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경제를 만들 것인가>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실제 100세 어르신을 주위에서 만나 볼 기회가 많지 않다. 그런 분이 100세 시대를 얘기하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연세대 철학과 교수이자 수필가였던 김형석 선생은 1920년생이다. 100세가 코앞이다. 그 연세에 얼마 전 신간을 냈다. 책 제목이 《백 년을 살아보니》다. 100년? 말이 그렇지 숫자를 1부터 100까지 세는 것도 힘든데, 김 선생은 3만5천 번 이상 태양이 떴다 지는 것을 보셨다. 교수로서 65세에 정년퇴직을 하고 나서도 32년이라는 긴 세월을 보내고 있다.
그 긴 세월을 버텨내기 위해 가족, 반려자, 건강 등 여러 가지 필요한 요소들이 있지만, 가장 필요한 것은 ‘일’이라고 책에 적어 놓으셨다. 은퇴 이후에도 뭔가 배우고, 뭔가 취미생활을 하고, 뭔가 봉사활동을 하는 등의 ‘소일거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탑골공원에 가서 바둑을 두고 어울려 놀다 오거나, 천안행 전철을 타고 나가서 온천을 하고 기분을 전환하고 오는 것도 하루 이틀이 지 1년 내내 그럴 수는 없다. 즉, 은퇴를 준비하면서 돈만 준비할 게 아니라 할 일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하니까 몸이 건강하고, 건강하니까 일할 수 있다. 일하니까 정신도 건강해지고 성취감도 생긴다. 일하니까 하루하루 시간도 잘 지나가고 생활에 만족하고 감사하게 된다. 감사하면 행복은 저절로 온다.
일본에서 몇 년 전 60대 중반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어떤 사람이 행복한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 결과 가장 불행한 사람은 ‘아무 일 없이 세월을 보낸 사람’이라고 했다.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가족과 함께 지내면서 가끔 친구들과 만나는 사람’이라 고 했다. 반면, 새롭게 행복을 찾아 누린 사람은 3가지 유형이었다고 한다. ‘공부를 시작한 사람’, ‘취미생활을 계속한 사람’, ‘봉사활동에 참여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결국, 나이 60이 되었다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뭔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재미있는 일을 하고, 남을 위해 보람 있는 일을 했을 때 행복감을 느꼈다는 것이다.
평균수명은 계속 길어지고 노인 인구의 비중은 계속 커지는 시대에 이미 60대에 접어든 분들은 물론이고 필자처럼 50대로서 앞으로 다가올 불안한 노후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김형석 선생의 책을 꼭 읽어봐야 한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나이가 60이 넘어서도 일을 해야 하냐’고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꽤 많을 것이다. 젊은 시절에 일을 너무 과도하고 지겹게 해서 ‘번아웃(탈진)’ 되신 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멕시코 다음으로 긴 근로시간을 자랑한다. 그러나 정보화 시대, 창의성이 중요한 시대, 인공 지능 컴퓨터 ‘알파고’가 세계 최고의 프로기사 이세돌을 이기는 시대에 장시간 근로는 더는 자랑거리가 아니다. 효율적으로 일하고 생산성 있게 일해야 한다. 일과 가정의 양립도 가능해서 아이를 낳고 키울 수 있을 정도로 일해야 한다. 그리고 기대수명이 100세에 근접하는 시대에 살고 있으므로, 50대가 되면 은퇴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30년에서 50년에 걸친 오랜 ‘은퇴 후 세월’을 버티기 위한 ‘은퇴 후 일거리’를 준비해야 한다.
안병영 전 교육부총리는 인생 2모작이 아니라 3모작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신다. 교수직에서 은퇴한 후 강원도로 낙향한 지 벌써 10년이라고 한다. 70대 중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농번기에는 밭에서 일하고, 농한기에는 책 읽고 글 쓰는 일에 익숙해졌다”고 하신다. 안 선생에 따르면, 평생 3단계에 걸친 ‘일자리 대책’이 필요하다. 50대 중반까지는 ‘생계를 위한 일거리’가 필요하고, 50대 중반부터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65세까지는 ‘보람도 느낄 수 있는 일거리’가 필요하고, 연금이 나오는 65세 이후부터는 도시를 떠나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일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인생 2모작과 3모작을 위해 10여 년은 투자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도시를 떠날 수 없는 분이 많기에, 도시에서도 적용 가능한 인생 2모작과 3모작 준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