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든의 위험한 폭로>
정부의 권위란 설령 내가 기꺼이 따르고자 하는 정부의 권위일지라도 여전히 불순하다. 엄정하게 말해 정부의 권위는 반드시 피통치자의 허락과 동의를 받아야 한다. _ 헨리 데이비드 소로, 《시민의 불복종》
스노든은 자신이 정부 첩보행위에 환멸을 느끼기 시작한 때가 스위스 체류 시기, 그리고 CIA 직원들 주변에서 보낸 대략 3년간의 세월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밝혔다. 당시 제네바 미국 공관에서 법률 인턴으로 일하던 마바니 앤더슨은 스노든을 조용하고 사려 깊고 내성적이며, 모든 행위에 관한 결과를 신중하게 가늠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앤더슨은 제네바 근무를 마칠 때 즈음 스노든이 ‘양심의 위기’를 겪고 있었다고 했다.
스노든은 그 ‘양심의 위기’라고 표현된 중요한 계기에 대해 그린월드에게 훗날 이렇게 말했다. “CIA 정보원들이 비밀 금융정보를 손에 넣기 위해 스위스 은행가를 스카우트하려고 했어요. CIA 정보원들은 그 은행가를 취하게 한 다음 스스로 운전해서 집에 가도록 부추겼고 그는 바보같이 그들의 의견을 따랐어요. 결국, 스위스 경찰이 이 은행가를 구속했고, 비밀 첩보요원이 도와주겠다는 제안을 하게 되는 상황이 연출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친분을 쌓은 후 요원들은 그 은행가를 스카우트했습니다. 제네바에서 내가 겪은 많은 사건 때문에 나는 미국 정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리고 미국 정부가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환멸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나 자신이 백해무익한 일을 하는 조직 일부라는 사실을 깨달았죠.”
결과적으로 스노든은 미국 정부의 비밀을 폭로해야겠다는 결심을 서서히 하게 된다. 그때까지만 해도 폭로를 결심하게 한 결정적 문서는 아직 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스노든은 오바마 대통령을 일단 너그러운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부시 시대에 저질러진 가장 지독한 시민의 자유권 침해를 그가 만회하기를 기다렸다. 여기에는 관타나모 수용소 문제도 포함되었다. 관타나모 수용소는 전쟁터에서 체포한 사람들을 가둔 미군 수용소다. 그런데 수감자 중에는 극단주의나 알카에다와는 아무런 관련 없이 재판도 받지 못한 채 수년간 구금 중인 사람도 있었다. 스노든은 부시 행정부에서 일했던 사람 중 책임을 져야 할 인물들을 가려내 오바마가 문책하기를 바랐다.
“오바마의 선거공약과 당선으로 나는, 그가 선거운동 과정에서 지적한 문제를 고쳐나가면서 우리를 이끌어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많은 미국인이 비슷한 감정을 느꼈죠. 유감스럽게도 오바마는 권력을 잡자 법률 위반 조사의 가능성을 곧장 배제했습니다. 대신 시민들의 권리를 침해하는 몇몇 정책을 더욱 심화하고 확대했으며, 아무 혐의도 없는 사람들이 갇혀 있는 관타나모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를 끝내기 위한 정치 자본 투자를 거부했습니다.”
2009년 스노든은 동료 한 명과 사이가 틀어졌다. 그는 <뉴욕타임스> 기자 제임스 라이즌(James Risen)에게 이 사건을 설명했다. 라이즌에 따르면 스노든은 승진을 간절히 바랐지만 한 상사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했다가 ‘사소한 이메일 다툼’에 휩쓸리게 되었다고 한다. 스노든은 매년 실시하는 CIA 자기 평가서를 작성하다 인사 웹 애플리케이션에서 오류를 발견하고 이를 상사에게 알렸다. 상사는 그에게 그냥 내버려두라고 했다가 결국에는 시스템의 해킹 노출 위험성을 시험할 수 있게 허락했다.
스노든은 자기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해를 끼치지 않는 방식’으로 몇 가지 코드와 텍스트를 추가하고 직속 상사는 이를 승인했다. 하지만 이전에 스노든과 충돌했던 상급 관리자가 그가 한 일을 알고는 격분했다. 결국, 그는 스노든의 인사 파일에 그를 헐뜯는 보고 내용을 기록했다.
이 에피소드는 비교적 사소한 일이었지만 한 가지 측면에서 중요했다. 스노든은 이 사건을 겪고 나서 내부 경로를 통해 문제를 제기해봐야 헛된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부를 향한 항의는 처벌로 이어질 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은 탐색할 부분들이 많았다.
2009년 2월 스노든은 CIA에서 퇴사했다. 어떤 내용이 있었는지 몰라도 스노든의 인사 파일은 그의 다음 고용주인 NSA에 전달되지 않았다. 이제 스노든은 일본의 미군 기지에 있는 NSA 기지에서 계약업자로 일하게 되었다. 9·11 테러 이래로 급성장한 안보기관이 민간기업에 정보업무를 위탁하면서 그들은 호황기를 누렸다. NSA 전 국장 마이클 헤이든(Michael Hayden) 같은 고위직 공무원들은 제한 없이 정부와 기관을 오갔다.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낙하산 인사였다. 스노든은 이제 컴퓨터 회사인 델에 고용된 상태였다. 이 시기쯤 되자 스노든의 이력서상의 결함들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일급비밀 취급이 가능했을 뿐 아니라 뛰어난 컴퓨터 기술을 갖고 있었다.
스노든은 십 대 초반부터 일본에 열정을 느꼈다. 그는 1년 반 동안 일본어를 공부했다. 그는 아스에서 처음 채팅을 했을 때 ‘아리가토 고자이마스’와 다른 일본어 구절을 적기도 했다. 때때로 스노든은 자기 이름을 일본어로 발음한 표현을 쓰기도 했다. 그는 자기를 ‘에도와도’라고 불렀고 2001년에는 “나는 항상 일본에 입성할 수 있기를 꿈꿔 왔지. 그곳에서 편한 정부 일을 하면 좋겠어.”라고 썼다. 일본어를 배우고 싶어 2009년에는 메릴랜드 대학과 연계된 도쿄의 한 단과대학에서 개최하는 여름학교 강의를 신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본에 체류하는 동안 스노든의 온라인 활동은 오히려 뜸해졌다. 이 시기에 스노든은 기술자에서 환멸을 느끼는 잠재적 내부고발자로 변화한다. NSA 데이터마이닝의 규모를 보여 주는 일급비밀 정보를 더 많이 접할수록 오바마 행정부를 향한 반감도 커졌다. “나는 오바마가 억제할 것으로 기대했던 정책들을 오히려 진척시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영화 <스노든>의 한 장면
2009년과 2012년 사이에 스노든은 “NSA는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대화와 모든 행동을 알아내려고 했다.”라고 실토했다. 그는 또 다른 불편한 진실 역시 깨닫는다. NSA를 감시하기 위한 국회 기구가 기능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행동하기를 그저 기다리기만 할 수는 없었습니다. 나는 그동안 지도자를 찾아 헤맸지만 리더십은 행동하는 첫 번째 사람이 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2012년 일본을 떠날 무렵 스노든은 때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내부고발자가 되어 있었다.
스노든은 부즈에서 새로 맡은 일에 적응하고 있었다. 사실은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 실제로 스노든은 NSA 서버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을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ashington Post)>에서 말한 바에 따르면 당시 스노든이 해당 업무를 수락한 이유는, 그가 맡은 직책이 NSA가 해킹 중인 세계 곳곳의 기계 목록을 볼 수 있는 자리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몇 달 후 NSA는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몰랐다. 어떻게 스노든이 정보를 유출할 수 있었는지도 설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스노든은 시스템 관리자였다. 즉 스노든이 NSA 인트라넷 시스템인 NSA.net에 접속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것은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여러 정보기관 사이의 연락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개설되었다. 스노든은 이 시스템의 상당 부분을 들여다볼 수 있는 NSA ‘시스템 관리자’ 1,000여 명 중 한 명이었다. (일급비밀 취급허가를 받은 사용자라도 모든 기밀 파일을 볼 수는 없었다) 그는 흔적을 남기지 않고 파일을 열어볼 수 있었다.
한 정보 소식통의 말을 빌리면 그는 NSA라는 성지의 ‘유령 사용자’였다. 다시 말해 스노든이 GCHQ의 인트라넷인 GCWiki를 통해 영국 국가기밀에도 접속할 수 있었다는 의미다. 또한, 그가 대단한 IT 실력자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삼엄한 NSA에 ‘유령 사용자’라니.
스노든이 정확히 어떤 방법으로 자료를 획득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NSA 문서는 USB 메모리에 저장되어 있었다. 바그다드 외곽에 있는 전략 무선 감청기지에서 25만 건에 이르는 미국 외교 전보문건을 ‘레이디 가가’라고 표시한 CD에 내려받아 위키리크스로 보낸 매닝이 사용했던 방법과 같다. NSA 직원 대부분에게 USB 메모리 사용은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시스템 관리자’는 오류가 생긴 사용자 프로파일을 수정하고 백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었다. 이런 경우 NSA 시스템과 일반 인터넷 사이에 존재하는 ‘틈새’를 연결하기 위해 USB 메모리를 가져갈 수 있었다.
NSA가 잠들어 있었을까? 스노든은 하와이에 앉아서도 이른바 ‘신 클라이언트(thin client)’ 시스템을 통해 8,000㎞ 넘게 떨어진 포트미드에 있는 NSA 서버에 원격으로 접속할 수 있었다. 6시간 시차가 있는 하와이에서 스노든이 서버에 접속할 때면 직원 대부분은 이미 퇴근한 후였다. 그는 NSA가 잠시 방심한 틈을 타 활동을 개시했다. 게다가 스노든은 자기 일에 무척이나 유능했다. 제네바 시절 친구 앤더슨의 말을 빌리면 그는 ‘IT 천재’였으므로 광대한 내부 시스템 속에서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움직일 수 있었다.
부즈에서 새로 일을 시작한 지 4주가 지났을 때 스노든은 상사에게 몸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잠시 쉬고 싶다면서 무급휴가를 요청했다. 자세한 이유를 물어보자 스노든은 간질을 앓고 있다고 말했다. 스노든의 어머니 역시 같은 증상으로 안내견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그러고는 그는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