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우리말 백과사전>
2008년 2월 8일 자 《조선일보》에 연합뉴스 기사를 인용하여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미 고속도로서 차 2,000여 대 반나절 눈길 갇혀”
그런데 원래 연합뉴스 기사 제목은 “미 위스콘신 주 고속도로서 차량 2,000대 눈길에 갇혀”라고 되어 있는 거로 보아 《조선일보》 편집자가 ‘반나절’이란 표현을 덧붙여 쓴 것 같다. 그렇다면 차량 2,000대는 몇 시간 동안이나 눈길에 갇혀 있었던 것일까? 답은 연합뉴스 기사에 바로 나온다.
“(연합뉴스) 겨울 폭풍이 미국 중서부를 강타한 가운데 위스콘신 주의 고속도로에서 2,000여 대의 차량이 12시간 이상 눈길에 발이 묶이는 사태가 발생했다. 7일(현지시각) 위스콘신 주 《밀워키 저널 센티넬》의 보도에 따르면 전날 오후부터 90번 주간 고속도로의 매디슨에서 제인즈빌까지의 19마일 구간에서 차들이 밀리기 시작해 밤 11시에는 모두 2,053대의 차량이 고속도로에 갇혀 꼼짝 못 하는 신세가 됐다.”
결국 《조선일보》에 실린 ‘반나절’이란 12시간을 뜻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럼 한나절은 24시간이란 말이 된다. 물론 《조선일보》 편집자의 실수다. 이런 실수는 너무 잦아서 그 예를 다 들 수도 없다.
《주간조선》 1989호(2008년 1월 21일)에 실린 “기마민족의 기상 세계에 알려야죠”라는 기사를 또 보자.
“…… TV 사극을 보면 가끔 어이없을 때가 있는데 주인공이 서양 말을 타고 달립니다. 서양 말은 오래 걷지 못해요. 그런데 조랑말은 힘이 좋아서 산도 잘 오르고 반나절 넘게 달려도 거뜬합니다.”
여기서 반나절이란 몇 시간일까? 조랑말은 하루에 최대 200㎞에서 300㎞를 달린다. 빨리 달리면 시속 50㎞라고 하니, 이 거리는 대략 4시간에서 6시간 걸린다. 최고 속도를 내지 않으면 그보다 더 걸린다. 아마도 보통 속도로 달리면 6시간에서 8시간 달려야 할 거리다. 그렇다면 6시간이나 8시간은 반나절이 될 수 없다. 그래서 이 기사도 틀렸다. 그는 아마도 반나절이 3시간이나 4시간인 줄 알았던 모양이다.
2008년 2월 6일 자 《서울신문》 기사를 하나 더 보자.
김 부총리가 사의를 표명한 지 반나절도 채 안 돼 노무현 대통령은 사표를 전격 수리했다. 여기서는 반나절이 몇 시간일까? 답은 바로 아래 기사에 나오는데 신통찮다.
“김 부총리는 4일 오후 5시 로스쿨 예비인가 최종안을 발표한 직후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의를 밝혔다. 이어 부총리 비서실장이 이날 저녁 사표를 청와대에 전달했다. 노 대통령은 다음 날인 5일 오전 사표를 곧바로 수리했다.”
사표를 낸 시각은 4일 오후 5시고, 수리된 시각은 5일 오전이다. 대통령이 출근하자마자 오전 9시에 수리를 했다 치면 15시간이 걸렸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반나절은 15시간인가? 물론 틀렸다. 그뿐만 아니라 나절이라는 의미조차 틀리게 썼다. 나절은 낮 시간을 계량하는 시간 단위이지 밤 시간을 계량하는 단위가 아니다. 그러니 이 기자는 반나절이 무슨 뜻인지, 나절이 무슨 뜻인지 아무것도 모르고 엉망으로 쓴 것이다. 왜 이렇게 틀리게 쓰는 걸까?
이제 정확한 뜻을 알아보자. 하루는 낮과 밤으로 되어 있다. 밤은 쉬거나 잠을 자는 시간이기 때문에 1경, 2경, 3경과 같이 옛날식 구분법이 있었고, 오늘날처럼 24시간으로 시각을 구분하면 생활하는 데 별 지장이 없다. 하지만 낮은 점심을 기준으로 오전의 낮이 있고, 오후의 낮이 따로 있다. 인간이 가장 활동을 많이 하는 시간대이므로 구분이 필요하다. 그래서 낮 시간을 ‘나절’로 갈라 둘로 구분했다. 그러니 한나절은 하룻낮의 절반을 가리킨다.
절반을 가르는 기준은 정오다. 오시(11시 30분에서 1시 30분까지)의 중간이므로 12시 30분이 되겠지만, 현대적인 의미로는 12시를 기준으로 삼는다. 그래서 오전은 12시까지이고, 12시 이후는 오후가 된다. 오전 중 해가 떠 있는 시간이 한나절이 되고, 오후 중 해가 떠 있는 시간이 또 한나절이 되어 하룻낮은 두 나절이 된다. 오전, 오후란 어휘가 인간이 활동할 수 없는 야간까지 포함하고 있으므로 실제 활동 가능한 시간만 따지자는 의미에서 생긴 어휘가 나절이다.
2008년 하지인 6월 22일, 서울특별시 기상청 지역을 기준으로 보면 일출 시각은 05시 10분, 일몰 시각은 19시 55분이다. 그러면 오전 한나절은 6시간 50분이고, 오후 한나절은 7시간 55분이다. 2008년 동지인 12월 22일, 서울특별시 기상청 지역을 기준으로 보면 일출 시각은 07시 42분, 일몰 시각은 17시 17분이다. 그러면 오전 한나절은 4시간 18분이고, 오후 한나절은 5시간 17분이다. 이렇게 볼 때 가장 긴 한나절은 7시간 55분이고, 가장 짧은 한나절은 4시간 18분이다.
가끔 사전을 잘 보지 않는 용감한 방송인이나 신문기자들이 뜻도 모르고 ‘반나절’이란 말을 많이 쓰는데, 그들은 대부분 한나절을 그렇게 표현한다. 하루에 두 나절이 있다는 걸 모르기 때문이다. 반나절을 자를 수 없는 건 아니지만, 정확하게 따지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오전 나절과 오후 나절이 다르고, 위도와 경도에 따라 다르고, 철에 따라 시간의 양이 달라지기 때문에 딱히 기준을 잡을 수가 없다. 대략 한나절의 절반이니 굳이 따져보자면 길 때는 4시간 가까이 되고, 짧을 때는 2시간 조금 넘는 정도다.
그러므로 이렇게 불분명한 시간 개념을 굳이 쓸 이유가 없다. 그냥 12시 정오를 기준으로 아침나절이나 오전나절, 저녁나절이나 오후나절이라고 하면 된다. 그래서 하룻낮은 두 나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