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
무제 1965, 캔버스에 유채, 159.5×128.5cm : 1965년 제4회 《세계문화자유회의 초대전》에 출품된 작품이다. 당시 <콤포지션-65>라는 제목으 로 발표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콤포지션(composition)’ 즉 ‘구성’이라는 제목 그대로, 화면에는 비정형(非定刑, 정해지지 않은 형태) 의 형상들과 원색의 색채들이 화면에 배치되어 있다. 특정한 대상을 재현하지 않는 대신, 형태와 색채라는 회화의 기본 요소가 주인이 되어 등장한다. 그러나 유영국의 추상은 완전히 사실성을 배 제하지는 않은 채, 결국은 ‘자연’에서 그 원천을 끌어오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특징적이다. 마치 저 멀리에서 산봉우리의 신비를 살짝 들여다보고 있는 것 같은 환상적인 경험을 관객에게 선사한다.
고향 울진은 온통 산과 바다로 둘러싸인 곳이었다. 동해 쪽으로는 죽변항이 있고, 집 뒤로는 태백중령을 가로지르며 기암괴석과 숲이 장대하게 어우러진 불영계곡이 펼쳐져 있었다.
어린 유영국의 눈에 산은 하늘에 닿을 듯 높고, 바다는 끝없이 까마득하고, 파도는 집채만 했다. 그런 산과 바다는 그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놀이터이자, 세상 전부였다.
유영국은 눈만 뜨면 동무들과 어울려 해 지는 줄 모르고 산을 돌아다녔다. 술래잡기나 전쟁놀이에 지치면 철 따라 열리는 산열매를 따먹으러 깊은 산 속까지 들어가곤 했다. 울창한 나무에 빛이 가리고 짙은 향내가 몰려올 때면 두려움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한 마리 산짐승이라도 된 듯한 묘한 흥분도 일곤 했다. 그래서 무서운 것도 참으며 정말 호랑이라도 된 듯 포효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산속을 헤집고 다녔다. 어린 유영국은 그렇게 산의 속살과 섞이면서 싱그러운 작은 산이 되어갔다.
초여름이 연록과 청색과 노란색의 녹음으로 어우러질 때면 유영국의 눈에도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빛깔들이 함께 물들었다. 온 마을에 단풍이 드는 가을이면 유영국의 가슴에도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애잔하게 스며들곤 했다. 그렇게 사시사철 빛들이 환희롭게 빚어내는 색채의 향연을 보면서 어린 유영국은 도대체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아름답고 황홀한 색들이 있는지 궁금했다.
어릴 때부터 유영국은 작은 산보다는 웅장하고 기개가 높은 산을 좋아했다. 태백산맥의 웅장한 산세가 이어진 울진에는 심산유곡의 비경을 간직한 응봉산이 있었다.
유영국은 일단 산을 오르면 반드시 정상까지 오르려 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끝까지 참고 오르면 두 팔 벌려 자신을 반겨주듯 드넓은 하늘과 넘실대는 푸른 바다가 그를 기다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영국은 정상에 섰을 때만 느낄 수 있는 그 짜릿하고 황홀한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어린 유영국은 걸음마를 옮길 때부터 산의 품에서 놀며 자연스럽게 산과 하나가 되어 갔다. 그러면서 차츰 자연이 주는 황홀한 재미와 기쁨도 알아 갔다. 산의 정상에 오르게 되면서 무엇보다 더 높은 곳에 올라야 더 멀리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저절로 깨닫게 되었다.
유영국은 시간이 날 때마다 산을 오르고 또 올랐다. 산은 계절에 따라 매번 다른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유영국은 여름 산도 좋아했지만 겨울 산도 사랑했다. 무성하던 잎을 다 벗어버린 채 앙상한 가지만으로 혹한의 계절을 버티는 설산을 바라보노라면 알 수 없는 아스라한 슬픔이 가슴으로 파고들어 코끝이 찡해지곤 했다.
그래서 눈이 펑펑 쏟아진 다음 날이면 집 앞에 서서 설산을 하염없이 바라다보곤 했다. 군더더기나 장식 따위는 다 벗어버린 채 알몸의 시린 뼈마디만으로 꼿꼿이 견디는 겨울 산의 모습은 묘하게 아름다웠다. 그 산을 오래 바라보면서 설산이 저토록 아름답게 빛나는 것은 바로 산이 품은 슬픔 때문이라는 것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유영국은 무채색으로 빛나는 설산을 볼 때마다 저도 모르게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어떤 뜨거운 소망이 솟구쳤다.
나도 저렇게 빛나고, 높고, 찬란한 사람이 될 거야….
해토(解土) 1961, 캔버스에 유채, 130 x 162cm : ‘해토(解土)’는 말 그대로 얼었던 땅이 풀려서 녹는다는 의미다. 겨울 눈 속에서 꽁꽁 얼었던 땅이 봄의 기운을 맞아 서서히 녹아 갈라지고 속살을 드러낸다. 이때 차가운 기운과 따뜻한 기운이 서로를 침투하고 대결하며 모종의 에너지를 발산하는데, 작가의 관심은 바로 그러한 자연의 조화를 어떻게 회화로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물감이 계속해서 겹쳐 발라지면서, 밑바탕의 색은 표면 위로 은은히 배어 올라온다. 붓보다는 나이프가 적극 활용되어, 거친 표면의 마티에르는 독립적인 ‘물질성’을 갖게 된다. 캔버스 위에 물감이라는 회화의 근간에 충실하되, 이를 통해 자연의 오묘한 원리를 담아내려는 시도다. 이 작품은 1962년 제1회 《세계문화자유회의 초대전》에 출품된 바 있다.
그렇게 어린 유영국의 가슴에는 단순하면서도 날카로운 설산의 기개와 천 년의 비바람에도 끄떡하지 않는 산의 아우라가 장엄하게 새겨지고 있었다.
이렇게 유영국을 키운 것은 백두대간을 잇는 태백산맥의 기세 장대한 산들이었다. 산에서 뛰어놀며 산의 정기를 받으며 어떠한 고난에도 꿈쩍하지 않는 결연한 기개와 절대 의지를 온몸으로 배웠던 것이다. 그렇게 산은 유영국 일생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절대적 예술혼의 모태이자 그의 궁극적 지향이 되어갔다.
유영국에게 산이 아버지라면, 바다는 어머니였다.
집에서 야트막한 동산 하나만 넘으면 흰 파도가 사시사철 넘실대는 푸른 동해였다. 유영국은 바다의 찬 기운이 채 가시지도 않은 초봄부터 동무들과 바닷가로 달려나갔다. 그깟 야산 하나 넘는 일은 산골 아이들에겐 일도 아니었다. 그에게 좁은 냇가에서 멱이나 감는 것은 성에 차지 않았다. 기어이 산을 넘어 포말을 쏟으며 넘실대는 푸른 바다에 몸을 담가야 직성이 풀리곤 했다.
바닷가에 간 날에는 해가 지고 온몸이 새까맣게 익을 때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친구들과 놀았다. 온몸에 오스스 소름이 돋아도, 이가 달달 떨려도 좋았다. 사내아이들의 웃음소리는 포말에 실려 동해 저 멀리 퍼져나갔다. 어린 유영국은 친구들과 누가 더 먼 바다로 나가나 내기하기를 좋아했다. 내기를 시작하면 조금만 센 파도가 몰려오자마자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 나오는 아이들과는 달리 그는 높은 파도가 와도 물러서지 않고 이를 악물고 버텼다. 친구들을 이기겠다는 마음보다 파도에 떠내려갈 것 같은 두려움을 꾹 참고 이기고 나면 거대한 자연과 하나 된 듯한 어떤 짜릿한 느낌이 좋았기 때문이었다.
유영국에게 끝없이 펼쳐진 바다는 호기심의 대상이자 미지의 세계 그 자체였다. 보통학교 고학년이 되고부터 그의 호기심은 점점 더해졌다. 정상에 오르면 탁 트인 아래를 여실히 보여주던 산과는 달리, 바다는 아무리 바라봐도 그저 넘실거리는 파도만 보여줄 뿐이었다. 그는 파도를 타고 수평선까지 가서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그가 살고 있는 곳보다 더 멀리,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보고 싶었다. 소년은 궁금했다. 저 바다 너머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어른들이 말하던 다른 나라들이 있을까. 그 나라엔 어떤 신세계가 펼쳐지고 있을까. 소년 유영국은 언젠가부터 바닷가에 수평선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곤 했다.
그래, 저 너머엔 분명 더 큰 세상, 더 큰 무언가가 있을 거야.
지금 내가 산을 오르는 건 더 높이 올라 더 멀리 보기 위해서야.
지금 내가 저 바다를 바라보는 건 저 바다 너머의 세상이 궁금해서야.
유영국은 다짐했다. 언젠가는 저 너머의 세상을 찾아가겠다고, 더 넓고 더 멋진 미지의 세상을 내 눈으로 보고야 말겠다고. 그렇게 태백의 산과 동해의 바다는 어린 유영국을 가르쳤다.
거센 파도를 타고 넘어서야 저 바다를 건널 수 있고, 산은 올라봐야 그 절대의 높이를 알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넓고 자유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두려움을 이기고 저 넘실대는 파도와 맞서야 하며, 어떤 비바람에도 끄떡 않고 천년만년을 견디는 태백산맥처럼 자신의 소신과 의지를 굳건히 지켜내야 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