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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Feb 16. 2017

02. 나와 내 시간, 함부로 대하지 마세요.

<일하는 엄마, 육아휴직 일 년>

첫아이를 낳고, 일 년의 육아휴직을 한 뒤 회사로 복귀하리라고 마음먹었던 K씨. 하지만 그녀는 복직이 가까워질수록 고민이 커져갔다. 양가 부모님들께 아이를 맡기기에는 어려운 상황인 그녀는, 어릴 때부터 유독 예민하고 산만한 성격의 아이를 어린이집에 떼어놓을 자신도 없었거니와, 믿을 만한 도우미 아주머니를 구하는 일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엄마들이 다 잘 알고 있듯이, 아기가 돌쯤 되면 ‘얘랑 어떻게 떨어지나.’ 싶을 정도로 예뻐서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자신의 손으로 키우고 싶다는 욕구가 앞서기도 했다.

마침 K씨가 하던 일은 재택근무가 가능한 직종이라서 남편과 상의한 끝에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직접 엄마 손으로 키우기로 했다. 원래 다니던 회사는 그만두고, 그녀의 상황을 좀 더 고려해줄 수 있는 작은 규모의 회사와 협의가 되어 재택근무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K씨는 주중에는 아이의 낮잠 시간과 남편이 퇴근한 심야 시간을 활용해서 하루 서너 시간씩만 일하고, 주로 주말에 몰아서 일하게 되었다. 회사 다닐 때보다는 일이 좀 적어지고 수입도 줄겠지만, 커리어를 지키면서 아이도 키울 수 있으니 너무도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뿐 아니라 모든 가족들이 말이다. 처음에는!

재택근무로 다시 일하게 됐을 때, 일 년간 쉬었던 공백이 느껴지며 체력적으로 힘들기는 했지만 K씨는 일종의 해방감마저 느꼈다. 아이한테 모든 시간을 다 쏟느라고 그동안 잊고 있던 자신을 되찾은 느낌이랄까? 경제적인 능력이 아직 있다는 자존감과 사회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안도감, 그리고 성과가 좋을 때 느껴지는 성취감까지, 그녀는 이전보다 훨씬 즐거웠고 활력을 얻었다. 비록 잠을 줄여가며 일해야 하고, 일이 몰릴 때는 밤샘도 잦아 몸은 피곤하긴 했지만 말이다. 나날이 예뻐지고 애교가 늘며 엄마와의 애착도 잘 형성된 아이를 보고서 K씨는 정말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생겼다. 가장 큰 스트레스는 내 몸이 물리적으로 힘든 게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이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 데서 비롯됐다. 차로 4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살고 계시는 시부모님은, 며느리가 아이를 직접 키우면서도 일을 해서 돈도 번다는 사실에 처음엔 당연하게도 너무나 좋아해 주셨다. 하지만 이러한 며느리의 변화된 상황과 별개로, 온 가족들이 다 모이는 것은 예전과 다름없이 ‘매주’ 이뤄지기를 원하셨다. 가족이라면 일주일에 최소 한 번은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것이다. 한창 예쁜 짓을 많이 하는 손주가 당연히 보고 싶으실 거라고 생각하지만, 주중에 아이를 보는 대신에 주말에 일주일 치의 일을 몰아서 해야 하는 K씨의 입장에선 매주 주말 중 하루를 시댁 모임에 할애해야 한다는 사실이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혹시라도 바쁜 일이 몰려서 도저히 밤잠 줄이는 것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아 한 주를 건너뛰고 얼굴을 못 비추게 되면 시댁에서는 어김없이 남편을 통해 서운함을 내비치셨다. 그래서 K씨는 주말에 시간이 없으니 차라리 주중에 아이를 데리고 찾아뵙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시부모님은 “그러면 우리 아들은 언제 보니? 그리고 우리도 주중에는 다른 약속이 많으니 예전처럼 주말에 만나는 것이 좋겠다.”고 딱 잘라 말씀하셨다. 일해야 하는 입장을 조금만 이해해주시면 좋을 텐데, 할 수 없이 K씨는 결국 그나마 한 달에 한 번 정도 가던 친정에 가는 횟수를 더 줄이고, 시간이 나는 대로 시댁 행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일이 터졌다. 마감을 앞두고서 K씨가 시댁에 연속으로 2주 동안 가지 못한 것이다. 며칠 후, 한밤중에 시아버지께서 그녀에게 취중에 전화를 걸어 한바탕 심한 소리를 하셨다. 그날 K씨는 아기를 재우면서 두 시간 동안이나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제가 뭘 잘못한 걸까 생각했어요. 노느라 찾아뵙지 못한 것도 아니고, 충분히 양해도 구했는데 너무 속상했어요. 가장 기분이 나빴던 것은 왜 저의 시간은 아무렇게나 생각하는 건지, 왜 제가 하는 일에 대해서는 가정 대소사 다 챙기면서 할 수 있는 가벼운 일이라고 쉽게 생각하는 건지였어요. 주중에 육아하고, 주말엔 회사에 다닌다고 제 입장에 서서 생각해보면 좀 더 너그럽게 이해할 수 있으실 텐데 말이에요.”

최근에는 아이가 좀 커서 엄마와도 잘 떨어지기 때문에 이제는 일이 바쁠 때면 아이와 남편만 시댁에 방문하는 식으로 정리되었지만, K씨에겐 시아버지에게 꾸중을 들었던 그 날의 기억이 아직도 앙금처럼 남아 있다. 일도 하고 아이도 키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고 있건만, 시댁에서는 ‘직장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처럼 바쁘지도 않으면서, 집에 있는 다른 며느리들처럼 자주 오지도 않는’ 사람으로만 비쳐지나 보다 싶어 서럽고 억울한 마음이 든다고 그녀는 고백했다.

그녀의 말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부분은 “시간을 훔쳐오고 싶다.”라고 한 것이었다. 워킹맘들이 가장 공감할 만한 말이 아닐까? 회사 일, 육아 둘만 해도 시간이 부족하고, 몸이 세 개라도 모자랄 판에 온갖 가정 대소사는 모두 다 여자의 몫이니 말이다. 조금이라도 소홀하면 “도리를 다하지 않는다.”라는 비난을 받기 일쑤인 그 모든 일이 다 자신의 몫이란 생각에 억울하다는 워킹맘들이 많았다.

‘만성 시간 결핍증’은 나 역시도 늘 겪고 있는 증상이다. 우리 회사는 아파트가 많은 목동 한가운데 있다. 내근하는 날, 점심을 먹고서 회사로 들어오다가 횡단보도에서 유모차를 밀면서, 또는 아기 띠를 하고 큰아이 손을 잡고 산책하는 엄마들을 종종 목격한다. 그럴 때 그 모습이 여유로워 보이면서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 평일에 나도 저렇게 아이의 손을 잡고 동네를 걸을 수 있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워킹맘들은 정말, 정말, 정말로 바쁘다(물론 전업맘들 역시도 직접 집안일과 육아를 하느라 바쁜 일들이 많을 것이다). 주중에는 회사를 가느라 못했던 여러 가지 일들을 주로 퇴근 이후나 주말에 몰아서 하려다 보니 늘 마음만 바쁘다. 평일에 하지 못했던 것들을 수행할 수 있는 시간이 오로지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뿐이기 때문에 워킹맘들의 주말 스케줄은 늘 빼곡하다. 주중에 아이와 함께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일들 역시도 주말에 다 소화해야 한다.

가령, 평일에는 보내지 못했던 문화센터나 예체능 교실(미술, 수영, 음악 등)을 다니거나, 도서관이나 박물관에 데리고 가거나, 전시나 공연을 보거나, 또는 아이의 친한 친구를 집으로 초대하여 맛있는 것을 해주기도 한다. 평소 만나지 못했던 전업맘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듣기도하고, 하다못해 집에 있지 않고 어디든 나가서 이벤트를 해줘야 할 것만 같아서 가족끼리 차를 타고 교외로 나가보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엄청난 인파와 교통 체증에 시달려서 피곤함과 후회가 몰려오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런 시행착오라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주중에 아이와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만회해보려는 워킹맘 특유의 보상 심리 때문이 아닐까?

워킹맘들은 하루 24시간을 쪼개고 쪼개도 늘 시간이 모자라서 아쉽고 정신이 없다. 회사 업무에 이어 집안일과 육아, 각종 스트레스가 마치 릴레이 미션처럼 주어지기 때문이다. 하나의 미션을 클리어하면 또 다른 미션이 기다리고 있다(개인적으론 가끔 한 단계, 한 단계씩 ‘스테이지 클리어’하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챙길 것이 워낙 많다 보니, 휴대전화 알람에다 스케줄러까지 동원하는데도 종종 집안 경조사나 중요한 미팅 약속을 잊는 경우도 다반사다. 가끔 중요한 일들을 깜빡 잊어버릴 때, “대체 정신을 어디에다 두고 다니는 거냐?”, “엄마가 되어서 그깟 일 하나 못 챙기느냐?”라는 질책이라도 들을 때면 그저 억울하다. 상대방을 붙잡고 넋두리라도 하고 싶다.

내가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쪼개 쓰는지 알면 그런 소리를 함부로 하지 못할 텐데, 내가 지금 이만큼 정신을 부여잡고 사는 것도 기특한 수준이라고요!


이렇게 말이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소중한 것이지만 특히나 여러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해야 하는 워킹맘의 시간은 그야말로 일분일초가 아쉬울 만큼 금쪽같은 것이라고, 주변에서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 빈틈없이 촘촘하게 짜인 스케줄 속에서, 지금 이 순간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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