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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양 Jan 11. 2021

[모래알 브런치 프로젝트]눈치가 없는 내가 잘못한건가?



ᅠ자고로 여자들끼리의 싸움에는 남자가 함부로 끼어들면 안 된다고 배웠다. 남자들에게서 보이지 않는 여자들의 기묘한 심리전은 결코 남자가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기에 조용히 넘어갈 수 있는 것이라면 그저 가만히 지켜보는 게 상책이다.

ᅠ하지만 실망하지는 말라. 나는 기어코 그런 아수라장에 끼어드는 오지랖이 넓은 인간이니까. 나는 그렇게 먼저 홀에 있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민서, 요새 왜 그래? 애인이랑 싸웠어? 영 기분이 안 좋아 보이네?"

"아, 뭐. 그렇죠. 좀 그랬어요." 그녀는 살짝 놀란 어투였다."

"괜찮으면 오늘 일 마치고 커피 한잔이라고 할래?"

"소주가 아니고요?" 그녀는 살짝 비웃는 듯한 얼굴로 웃음기를 내었다.

"애인이 있는 애랑 단둘이 어떻게 소주를 마셔?"

"그것도 그렇네요."

 민서에 대해서 그렇게 잘 아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워낙에 스타일이 좋은 여성이라는 느낌을 주는 편이라서 애인이 있을 거라고 생각만 했지 정말로 있을 줄은 몰랐다.

 그래도 민서는 크게 고민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ᅠ나는 주방에ᅠ있는 그 여자를 한번ᅠ쳐다보았다. 그녀는 뜨거운 화로 앞에서 작은 프라이팬을 흔들며 파스타를 만들고ᅠ있었다. 그러다가 흘깃 이쪽을 쳐다보는데 나와 살짝 눈이 마주친 느낌이었다.

 두 사람을 화해시켜야 했다. 이상하게도 아무도 두 사람의 냉전을 어떻게 완화해보려고 하는 사람이 없으니 내가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애들 싸움 때문에 눈치를 봐야 한다니. 참나." 그렇게 말하는 사장님도 이런 상황에 곤란해할 뿐이었고 두 사람의 냉전으로 만든 분위기는 손님에게 향하는 서비스에도 문제가 일어날 수 있다는 걱정까지 들었다. 애초에 직원 간의ᅠ의사소통에 문제가 있다면 분명 뒤에 가서야 수습하지 못할 만큼 크게 폭발할 것이라 생각했다.

ᅠ탕탕탕!

ᅠ또ᅠ시작이었다. 주방의 그녀는 프라이팬과 화로가 강하게 부딪치는 소리를ᅠ내었다. 아무런 표정 없이 프라이팬을 휘두르는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잘 숨기는 거라고 생각하는건지 잘 모르지만, 그 소리는 단순히 우연히 부딪혀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내가 화나서 이러는 거다.'라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만큼 자신의 감정을 프라이팬이나 칼 소리에 드러났다. 마치 자신의 눈치를 보라는 것처럼.

"선영이 저거 사실은 내가 싫어서 저러는 거 아냐?" 나는 주방의 그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런 게 한두 번이 있었던 게 아니었다. 유독 나를 보면 그러는 게 심한 것 같았고, 지금 민서와 냉전 중이라고 하지만 나와 눈을 마주치고 나서 저러는 게 꺼림칙했다.

"기분이 나쁜 게 있는가 보죠." 민서는 뾰로통하게 말했다.

"참나."

ᅠ민서 또한 어떻게 보는 것인지 주방 안쪽을 살짝 훔쳐보더니 두 사람의 눈이 서로 마주치려고 할 때 민서는 다시 고개를ᅠ돌렸다. 그리고 선영 또한 우리 쪽을 보더니 얼굴에 주름이 몇 가닥 생기더니 무시를 하며 완성된 파스타를 접시에 담기 시작했다.


"그럼 고생하셨습니다."

민서와 선영의 냉전이 시작된 이후로 같은 시간에 같이 퇴근했던 것과는 달리 선영이 인사도 없이 퇴근하기 시작하더니 각자 제각각 퇴근하기 시작했다. 그날도 선영은 먼저 퇴근했고 민서와 나는 약속대로 카페에 들려 커피 한잔하기로 했다.

 카페에서 서로 사소한 이야기를 했다. 섣불리 선영에 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고, 서로의 이야깃거리가 떨어질 때쯤에, 민서는 나에게 말했다.

"오빠는 좀 눈치가 없는 편인 거 알아요?"

"내가? 나 어디 일하는 데에서 그런 말 들은 적 거의 없는데."

"그 눈치가 아니라요. 눈치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 거라고요."

"눈치면 눈치지. 눈치에도 여러 가지 있는 게 뭐야."

"아무튼, 그래요. 어휴. 그놈의 눈치라는 게 뭔지 골치도 이런 골치가." 민서는 더 할 말이 있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커피를 마시면서 그만두는 것처럼 보였다.

 카페 내에서의 민서는 계속 한숨만 쉬었다. 그녀들이 무슨 이유로 싸웠는지 물어보려고 했지만, 민서가 말하는 눈치라는 것이 왠지 걸려서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어쩌면 선영에 대해서 말하지 말라는 눈치였던 건가.’ 하는 생각으로 머물렀다. 대체 이 두 여자의 냉전을 어떻게 해야 끝을 낼 수 있을는지 내일이 걱정이었다.

 성과는 없었다. 카페에 나오는 길에 무섭도록 우리를 노려보는 선영과 마주친 것 말고는.

 나는 그제야 눈치든 뭐든 그냥 뭐가 문제였던 건지 물어볼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무엇에 화나서 그토록 노려보는지 모르겠지만, 민서는 한숨을 쉬며 조용히 자리에서 벗어났다.

"아. 그냥 가만히 둘 걸 그랬나.” 슬슬 머리가 아파질 것 같았다.     

 그다음 날은 단체 손님이 있는 날이었다. 그 날의 저녁 시간은 한 팀이 레스토랑을 대관하여 스테이크를 무려 30인분을 미리 주문해 둔 터라서 꽤나 긴장을 하고 있었다. 스테이크는 익힘 정도에 따라서 씹는 맛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에 한 치의 오차도 용납되지 않았다. 사장님과 나 그리고 선영은 각자의 화로 앞에서 고깃덩이 두 개씩 펜에 넣고 스테이크를 요리했고 그건 아무런 탈 없이 넘어가나 싶었다. 

나는 평소에도 선영에게 지적한 게 있었다.

"요리를 프라이팬에서 접시로 옮길 땐 두 손으로 하라니까 기껏 만든 걸 떨어뜨리면 어쩌려고 그래?"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그건 흔히 하는 잘못된 습관이긴 하지만 선영은 잘 지키곤 했었다. 하지만 바쁜 상황에 몰리거나 격한 감정이 되면 지킬 수 있는 것도 지키지 않게 되는데 그럴 때쯤이면 소요시간을 줄이기 위해 거추장스럽게 두 손으로 어린 아기 달래는 것처럼 하는 것보다 한 손으로 슬쩍 음식을 덜어내곤 한다. 하지만 실수는 늘 그런 순간에 일어난다.

 그 결과 그녀는 기름과 신발의 때로 얼룩진 바닥에 스테이크 고기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문제는 그 장면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주변은 각자의 일을 하느라 바쁘고 타인을 신경 쓰지 못했고 특별한 소리에 반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에 선영을 가장 주시하고 있던 만큼, 나는 그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선영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선영은 순간 고민한 듯했지만 이내 그 고기를 주워내더니 세균을 태워내려는 듯 다른 가스불에 짧은 시간을 구워내며 손님에게 내놓으려고 세팅되어 있던 그릇에 옮겨 놓았다. 일부러 주변을 눈치를 보지 않는 척을 하면서.

"야. 미쳤냐?" 한숨을 한 번 쉰 나는 바로 선영을 찔러대듯 말했다. 그리고 그 동시에 빠른 서빙을 위해서 민서가 주방 안으로 들어와 접시를 가져가려고 했다. 나는 그것을 가로채 선영에게 내밀었다.

"지금 어쩌려고 그대로 고기를 담았냐? 내가 못 본 줄 알아?"

"아…" 선영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실수를 한 걸 드러내기 싫다고 해도 이딴 식으로 속이려고 들면 다 해결될 줄 알아?" 

 주방의 사람들은 바쁜 와중에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 것인지 알지 못한 채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너는 바닥에 떨어트린 고기를 손님한테 그대로 가져다주면 양심에도 안 찔리냐? 대답해봐. 이러고 무슨 요리사야? 이건 직업의식 이전에 윤리의식의 문제야! 네 이 행동 하나 때문에 여기 모두가 욕먹어. 알아?" 대강 그런 말을 흥분으로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제야 선영은 풀이 죽은 목소리로 자신이 잘못했다고 말했다. 

"어후. 그렇게나 사람들 불편하게 만들더니."

나는 마음 같아선 던져버리고 싶은 스테이크를 그대로 두고 어떻게든 화를 가라앉히며 다시 요리에 집중했다. 

 요리는 요리하는 사람의 감정이 그대로 반영이 된다. 세심하고 배려가 깊은 사람은 그만큼 요리에 상냥함을 베어내고, 화가 난 사람은 그만큼 요리에 맛을 태워버리고 만다. 그런 면에서 선영은 오늘의 요리를 더할 수 없을 것 같아 보였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고 선영의 꽤 침울해하는 표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 기회로 타인을 불편하게 만드는 선영의 잘못된 버릇까지 고칠 기회로 이어질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만큼 선영이 잘못했고 나는 그녀를 올바르게 지적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선영은 퇴근할 적에 옷을 갈아입고 사장님에게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나를 붙잡으며 말했다.

"정말 너무한 거 아니에요?"

"뭐?"

"그냥. 나중에, 나중에 그냥 지적해줘도 좋았잖아요. 꼭 그렇게 창피를 줘야 했어요?"

 나는 왠지 모르게 스스로 멈칫거린다는 것을 느꼈다. 어이가 없음에도 곧 울 것 같은 그녀의 목소리와 눈을 보면 대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내가 잘못한 건 안다고요. 근데 꼭 그때 그렇게나 뭐라 해야 했냐고요. 그쪽이 민서랑 그렇게 붙어 있는 것도 꼴 보기 싫어 죽겠는데."

"뭐? 민서 얘기가 왜 여기서 나와?"

 나는 말을 살짝 더듬었다. 그러자 선영은 입술을 깨물 것 같이 입을 굳게 다물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그렇게 망신당하는 게 얼마나 비참한지 알아요? 안 그래도 요새 좀 그랬었는데."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라니?

 이상했다. 이 레스토랑에서 남자직원이라곤 나와 사장님뿐이다. 그런데 선영이 좋아하는 사람 앞이라니? 사장님은 40대에 애가 있는 유부남인데?

그리고 선영을 기다렸는지 건물 옆쪽에서 모습을 감추고 있던 민서가 나타나더니 선영을 다독이기 시작했다. 선영은 민서의 품에 안기면서 엉엉 울기 시작했고, 두 사람은 마치 언제 화해라도 한 건지 상냥하게 서로의 손을 잡았다. 민서는 나에게 아무런 말을 하진 않았지만 복잡한 눈빛을 나에게 건네며 살짝 고개를 숙이고 선영을 데리고 멀어졌다. 

 나는 한참을 그 둘을 바라봤다. 나는 대체 무엇을 놓치고 있었던 것인지 그 자리에 앉아서 한참을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우연양입니다.

 본글은 이번에 박완서 작가님의 10주기로 발매된 에세이집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라는 발매된 책의 수록글의 오마쥬로 작성된 글입니다.

 부디 이 글이 박완서 작가님을 다시 떠올리거나거 새롭게 만날 수 있게 되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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