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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25. 2016

04. 돈을 벌려고 하지 말고 돈을 감지하라.

<천재의 생각법>


조지 소로스(George Soros),  소로스 펀드 매지니먼트 회장


소로스는 1930년 헝가리의 변호사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원래 슈바르츠(Scswartz)라는 성을 가진 유대인 집안이었는데 반유대주의의 광풍을 피해 1936년 그의 아버지가 소로스로 성을 바꿨다. 1944년 제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나치 독일이 헝가리를 점령했을 때 그는 만 14세도 안 된 소년이었다. 하지만 그때의 경험이 그의 인생을 뒤바꿔 놓았다. 
     
추방과 살해의 위협 속에서 그의 아버지는 먼저 가족의 신분을 바꿨다. 그리고 위조 신분증을 만들어 팔며 생명을 보존했다. 어려운 사람에게는 위조 신분증을 무료로 나눠주기도 했다. 그의 가족은 나치의 총탄을 무사히 피했다. 소련이 헝가리를 점령하여 나치의 지배에서 벗어나자 17세의 소로스는 영국으로 건너간다.
     
소로스는 영국의 런던정경대학에 들어가 공부를 시작하면서 철도역 짐꾼, 여행 상품 판매사원, 은행 수습사원 등을 통해 학비를 댔다. 식당에서 일하며 손님들이 남긴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기도 하는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는 경제학 외에 복수전공으로 철학을 공부하며 철학자를 꿈꿨다. 자신이 태어난 세계를 더욱 잘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1952년 대학을 졸업했지만, 인생의 슬럼프가 찾아왔다. 몇 년간 방황하다 뉴욕으로 건너가 겨우 금융계에 입문한다. 그러나 안착하지 못하고 몇몇 회사들을 전전하며 성공과 실패를 반복한다. 그러다 1969년, 소로스는 드디어 로스차일드 자본의 도움으로 ‘퀀텀 펀드’를 설립하여 독립한다. 이때부터 수십 년간 소로스는 국제 환투기의 일인자로 입지를 굳힌다. 혹자는 헤지펀드를 만든 사람조차 소로스만큼 운용을 잘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헤지펀드는 약세 통화, 기술주, 선물 등의 불확실한 침체 시장을 주로 공략하는 ‘고위험 고수익 투자’였다.     


영국 파운드화를 공격하여 10억 달러를 벌다.

“파운드화는 곧 폭락할 것이다.”
   
1992년 9월, 헤지펀드 대부의 한마디에 금융시장이 출렁거렸다. 영국 총리가 곧바로 반박했다. 소로스의 파운드화 평가 절하 발언은 영국의 장래에 대한 배신이라고 비난했다. 이어서 ‘파운드화는 굳건하다.’는 메시지를 전 세계에 알렸다. 하지만 1992년 9월 16일 수요일, 소로스의 예언대로 파운드화는 한계선까지 폭락한다.
     
유럽은 당시 단일 통화권 구축을 위해 유럽통화제도를 만들었다. 그리고 과도기적으로 회원국 간의 환율을 고정시켰다. 그러나 통일 독일이 어려운 자국 상황으로 초고금리 정책을 펴자 회원국 간에 문제가 발생했다. 독일 상황에 맞추어 자국 금리도 올려야 하는 형편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나 금리 인상은 회원국들을 파산 위기에 빠지게 했다.
     
몇몇 국가는 통화제도 탈퇴를 선언했다. 바로 이때 영국이 파운드화 방어를 선언한 것이다. 소로스는 영국의 허세를 간파하고 즉시 공격을 개시했다. 100억 달러나 되는 현금을 투입했다. 결국, 영국은 파산 위기에 직면하고, 백기를 들고 탈퇴를 선언한다. 이를 ‘검은 수요일 사건’이라고 한다. 소로스가 이 한 달 만에 벌어들인 돈은 약 10억 달러였다. 그해 소로스 펀드의 운용수익률은 68.6%를 기록했다.      


연평균 30%의 수익률을 올리는 퀀텀펀드

조지 소로스가 수익률을 내기 위해 주로 투자하는 분야는 위험 부담이 높은 금융선물, 옵션거래로 이루어지고 있다. 순식간에 몇 배의 이익을 거머쥘 수도 있는 한편 실패하면 원금을 한꺼번에 날려버릴 수도 있는 투자 방식이다. 소로스가 다른 투자가와 다른 점은 여기에 있다. 위험이 많은 분야가 어떤 것인가를 알아보고 그런 불확실한 틈을 이용해 자신의 영역을 넓혔다는 점이다. 
     
1992년의 검은 수요일과 1995년 도쿄 외환시장 공습으로 큰 수익을 낼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국가를 대상으로 하는 위험한 판이었지만 그 속의 불확실한 요소에 겁먹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약점으로 보았다. 소로스의 오랜 측근이자 펀드 매니저인 스탠리 드루켄밀러는 “소로스는 어지간한 손해는 개의치 않고 항상 새로운 수익 창출을 위한 전략을 짜낸다.”고 말한다.
     
소로스는 퀀텀 펀드를 통해 최고의 수익률을 올려 전설적인 투자가의 반열에 올랐다. 현재도 퀀텀펀드는 연평균 30%의 수익률을 자랑한다. 소로스는 투자의 원칙으로 삼는 기본적인 원리를 가지고 있다. ‘재귀성의 원리’가 그것이다. 재귀성의 원리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주식시장에는 ‘현실’과 ‘편견’이 있다. 현실은 기업의 건전성이나 경기 전망 같은 것을 말한다. 편견은 꼭 그렇지 않은 것을 꼭 그렇다고 대다수 사람이 믿어버리는 것이다. 예를 들면 ‘A는 호재’라고 하면 꼭 호재로 작용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호재로 믿어버리는 그런 경우이다. A를 호재라고 생각하는 편견에 의해 투자가 일어나서 주식이 올라가기 시작하면 한동안 오류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한다. 대부분 그것이 옳다고 믿으므로 주가가 계속 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과 편견은 점점 틈이 벌어지고 결국 더는 버티지 못하는 구간까지 가고 만다. 기대되는 시장의 규모보다 훨씬 과대평가된 상태에서 멈춘다. 거품이다. 그 지점에서 시장은 바로 뒤집혀 버린다. 이것이 바로 ‘재귀성’이다.
     
소로스는 이 불확실한 편견을 이용한다. 달아오를 무렵 산 주식을 뒤집히기 직전 팔아치우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지점을 알기는 쉽지 않다. 대세가 바뀌는 전환점을 파악하는 것이 소로스의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소로스가 노리는 것은 불확실성의 힘이다.      


돈의 생리를 파악하고 길들이다.

위와 같은 요인들이 소로스가 금융시장에서 독보적으로 앞서 나갈 수 있었던 이유다. 그는 남들과는 다른 관점으로 돈의 생리를 파악했다. 그래서 돈을 길들였다. 만약 조지 소로스가 돈을 좇기만 했다면 절대로 위험을 무릅쓰고 헤지펀드에 뛰어들 수 없었을 것이다.
     
위험 속으로 뛰어드는 것같이 보이지만 그 생리를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은 돈을 사냥하러 가는 것과 같았다. 그는 일단 판단이 서면 10분, 20분 만에 일 처리를 끝냈다. 소로스의 세밀한 분석력과 번개 같은 판단력 그리고 그보다 빠른 행동력, 무엇보다 웬만한 위험으로는 망설이지 않는 대담한 사고방식은 타이밍이 생명인 투자업계에서 그를 일인자로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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