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승자가 되라>
항우에 의해 한왕에 봉해진 유방이 봉지로 갈 때 장량이 유방을 배웅했다. 포중 땅에 이르러 고국인 한나라로 돌아가는 장량을 보냈다. 장량이 출발에 앞서 유방에게 권했다.
“대왕은 어찌해 지나간 곳의 잔도(棧道)을 불태워 끊지 않는 것입니까? 천하 사람들에게 동쪽으로 돌아올 뜻이 없음을 보여주고, 그것으로 항왕의 의심을 없애 안심시켜야 할 것입니다.”
유방이 장량을 한나라로 돌아가게 한 뒤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지나온 잔도를 모두 불태워 끊어버렸다.
_ 「유후세가」
공격만이 능사가 아니다.
원래 잔도는 험한 벼랑에 임시로 놓은 나무다리를 지칭한다. 잔도를 끊으면 오가는 길이 막히게 된다. 잔도로 이어진 저쪽과 이쪽이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는 셈이다. 유방의 봉지는 지금의 섬서성 남부인 한중과 지금의 사천성 일대인 파촉이었다. 유방이 한중으로 가면서 장량의 건의를 받아들여 관중과 한중을 연결하는 잔도를 모두 불태운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자신을 의심하는 항우의 눈을 속이고자 한 것이다. 한중에서 은밀히 힘을 기른 뒤 관중을 손에 넣으려는 속셈이었다. 달빛 속에서 칼을 갈며 후일을 기약하는, 일종의 도광양회 계책이었다.
큰 틀에서 볼 때 이 또한 상대방보다 먼저 손을 써 유리한 위치에 서고자 하는 계책이다. 우리말에서는 이를 통상 ‘기선(機先)을 제압한다.’고 표현한다. 이는 원래 일본어에서 나온 것이다. 중국에서는 이런 표현이 없다. 원래 기선은 남북조시대 당시 크게 유행한 불교 선가(禪家)의 용어이다. 어떤 사안이나 사물이 시기가 무르익어 구체적인 모습을 밖으로 드러내기 직전의 조짐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됐다. 일본의 선불교는 중국에서 유입된 후 크게 융성했다. 사무라이들이 즐겨 참선을 추구한 덕분이다. 일본어에 유독 선가 용어가 많은 것도 이런 역사와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다.
일본에서는 기선을 제압한다는 의미의 ‘기센오 세이수루(機先を制する)’라는 구절이 자주 쓰인다. 여기의 ‘기선’은 선가에서 사용하는 ‘기선’과 뉘앙스가 완전히 달라졌다. 일본어를 빌린 우리말 역시 운동경기 또는 싸움 등을 할 때 상대방의 세력이나 기세를 억누르기 위하여 이쪽에서 먼저 행동하는 모든 움직임을 가리키는 의미로 쓴다.
때맞춘 수비는 공격이나 다름없다.
유방이 장량의 계책을 받아들여 잔도를 불태운 것은 공격이 아닌 수비 측면에서 이뤄진 것이다. ‘기선을 제압한다.’는 취지로 사용되는 통상적인 의미와 다르다. 그러나 기본 취지만큼은 같다. 상대방을 속여 방심하게 한 뒤 힘을 길러 배후를 치고자 한 점에서 보면 분명 공격의 의미를 담고 있다. 사실 큰 규모의 전쟁과 작은 규모의 전투를 비롯한 모든 종류의 싸움에서는 공격과 방어를 엄밀히 구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를 엄히 구분하려는 시도는 스스로 패배를 자초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유능한 장수와 각종 스포츠 리더들은 이런 이치를 통찰한다.
명나라 말기의 거유 왕부지(王夫之)는 사마광의 『자치통감』을 평론한 『독통감론(讀通鑑論)』에서 삼국시대 당시 제갈량이 누차에 걸쳐 중원진출을 시도한 것을 두고 이공위수(以攻爲守)로 표현했다. ‘공격이 최상의 방어이다.’라는 속언과 취지를 같이한다. 이를 바꿔 해석하면 이수위공(以守爲攻)이 된다. 철저한 수비를 통해 집요하게 달려드는 상대의 힘을 소진하게 한 뒤 손쉽게 제압하는 계책이었다. ‘이수위공’과 ‘이공위수’의 계책 모두 공격과 수비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유방이 잔도를 불태운 것 역시 겉만 보면 막강한 무력을 보유한 항우의 의심을 피하고, 설령 의심을 사 불의의 공격을 당할지라도 이를 효과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수비책의 하나로 나온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을 보면 은밀히 힘을 기른 뒤 상대의 허를 찔러 단숨에 상황을 역전시키고자 하는 매우 공격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실제로 역사는 그렇게 진행됐다. 그게 바로 당대 최고의 병법가인 한신이 구사한 암도진창(暗渡陳倉) 계책이다.
따지고 보면 당시 최초로 한신의 명성을 떨치게 한 암도진창의 계책도 유방이 장량의 건의를 받아 구사한 ‘소잔계’의 사전 작업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소잔계’는 비록 건의는 장량이 했지만 이를 받아들인 유방 역시 뛰어난 무략을 지닌 인물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유방에게 한중 땅을 봉지로 내준 항우가 최후의 결전에서 유방에게 패한 것도 이런 식으로 여러 차례 기선을 제압당한 결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