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애는 서로를 성장시킨다.
여러분의 곁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나요?
그 질문에 앞서 우선은 어떤 그룹 내에서 하는 질문인지 다시 한번 확인할 필요가 있겠네요.
그 그룹은 여러 가지가 있겠네요.
사적인 공간에 마주하는 친구나 지인들, 편안한 공간에서 마주하는 가족들, 공적인 공간에서 마주하는 동료들. 그룹은 대략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친구나 지인들은 어떤가요?
학창 시절에 친구랑 많이 싸웠었나요? 아니면 많은 동창생들 중에서 단 몇 명끼리만 매일 같이 시간을 즐겨 보냈나요? 한 학년에 같은 나이의 동급생이 많기 때문에 10대에서부터 시작된 교우관계는 자신의 성격에 따라 자신과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끼리 모이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맞을수록 더 끼리끼리 모이기 쉽습니다.
가족들은 어떤가요?
형제가 없다면 사랑을 주는 부모님이 있을 것이고, 거기에 더해 형제가 있다면 부모님에게서 사랑을 나누어 받고 대신 형제간의 애정이 생기겠죠. 개인적으론 가족 간의 사랑은 구성된 가족들을 합친 총량의 사랑의 그릇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은 주고받는 것이기 때문에 가족 간의 사랑은 돌고 도는 만큼 하나의 그릇에 계속 순환되는 것으로 말이죠.
그렇다면 동료들은 어떤가요?
우리는 결국 성인이 되면서 사회력을 기르기 시작하는데, 앞서 쌓은 가족들이나 친구들로 인해 인간관계를 잇는 방법을 스스로 배우곤 합니다. 그리고 그건 사회생활에 따라서 앞으로의 생활에 영향을 주곤 합니다. 친구를 사귀어왔던 만큼 어떻게 동료애를 형성할지 말이죠.
저는 여기에서 사회에서 만나는 인간관계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학창 시절에서 이어온 인연과 태어나자마자 이어온 가족의 인연과는 달리 사회에서 만나는 인연은 앞으로도 그 더 앞으로도 어떻게 이어가고 변해갈지는 서로서로 하기 나름이니 말이죠.
요식업을 하게 되면 참 다양한 손님들을 만나게 됩니다.
한국 식당에서 한국 입맛에 맞춰 파스타를 팔고 있는 양식 레스토랑에선,
"이탈리아 전통 알리오 올리오는 이렇게 파스타 안 만들어요!"라며 자신이 한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이라고 하는 여성 손님이 한국에서 이탈리아 전통을 운운하시는 경우도 있었고.
크리스마스의 특성으로 인해 대기 시간이 길었던 어느 날에는,
"어떻게 손님을 1시간 20분이나 기다리게 할 수 있어요? 그것도 서서!"라며 미리 2시간까지 대기해야 할 수 있다는 말에도 기다리겠다던 손님은 화를 냈으며,
10시면 문을 닫아야 하는 시간에,
"저희가 지금 가면 10시가 좀 넘을 거 같은데, 미리 주문하면 먹을 수 있을까요?"라며 9시 50분에 전화로 주문을 미리 하겠다는 손님도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양하고 그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상황은 전부 다를 수 있기에 그런 항의가 아닌 항의 같은 손님들의 짜증은 저나 직원들이나 쉽게 화를 불러일으키곤 합니다.
하지만 어떤 손님들이 오더라도 어느 정도 대응할 경험이 있기 때문에 마냥 화부터 나진 않습니다만, 이 이야기는 좀 달랐습니다.
점심시간이 다 지나가고 저녁시간의 재료 손질들을 어느 정도 다 끝나가기 시점에 주방 안에서는 홀에서 묘하게 들려오는 말소리가 있었습니다.
"에이그, 할머니라고 생각해서 이런 것도 못줘?"
많이 팔리진 않더라도 찾는 손님들을 위해서 커피머신을 들여 아메리카노를 판매하고 있었는데, 식사가 끝난 사람들은 후식으로 커피를 마시면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손님이 구경할 수 있도록 혹은 마음에 들면 사갈 수 있도록 전시해 놓는 머그컵과 그릇도 있었죠.
손님인 할머니는 판매하기 위해 전시해 놓고 있던 머그컵 하나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것을 무료로 달라며 고집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손님, 그건 판매품이라,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아르바이트생은 양손으로 컵을 감싸고 있는 할머니를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했고, 마침 사장님 또한 자리를 비우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주방에서 그 상황들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나이를 들먹이며 그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 게 정상인 것 처럼 무리하게 요구를 했고,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아르바이트생도 곤란해하며 안된다고만 말을 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엔 나서서 해결해야겠다는 생각에 주방에서 나오려던 찰나.
조금은 둔탁한 소리로 시작해 귀가 아플 얇은 소리로 머그컵은 조각조각 사방으로 깨져 날아갔습니다. 그 소리로 인해 레스토랑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할머니 쪽으로 반사적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모든 직원은 할머니는 두 손으로 감싸고 있던 머그 컵을 높게 들더니 그대로 바닥에 내팽개쳤던 모습을 머리에서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는 외쳤습니다.
"너희들 엄마, 할머니도 없냐? 할머니 같아서 컵 하나 주는 게 뭐가 어렵다고 실실 웃으면서 비꼬아?!"
"네? 손님. 제가 비꼬다니요."
"싫다면 싫다고 그러지. 어디 실실 웃으면서! 여우같이!"
아르바이트생은 곧 눈물이 터질 것 같은 목소리였다.
할머니는 그대로 그곳에서 벗어나 자기 자리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이미 늦어버렸지만 저는 좀 더 빨리 걸어 나가 할머니 손님의 팔을 붙잡아 세웠습니다.
분명히 이 할머니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파는 물건을 그냥 달라고 하더니, 안된다고 하니 훼손시키고, 그리고 자신의 기분을 망치게 했다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한 번에 다 한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이보세요. 손님. 창피하지도 않으세요?"
제가 그렇게 나서자 주방에서 일하던 직원들도 전부 나와 할머니를 감쌌습니다. 할머니 보다도 훨씬 키가 큰 남성이 셋이 둘러쌌기 때문인지 할머니는 아까와 같은 기세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손님한테 왜 이래?"
할머니의 그 말에
"그건 저희가 할 말이죠. 파는 물건을 안 주니까 파손시키는 손님이 어딨습니까?"
"우리 할머니는 돌아가셨지만 할머니처럼 무례하게 구시지 않으셨어요." 라며 다른 주방 직원들은 당장이라도 주저앉게 만들싶을 정도로 분위기를 압박시켰습니다. 할머니는 눈 앞에 있던 여린 아르바이트생과는 달리 온몸과 팔에 화상자국과 상처들이 있는 남자들 앞에서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뒤늦게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하고 온 사장님은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은 성격 때문인지 머그컵의 변상을 받지 않고, 다시는 손님으로 받지 말라는 말로 이 일은 마무리시켰습니다.
이 일은 도저히 대화가 안 된다는 선에서 정리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어떤 짓을 할지도 모르는 미개한 사람을 마주한 것과 다름없는 기분이었죠.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그런 행동을 한 사람이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였다는 점입니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성장할 수 있는 생명체라고 생각합니다. 정신적으로든 능력적으로든 어떠한 면으로든 말이죠. 하지만 오랜 시간을 보내왔던 만큼 변화를 가지는 것이 어려운 것도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70 평생을 고집쟁이로 살아온 사람이 1년 만에 결코 자애로운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고집도 그런 고집도 없을 겁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에게 늘 상처받는 것은 보다 어리고 약한 사람들입니다. 자신이 제압할 수 있다고 여기는 모든 상대를 말하죠.
피해자는 그저 울기만 합니다.
처음 보는 손님에게서 아무런 이유 없이 겁을 먹을 수도 있고, 이런 유형의 일을 하는 것에 앞으로 어려움을 느낄지도 모르죠.
결국 그런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건, 같이 일을 하고 곁에 시간을 보내고있는 사람들뿐입니다.
그 현장에서 어떤 분위기로 어떤 창피 어떤 상처를 입었는지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죠. 그리고 같이 일하는 만큼 그 상처가 얼마나 아픈지 잘 아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사장이 그렇게 손님을 빨리 내보내려는 것에는 마냥 번거롭게 일을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미 몇 번이고 울고 속이 상했을 아르바이트생이, 그동안 그렇게나 잘해와 줬었는데 그렇게 상처를 받고 있는 게 안쓰러웠기 때문에, 제일 좋은 건 그 아이의 시선에 빨리 그 할머니를 없애는 것이 최선이었습니다.
그 아이를 위해 다른 직원들이 나서고 보호해 준다는 것.
그건 생각 이상으로 좋은 사람들이 모인 직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으른 배짱이 마냥 아무런 생각이 없을 것 같은 사장님 조차 보다 깊게 생각하며 대처를 했던 것이죠. 사회에서는 원하지 않는 인간관계를 어쩔 수 없이 이어가는 경우가 있긴하지만, 결국엔 사람들은 끼리끼리 꽤나 모이는 법입니다. 동료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들 곁에는 그런 사람들이 꽤나 모이기 마련이죠.
인간관계는 기브 앤 테이크입니다.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다가오지 않는 법이고, 동료애라는 것도 한쪽에서만 준다고 형성이 되는 것도 아니니 말이죠.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나 자신보다 타인을 위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는 공동체로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도움을 주면 되돌려 줄 주 알고 되돌려 주면 또 그만큼 돌려주게 됩니다.
이미 그 아르바이트생에게서 많은 도움을 주고받아왔었죠. 그래서인지 서로가 어려울 때마다 돕고 도울 수 있는 꽤나 다른 직장 부럽지 않은 동료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자신의 곁에서 도와주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감싸줄 줄 알게 되고, 또 그만큼 그 사람들을 아끼면, 그 사람들도 자신들을 아끼게 된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다는 것이.
퇴근길에 그 아르바이트생은 말했습니다.
"도와주셔서.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런 울먹이는 목소리와.
"그 할매 뭐냐 진짜. 역대 최악 진상이다."
"어우 그 노인네."
"진심 구타유발자야." 라며 하나가 되듯 그 빌런같은 손님에 그래도 잘 대응했다며 그 아이를 다독였습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그 아이에겐 웃음이 나오곤 했습니다.
자칫 악몽 같은 경험이 자신을 감싸주는 동료들 덕분에 이렇게 이겨낼 수 있다는 긍정적인 경험이 되었죠.
그건 5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5년 후에 새로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아이는 마카롱과 버터 샌드위치 등 다양한 디저트와 커피를 파는 카페를 오픈했고, 새로운 손님들과 새로운 좋은 손님 그리고 새로운 진상들을 만난다고 합니다.
이젠 그녀가 사장이 되었습니다.
이젠 그녀가 그녀의 직원들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곁에서 같이 고생하며 같이 나아가는 사람들과 자신을 위해서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