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경제를 만들 것인가>
빅토르 위고의 소설 《웃는 남자》는 슬프다. 《레미제라블》만큼이나 가슴 아프고 감동적이다. 겉으로는 웃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는 남자 ‘괭플랜’에 관한 이야기다. 장사익의 노래 ‘찔레꽃’도 슬프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는 웃고 있다. 슬픈 노래를 부르며 겉으로는 울고 있지만 속으로는 웃고 있다는 얘기다. 노래 부르는 게 행복해서다.
장사익은 늦깎이 소리꾼이다. 60대 중반을 넘겨 칠순을 바라보고 있지만, 가수로 데뷔한 지는 20년밖에 되지 않았다. 몇 년 전 예술의 전당에서 장사익의 ‘찔레꽃’ 공연을 본 적이 있다. 라디오와 TV, CD로 들었던 노래와는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무대와 객석의 모든 공간을 빈틈없이 메워나가는 그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가슴 속에 오래 남아 있었다. 1995년에 그가 작사 작곡하고 노래까지 부른 ‘찔레꽃’은 가사와 노래가 아주 단순하다. 기교가 없다.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것 같다. 하지만 불가능하다. 장사익의 느낌을 살릴 수가 없다. 그의 노래는 들으면 들을수록 가슴 한구석이 찌르르 아파져 온다.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이 부분에서 대부분 관객은 울게 된다.
여수엑스포 팝페스티벌에서 공연하는 장사익
그의 노래가 묵은 장맛처럼 깊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쉬운 노래를 감동적으로 부르고 관객들이 거기에 교감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의 인생에 답이 있다. 그는 상고를 졸업하고 보험회사에 취직했다. 군대를 마치고 나와 보니 그 회사는 다른 회사가 되어 있었다. 무역회사에 들어갔다. 1970년대의 석유 위기로 그 회사도 문을 닫았다. 딸기장사를 하고 가구 외판원을 하고, 연구소 경리과장도 했다. 금성알프스전자와 청계천 전자상가의 직원이기도 했고, 독서실을 운영하다가 급기야는 매제가 운영하는 카센터에서 허드렛일을 하게 되었다. 그게 15번째 직업이었다.
그러다 태평소를 불게 되었고, 노래를 부르게 되었다. 행복했다. 소리꾼과 예술인은 그의 16번째 직업이 되었다. 그리고 그의 인생이 바뀌었다. 처음으로 일하면서 행복을 느끼는 직업을 갖게 되었는데 그의 나이 45세 때의 일이다. 이처럼 숙성된 인생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속 깊은 목소리가 관객들의 심금을 울렸다.
그가 요즘 청년세대에게 한마디 했다. 제발 대기업만 기대하지 말고 어디든 부딪혀보라고 충고한다. 15전 16기를 했던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얘기다. 밥벌이의 지겨움을 글로 썼던 소설 가 김훈 역시 젊은 세대에게 돈과 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물론 1940년대에 태어난 장사익, 김훈의 시대와 1990년대에 태어난 요즘 20대들의 시대는 전혀 다르다. 단순히 50여 년의 격차보다 훨씬 큰 차이가 존재한다. 그들이 자랄 때는 집에 밥이 부족했고 끼니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요즘 청년들에게 밥은 문제가 안 된다. 부모들이 먹여준다. 성취감과 행복감을 느낄 수 없는 직장이라면 아예 쳐다보지도 않으려고 한다. 100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일하고 있는 것과도 연결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 쉽지 않다. 청년들에게 눈높이를 낮추라고만 할 수는 없다.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그 눈높이를 만든 기성세대와 우리나라 교육시스템, 사회구조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직업을 바라보는 눈에서부터 시작해서 직업교육을 정규교육과 조화시키는 문제, 직업훈련을 내실화하는 문제, 취업·처우·승진 등 노동시장에서 학력 격차를 해소하는 문제, 급여 구조를 직무급 중심으로 바꾸는 문제, 중소기업에 대한 시각을 교정하는 문제, 중소기업의 수익성을 높이는 문제 등과 얽히고설켜 있다.
일단, 중소기업에 대한 시각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세계시장에서 성공적으로 사업을 하는 중소기업의 스토리를 많이 발굴해야 한다. 중소기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책을 냈던 슈마허의 얘기가 우리나라에서도 조만간 실현되기를 바란다. 그러고 나서 청년들의 도전정신을 주문해야 한다. 벤처기업에서 일하는 청년들이 겉으로도 웃고 속으로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너무 웃어서 주름이 자글자글한 장사익의 얼굴이 너무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