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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an 04. 2017

01. 메르스 비정규직

<어떤 경제를 만들 것인가>

모든 문제는 ‘일자리’로 통한다. 모든 문제의 해법도 ‘일자리’에서 나온다. 일자리에서 비롯된 문제는 일자리에서 풀어가야 한다. 청년들에게 일자리가 있어야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게 된다. 저출산 문제도 상당 부분은 청년 일자리가 부족하고, 그러다 보니 취업을 늦게 하고, 결혼이 늦어지고, 출산이 늦어진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50대와 60대가 가장 절박하게 느끼는 노후준비 부족과 노후 불안도 결국 정규직 일자리에서 50대 초반이면 물러나야 하는 우리 사회의 기형적 일자리 구조에서 출발한다. 소득 불평등의 문제 역시 일자리가 부족하다는 점, 일자리 중에서 부가가치가 낮은 일자리가 많다는 점, 일자리의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점, 일자리 간의 임금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는 점 등에서 비롯된다. 
     
물론, 사후적으로 정부가 누진적인 소득세와 재산세 구조를 통해 빈부 격차를 줄이고, 복지 지출을 늘림으로써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등 불평 등을 줄일 수는 있다. 하지만, 원천적으로 일자리의 구조 자체가 불평등을 늘리지 않는 방식으로 존재하고 재설계되고 작동된다면 정부가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기울여야 하는 사후 작업이 좀 더 수월해질 것이다. 결국, 불안한 일자리는 불안한 노후와 불평등한 소득을 확대 재생산하는 핵심 연결고리다. 




[장면 1]
     
미국 미네소타 주 블레인 고등학교의 졸업앨범에 장애인 안내견 두 마리의 사진이 실렸다. 이름이 다코타(Dakota)와 카멜(Carmel)인 이 안내견들은 주로 청각 장애 교사의 이동과 수업을 도왔고, 특수 교육 시간에도 참여하여 학생들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졸업앨범을 제작한 학교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학생과 교사를 포함해 모두가 학교의 구성원이며 수업에 도움을 준 안내견들을 포함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장면 2]
     
삼성서울병원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 방지를 위한 비상조치에서 비정규 직원이 제외되는 바람에 방역에 구멍이 뚫렸다. 이 137번 메르스 환자는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환자 이송을 담당하는 용역업체 직원이었다. 이 환자는 발병 이후에도 10일간 지하철로 출퇴근하고, 아들의 치료를 위해 다른 병원 응급실을 방문하는 등 230여 명과 접촉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2가지 장면을 비교해보면, 미국의 장애인 안내견은 학교 구성원에 포함되었고, 우리나라의 응급환자 이송요원은 비정규직으로서 병원 구성원에서 제외되었다. 덧셈하고 포함하는 포용의 경제, 포용적 자본주의로 나아가야 하는데, 우리는 뺄셈하고 제외하는 배제의 경제, 배타적 자본주의로 나아가는 것 같아 걱정이다.

수많은 배제와 배타의 사례 중에서 일자리 및 소득과 직결되는 것이 비정규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비정규직* 근로자는 2015년 3월 기준 601만2천 명으로 전체 임금근로자의 32.0%를 차지하고 있다. 국제비교를 하기 위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기준을 적용하면, 우리나라의 임시직 근로자(temporary workers) 비중은 2015년 8월 기준으로 22.3%로 내려간다. 2015년 OECD 평균 11.4%에 비하면 거의 2배에 달한다. 반면, 독일 13.1%, 일본 7.5%, 덴마크 8.6%, 영국 6.2% 등 주요 선진국의 임시직 비율은 우리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더 큰 문제는 임시직에서 정규직으로 올라가는 비율도 낮다는 점이다. OECD가 발표한 ‘2013년 임시직 이동 성의 국가별 비교’에 따르면 한국의 임시직 중 근무한 지 3년 뒤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율은 22.4%에 그쳐 회원국 평균인 53.8%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 데이터가 주는 메시지는 우리나라에서 임시직이 굳어지는 경우가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더 많다는 것으로서 사회적 역동성이 크게 떨어짐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만 사용하는 ‘비정규직’이라는 용어에는 ‘일용직’, ‘계약직’, ‘파견직’ 등 이 포함되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국가 간 비교를 위해 사용하는 ‘임시직 (temporary)’이라는 용어에는 ‘일용직’, ‘유기 계약직’, ‘시간제 근무자’ 등이 포함되고 ‘파견회사’ 직원은 포함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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