고 천천히 무릎을 굽히며 한쪽 다리 운동을 하고 있었던 거였다.

 나는 잠시 충격을 받고 좀 더 걷고 나서야 멈춰 서서 그분이 운동하는 것을 보았다. 계속하여 한쪽 다리 운동을 하고 있었다. 넘어지지 않게 양팔로 균형을 유지하면서. 그 뒤에는 휠체어도 있었다.

 어떠한 사정으로 그렇게 다리를 잃게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그 순간은 분명 절망적이었을 거다. 그럼에도 한쪽 다리를 단련하고 버티며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내는 모습이, 운동을 하고있는 저분에게 감탄했다. 그리고 나의 고민이 창피했고 실례였다고 느꼈다.


 2주가 지나 나는 엄마 아빠에게 말했다.

“나랑 같이 여행 가자. 제주도 가고 싶다고 했잖아.”

 엄마 아빠는 늘 TV에서 제주도만 나오면 매번 가고 싶다고 말했었다. 원래는 좀처럼 돈을 아낀다고 그런 여행을 가자고 해도 가지 않았지만, 이제는 지금 남길 수 있는 추억들을 하나둘씩 더 쌓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현재의 행복을 놓쳐선 안 된다.’ 설령 나에게 불행한 미래가 다가온다고 해도 그 순간을 행복하게 만드는 건 내 몫이었다.

“웬일이야? 네가? 먼저 여행 가자고 말도 꺼내고.”

“그냥. 그러고 싶었어. 엄마 아빠 더 나이 먹기 전에 좋은 거 해줄 수 있는 거 해주고 싶어서.”

“얘가 뭘 잘못 먹었나.”

잘못 먹었다면, 뭔가를 잘못 먹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엄마 아빠가 더 늙어가기 전에, 더 늙어가도 그때 그 순간에 남길 수 있는 행복의 순간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을 잡았다.

“엄마. 아빠. 그래도 늙지 마.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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