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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Feb 15. 2017

10. 나는 영원한 흙수저인가. (마지막 회)

<정의는 약자의 손을 잡아줄까>

청년을 은유하는 단어는 정말 많습니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요즘 젊은 세대를 가리켜 3포 세대라고 하지요. 여기에 취업과 주택 구매, 인간관계와 희망까지 포기했다고 해서 7포 세대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헬조선, N포 세대 등 청년에게 한국이라는 땅은 언제부턴가 정말 살기 버겁고 힘든 곳이 되어 버렸습니다.

     
기업의 하반기 공채가 한창인 가을, 청년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일하고 싶어도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있는 청년이 110만 명에 달한다는 통계를 볼 때마다 숨이 막혀왔습니다. 2015년 가을, 취업 준비생의 초상을 절절하게 그리겠다는 목표로 저는 섭외에 나섰습니다.
    

 
     
아르바이트만 10여 개, 시간도 돈도 부족하다.
     
예상보다 섭외는 쉽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어려운 얘기를, 그것도 취업이 잘 안 되는 얘기를 방송에서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겠지요. 청년들은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가지고 치열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한 번에 적게는 대여섯 개, 많게는 10여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고, 취업 스터디를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토익 학원에서 때로는 면접 학원에서 젊음을 불태우고 있는 청년들의 사연을 듣고 있자니 마음이 절로 짠했습니다. 
     
그렇게 청년들과 수십, 수백여 통의 전화를 하다가 선뜻 카메라 앞에서 자신의 취업 이야기를 얘기하겠다는 청년을 만났습니다. 벌써 수십 번도 더 취업에서 떨어졌다는 형재 씨였습니다. 그를 처음 만난 곳은 한 휴대전화 대리점업체였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아르바이트하고 있었습니다. 이제까지 해본 아르바이트만 20여 개라는 형재 씨. 5학년 2학기째 학교에 다니며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학교 다니면서 취업 준비하고, 아르바이트까지 하는 일상이 쉽지 않을 텐데 그는 연신 웃었습니다. “집에 손 벌릴 입장은 아니라서요. 자력갱생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그는 익숙한 태도로 손님과 상담하며 휴대전화를 팔고 있었습니다.
     
그의 ‘스펙’은 절대 나쁘지 않았습니다. 서울 시내에 있는 4년제 대학의 경영학과, 해외 교환학생도 다녀왔고, 학점은 3.0이 넘습니다. 토익도 900점입니다. 하지만 서류 전형에서 낙방하기 일쑤였습니다. 곁에서 듣는 제가 더 답답할 지경이었습니다. 도대체 그는 왜 자꾸 취업에 실패하는 것일까요?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걸까요?
     
학비와 생활비를 스스로 벌어가며 숨 돌릴 틈도 없이 달리고 있는 형재 씨. 취업 준비 과정에서는 돈과 시간이 곧 경쟁력인데, 그에게는 둘 다 절대적으로 부족해 보였습니다. 취재하는 과정에서 그는 코이카 인턴 면접도 보았습니다. 계약 기간은 6개월에 불과하고, 향후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는 그런 인턴 자리라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와 함께 학교 캠퍼스를 걸었습니다. 그는 학비와 생활비를 스스로 벌어가며 열심히 생활하고는 있지만, 취업 준비 과정에서는 돈과 시간이 부족한 것이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고 말했습니다. “설거지 아르바이트하면서 돈 모으면… 시급이 7천 원이라고 치면 10시간 하면 7만 원이잖아요. 10시간 일하면 토익 시험 한번 볼 수 있는 거죠. 스피킹 시험 한 번.”
   
설거지하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이런저런 돈 걱정 없이 취업 준비에만 몰두할 수 있는 ‘금수저’ 청년을 부러워했을까요? 노력해도 문을 열어주지 않는 사회의 높은 문턱을 원망했을까요? 아니면 둘 다였을까요? 컴퓨터 앞에서 수십 개의 이력서를 회사별로 정리해놓은 그의 파일들을 함께 열어보고 있자니 마음이 더 안타까웠습니다.
     
형재 씨의 사정은 ‘그나마’ 나은 편입니다. 모든 사람이 형재 씨처럼 서울 시내의 4년제 대학을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청년도 소수입니다. 어려운 형편 탓에 대학을 가지 못하고 스스로 길을 찾아 나서야 했던 김영 씨.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하고 돌아온 그는 현재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고향은 지방이지만 서울이 아무래도 정보가 많을 것 같아서 상경했습니다. 
     
팍팍한 고시원 생활. 정신없이 아르바이트하고, 공부하고, 구직하는 생활의 연속이지만 그래도 아직 젊으니까 기회는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평소 외식 분야에 관심이 많아서 주로 호텔이나 레스토랑 등 관련 분야 아르바이트에 지원해왔습니다. 외식업체니 때때로 맛있는 음식도 먹어가면서 경험도 쌓고 돈도 벌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런 생각은 희망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아르바이트하면 최저임금조차 지켜지지 않기가 일쑤였고, 근로 조건이 애초 계약과 다른 경우도 많았습니다. 지난해 근무한 한 호텔에서는 근로 조건을 알려달라고 했다가 다음 날 바로 해고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호텔 측의 대응이 다분히 감정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정식으로 노동청에 신고했습니다. 힘없고 가진 것 없는 청년은 이렇게 함부로 해고해도 되는가. 그는 억울한 눈물을 삼켜야 했습니다.
     
청년들에게 진짜 희망을 줄 수 있는 해법을 언제쯤 우리 사회가 내놓을 수 있을지 현재로써는 막막하기만 합니다. 자신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열패감, 노력해도 안 된다는 좌절감. 이런 아픔에서 벗어나기 힘든 청년들의 마음을 우리 사회가 어루만져줄 필요가 있습니다. 가난해도, 가진 것이 없어도 열심히 노력하면 공정한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가장 평범한 ‘인생의 룰’이 우리 사회에서 지켜질 수 있다는 것을 청년들에게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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