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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24. 2016

07. 미래의 섹스, 새로운 성이 만들어진다.

<사이보그 시티즌>

오랜 세월 동안 인간은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몸에 적합한 가치들을 집단으로 형성해왔다. 수많은 문화마다 의례와 규칙들이 광범위한 다양성을 드러내지만, 그들이 만들어낸 몸들은 같았고, 그들이 구축한 젠더들 역시 매우 유사했다. 오늘날은 몸이 사이보그적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젠더의 구축은 더욱 문화적이다. 미래에는 창조하며 살고 싶은 욕망과 죽음과 불임의 공포가 많은 다른 젠더를 만들어내고 충동질할 가능성이 있다. 

     
공학과 발명의 가치를 다른 무엇보다 높게 평가한다면, 그 이유는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생식활동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죽음이 그렇게 두렵다면, 그 이유는 신념이 죽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진다면, 그것은 남성성이 여전히 전쟁을 중심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젠더의 생산에서 성 재할당과 혁신으로 초점이 바뀌면서 자체적인 인공장구의 이중 논리, 즉 ‘공포와 흥분의 논리’를 지닌 새로운 변종의 미국식 몸 복합체로 이어졌다. 물론 남자들 사이에서는 조금 더 세속적인 감정들이 지배하겠지만, 특히 공포와 흥분이 수많은 성적인 경험을 설명한다. 하지만 만일 인공장구가 우리를 미래로 점점 더 빠르게 몰아간다면, 실제로 몸의 경계가 희미해질 것이며 새로운 몸들에서 새로운 젠더, 새로운 성이 만들어질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신체의 해부학적 구조가 그렇게 쉽게 다뤄질까? 물론 그렇다. 토머스 라커(Thomas Laqueur)가 독창적 역사서인 《섹스의 역사(Making Sex)》에서 지적한 대로, 해부학적 구조는 운명이 아니다. 그것은 이중성의 아포리아이다. 그는 연구를 통해 “남성과 여성 혹은 남성 혹은 여성이라는 안정적이고 고정된 성적 동종 이형 성의 근본적인 부정합성”을 발견했다. 
     
서구 역사의 상당 기간 오로지 하나의 성, 즉 남성만이 존재했으며, 여성은 단지 그 성의 변종일 뿐이었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양성의 상위규칙과 ‘생식기들이 성적 대립의 표시로서 중요하다’라는 생각이 서구 의학 천 년의 전통 안에 삽입된 것은 불과 엊그제 일이다.
     
미래의 섹스에 대한 믿을 수 없는 기술 도취적 환상들은 아서 크로커와 마릴루이즈 크로커가 에이즈라는 기호 하에서 확산시킨 소위 ‘냉소적인 섹스’ 혹은 ‘공포의 섹스’와 대조된다. 크로커 부부가 도취와 냉소처럼 상충하는 감정들을 전달하는 한 가지 방법은 현란하고 뛰어난 수사학적 신호들을 이용하는 것이다. 한 번 읽고 해독이 잘 안 된다고 걱정하지 마라. 복잡한 우리 현실과 충분한 관련성을 가지려면 그래야만 하는 법이다.
     
“결과는 냉소적인 섹스의 생산, 즉 몸이 오로지 그 자신의 부정만을 약속하는 허무주의 문화의 완벽한 기호로서의 탈 축적과 상실 그리고 희생이라는 이념의 현장으로서의 섹스 그 자체의 생산인 것이다. 이 문화에서는 성과 욕망 간의 예전 반사적인 관계를 세상의 종말을 위한 궁극적인 탈 육체 경험으로서의 기관 없는 성관계라는 유혹적인 전망을 통해 단숨에 날려버린다. 그리고 여기서는 몰락한 몸의 표면들이 빚어내는 공포가 정반대의 것, 즉 우리 해방의 역설적인 징후로서 파국적인 황홀경과 분비물 없는 섹스를 환영하는 것으로 즉각 환언된다.”

하지만 이것은 실제로 ‘우리 해방의 역설적인 징후’라기보다 역설적인 해방의 징후이다. 미래의 섹스는 틀림없이 파국의 공포와 체액 없는 성관계를 포함하겠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 많은 것을 제공할 수도 있다.
     
사이보그의 환상이란 과연 무엇인가? 다중도착(Polymorphous perversity)? 몸 무시하기? 많은 사람에게 그것은 단지 잃어버렸던 것을 복구하는 것에 불과하다. 1998년에 불었던 비아그라 열풍이 “무도회를 시작하라 하세요.” 그리고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응할 수 있어요.” 같은 슬로건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던 것처럼 말이다.
     
이것은 실제로 작가 로버트 안톤 윌슨(Robert A. Wilson)이 꿈꾼 메릴린 먼로와의 가상 성관계나 영화 <론머 맨>에서 아주 노골적으로 묘사된 최후의 사이버 합체들보다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하지만 모든 것은 각자 취향이다. 마침내 ‘퍼지무(FuzzyMoo)’라고 불리는 가상공간까지 존재하는데, 이곳에서는 모든 아바타가 꼭 껴안고 싶은 귀엽고 작은 동물들로, 저마다 이를테면, 햄스터를 갈망하는 여우들처럼 성적인 페티시들을 갖고 있다. 현재가 혼란스럽다면, 미래는 더욱더 그럴 것이다. 
   

  
생명 무한 확장론의 지도자인 나타샤 비타 모어(Natasha Vita More)는 이 점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다.

“오늘날 사회에는 양성애자들, 성전환자들, 동성애자들, 무성애자들 그리고 이성애자들이 존재한다. 곧 성거부자들(Negasexual), 자가성애자들(Solosexual), 테크노성애자들 (Technosexual), 후성애자들(Postsexual), 다중성애자들(Multisexual), 가상현실성애자들(VRsexyak), 혹은 20세기의 향수를 간직한 그저 평범한 구닥다리 성애자들도 존재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무지개 색깔만큼이나 많은 젠더들 혹은 꽃의 무늬만큼이나 많은 생식기를 갖게 될 가능성이 있다.”
   
모어는 성이 점차 철폐될 것이라고 신중하게 말한다. 하지만 음경은 퇴화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적어도 다음 몇십 년간은 그렇다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다중도착’은 유년기의 성보다는 어른의 미래에 더 잘 작용될 것 같다.
     
성 선택권의 확산에 맞서 금욕주의적인 반동이 있게 될 것이다. 일부 사람들에게는 성적인 쾌락만큼 무서운 것도 없다. 가장 열성적으로 동성애를 혐오하는 자들이 자신의 동성애적 욕망을 억압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들이 좋은 예이다. 과학자들이 이런 사람들의 음경에 작은 발기 측정장비들을 부착한 뒤, 벌거벗은 남자들의 사진 앞에서 그것이 저절로 고집스레 솟아오르는 모습을 관찰할 때,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할지 상상해보라. 
     
만약 이러한 약간의 자기인식도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가 있는 것이라면, 사이보그적인 섹스의 약속과 불안정화에 맞서는 반동은 매우 극단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결국,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억압된 성적 에너지가 파시즘의 동력이라고 주장했다. 분노하고 불만에 가득 찬 이들이 사이보그적인 노동의 불공평성 같은 문제에서 다른 배출구를 찾게 되길 희망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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