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화장실에는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남자화장실에는 소변기 앞에 작은 문구들이 적혀있는 경우가 여럿 있습니다. 그런 곳에는 유명한 문구라던가 관리자의 취향에 따라 무언가를 붙여 놓곤 하는데, 특히 군대에서는 화장실의 대변기에 앉더라도 바로 눈앞의 벽에 여러 가지 문구나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에 대해서 적혀있는 경우가 있었죠. 오래 전의 일이긴 하지만, 그런 볼일을 보면서 읽었던 짧은 문구가 아직도 떠올리곤 합니다.
"지금 눈앞의 사람에게 집중하라. 그 사람의 눈 그 사람의 목소리 그 사람의 손짓. 지금 눈앞의 것에 집중해야 그다음의 인연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
유명한 사람의 문구인 것인지 아니면 출처도 없는 익명의 누군가가 만든 것인지 눈앞의 사람에게 집중하라는 것에는 뭔가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사람만 봐도 그렇습니다.
단 둘이 테이블에 커피를 놓고 있음에도 서로서로를 보지 않고 각자 손에 있는 스마트폰만 보고 있으니, 대화건 눈빛이건 서로에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없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단 둘이 있는데 저에게 집중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저와 그 이상 관계를 더 깊게 가질 생각은 없다고 말이죠. 그저 그 정도일뿐인 거겠죠.
좋아한다면 직진을 해야 합니다.
사랑도, 하고 싶은 것도, 이루고 싶은 그 어떤 것도 말이죠.
간 보지 말고 직진을 해야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간단한 예시가 있습니다.
한 가지만 다루는 전문 초밥집과 일본 만화책을 읽을 수 있고 캐릭터 상품을 같이 파는 초밥집.
둘 중에 어느 집의 초밥이 더 맛있을까요?
정답은 알 수 없습니다. 블라인드 테스트로 서로가 만든 초밥을 먹지 않는 이상 말이죠. 하지만 일반적으로 전문적으로 초밥을 만드는 집이 더 초밥이 맛있을 거라는 선입견은 당연히 지울 수 없습니다. 책도 읽을 수 있고 귀여운 상품들을 보고 살 수도 있는 초밥집도 다양한 매력을 가질 수 있겠지만, 한 우물만 판다는 느낌이 없는 이상 한우물만 판다는 느낌을 주는 초밥집이 더 맛있을 거라는 기대는 마냥 지울 순 없습니다.
저도 그럴 거예요.
그런 두 초밥집이 있으면 저는 맛을 위해서 전문 초밥집에 향하겠죠. 설령 다른 초밥집의 초밥이 더 맛있다고 하더라도 말이죠.
하고 싶은 것도 사랑에도, 이루고 싶은 꿈에도, 담아낼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노리다간 많은 것을 잃을 수도 있고 아무런 결과물도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양다리를 걸치거나 이성을 어장관리를 하다간 결국 파탄이 나는 것처럼. 구름 잡는 소리만 하는 뚜렷하지 않은 꿈을 좇다가 길을 잃는 것처럼. 그릇에 담지 못할 만큼 욕심을 내는 것엔 결국 화를 일으키고 분에 넘쳐 주변을 어지럽히기 쉽습니다.
한 마리의 또끼를 쫓다가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건 어디까지나 행운의 이야기입니다.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면 우선 눈앞의 것에 다시 집중해보도록해요. 너무 멀리 있는 것에 대해 걱정을 하다 보면 분명 지금 이 순간에 필요한 것을 놓칠 수도 있습니다.
징검다리도 지금 눈앞에 있는 발판을 먼저 밟아야 다음 발판을 밟을 수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