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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22. 2016

[출간 전 연재] 03. 슬프고 아름다운 천장(天葬)

<여행하는 보헤미안>

척박한 환경 탓에 시신을 땅에 묻으면 쉽게 썩지 않으므로 일반적인 토장(土葬)을 할 수 없었다. 화장(火葬)하려면 많은 양의 나무가 필요한데 구하기가 쉽지 않았고 수장(水葬)은 귀한 물을 오염시키니 이 또한 적합지 않았다. 이러한 표면적 이유에 내면적 이유가 더해진다. 티베트인들은 시신을 신성한 독수리에게 보시(布施)하면 영혼이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고 믿었다. 이로 인해 천장(天葬)이란 독특한 풍습이 생겼다는 주장이 정설에 가깝다.

티베트 가옥


고산병을 다스리는 차(茶)


마을에서 외떨어진 한적한 언덕 위에서 의식이 거행됐다. ㄱ자 모양의 울타리 앞에 서 있던 스님 두 분이 피가 몽땅 빠져버린 듯한 하얀 피부의 시신 두 구를 마대에서 꺼냈다.

재빠르게 시신의 발뒤꿈치부터 엉덩이까지 죽 그어 살집을 도려낸 뒤 별안간 냅다 뛰더니 구경꾼들을 향해 던졌다. 인파에 섞여 얼떨결에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는데 이 상황에서 몇몇은 히죽히죽 웃었다. 알고 보니 대부분 사람이 빨간 경계선 안쪽에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멀리 떨어지라는 신호였다. 벌렁거리는 심장이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맞은편 능선에서 날아온 독수리 무리가 푸른 하늘을 수놓기 시작했다. 어림잡아 백 마리는 넘어 보였다. 날개를 활짝 펴고 V자 형태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진정 궁극의 아름다움이었다. 내 생에 단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가 불현듯 찾아온 것이다. 저들의 정체가 실은 잔혹한 저승사자란 걸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한참을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았다.

한편에 앉은 노승이 북을 치며 염불을 외기 시작했고 지양신은 아미타불이라 말하며 지그시 눈을 감았다. 끔찍한 모습을 볼 엄두가 나지 않아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가 뒤늦게 호기심이 일어 가까이 갔더니 사람의 형상은 오간 데 없었다. 뼈에 붙어 있는 작은 살점을 마저 먹기 위해 독수리들이 엉겨 붙어 쟁탈전을 벌이고 있었다. 형용할 수 없는 독특한 냄새가 날카롭게 코를 찔렀다. 모든 이들이 굳게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한없이 숙연해졌다. 땅속 아주 깊은 곳으로 꺼져버릴 것처럼. 그리고 대장간의 시뻘건 쇠붙이가 담금질을 통해 단련되듯 내 심장도 그렇게 단련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 이 세상에 죽음보다 더 큰 슬픔은 없다. 내 안에 담아두었던 차디찬 얼음들이 사르르 녹아내리고 있었다.

마을에서 외떨어진 한적한 언덕 위에서 천장(天葬)이 거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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