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은 음식점을 차리면서 혼자서 모든 일을 다 하려고 했다. 그건 인건비를 줄이겠다는 욕심이었지만, 역시 한계는 있었다. 휴일이 모지란 만큼 체력은 금방 바닥이 나오고 음식의 질도 떨어지고 있었다. 무엇보다 11시간을 혼자서 일한다는 게 너무나도 외로운 일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음식점의 분위기나, 음식의 맛에서 손님에겐 부정적인 영향만 가져다 줄 거라고 생각했고, 결국 7명의 면접을 보고, 나는 주방엔 24살의 남자 민혁과, 22살의 여자 유나를 각각 한 명씩 뽑게 되었다.
둘의 캐미는 생각보다 좋았다.
서로 처음 보는 사이였음에도 새롭게 온 남자 주방 직원은 친화력이 좋아서 인지 금방 익숙해지고 친해졌으며 나와 홀 알바생과 말을 잘 섞으며 분위기를 잘 조율해주곤 했다. 그렇다고 시도 때도 없이 구는 건 아니었는데, 그는 다른 사람이 볼 때 너무 티가나는 정도로 눈치를 잘 보는 편이었다.
"사장님, 저번에 월급주신 것 중에 계산을 잘 못해주신 건지 17만 원이 더 들어왔습니다."
처음 사장을 하는 만큼 잔 실수가 많았던 나는, 가끔 그렇게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월급을 잘 못주곤 했다. 두 달의 한 번은 꼭 있을 정도였고, 민혁은 본인이 받아야 할 월급을 더 받았음에도 바로 나에게 말해주곤 했다.
"그래? 흐음. 그래. 그래도 한번 보너스도 안 줬는데 보너스 준 샘 칠게."
그렇게 실수하는 게 한두 번도 아니었고, 5개월 동안 열심히 일해주면서 그 정도 보너스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다.
"네? 정말요?"
"그래. 잘해줬으니까. 앞으로도 좀 잘 부탁하자."
"헐. 감사합니다."
사실 나는 민혁을 좀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민혁이 조금 더 잘해줘서 나 대신 가게를 잘 맡아 준다면 나는 나대로 편해지는 부분이 컸기 때문에, 그런만큼 대우를 해주고 격려와 동기부여는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만약에 아직 대학생이 아니었고 딱히 다른 걸 하고 싶은 게 없다면 계속 데리고 다니면서 같이 일을 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나는 홀 아르바이트 유나가 오기 전에 물었다.
"그 돈으로 뭐할 거냐? 옷 살 거냐?"
"글세요. 저는 옷은 관심 없고, 술 먹고 노는데 쓸까 합니다."
"또 그렇게 낭비한다."
"재미있으면 되는 거죠."
그렇게 보너스를 주는 건 바로 효과가 드러났다. 어느 때 보다 기분 좋아하는 민혁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신나 하는 모습을 바로 알 수 있었던 유나 또한 무슨 일인가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이어나갔다.
나는 그렇게 녀석이 계속 열심히 일해 줄 거라 믿었다.
어느 날 알바생들을 먼저 퇴근시키고 가게를 정리한 뒤 한 시간 늦게 퇴근을 했다. 길거리에는 술집이 많았는데 시간이 12시로 다가가고 있던 시기였는지 집으로 돌아가려는 사람들과 이제 막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섞여 주변에는 취기가 도는 사람들 투성이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서 건물 쪽으로 붙어서 걸어 다녔다.
그러다가 한 가게를 보게 되었다. 그 가게는 일본식 라멘집이었는데, 그 안에서 서로 마주하고 앉아 있는 두 녀석들이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나와 눈이 마주쳤고 가볍게 손인사를 반사적으로 했다.
순간 깜짝 놀랐었다. 그리고 민혁은 나를 보자마자 인사를 했지만, 유나는 당황한 듯 어색한 얼굴을 보이고 있었다.
바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녀석들 사귀는 건가?'
사이가 좋은 건 알고 있었지만, 진짜 사귀는 거였나 싶었다.
그다음 날에는 딱히 그 둘을 본 것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진 않았다.
나는 괜히 두 사람을 흘끗 쳐다보았고, 이제 와서 보니 두 사람의 기류가 뭔가 묘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유나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사장님!"
"어?"
"민혁 오빠한테 보너스 줬다면서요!"
"응 그런데?"
"저는 안 줘요?"
"야. 너는 빵꾸를 그렇게나 많이 내놓고선."
"허어 엉."
유나는 떼를 쓰듯 했지만, 정말로 보너스를 바라는 듯 말하진 않았었다. 그건 다음 이야기에서 느낄 수 있었다.
"안 그래도. 보너스 받았었다고 어제 라멘도 사주고 선물도 사주더라고요."
"너한테? 무슨 선물?"
"신발 하나 사줬어요."
그러면서 신고 있던 분홍색 스니커즈 운동화를 보여주었다.
"너희들 사귀냐?"
그때 민혁은 없었고 나는 바로 직접적으로 물었다. 하지만 유나는 미묘한 얼굴로 말했다.
"사귀는... 것 까진 모르겠고. 좀 썸 같은 관계?"
"그냥 사이만 좋은 거 아니었어?"
"사이도 좋긴 한데, 아. 왠지 사장님이 그렇게 말하니까, 괜히 저 혼자 착각했던 거 같잖아요."
"아니 내가 봐도 니들 뭔가 있어 보이던데?"
"정말요?"
"야. 너 오히려 그런 게 있었으면 하는 걸 보니까. 너도 마음이 있구나?"
"뭐예요? 그러면 민혁 오빠도 저한테 확실히 마음이 있다는 거예요?"
"그냥 내가 보기에 그렇다는 것뿐이야."
내가 해보지 못했던 대학교 로맨스가 그런 느낌인가 싶었다.
그저 마음이 맞으면 함께하고 좋아하는 것을 나누고 그 시간을 생각을 하기 보다 마음으로 먼저 따르는 그런 사람들. 그 사람들에게는 풋풋함이 묻어나는 게 보기 좋았다. 괜히 그런 풋풋하고 귀여운 모습을 보니 부럽기도 했다.
그리고 곧 민혁은 가게로 돌아왔다.
우리는 이야기하던 것을 중단하고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음식점인 만큼 오후 5시부터 8시까지는 장난을 칠 시간도 없이 바쁘게 돌아갔고 손님들이 나가기 시작하면 그제야 한숨을 풀기 시작한다.
민혁은 잠시 일에 지쳤는지 물을 마시기 위해서 홀로 나섰다.
그리고 그 녀석들이 속삭이는 목소리가 살짝 넘어왔다.
"아. 오늘 손님 진짜 많았다. 홀도 엄청 힘들었지?" 민혁의 목소리였다.
"나 진짜 죽는 줄 알았어. 사장님이 한 명 더 뽑아주셨으면 좋겠는데."라고 유나가 말했다.
"에이. 충분히 할만하잖아. 오늘 마치고 따뜻한 거 먹으러 가자."
"따뜻한 거? 뭔데 그게? 나 빙수같은 거 시원한거 먹고 싶었는데."
"빙수? 그래 그럼 그거 먹자. 퇴근할 때까지 힘내."
"오빠도 고생해~"
나는 연애에 대해 잘 모르지만, 분명 두 사람은 서로에게 확실히 호감이 있다고 느껴지는 목소리들이었다. 그 목소리의 톤들이 증명하고 있었다.
그리고 민혁은 행복한 듯한 얼굴로 주방으로 돌아올 땐 조만간 이 녀석들이 사귀겠다고 확신이 들었다.
이때까지가 이 두 녀석과 같이 일한 지 8개월이 되던 날이었다.
한 달이 더 지나서 민혁은 가게의 전체적인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능숙해졌었다. 민혁 또한 알바가 아니라 정직원으로 자리잡기로 했고, 덕분에 나도 하루를 마음 편하게 쉴 수 있게 되었다.
"그럼 이번 주 화요일에 부탁하자."
"네."
나는 매달 매출을 분석해서 제일 손님이 적은 화요일에 쉬는 것으로 정했고, 매주 그 날 만큼은 민혁에게 맡기기로 했다. 그 날은 또 유나도 일찍 출근을 해서 도와주기로 했다.
단 둘이서만 있게 되었으니, 내 가게가 완전히 그녀석들의 세상이 되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두 사람이 진짜로 사귄다는 소식을 듣진 않았다. 그렇다고 사이가 안 좋은 건 아니었고, 여전히 핑크빛이 맴돌았다.
어쩌면 가게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생각해서 인지 자기들끼리 그 사실을 숨기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당연히 사장의 입장에선 알바생들끼리 눈이 맞아서 깨만 볶고 있으면 하는 일에 영향을 줄 거라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매주 내가 쉬는 날마다 두 녀석들은 제 역할을 해주었고, 방범용으로 설치해둔 cctv로 가끔 봐도 두 녀석은 공과 사를 잘 구분해 가면서 가게를 이끌어주고 있었다.
그 부분이 얼마나 고마운지 이어지는 그다음 주에도 별 탈 없이 쉴 수 있게 되어 기뻤다.
그리고 한 달 하고 2주가 더 지났다.
나는 집안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서 민혁과 유나에게 가게를 부탁하고 차를 운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급한 서류를 가게에 두고 왔다는 것을 떠올리고 가게로 운전대를 돌렸다. 시간은 아직 오전 10시가 되기 전이였고, 아직 가게도 오픈하기 전이었다.
그런데 가게 안에 들어가는 순간 귀신을 본 듯 깜짝 놀랐다.
"뭐야. 너 왜 벌써 와 있어?"
그 안에는 민혁이 있었다.
나는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건 민혁의 얼굴을 보면서 바로 느낄 수 있었다. 민혁을 의심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그 녀석 얼굴엔 불안감만 나타나 있었던 것이 그대로 전해져 받았다.
"사장님. 아니... 그게."
이 녀석이 가게 안에 뭔가 필요한 게 있어서 몰래 가져가려고 했나 싶었다. 그게 돈이 아닐까 싶기도 했지만 그건 바로 들통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금방 알 수 있는 게 하나가 있었다.
"야. 안에 또 누구 있냐?"
바로 주방 안에서 또 다른 인기척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걸 증명하듯 녀석은 주방 입구에 서 있었다. 내가 못 들어가게 막으려고 하는 것처럼.
나는 그 안에 들어가려고 했지만 그 안에서 쭈그려 있던 것인지 흐트러진 머리카락 사이에 보이는 눈과 마주치며 한 여성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유나일 줄 알았다.
그 짧은 순간 하나의 생각이 바로 지나갔다.
'이 녀석들 혹시 모텔 같은데 갈 곳이 없어서 여기서 자거나 한 건 아니겠지?'
잠시 쉬기 위해서 간이 침대도 있곤 했지만, 식당에서 그런 짓을 할 거라고 생각도 않았지만 괜스레 분위기 좋은 두 사람을 생각하니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하지만 전혀 다른 여자였다.
그리고 그녀는 이 상황 자체가 무서운 것인지 민혁의 뒤쪽으로 살짝 숨었다.
그날은 여러 가지로 복잡했다.
생각보다 유나와 계속 썸의 관계를 이어가는 게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여자 친구가 따로 있었던가 싶었다. 그 안에 숨어 있던 여성이 말이다.
하지만 그 여성 또한 민혁의 여자 친구는 아니라고 했다.
즉 민혁은 사장이 없는 날에 그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이른 시간에 사장 인척 노릇을 해보려고 했다고 한다. 그걸 그 여자도 알고 있었지만, 그냥 간단하게 말하자면 그 여자를 꼬시고 싶었다고 말했다.
"야. 너 유나 좋아하는 거 아니었냐?"
"좋아하긴 하죠. 네. 좋아하긴해요."
"그럼 아까 그 여자는?"
"관심이 있었거든요. 이상형에 가까워서."
"유나 좋아한다며."
"좋아하긴 하는데... 사귀는 건 아니잖아요."
"아니, 그래도. 그래도 괜찮냐?"
"썸에 그런 책임감 같은 게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썸이죠."
아직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썸이라는 게 그렇다고 하지만, 서로 마음을 어느정도 확인한 이상 서로를 어느정도 계속 시선을 맞추고 있는 관계라고 생각했는데, 사람마다 이것마저도 생각도 다른 법이구나라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구닥다리인건가 싶기도 했다.
"썸에는 책임을 묻지 않는다라, 그럼 이건 양다리라던가 어장관리 뭐 그런 건 아니라는 말이야?"
"양다리는 글쎄요... 어장관리라고 하신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양다리랑 어장관리.
물론 의미하는 건 다르긴 하지만, 지금 상황에 그게 다른 건가 싶기도 했다.
대체 나는 이 녀석에 어디를 풋풋함으로 봤던건지, 조금 색이 바래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