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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an 06. 2017

03. 한참 기울어진 운동장

<어떤 경제를 만들 것인가>

2018년 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굴 러시아 월드컵 축구의 아시아 최종 예선이 시작됐다. 중국과의 첫 게임에서 3대 2로 아슬아슬하게 이겼다. 일방적인 게임은 재미가 없다. 엇비슷해야 보는 재미가 있다. 스포츠가 팬들을 끌어들이는 힘은 공정한 게임의 룰에 있다. 규칙 자체가 불공정하거나 심판이 한쪽 편을 든다면 게임의 승부는 뻔하다. 예를 들어 운동장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다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공격하는 팀은 힘들이지 않고 골을 넣게 되고 수비하기도 너무 쉽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전 세계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 논의가 거세다. 세계 자본주의의 메카라고 불리는 뉴욕의 월가를 점령하자는 시위가 오랫동안 지속하기도 했다. 2014년에 피케티가 쓴 《21세기 자본》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는데, 그 배경에는 세계적으로 심화하고 있는 ‘불평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2016년 여름 국회 입법조사처에서 낸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상위 10%의 소득이 전체 소득의 45%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소득집중도가 미국(48%)에 이어 선진국 가운데 두 번째로 높다는 것이다. 일본(41%)과 영국(39%)보다 높은 것은 물론 프랑스(32%)와 호주(31%)보다는 한참 더 높다. 더 심각한 것은 소득집중도가 1995년 29%에서 2012년 45%로 급속히 악화했다는 점이다. 1998년의 IMF 외환위기와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가 분배 구조 악화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는 지적이다.
     
경제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은 왜 문제가 되나? 스티글리츠 교수에 따르면, 25년 전 미국 CEO의 보수는 일반 근로자의 30배 정도였지만, 현재는 200배를 넘었다고 한다. 이처럼 심각한 ‘불평등의 대가’는 막대하다. 사회 통합력을 저해하고 사회갈등을 심화시키면서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함은 물론이고 경제적으로도 문제가 생긴다. 공교육을 비롯한 공공 투자가 감소하고 경제의 이동성이 하락하면서, 생산성과 효율성은 물론 궁극적으로는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게 된다. 공정한 승부 의식, 기회균등 의식, 공동체 의식 등이 사라지는 것은 물론이다.
     
격차가 자꾸 커지고 있다면 정부의 적절한 개입이 필요하다. 국민이 느끼기에 그 격차가 공정하지 못하다면 ‘게임의 룰’을 정비해야 한다. 그것이 정부의 존재 이유다. 지난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전후하여 보편적 복지와 무상복지를 둘러싼 여야 간의 공약 경쟁이 뜨거웠다. 여야를 막론하고 모든 후보가 복지와 경제 민주화를 공약했다. 무상의료, 반값등록금, 무상보육 등의 시혜성 공약은 듣기에 참 달콤하다. 정부의 역할 강화를 주문한 것이다. 그런데, 정부의 가장 중요한 정책수단, 즉 예산은 충분한가? 복지에 들어갈 돈, 즉 세금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해보면 우리나라 복지 수준이 충분하다고 답변하는 사람은 10명 중 1명도 안 된다. 하지만 복지 서비스 강화를 위한 재원조달 방안 가운데 본인의 부담으로 돌아오는 세율을 인상하자고 말하는 응답자 역시 10명 중 1명도 안 된다. 대부분 국민이 복지 수준 향상을 원하고 다수가 무상복지 서비스에 찬성하지만, 정작 복지재원의 조달에서는 ‘나의 비용부담은 가장 적게 그리고 가장 나중에’ 하겠다는 ‘눔프(NOOMP, Not Out Of My Pocket)’의 모습을 드러낸다. 눔프는 님비의 사촌이다. 내가 사는 지역에 혐오시설의 입주를 반대하는 ‘님비’ 현상처럼 다른 사람이 먼저 세금을 부담하고 나는 맨 나중에 세금을 부담하겠다는 ‘눔프’ 현상 역시 얌체 같은 행동이다. 이처럼 복지에 대한 재원부담을 회피하려는 ‘눔프’ 현상이 발견되는 배경에는 낮은 복지 수준과 더불어 정부에 대한 낮은 신뢰도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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