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면서 후회가 된 순간이 계속 떠올랐다. 시간은 흐를수록 그런 걸 해결해 준다고 했지만, 나는 오히려 계속된 후회만을 안고 괴롭기만 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도 못해보았는데 거기에 또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건 꽤나 큰 후회가 남는 일로 이어갔다.
직접 만나고 싶어도, 그녀는 전화번호를 아예 바꾼 것인지 연락이 되지 않았고 카카오톡을 사용하려고 해도 탈퇴한 모양인지 채팅창에서 대화를 이어나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아예 연락이 끊기게 되니 연락두절이 될 일이 따로 생긴게 아닐지 걱정스럽기도 했다.
결국엔 그녀의 행방을 알아 볼수 있는 것은 함께 일했던 곳을 찾아가는 것이었는데 그게 영 내키지는 않았다. 사장과 좋지 않은 관계로 퇴직을 했기에 다시는 볼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럴때면 역시 사람간의 관계는 끝이 좋아야한다고 복잡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게 그녀를 보고 싶은 마음을 꺾지는 못했다. 그리고 내가 먼저 웃는 얼굴로 찾아와서 그런지 사장님 또한 웃어 보이면서 인사를 받아주었다.
“오랜만이네. 무슨 일이야? 밥 먹으러 왔어?”
나는 어색함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음식을 내야할 손님은 없어보였고 시간이 이미 점심시간을 지났던 때라서 그런지 한가해보였다.
“사장님. 뭐 좀 알고 싶은게 있어서요.”
사장님은 그게 뭐냐는 물음에 나는 서윤의 전화번호를 알 수 있겠냐고 물었다.
서윤은 내가 이 레스토랑을 그만두고 나서도 이따금씩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그만둔 것으로 알고있었다. 이제는 대학교 졸업을 했고 어딘가에 취직을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 중이었다.
“전화번호라면 예전에 비상연락망으로 적어둔 게 있지. 근데 서윤이는 전화번호가 바뀐 모양이던데?”
“사장님은 그 번호 몰라요?”
“예전에도 혹시 단기 아르바이트가 필요해서 연락을 했더니 전화번호가 없는 번호라고 하더라. 카톡에서도 사라지고. 왜? 무슨 일있어?”
“아뇨.”
“너도 너지만 서윤이 말이야. 너희야 서로 잘 지내긴 했지만 이렇게 찾아와서 연락처를 묻는 것도 그렇고 서윤에게 무슨일이 있나 싶어서. 요새는 그렇게 전화번호를 바꾸는 것도 잘 안하잖아.”
“그렇죠. 아무튼 서윤이한테 연락할 방법은 없다는 건가요?”
“걔가 여기서 아르바이트 한 건 어디까지나 대학교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한 것 뿐이니까. 이젠 졸업도 했으니까 고향으로 갔거나 어디 새로운 직장을 구한 게 아닐까?”
그것 쯤이야 나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사장님에게서 작성되어있었다고 하던 비상연락망을 받아 살펴보았다. 그 안에는 내가 아는 다른 사람들의 이름도 써져 있었다. 사장님은 서윤이와 같이 일하던 아르바이트생에게 물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의견을 내주었지만, 이미 확인결과 그 녀석들도 연락두절인 상태였다.
비상연락망에는 각자의 이름과 연락처 그리고 월급을 받을 계좌번호가 적혀 있었다. 별다르게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없었지만, 우선은 그 정보를 사진으로 찍고 식당을 나왔다.
그 이후로는 집으로 돌아가서는 나와 친하지도 않았던 다른 아르바이트생에게 전화를 걸어서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했다.
“전화번호 바뀌었던데요?”
“인스타그램을 하는 것도 아니라서 다른 방법은 몰라요. 내가 보기엔 일부러 계정 아이디를 안가르쳐주는 것 같던데.”
“친하긴 했지만 알바하는 곳에서만 만나는 친구다보니까. 그렇게 친했던 건 아니었죠.”
“전 애초에 연락처도 몰라요.”
그 녀석들은 하나같이 모른다고 답했고 아쉬움도 없어 보이는 말투였다. 그애들은 나보다도 더 가깝게 지냈으면서 그렇게 가볍게 말하니 뭔가 아이러니했다.
서윤은 다른이의 말 처럼 다른 SNS를 즐기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하지 않는 척을 하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럴 법도 한게, 서윤은 SNS에서 유행하는 정보도 꿰뚫고 있는 편이었고, 카페투어는 물론 옷을 좋아해서 레스토랑의 노트북으로 SNS의 정보를 알아보곤 했었으니.
그런 모습을 떠올리면 SNS의 계정을 알려주지 않은게 맞는 것 같았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애초에 같이 일했던 사람들과 길게 인연을 가져가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기도 했고, 그렇다고 이렇게 연락두절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나는 정말로 연락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실감하니 그런 마음은 더 커져가고 있었다.
서윤에겐 대채 무슨 일이 있는 걸까?
처음 서윤를 만났을 때, 당연히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진 않았다.
그럴 일도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녀에겐 남자친구도 있었다는 것도 알고있었고, 서윤이 일하는 식당에 남자가 많다는 것을 의식해서 인지 얼굴도장을 찍으러 온 남자친구는 도넛상자를 선물로 가져오기도 했었다. 말로는 윤서를 잘 부탁한다는 마음을 어필하기도 했지만 건들지 말라는 말이나 다름 없어 보였다. 그런 모습은 부럽다기 보다는 풋풋해서 보기 좋다는 느낌이 더 앞서 있었다.
하지만 오랜시간 같이 지내면서 일하고 서로를 알아가고 정이 들어간다는게, 마음을 그렇게 바꾸게 될 줄은 몰랐다. 나는 그런 마음에 앞서 서윤을 몰래 챙겨주기도 했었던게 눈치채는 사람들도 생기기 시작했었다. 오죽했으면 술취해서 버스정류장까지 데려다 준 날에는, 사장님은 서윤이가 남자친구 있는데 왜 그러냐고 하는 말에, “그 시간에 주변에 술취한 아저씨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정돈 데려다 줘야죠.” 라고 핑계를 댔었다.
그리고 어느날 서윤은 일주일간 아르바이트를 빼주었으면 한다는 말을 사장님에게 건냈고 사장님은 그 이유를 물었다.
“남자친구랑 단 둘이서 베트남 다낭에 가기로 했어요.”라고 서윤은 말했다.
아마 동공지진이라고 하는 말을 쓴다면, 그 순간의 내 눈동자를 보며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내 눈앞이 막 흔들리는 건 아니었지만, 눈동자가 가만히 있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
이미 알고 있으면서 괜히 배신감이 느껴지기도 했고, 미워지기도 했고, 여러가지로 복잡했다.
무엇보다 갑자기 남자친구와 단둘이서 외국여행을 간다는 것 자체가 워낙에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게 컸다.
‘해외에서 남자친구랑 단 둘이 여행이라…’
상상하고 싶지 않은 게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남자라는 놈들은 결국 다 똑같은 법이다. 애초에 내것도 아니었던 서윤이 뺏긴 것 같아 기분은 최악이었다.
그 이후로 여행을 다녀온 서윤의 얼굴을 보고 마음을 확실히 접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은 거 혼자서 끝내야 한다고 말이다. 애초에 잘 사귀고 있는 커플들 사이에서 뭔 민폐인지 조용하게 넘어가야했다. 하지만 그건 결국 몇개월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후회로 남았고 이렇게 찾고 있다.
웹툰 작가 유지별이님 제공
어차피 차일거면 고백이라도 해보고 차일걸. 그러면 속이라도 시원했을 것 같은데.
“아… 정말 방법이 없나… 그렇게 전화번호를 바꾸고 차단할 걸 다 차단한 걸 보면 남자친구랑 끝이 난건가.”
아니 보통 남자친구랑 헤어졌다고 해서 그렇게 극단적으로 차단을 하나 싶었다.
SNS도 하지않아. 다른 친구들도 연락이 되지 않아. 사는 곳도 다른 지역이야. 그렇다고 주소를 아는 것도 아니야. 학교에 가서 개인정보를 물을 수도 없어.
대체 어떤 방법으로 그녀를 찾아 연락을 줄 수 있을지 떠오르지 않았다. 보통 이럴 땐 무언가를 잃어버렸을 때 찾는 방법 처럼 반대로 갔던 길을 가서 생각해보라고 하는데, 그런 방법으로 무엇을 떠올릴 수 있을런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반대로… 반대로라. 뭘 반대로 생각해야하는거야.”
그녀와 함께 일했던 레스토랑. 같이 갔던 카페. 같이 갔던 포장마차. 지금 되돌아간다고 해서 그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건 없었다.
나는 스마트폰에 연락이 되지 않는 그녀의 번호를 보면서 또 다시 생각했다.
“반대로… 반대로…”
연락이 되지 않는 아무런 의미없는 그녀의 전화번호. 대체 어떻게 하면 내가 그녀의 연락을 받을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마지막으로 쥐고 있던 그녀의 흔적을 떠올랐다.
“연락을… 내가 받아?”
그녀의 흔적은 그녀의 계좌번호였다. 그녀가 매달 아르바이트 급여를 받던 계좌번호. 아무리 그녀가 전화번호를 바꾼다고해도 그녀가 은행의 계좌번호를 바꿀 일은 극히 드물 것이다. 거래내역을 잘 안볼진 몰라도 언젠가 자신의 계좌를 조회할 일은 있을 것이다.
'아니 요새는 입출금이 되면 폰에 메시지도 오니까!'
나는 곧장 그 계좌번호를 따로 종이에 적은 뒤 은행으로 달려가 ATM기기 앞으로 향했다.
마지막이었다. 이게 안된다면 정말 볼 수 없을 것이다.
만약에 이것을 계기로 그녀가 나에게 전화를 준다면, 나는 그녀에게 내 모든 마음을 전할 것이라고 마음먹었다. 이것 조차 통하지 않는다면 포기해야 한다고 마음을 먹기도 했다.
나는 그녀의 계좌번호를 확인했다. 하지만 그 전에 이게 가능할까 싶은 생각에 우선 10원을 계좌이체 시도했다. 그러자 이체가 완료되었다면서 영수증이 튀어나왔다.
“하. 10원이 이체가 되네.”
나는 그것을 확인하자 1원도 이체가 되는 걸까 싶었다. 그리고 원래의 생각대로 이체를 하기로 했다. 10원의 이체는 실험을 한 게 아니었다. 010이라는 숫자를 입력할수 없으니 그렇다고 1010이라는 금액을 이체하면 이해할 수 없을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게 나으려나?’
나는 다시 생각하게 되었지만, 이미 시작한 건 어쩔 수 없었다. 혹시나 이틈 사이에 다른 이체가 그녀의 통장에 끼어들게 된다면 내 계획이 망칠 수도 있었다.
나는 두번째 이체엔 내 휴대전화번호의 앞의 숫자 4개를(ex. 8271) 입력하고 이체를 했다. 이체가 완료되었다는 메시지를 넘기고 바로 내 휴대전화번호의 뒤의 숫자 4개를(ex. 1622) 입력해서 이체를 시켰다. 총 이체금액은 1만원 가량이었다. 이렇게 하지 않고 8개의 숫자를 한번에 입금해버리면(ex.82,711,622원)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라 이런 방법이 없었다.
“입금자는 내 이름으로 뜨니까. 날 기억한다면 이게 어떤 의미인지 알수 있겠지?”
아마 그녀가 보게 된다면.
입금 10원 김우연 입금 8271원 김우연 입금 1622원 김우연
으로 보이게 될 거다.
나의 이름은 그녀도 알 것이고, 눈치가 빠르다면 그 금액들이 나의 폰 번호라는 것을 알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렇게 그녀의 계좌번호에 나의 휴대전화번호를 돈으로서 알려보냈다.
내가 연락할 방법이 없다면, 그녀가 나에게 연락을 줄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보는 반대로의 생각을 했다.
나는 은행을 나오면서 퍽하고 웃었다.
“살다살다 좋아하는 애 쫓다보니 이런 방법까지 써보네. 애초에 그런 걸 생각할 줄이야.”
나중에가서야 입금자란에 다른 문구를 넣을수 있다는 것과 메시지를 넣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지만, 지금의 방법은 되려 지금 나의 마음이 표현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