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이 나서 2>
이젠 무슨 일만 일어나면 이것저것 싹싹 뒤져 바닥까지 다 긁어내고, 얘가 이랬어요, 쟤가 저랬어요, 일러주고 손가락질하고 그걸 가지고 또 판단하고 비판하고 정리해버리는구나. 이런 시대에 살면서 나도 뭔가 조심해야겠다 같은 생각은 절대로 안 들고, 불친절할 뿐 아니라 이것도 모르고 저것도 모르겠다는 글이나 쓰고 있어도 괜찮을까 하는 생각도 아주 안 드는 건 아니지만 어쩔 수 없고, 아무튼 은유도 없고 행간도 없으니 시적이지도 철학적이지도 않은 세상이로구나. 어차피 사는 거 시시하지 않게 살고 싶은 와중에, 가끔 찾아오는 알러지인지 아빠한테 옮은 감기인지 알쏭달쏭한 ‘기운’이 있어서, 알러지 약과 비타민C와 아스피린을 몽땅 먹었다. 이 ‘기운’이 사라진다면 알러지인지 감기인지 영영 모르게 될 테지. 감기에 걸리면 아, 감기였구나, 알게 될 테고. 세상이 다 이런 식이지. 영영 모르거나 된통 앓아야 알게 되거나. 그러고 보니 인간의 육체는 의외로 시적이고 철학적이야. 은유와 행간은 물론이고 반전과 위트까지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