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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30. 2016

10. 폭발물이 인류를 재건한다. (마지막 회)

<인류 최후 생존자를 위한 지식>

종말 후에 최대한 오랫동안 평화로운 공존을 이어가려면, 폭발물은 문명의 재건을 위한 안내서에서 생략해야 하는 테크놀로지라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폭약이 전쟁광의 수단으로 돌변할 가능성이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리고 폭발물에 관련된 화학이 대포와 총기류에서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폭발을 억제하고 유도하는 데 필요한 야금학과 나란히 발달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재건을 시도하는 문명에서는 평화롭게 폭발물을 사용하는 게 무척 중요하다. 사냥용 엽총을 위한 탄약을 제조하고, 채석과 채굴을 위해 바위를 깨뜨려야 할 때, 또 굴이나 운하를 팔 때도 폭발물은 엄청난 도움을 줄 수 있다. 어쩌면 종말 후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위험하게 허물어진 건물을 아예 무너뜨리고 쓸 만한 건축자재를 재활용하고, 문명이 다시 발달하기 위한 땅을 확보하기 위해 오랫동안 방치된 구역을 정비하는 행위일 것이다. 
     
여하튼 과학적 지식 자체는 중립적이다. 요컨대 과학적 지식이 어떤 목적에 적용되느냐에 따라 선악이 결정된다. 귀청을 때리고 암벽을 산산조각내며 건물을 허물어뜨리는 파동인 폭발을 일으키려면, 좁은 공간에서 공기를 극단적으로 찰나에 압축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수준에 이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일진광풍 같은 화학반응으로 고체 물질을 고압가스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럼, 고압가스가 훨씬 넓은 공간을 차지하며 반작용점에서부터 급속히 외부로 확장된다. 예를 들어 설명하면, 요즘의 라이플총에는 탄환 뒤쪽에 대략 각설탕 정도의 화약이 적재되어 있다. 그런데 방아쇠가 당겨지면 거의 순간적으로 화약이 반응하며 파티용 풍선 크기만 한 가스 덩어리를 만들어낸다. 그 가스가 좁디좁은 총열에서 순식간에 확장하려고 해서 거의 소리의 속도로 탄환을 밀어내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고체 연료를 폭약으로 만드는 방법은 단순한 편이다. 연료를 미세한 가루로 빻아 공기가 더 많은 표면에 접촉해서 연소하도록 가속하면 된다. 실제로 석탄 가루와 밀가루는 무섭게 불에 탄다. (따라서 커스터드 공장에서도 폭발 사건이 심심찮게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공기 중에서 산소를 공급받을 필요성 자체를 제거하고, 애초부터 연료 옆에 충분한 산소 원자를 공급해서 연소가 빨리 되도록 하는 방법이 훨씬 더 낫다. 일반적으로 산소 원자를 공급하는 화학물질 ―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다른 화학물질들로부터 전자를 받아들이려고 학수고대하는 화학물질 ― 은 산화제(Oxidizing agent, oxidant)라고 불린다.
     
얄궂게도 인류의 역사에서 최초의 폭발물은 불로장생의 묘약을 찾던 9세기 중국의 화학자들에 의해 탄생한 흑색 화약(Black powder)이었다. 화약의 주원료는 목탄 ― 연료 혹은 환원제 ― 과 요즘에는 질산칼륨이라 불리는 초석 ― 산화제 ― 을 빻아 혼합한 것이다. 이 혼합물에 노란 원소 황을 약간 뿌리면, 완성품의 반발력이 달라진다. 다시 말하면, 훨씬 큰 에너지가 충격적인 폭발을 위해 남겨진다는 뜻이다. 최상의 화약을 제조하는 비결은 질산칼륨과 황과 숯의 비율을 3:3:6의 비율로 섞어 언제든 폭발할 수 있는 잠재된 에너지로 가득한 화합물을 만드는 것이다.
     
화약의 한 성분인 질산염(Nitrate)에는 약간의 화학적 조작이 필요하다. 역사적으로 폭발물과 비료를 만드는 데 필요하던 질산염의 공급원은 무척 지저분했다. 잘 썩은 두엄더미였다. 두엄더미에 숨어있는 세균들이 질소를 포함한 분자들을 질산염으로 전환한다. 따라서 유사한 속성을 지닌 화합물들이 물에 녹는점은 제각각이란 사실을 이용하면 질산염을 추출할 수 있다. 
     
모든 질산염은 물에 쉽게 녹지만 수산화물은 물에 녹지 않는 화합물이 적지 않다. 따라서 두엄더미를 몇 양동이의 석회수로 흠뻑 적시면, 대부분 무기물은 불용성 수산화물로서 두엄 내에 머물지만, 칼슘은 질산이온을 획득해서 용액의 형태로 배출된다. 이 용액을 거둬서 탄산칼륨을 넣고 섞는다. 칼륨과 칼슘은 서로 짝을 교환해서 탄산칼슘과 질산칼륨을 형성한다. 
     
탄산칼슘은 석회석과 백악의 주성분을 이루는 화합물로 물에 녹지 않지만, 질산칼륨은 물에 녹는다. (도버의 새하얀 백악 절벽은 매서운 파도에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하얀 백악 침전물을 걸러낸 후에 수분을 증발시키면 질산칼륨 결정체를 얻을 수 있다. 질산칼륨의 분리가 성공했는지 확인하려면, 길쭉한 종이를 용액에 푹 적신 후 말린다. 질산칼륨이 그 용액에 녹아있었다면 종이가 쉬익 하는 소리와 함께 불꽃을 일으키며 탄다.
     
질산칼륨을 추출하는 화학적 방식은 그다지 복잡하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문명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질산칼륨에 대한 수요가 증가할 때 원료로 사용할 질산염의 공급원을 충분히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질산염이 함유된 광물이 묻힌 광상은 남아메리카 칠레 북부의 아타카마 사막처럼 매우 건조한 환경에만 존재한다. (질산칼륨이 쉽게 용해되어 쉽게 씻겨 내려가기 때문이다) 바닷새의 배설물에도 질산염이 풍부하다. 질산염이 비료와 폭발물을 제조하는 데 사용된다는 것은, 이미 19세기 말부터 질산염이 중요한 원자재였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바닷새의 배설물을 차지하려고 코딱지만 한 척박한 섬을 두고 전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화약이 연료와 환원제 가루를 적절하게 혼합해서 연소의 속도를 가속하지만, 훨씬 더 격렬한 반응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더욱 강력한 폭발을 유도하는 훨씬 나은 방법이 있다. 연료와 산화제를 결합해서 같은 분자로 만드는 방법이다. 질산과 황산의 혼합액을 유기물의 분자와 반응시키면, 유기물의 분자가 산화되며 질산염계 물질이 연료의 분자에 더해진다. 예컨대 셀룰로스를 질산으로 산화시키면 인화성이 높은 나이트로셀룰로스가 만들어진다. 따라서 식물 셀룰로스 섬유가 주원료인 종이나 면직물을 질산으로 산화시켜 마술에서 주로 사용되는 플래시 페이퍼나 솜화약을 만들 수 있다. 
     
화약보다 강력한 또 하나의 폭발물은 나이트로글리세린이다. 기름기를 띤 맑은 액체인 나이트로글리세린은 글리세린에 질산염을 반응시켜 얻지만, 위험할 정도로 불안정해서 조금만 부주의하면 엄청난 비극을 초래할 수도 있다. 
    

알프레드 노벨(Alfred Nobel)


 
알프레드 노벨(Alfred Nobel, 1833년~1896년)이 나이트로글리세린의 파괴적인 위험성을 안정시키는 해결책을 찾아냈다. 충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나이트로글리세린을 톱밥이나 점토 같은 흡수성 물질 뭉치에 충분히 적시는 방법으로,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다이너마이트였다.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로 벌어들인 재산을 투자해서, 과학과 문학과 평화 등의 분야에서 이바지한 사람들에게 보상하는 유명한 상을 창설했다.)
     
산화제로서 질산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이 부분이 강력한 폭발물을 만들어내는 열쇠를 쥐고 있다. 한편 질산은 사진에서도 빛을 포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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