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주방장이 되었던 곳은 피자로 유명한 이탈리안 식당이었다. 그곳에서는 이미 나보다 경력이 많은 주방장이 자리 잡고 있었지만, 상황이 달라지고 있었다.
"나도 곧 나이가 나이다 보니까. 빨리 자리 잡아야지. 그래서 더 큰 곳으로 가보려고."
나의 사수이자 주방장이었던 그가 규모는 물론 방문해주는 손님이 더 많은 곳으로 이직을 하게 되면서 그대로 저에게 직급이 옮겨지는 거였다.
그런 모습의 그가 즐거워 보였다.
새로운 직장에 대한 불안감과 그에 못지않은 설렘과 기대가 서로 섞인 그의 표정은 나로선 아쉽게 느껴지게 만들었다.
우리가 서로 같이 일했던 이 작은 레스토랑은 결코 작다고 할 순 없었다. 테이블의 수는 스무 개가량 되었었고 손님이 한번 꽉 차기 시작하면 두 시간이나 세 시간은 아무도 모르게 지나가게 만드는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매번 같은 일만 반복한다고 느낄 정도로 이곳의 일에 능숙해진 만큼, 자신의 그릇이 커졌다고 해야 할지 우리가 같이 있는 이 레스토랑은 작게만 느껴졌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크고 이곳과 다른 곳에서 일한다는 것은 자신의 경력에는 물론 새로운 경험이 미래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일주일 후 그대로 그가 레스토랑을 떠났고 그대로 내가 주방장직을 이어받았다.
주방장이 되었다고 해서 바로 큰 혜택이라던가 권한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차선책으로 내가 선택되었을 뿐, 완전히 능력을 인정받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내가 생각하는 주방장이란 요리를 제일 잘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이 레스토랑은 손님에게 제대로 된 음식을 제공하는 게 최우선이었다. 그렇기에 주방장이란 주방의 총책임자로서 음식에 실수가 없고, 청경 해야 하며, 맛은 물론이고 제대로 손님에게 전해지는 것을 책임져야 하는 직책이라고 생각했다. 주방에서 실수가 나온다면 그 구멍조차도 바로 메울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말이다.
그건 작은 조직 하나를 이끌어간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나의 방식이었고 1개월이 지났을 땐 새로운 직원도 들어오며 모두가 나를 따라주는 것 같아서 인정을 받은 기분 느낌에 기분까지 좋았고 출근하는 것도 매일 기대가 되곤 했다.
하지만 정확히 그가 떠나고 1개월 하고 2주 뒤. 그가 다시 돌아왔다.
상당히 어둡고 칙칙한 표정으로.
나는 그가 돌아온 것에 반감이 들지 않았다. 그가 돌아오기에 주방장직이 도로 빼앗긴다거나 그런 위협을 느낀다기 보단, 그저 오랜만에 다시 사수였던 그를 볼 수 있었던 게 기뻤다.
"한 달 만인데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요. 잘 지냈어요?"
그리고 그는 힘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가 이 곳에 돌아온 이유는 얼마 전에 들어왔던 신입 때문이었다. 알고 보니 신입은 다른 여러 직장을 면접보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원하던 곳에서의 결과 발표가 너무 늦어지는 바람에 뒤늦게 통보를 받아 떠났다.
그런 그 자리를 그가 그 자리를 메워주려고 온 것이라고 한다.
조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묻지도 않았던 그의 지난 일상에 대해 입을 열었다.
"역시 큰 곳은 정말 크더라. 워낙에 큰 곳이라서 각자 맡은 곳에서 같은 일만 계속했어. 그래야만 효율적으로 레스토랑이 돌아갔거든. 어떤 사람은 스테이크만 어떤 사람은 파스타만 어떤 사람은 필라프만 어떤 사람은 재료 정리만, 나는 거기에서 한 달 동안 매일 8시간씩 피자만 만들었어. 정말 딱 그것만."
그는 그 레스토랑을 비난할 수 없었다. 그 레스토랑은 그를 속이고 입사시킨 것도 아니었고, 원래 하던 일에서 그를 투입시킨 것뿐이었다.
그가 그곳이 어떤 곳이라 상상했는지 모르지만, 설렘과 기대가 있었던 만큼 단순노동이라고 느낄 만큼 한 가지의 일만 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 레스토랑은 그런 역할을 하나하나씩 뭉쳐서 거대한 레스토랑으로 형성되어 있던 곳이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여기가 재미있었어. 피자도 만들고 스테이크도 굽고 샐러드도 만들고, 다른 애들과 얘기하면서 재미있게 일하던 게 말이야. 물론 그 커다란 레스토랑도 결국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긴 하는데, 역시 즐거운 곳에서 일하는 게 좋은 거 같아. 큰곳 보단 작은 곳,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 처럼. 사람들이 그러잖아 용의 꼬리보다 뱀의 머리가 좋다고."
그 말에는 어째 내가 부럽다는 마음이 녹아 있는 것 같았다.
그런 마음이 느끼고 후회를 또한 느끼기에, 나는 말할 수 없었다.
'저는 뱀의 머리가 초라해보이더라도, 좋아하는 사람과 좋아하는 곳에서 좋은 추억을 남기며 일을 한다는 게 정말 행복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것 자체가 제가 어울리는 곳에 있다는 것 같구요.' 라는 말을.
그리고 그는 일주일 정도 일하고 새로운 직장을 구하러 나섰다.
한동안 신입이 들어오지 않아 나도 힘들었다.
규모를 따지자면 내가 있는 곳은 뱀의 머리 같은 곳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애초에 그와 함께 일하던 이 작은 레스토랑도 각자 맡은 구역에서 한 가지의 일만 계속 해왔다. 그런 부분에선 차이가 없을 뿐, 규모가 너무 달라서 성향이 짙어질 뿐이겠지.
그의 용의 꼬리와 뱀의 머리의 비유는 별로 반갑지 않았다.
규모의 차이로 인해서 내가 일하던 곳, 이 작은 레스토랑에 있는 내가 뱀의 머리라고 한다는 게.
아니다.
그래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뱀은 긴 몸을 가진 만큼 나를 따라오는 직장동료들 새로 만나게 될 신입들 그 녀석들과 함께 만나는 손님들. 나는 그런 나날들이 기대되고 즐거웠다.
나는 큰 목표를 삼아서 앞선 사람들을 뒤따라가는 것 보다는, 지금과 앞으로 함께할 사람들을 돌아보고 바라보며 같이 일하고 나아갈 수 있는 것에 큰 만족을 느낀다.
그 장소를 나는 내가 선택했고 오랫동안 팀원들과 함께 나아가고 싶다.
그건 지금도 그때도 다르지 않다.
나는 내가 지금 있는 이곳이 즐겁고 나에게 어울리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아마 나에게 어울리는 곳이라는 것이고, 그런 곳은 어느 한곳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그는 그 순간을 잃었던 게 큰 상심을 했던 거겠지.
자신과 어울리는 곳에, 그 곳에 즐겁게 지낸가는 것에, 그 것에 얼마나 행복을 느끼는 지, 잊지 말아야한다.
저의 인스타에도 놀러 와 주시길.
안녕하세요. 글쓴이 우연양입니다.
이번 글로 이렇게 만나 뵈어 기쁘고, 또 뵙게 되어 기쁩니다.
독자분들이 '자신이 여태까지 [얼마나] [어떤] 사랑을 받아왔는지 되새겨 보게 될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나를 좋아했으면'이라는 책을 내었습니다.
브런치에서 글을 쓰면서 책이 탄생하는 일을 맡아 너무 행복했습니다. ^^
부디 많은 분들에게 닿기를 바라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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