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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Feb 15. 2017

01. 일하는 엄마, 정말 회사에 민폐일까?

<일하는 엄마, 육아휴직 일 년>

저출산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시대다. 우리나라는 2000년 이후 일본보다도 낮은 출산율을 보이면서 가까운 미래에 장기 침체를 겪게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아이를 더 낳으라고 안달이지만, 그런데도 사회 한편에서는 ‘워킹맘은 민폐’, ‘맘충’ 등 아이를 낳은 엄마를 폄훼하는 말들이 아무렇지 않게 사용된다. 이런 인식은 특히 기업에서 심하다. 많이 양보해서 출산한 여성이 계속 일을 할 수 있게 ‘허락’해주는 것이 기업의 ‘의무’가 아닌 ‘인간적 도량’쯤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래서야 무슨 저출산 문제가 해결될지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다. 

물론 고용주 입장에서는 당장 임직원이 출산이나 육아로 휴직계를 내고 쉬면 인적 공백이 생기는 게 먼저 보일지 모른다. 눈앞의 이익만 보자면 말이다. 하지만 엄마가 된 직원이 그렇게 회사에 손해일까?

나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적극적인 가족 친화정책을 마련한 회사들을 살펴보면 이런 생각은 편견일 뿐이라는 것을 더 실감하게 된다.

대표적인 가족 친화적 기업으로 알려진 유한킴벌리에서 ‘미래 경쟁력’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사내 설문조사를 벌였다. 그랬더니 30대 임직원은 ‘육아’, 40대는 가족들과의 ‘소통 시간’, 50대는 ‘소통의 방법’ 등에서 어려움 및 고민을 안고 있다고 했다. 결국 ‘임직원들의 삶을 배려해야 미래의 경쟁력 및 업무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라는 결론을 내린 이 기업은 적극적인 가족 친화 경영을 하기로 패러다임을 바꾸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이 정책과 기치가 겉모양만 그럴싸한 것은 아닐지, 생색내기에 불과할 뿐 정작 임직원들은 달리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닐지 인터뷰 대상자를 찾아보았다.

이 회사 본사에서 근무하는 A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녀는 몇 년 전, 첫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부터 출근 시간을 8시에서 9시 반으로 늦췄다. 출근 시간을 조정하니 아이들의 등원과 등교 준비를 챙겨주고, 유치원 셔틀버스를 타는 아이를 손수 배웅할 수 있게 되어서 아이도 만족하고 A씨 스스로도 마음이 더 놓이게 되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러시아워를 피해 출근을 하다 보니 아침 시간이 오히려 더욱 여유로워졌다. 그녀는 아이에 대한 미안함을 안고 시간에 쫓기듯 출근하지 않아도 되니 출근길도 즐겁고 일의 능률도 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주변에서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직장을 그만두는 경우를 많이 봤는데, 이런 것은 A씨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인 셈이다. 늦어진 출근 시간을 활용해서 첫째뿐 아니라, 올해 유치원에 입학한 둘째 아이의 등원까지 챙겨주고 출근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앞으로 첫째가 중학생이 되면 그녀는 가능한 업무 범위 내에서 재택근무를 신청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많은 여성이 30대 중후반이 되면 아이의 양육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고 경력 단절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기업들의 여성 임원 비율은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다. 이른바 ‘유리 천장’ 지수는 우리나라가 OECD 가입국 중 4년 연속 꼴찌다. 실제로 국내 500대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은 평균 2.6%에 불과한 상황이다. 입사할 땐 두각을 나타내며 남성 못지않게 훌륭한 실력을 보이던 여성 인재들이 결혼과 출산, 육아를 기점으로 중간에 이탈하는 경우가 많아서 벌어지는 현상이다. 여성이 원하는 바를 이루고 자기 일에서 더 큰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라면 정상적인 가정생활은 포기해야 한다는 말까지 나오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그런 와중에 ‘일과 가정의 양립’에 대한 기획 기사가 다뤄질 때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 자주 등장하는 회사가 바로 유한킴벌리다. 그만큼 엄마인 직원을 존중하여 가족 친화적인 분위기를 만들고, 직원의 만족도와 능률을 높이면서 동시에 회사 실적을 올리도록 유도하는 좋은 예가 아닐까 싶다.

이 회사의 워킹맘 육아휴직 사용률은 90%, 육아휴직 후 복직률은 100%에 달한다. 남녀 사무직 직원들의 경우, 출근 시간을 아침 7시부터 10시 사이에서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도록 했고, 영업직의 경우에는 본사로 출퇴근 도장을 찍을 필요가 없도록 현장 출퇴근제를 도입하면서 개인의 시간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유심히 살펴볼 만한 사실이 있다. 각론만 살펴보자면 이 회사의 제도와 정책은 다른 회사에서 내세우는 것들과 비교해 크게 눈에 띄는 것이 없다(물론 유연한 출근 시간 정도도 부러워하는 엄마들이 많겠지만 말이다). 그런데도 직원들의 육아휴직 사용률이 높고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이 적은 이유는 제도가 아닌 바로 ‘분위기’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좋은 제도도 눈치가 보여서 쓰지 못한다면 무용지물일 테니 말이다. 이 회사는 혹시라도 늦게 나오는 직원들이 눈치를 볼 필요가 없도록 사무실 자리에서 고정석을 없애고, 팀장부터 사원에 이르기까지 모두 자유롭게 자리를 선택해서 앉도록 하고 있었다.

게다가 사무실의 가장 전망 좋은 자리는 놀랍게도 임원이나 팀장석이 아니었다. 바로 ‘임산부 배려석’이 로열석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데도 내심 충격적이었다. 부른 배가 걸리지 않도록 제작된 높낮이 조절 책상이 놓여 있는 임산부 배려석은, 진심으로 임직원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다면 도저히 나올 수 없는 디테일이 아니겠는가? 말로만 ‘가족 친화 경영’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관련 제도를 이용하면서 실제로 직원들이 눈치를 보지 않게 하려고 세심하게 고민을 해왔다는 생각이 들어 매우 부러웠다. 정말 엄지손가락을 들고서 대단하다고 칭찬해주고 싶다.

이 밖에도 소소한 것들이 더 있었다. 연 2회 임원들과 임산부 임직원들이 간담회를 갖고 가족 상담을 지원하는 등 다른 회사들에는 없는 프로그램들이 눈에 띄었다. 가족을 ‘버리고’ 일에만 몰두해야 한다는 구시대적인 발상은 없었다. 대신에 그들이 자신의 가족들을 챙기면서 만족감을 느껴야 회사에서 더 행복하고 더 능률적으로 일할 수도 있다는 발상의 전환이 있었다. 임산부, 아이를 둔 워킹맘뿐 아니라 아빠들도 이런 가족 친화정책을 적절히 활용하여 자녀나 배우자와 함께하는 시간을 늘려 유대감을 높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내가 몇 차례 취재차 만나본 유한킴벌리의 임직원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우리 회사는 내 가족과 가정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가져준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근무 만족도와 회사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일이다. 회사 측에서도 이런 가족 친화정책을 도입시킨 이후 임직원들의 업무 집중도나 생산성이 더욱 향상되었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아마도 많은 회사가 정부의 정책에 맞춰 육아휴직 사용과 단축 근로제 등 기본적인 모성 보호 제도들을 갖춰놓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말하건대, 제도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눈치를 보지 않고 이런 제도들을 활용할 수 있는 분위기다. 이는 아무리 강조해도 넘치지 않는 부분이다. 많은 제도 개선이 있었지만, 제도를 갖추는 것과는 별개로 아직도 비논리적이고 차별적인 관행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으니 말이다.

사실 당장은 고용주 입장에서도 워킹맘에 비해서 남자 직원, 결혼 안 한 여성 직원이 속된말로 ‘돈을 더 벌어다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좀 더 길게 내다보면 출산이란 개인적인 행복의 영역을 떠나 사회적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 아닌가?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늙었을 때 우리를 부양해줄 인구, 즉 경제 활동을 해서 사회를 떠받들고 유지해줄 인구를 만들어내는 고귀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가임 여성 1명당 평생 낳는 자녀 수(합계출산율)는 1명을 간신히 넘는 수준이다. 이런 저조한 출산율 추이로 보면, 우리나라 청년층 인구는 갈수록 줄고 노년층은 늘면서, 노인 부양비는 2015년 100명당 17.9명에서 2060년에는 80.6명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즉, 2060년에는 젊은 사람 100명이 경제 활동을 해서 노년층 80명을 부양해야 한다는 의미다. ‘아이를 많이 낳으면 애국자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이제 더 이상 농담이 아닌 절박한 현실이 되어버렸다.

최근 『엄마만 느끼는 육아 감정』이라는 책을 읽었는데, 주목할 만한 부분이 있어 소개한다. 미국에서 워킹맘의 직업적 생산성에 대한 연구가 진행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미국 연방준비은행 연구진이 남녀 직장인 1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아이를 키우는 직장인은 그렇지 않은 직장인보다 생산성이 훨씬 높았으며, 특히 아이가 둘 이상인 여성은 하나인 여성보다도 생산성이 뛰어났다는 것이다. 그 이유로, 아이를 키우며 책임감과 소속감, 심리적 안정감이 생겨나기 때문이라고 연구진은 분석하고 있었다. 사실상 “엄마 직원은 민폐다.”라던 생각과 실제 현실은 전혀 반대라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연구가 이뤄지고, 대다수의 사람이 이런 인식을 공유하면서 워킹맘, 워킹대디에 대한 편견을 깨뜨릴 수 있지 않을까?

여성의 임신이나 출산, 육아가 “회사에 민폐가 된다.”며 스스로 주눅이 들거나, 당당하지 못한 상황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저조한 출산율과 급격한 고령화, 여성의 경력 단절 등이 사회 문제로 관심을 받고 있지만, 무엇보다 먼저 사회와 일터에서 가족 친화적 분위기와 가치관이 갖춰진다면 출산을 기피하거나 복직을 망설일 이유는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다. 물론 여성 직원뿐 아니라 남성 직원들도 육아에 동참하고 가족들을 챙길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것 역시 절실하게 필요하다. 

직원들뿐 아니라 그 가족까지 존중하면 그것이 실적으로, 더 큰 사회적 이익으로 돌아온다는 생각을 더 많은 회사가 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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