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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Nov 30. 2016

10. 유대인은 신과도 계약한다. (마지막 회)

<천재의 생각법>

역사 시대의 서막, 성서의 무대, 메소포타미아

인류 최초의 문명이 탄생한 곳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 메소포타미아다. 농사와 상업, 행정에 관한 일들은 문자로 기록되었다. 이 지역에서 발흥한 수메르 문명에서 바퀴, 상·하수도, 야금술, 달력, 군대, 달력, 계획도시 등 수많은 ‘최초’가 탄생했다. 20세기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고대 문명이 이렇게까지 발달했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유적이 발굴되고 수메르 문자가 속속 발견되기 시작했다. 인류 최초의 문자로 선사 시대와 역사 시대를 가르는 문을 연 것이다. 여러 지역의 민족들과 각 특산품이 몰려들고 문학과 과학, 상업 등이 발달했던 문명의 발흥지에서 일찍이 ‘계약’이라는 수단이 등장한 것은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점토판에 새겨진 세계 최초의 상거래 계약서도 이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또한, 이 지역은 바로 성서의 무대이다. 믿음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고향은 갈대아 우르였다. 갈대아 우르는 오늘날 유적지만 남아 있지만, 수메르 최강의 도시라고 알려져 있다. 아버지 데라는 큰아들 아브람(아브라함) 부부와 손자 롯을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가나안을 향해 가다가 하란에 정착해 살고 있었다. 하란은 ‘길·통로·대상(隊商)’이라는 의미로 바빌로니아-소아시아-이집트를 연결하는 통상 중심지였다. 
     
아브람(아브라함)의 아버지는 우상을 만들어 파는 상인이었는데, 아브람의 눈에는 아버지가 만든 우상을 사람들이 신으로 떠받드는 것이 이상해 보였다. 다음은 랍비 히야(Hiyya)가 쓴 탈무드의 한 대목이다.
     
우상을 만들어 팔던 데라는 아들 아브람에게 가게를 맡기고 외출을 했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우상이 다 부서져 있고 아브람은 가장 큰 우상의 손에 도끼를 쥐여주고 있었다.
“너는 어떻게 내가 만들어 놓은 우상을 이렇게 다 부숴버릴 수가 있냐?” 아버지가 화가 나서 말했다.
그러나 아브람은 “내가 부순 게 아니에요. 우상들이 배가 고프다고 해서 밥을 줬는데 그 가장 큰 우상이 혼자 먹겠다고 도끼로 다 부숴 버린 거예요.”라고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했다.
“야, 이놈아! 우상이 생명도 없는데 어떻게 도끼를 들고 다 부술 수가 있겠냐?”
“아버지 말씀이 맞아요. 우상은 생명도 없어요. 그러면 생명도 없는 우상이 어떻게 사람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아브람은 생명이 없는 우상은 결코 신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신은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하늘을 보던 아브람은 자연과 천체의 질서를 발견하게 되고 그것을 관장하는 어떤 초월적인 능력을 갖춘 존재를 깨닫게 되었다. 유세푸스가 쓴 『유대고대사』에는 이와 관련한 아브라함의 독백이 나온다.
     
“천체가 우리의 유익에 기여하는 것이 있다면 그들이 모두 천체를 주관하시는 창조주의 명령에 순종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_ 요세푸스 『요세푸스』
   
이것이 어떤 신적 존재와의 교감이었을까? 아브람은 인간으로서 최초로 천지를 창조한 야훼 하느님과 이야기하게 된다.     

하느님과 대등하게 계약한 아브라함

“네 고향과 친척과 아비의 집을 떠나 내가 장차 보여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 너에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떨치게 하리라. 네 이름은 남에게 복을 끼쳐주는 이름이 될 것이다. 너에게 복을 비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내릴 것이며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저주를 내리리라. 세상 사람들이 네 덕을 입을 것이다.” _ 창세기 12:1~3
     
성경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한마디로 길을 떠난다. 그의 나이 75세 때이다. 당시 하란은 굉장히 발달한 도시였기 때문에 모든 식솔을 이끌고 떠난다는 결정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한마디에 어떤 반발도 없이 그대로 길을 떠났다.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와 조카 롯 등의 대규모 식솔을 이끌고 우르에서부터는 900km나 떨어진 가나안에 도착했다. 가나안 사람들은 이때부터 이들을 히브리(헤브라이)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유프라테스 강 건너에서 온 사람들’이란 뜻이다.
     
노아의 자손이며 유대인들이 시조로 여기는 아브라함은 99세에 신을 상대로 계약하고 대가를 받았다. “내가 너와 계약을 맺는다.”로 시작하는 아브라함과 하느님 사이의 계약 내용은 이후 유대인 신앙의 모태가 된다. 아브라함은 이 계약으로 아브람이라는 이름을 버리고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받는다. ‘아브’는 아버지라는 뜻이고 ‘함’은 민족이라는 의미이다. 아브라함은 이후 계약의 내용에 따라 ‘민족의 아버지’가 된다.
     
그는 가나안 땅을 받고 자손들이 번성하여 민족을 이루고 왕이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는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하느님께 한 약속 중 대표적인 것은 ‘할례’였다. 할례는 남성의 포피를 베는 것으로 하느님은 “그러면 내 계약이 영원한 계약으로서 너희 몸에 새겨질 것이다.”라며 남자가 태어나면 8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을 말했다. 아브라함은 계약의 말 이후 즉시 식솔 중 남자들에게 할례를 실시했다.     


신에게서 받은 계약 정신은 사라지지 않는다.

물론 아브라함은 신하고만 계약을 했던 것은 아니다. 그의 아내 사라는 127세에 예루살렘 남쪽의 헤브론 땅에서 죽었다. 하느님께 가나안을 받았다고는 했지만, 그때까지도 아브라함은 가나안에서 이방인이었다. 그는 소유한 땅이 없었기 때문에 사라를 장사지낼 땅이 없었다. 아브라함은 헤브론 사람들에게 장사지를 구하러 다니다가 땅을 거저 주겠다는 제안을 받는다. 아브라함은 그때 가나안 사람들에게 귀인 대접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상 제의를 두 번, 세 번 한사코 거절하여 땅값을 전부 치른 뒤 그는 아내를 장사지냈다. 아브라함이 땅을 사는 데 든 돈은 은 400세겔로, 지금의 단위로 환산하면 대략 은 4.5kg이다. 아브라함은 아내가 죽어 큰 슬픔에 빠져있는 상태에서도 공짜로 받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아브라함에게 ‘주는 것이 있어야 받는 것이 있고, 받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준다’는 것은 당연한 명제였다.
     
유대인들은 스스로 하느님과 계약을 맺은 민족이라고 여긴다. 그들이 믿는 성서의 내용도 그들과 하느님이 맺은 계약의 연속이다. 유대인의 일상 또한 하느님과의 계약을 기본으로 그 아래에서 파생된 수많은 율법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유대인은 ‘계약의 민족’으로 불리고 있다. 계약의 도시에서 태어나 신과도 계약을 맺은 아브라함의 사고방식은 2천 년 이상의 기나긴 역사를 통해 유대인의 정신에 뿌리 깊게 응축됐다.
     
그 옛날 신과도 계약했던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둔 유대인이, 그 정신을 이어 같은 인간을 상대로 하여 언제나 계약하며 살아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계약에 기반을 둔 아브라함의 정신대로, 또한 계약의 민족이라는 별명처럼 유대인은 일상의 모든 일에서 철저히 계약을 통해 점검하고 진행한다. 유대인이 계약에 엄격한 것은 아브라함으로부터 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유대인의 전통이자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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