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바닥의 민심을 장악하라.

<최후의 승자가 되라>

by 더굿북

유방은 항우와 함양 입성의 선후를 다툴 당시 초회왕 미심의 배려 덕분에 지름길이었던 무관을 통해 먼저 입성할 수 있었다. 입관 당시 휘하 장병들에게 지나는 마을에서 약탈하지 못하게 한 점이다. 원문은 무득약로(毋得掠鹵)로 표현했다. 노략질을 금했다는 뜻이다. 여기의 노는 원래 염전이나 갯벌을 뜻하는 말이나 여기서는 노략질할 노(擄)의 의미로 사용된 것이다.


한 원년인 기원전 207년 10월에 유방이 마침내 다른 제후들보다 한발 앞서 함양 인근인 지금의 섬서성 남전현 북쪽 파상에 이르게 된 배경이다. ‘파상’은 파수 서쪽 고원에 있는 까닭에 붙여진 이름이다. 파상의 파(覇)는 흔히 ‘패’로 읽으나 여기서는 파수를 뜻하는 파(灞)의 의미로 사용된 까닭에 ‘파’로 읽어야 한다.

주목할 것은 「고조본기」에서 휘하 장병들에게 지나는 마을에서 약탈하지 못하게 해 진나라 백성이 크게 기뻐했다는 대목이다. 난세는 무법과 약탈이 난무하는 시기이다. 천하를 거머쥐고자 하면 반드시 휘하 장병들에게 백성의 재물을 약탈하는 일을 엄금해야 한다. 이는 민심을 틀어쥐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기도 하다. 이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손에 넣은 천하 강산을 고스란히 상납하는 일이 생기고 만다.

민심을 휘어잡으면 승리한다.

대표적인 예로 중국의 국공내전 당시 장개석의 국민당 군사와 모택동의 홍군 사이에 빚어진 엇갈린 행보를 들 수 있다. 당시 『사기』와 『자치통감』 등을 탐독한 모택동은 ‘무득약로’의 이치를 통찰하고 있었다. 그는 홍군 장병에게 이른바 ‘3대 규율(三大規律)’과 ‘8항 주의(八項注意)’의 행동지침을 내렸다.

‘3대 규율’의 내용은 이렇다. 첫째, 모든 행동은 지휘에 복종한다. 둘째, 인민의 바늘 하나와 실 한 오라기도 취하지 않는다. 셋째, 모든 노획물은 조직에 바친다. ‘8항 주의’는 이렇다. 첫째, 말은 친절하게 한다. 둘째, 매매는 공평하게 한다. 셋째, 빌려온 물건은 돌려준다. 넷째, 파손한 물건은 배상한다. 다섯째, 사람을 때리거나 욕하지 않는다. 여섯째, 농작물은 해치지 않는다. 일곱째, 여자를 희롱하지 않는다. 여덟째, 포로를 학대하지 않는다.

모두 11개의 지침으로 이뤄졌지만 한마디로 요약하면 인민의 바늘 하나와 실 한 오라기도 취해서는 안 된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이 지침은 장개석의 국민당 군사를 포함한 모든 대소 군벌 휘하 군사과 비교해 홍군을 다르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모택동은 홍군의 장병들에게 이를 실천하게 함으로써 천하를 거머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군사전문가 베빈 알렉산더가 저서 『위대한 장군들은 어떻게 승리했는가』에서 모택동을 세계전사(世界戰史)에서 가장 출중했던 전략가 중 한 사람으로 지목한 요인이다. 그는 홍군의 특성을 이같이 요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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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군은 계층적 명령 체계가 아니라 가능한 한 가장 민주적인 형태를 지향했다. 이들의 군대에는 서방이나 국민당 군대와는 달리 계층과 교육 정도에 의해 사병과 분리되는 명확한 장교단이 없었고, 계급과 기장(記章)도 없었다. 남자들은 물론 종종 여자들도 자신들의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리더가 되었고, 사병들은 그들을 ‘소대장 동무’ ‘중대장 동무’처럼 직함으로 호칭했다. 장교들은 병사들을 구타하거나 학대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은 함께 살았고, 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옷을 입었다.”

그러나 사실 중국은 모택동이 세운 이른바 ‘신중화제국’의 역사를 두고 작은 승리에 만족지 않고 계속 더 큰 승리로 나아간 휘황한 역사라고 자찬하고 있으나 내막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홍군 역시 적군과 싸울 때는 장개석의 국민당 군사 등과 마찬가지로 기만과 선동, 강탈, 이간 등의 수법을 무차별로 구사했다. 다만 국민당 군사 등과 다른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인민의 바늘 하나와 실 한 오라기도 취해서는 안 된다는 지침을 철저히 지킨 점이다. 그게 천하를 놓고 다툰 장개석과 모택동의 운명을 갈랐다. 난세의 군주 리더십을 깊숙이 탐사한 서양의 마키아벨리 역시 이를 통찰했다. 그는 『군주론』 제10장에서 이같이 설파했다.

“외적은 통상 포위 공격을 가하기 직전 성의 외곽지역을 불태우며 약탈을 한다. 이때는 백성의 결사항전 의지가 뜨거울 때이다. 크게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며칠 지나면 백성이 냉정함을 되찾아, 이미 커다란 피해와 희생이 빚어졌음에도 마땅한 구제책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이때 백성들은 군주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들의 집이 불타고 재산이 파괴됐다고 생각하는 까닭에 군주가 자신들에 빚을 지고 있다고 여긴다. 이들이 더욱 뭉쳐 군주와 하나가 되는 이유다. 군주가 견고한 도시를 보유하고 백성의 미움을 받지 않으면 그 어떤 외부 침공에도 안전할 수 있다. 인간은 원래 수혜는 물론 시혜를 통해서도 책임감을 느끼며 유대를 강화하는 존재이다. 필요한 식량과 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면 백성의 사기를 유지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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