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든의 위험한 폭로>
<가디언>은 편집 인원 31명과 500만 달러라는 적은 예산을 기반으로 오로지 디지털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반면 <뉴욕타임스> 뉴스 부문 직원 수는 1,150명이다) 빙하기를 지나 홀연히 사라진 공룡들처럼 <가디언>의 사무실은 앞으로 살아남을 신문사의 새로운 형태를 보여주는 듯했다. 기자 중 절반 정도가 미국인으로 대부분이 젊고 디지털 기기에 익숙하다. 팔 절반에 문신을 새긴 기자들이 많고 팔 전체를 덮는 문신을 한 대담한 사람도 있다. 깁슨의 표현대로 이들의 임무는 세상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전하는 영국 <가디언>의 완전한 미국판을 만드는 것이다.
2011년 7월 출범 이래 미국 독자는 늘고 있지만, 영국 태생의 이 언론사는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저널> 같은 거대 언론사와 경쟁하기에는 턱없이 작았다. 하지만 워싱턴 클럽의 일원이 아니라서 누릴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어차피 아무도 우리 전화를 받지 않아요. 그러니 우리는 접근성 측면에서 말 그대로 아무것도 잃을 것이 없죠.”
<가디언>은 에드워드 스노든 사건이 터지기 한참 이전부터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신문 웹사이트였다. 하지만 백악관은 <가디언>이 신문인지, 무가지인지, 블로그인지도 잘 모르고 혁신적인 영국인 편집장 재닌 깁슨의 성격도 잘 모르는 듯했다. 가끔 깁슨이 나와 분주하게 뉴스실로 향했다가 다시 반투명 유리창 너머로 사라지곤 했다. 분명 대단한 사건이 머지않아 일어날 듯했다.
점심때가 되어서야 깁슨은 애커먼을 불렀다. 세 사람은 모퉁이를 돌아 바닷가재 바에 갔다. 식당은 만석이었다. 세 사람은 식사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서 바닷가재 롤을 시켰다. 애커먼이 잡담을 시작하자 두 사람이 곧 말을 끊었다. 그리고 깁슨이 폭탄선언을 했다. “오리엔테이션은 없습니다. 당신이 참여해주었으면 하는 좋은 기삿감이 있습니다.”
깁슨은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즉 확인되지 않은 제3국에 체류 중인 내부고발자가 있다고 차근하게 설명했다. 내부고발자는 현재 그린월드, 매카스킬과 접촉 중이며 그들은 지금 NSA 감시 프로그램에 관한 기사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이런 세상에! 애커먼은 너무 놀라 어리둥절했다. 후에 그는 “나는 할 말을 잃었습니다. 바로 이 일, 무영장 감시 프로그램을 7년 동안 보도해왔기 때문이에요. 이 문제에 정말 깊이 발을 들여놓았지만 그것뿐이었죠.”라고 말했다.
깁슨은 애커먼에게 프리즘 슬라이드 내용과 버라이즌의 미국 고객 전부의 전화기록을 넘기도록 강요한 비밀법정 명령을 알려주었다. 애커먼은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위아래로 흔들면서 “이런 제길! 이런 제길! ”이라고 중얼거리다 겨우 평정을 되찾았다. 그는 오랫동안 의심해왔던 가설이 진실이었다는 사실에 흥분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부시 행정부가 자행하던 감시 행위를 비밀리에 계속 시행하고 심지어 확대하고 있었다. 애커먼은 깁슨에게 스텔라 윈드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깁슨은 그렇다고 답했다. “이는 내가 7년 동안 찾아내려고 했던 모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흰돌고래가 작살 끝으로 다가오고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알고 보니 고래가 떼를 지어 왔죠.”
이 사실이 함축하는 것은 대단했다. 버라이즌 비밀법정 명령은 2013년 4월 25일 자였다. 이 명령은 미국 고객 수백만 명의 전화기록을 NSA에 넘겨주라고 미국 최대 통신회사에 강제하는 내용이었다. 버라이즌은 ‘지속해서 매일 같이’ 세부적인 개인 정보를 넘겨주고 있었다. 버라이즌은 자사 시스템을 거쳐 미국 내, 그리고 미국과 외국을 오간 모든 전화에 관한 정보를 NSA에 넘겨주고 있었다. 이는 NSA가 범죄나 테러에 연루되었는지에 관계없이 미국 시민 수백만 명의 기록을 저인망식으로 수집해왔다는 충격적이고도 명백한 증거였다. 문서는 해외정보감시 법정에서 발행한 것이었다. 로저 빈슨(Roger Vinson) 판사가 서명한 이 문서는 미국 행정부가 90일 동안 전화 메타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무제한 권한이었다. 기한은 7월 19일에 끝났다.
애커먼은 이렇게 말했다. “그 문서는 내가 지금까지 본 것 중에서 가장 흥미진진했습니다. 관계자 외에 해외정보감시 법정 명령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죠. 지나친 억측과 음모 같은 상상을 할 때도 정부가 이런 일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3개월짜리 이 권한은 일회성일까? 이와 비슷한 명령이 또 있을까?
스노든은 최근 문서 한 건만을 제공했다. 하지만 NSA는 다른 주요 전화회사에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데이터를 제공하라고 강요했을 것이다. 뉴욕 사무실에서 깁슨은 신중하게 계획을 세웠다. 계획은 법률자문 모색, 백악관 접근 전략 수립, 홍콩 체류 기자들에게 기사 초안 수령, 이 세 가지 기본 요소로 이루어졌다. 아직 NSA는 그들을 집어삼킬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듯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가디언>은 전통적인 정보기관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칸막이로 둘러싸인 별실에서 은밀한 암호를 주고받으며 비밀리에 일했다. 일반 인터넷이나 전화선을 이용한 이메일과 대화는 배제했다. 깁슨은 화이트보드에 잠정적인 일정을 썼다. 미국 비밀주의의 심장을 파고드는 스노든 프로젝트를 알고 있는 집단은 극소수였다. 언론계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구제불능의 수다쟁이다. 하지만 이 경우 모든 정보는 레닌 시절 감옥만큼이나 철저하게 통제됐다. 직원들 대부분은 동료들이 무언가 매우 급한 상황 속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가디언>은 버라이즌 기사를 가장 먼저 보도할 생각이었다. 수많은 문서 가운데 이 기사가 가장 이해하기 쉬웠다. “이 문서는 명백하고 아주 분명했습니다.” 다음에는 프리즘이라는 암호명이 붙은 인터넷 프로젝트에 관한 기사를 내보낼 예정이었다. 그다음으로 미국이 적극적으로 사이버 전쟁에 관여하고 있다고 폭로하고자 했다. 마지막으로 할 수 있다면 국경 없는 정보원(BOUNDLESS INFORMANT)이라는 위장막 뒤에 숨은 진실을 보도할 예정이었다.
이 특종을 담당하고 있는 기자들이 홍콩, 미국, 영국 등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다는 사실 때문에 문제가 산적했다. 애커먼은 워싱턴 DC로 돌아갔다. 그는 버라이즌에 접촉할 준비를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리고 때가 되면 백악관에 연락을 취할 준비 역시 해야 했다. 런던에서는 <가디언> 편집장 앨런 러스브리저와 외교부 담당 기자 줄리언 보거(Julian Borger)가 다음번 뉴욕행 비행기에 타기 위해 공항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전에 <가디언>의 웹사이트(guardian.co.kr)의 온라인 편집자를 담당하던 깁슨에게 이 모든 과정은 분명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롤러코스터였다. 실수 하나가 모든 일을 망칠 수 있었다.
“이런 문서를 본 적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해외정보감시법원 문서는 극비사항이었기 때문에 비교할 대상이 아무것도 없었죠.” 그녀는 법원 명령 내용이 사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그럴듯하다며 거짓일 가능성을 불안해했다. 미국 규제제도는 영국 규제제도에 비해 느슨했다. 영국이라면 정부는 간단히 법원에 금지명령, 즉 출판을 중지하는 보도 금지령을 요청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정헌법 제1조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극도로 민감한 NSA 기밀문서였다. 보도가 가져올 잠재적 파문은 거대했다. 이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정보 누출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미국 방첩법(US Espionage Act)이다. 미국 정부가 출석요구서를 청구할 가능성이 컸다. 그다음에는 대배심을 구성할 것이다. 목적은 <가디언>이 정보원 신원을 밝히도록 하는 데 있을 것이다. 밀러와 깁슨은 언론 전문 일류 변호사 두 명을 만났다. 데이비드 코제닉(David Korzenick)과 데이비드 슐츠(David Schulz)였다. 그들은 <가디언>과 연루된 모든 가능성을 고려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방첩법은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제정된 특이한 법률이다. 방첩법은 미국 정보기관 자료를 외국 정부에 ‘제공, 전송 또는 전달’하는 행위를 범죄로 규정했다. 법률은 다소 모호했다. 예를 들어 국가안보 기사를 보도하는 기자에게 해당 법이 적용되는지가 명확하지 않았다. 판례법 역시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런 건으로 기소된 전례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사태를 낙관할 만한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먼저 방첩법 제정 이래 96년 동안 이 법이 언론기관에 적용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첫 번째 사례를 만들고 싶어 할 가능성은 작았다. 둘째, 정치적으로 유리한 상황이었다. 백악관은 탐사보도 전문기자들을 박해한다는 공격을 한창 받는 중이었다. 법무부는 실패한 알카에다 음모를 보도한 <연합통신사(Associated Press)> 기자들의 전화기록을 입수해왔다. 이는 믿기 힘들 만큼 중대한 뉴스 취재업무 침해다. 게다가 다른 사건에서 법무부가 폭스 뉴스 기자를 겨냥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격렬한 항의가 있자 에릭 홀더(Eric Holder) 법무장관은 국회에서 법무부는 언론에 종사하고 있는 기자들을 기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디언>은 미국 국가안보를 해치는 상황을 피하는 데 필요한 모든 타당한 조처를 했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했다. 그리고 미국 정부 작전의 세부사항에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정부 감시정책의 윤곽을 폭로하는 문건만 보도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했다. 문제는 일반인이 수정헌법 제1조에 따라 참된 알 권리를 지니는가였다. <가디언>이 추구하는 유일한 목표는 스노든과 와이든, 상원 정보위원회 동료인 마크 유달(Mark Udall)을 비롯한 사람들이 오랫동안 제기해오던 문제에 대한 논의였다. 사건은 빠르게 진행됐다. <가디언>의 매카스킬은 홍콩에서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기네스는 맛있습니다.” 이는 스노든이 진짜라는 확신의 암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