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굿북 Feb 17. 2017

03. 남편부터 내 편으로 만들어라.

<일하는 엄마, 육아휴직 일 년>

최근에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에 돌입한 친한 친구가 있다. 결혼할 때, 신혼 때는 남편이 자신을 위해서 많은 부분을 배려하고 챙겨준다면서 행복해하던 그녀가 최근에는 “남편의 행동이 사사건건 다 꼴 보기 싫어진다.”고 폭탄선언을 해서 깜짝 놀랐다. 아이들을 돌보느라 잠도 모자라고 개인 시간을 가져본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면서, 추레한 꼴로 하루 종일 집에서 동동거리다 보니 어느 순간 출산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생활을 하는 남편이 그렇게나 얄밉게 보이더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 친구의 남편은 아이가 태어난 후에도 술자리나 골프모임 등 개인 생활을 하나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나만 손해 보고, 나만 초라해지고,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서 너무 억울해.”

그러면서 그녀는 얼른 다시 회사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했다. 몸이 힘들고 마음이 지치니 자연스레 남편에게 말도 곱게 나가지 않는다면서, 매번 짜증을 내는 자신에게 남편 역시 참지 못하고 화를 내는 일이 늘었다고 했다.

“이러다 좋았던 부부 사이가 엉망이 될까 봐 걱정도 되고. 아휴, 일단 너무 힘들어.”

친구는 푸념과 함께 과거에 좋았던 부부 사이를 떠올리면서 우울하다고 말했다.

아마도 이 친구 말고도 많은 엄마들이 비슷한 경험을 겪어보았을 것이다. 육아휴직 동안에 육아와 집안일에 오롯이 뛰어든다는 것 자체로도 이미 여성들에게는 많은 갈등과 고민이 생겨난다. 왜냐하면 그 전과는 완전히, 전혀 다른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육아휴직 중에 겪게 되는 가장 큰 갈등 중 하나는 (미처 생각지 못한 여성들이 많겠지만) 바로 남편과의 관계다. 함께 회사 다니면서 일할 때는 몰랐다가, 아이를 낳은 뒤에 자신이 집에 들어앉아 있자니 둘의 역할이 자꾸만 불평등하다고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보통 아이가 태어난 뒤 1차 위기는 자신은 엄마라는 이름으로 많은 것을, 아니 삶의 거의 모든 것을 희생하는데 남편은 아이가 생기기 전이나 후나 다를 바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단 생각을 하게 되면서부터 생긴다. 요즈음엔 기꺼이 육아에 적극 참여하고 싶어 하는 아빠들이 많기는 하지만, 아이를 키운다는 게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또한 출산으로 인해 부부 중심의 삶에서 어떤 변화가 생겨나는지를 알지 못한 채 아기를 맞이하는 아빠들도 여전히 많다.

엄마도 마찬가지지만 아빠도 물론 자신의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아이를 가졌을 때부터 출산휴가나 육아휴직 기간에 펼쳐질 일들에 대해 아내와 남편이 많은 대화를 나눠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이 결과적으로 엄마의 성공적인 복직 준비를 위한 초석이 될 것이다. 엄마도 준비가 필요하듯, 아빠도 당연히 미리 육아에 대해 준비를 해야만 한다. 서로 많이 이야기하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부딪쳐봐야 남자들도 아이를 키우는 일에 대해서 현실적으로 고민하고 마음의 각오를 하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아빠는 아이가 자라서 본격적으로 의사소통하게 될 때까지 아이와 둘이 남겨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따라서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 아빠 그리고 아이 모두를 위해서 아빠와 아이가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좋다. 일부러라도 기회를 만들어서 아이와 아빠만의 시간을 가지게 하면 둘은 서로 이해하고 교감하는 과정을 거칠 수 있다.

특히 워킹맘이 성공적으로 복직해서 일을 계속하기 위한 기본은 바로 육아의 다른 중요한 한 축인 아빠의 지지와 지원이다. 이는 가장 중요하고도 절대적인 요소라고 단언할 수 있다. 따라서 미리 남편과의 역할 분담을 해놓길 바란다. 성공적인 복직을 위해서 육아휴직 기간부터 아빠의 역할을 확실히 해두고 적극적인 협조를 구해놓아야 한다.

육아휴직 기간 동안 아이를 오롯이 엄마 혼자 돌보다가 복직 후부터 갑자기 엄마의 역할을 아빠나 다른 가족들과 급하게 나누다 보면 가족들이 고생하는 것은 물론이요, 가장 힘든 것은 아이다. 그렇게 힘들어하는 아이 때문에 더 무거운 짐을 져야 하는 것은, 안 그래도 복직에 적응하느라 고군분투해야 하는 엄마다. 그렇기 때문에 복직 후 많은 워킹맘이 위기를 맞게 되는 것이다.

하나 더 덧붙이자면, 언제든 복직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남편을 비롯한 가족들에게 수시로 알려야 한다. 가족들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니 말이다. 당연히 복직할 것이라고 혼자만 생각하고 있다가, 복직을 코앞에 두고서 슬슬 복직 준비를 하겠다고 하자, “아니, 아이가 아직 이렇게 어린데 벌써 회사에 나가겠다고?”라는 남편이나 부모님의 말을 듣고 좋은 복직 기회를 놓치는 경우를 여러 번 봐왔기 때문이다.

첫째를 낳고서 언젠가 남편에게 ‘아빠가 된 소감’이 어떤지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인 내가 느끼는 것처럼, 감격스럽다거나 좋다거나 사랑스럽다거나 하는 대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뜻밖에 돌아온 대답은 그런 게 아니었다.

음, 그게… 일단 어깨가 무거워.

뭔가 감상적이지 못한 대답에 놀라서 다시 물어보니 남편의 설명은 이랬다. 여자들은 임신하면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아기와 함께 호흡하고 아이의 움직임도 느끼면서 한 몸으로서의 교감이 있는 것 같은데, 남자들 입장에서는 ‘내 아이가 생겼다.’라는 사실을 머릿속으로만 생각하면서 임신 기간을 보내다 보니, 분만실에서 자신의 아이와 마주했을 때 얼떨떨한 기분이 먼저 들었다고. 물론 이후에 아이와 생활하는 시간을 길게 가질수록 점차 애착과 사랑이 커졌다고 했다(심지어 남편은 뱃속에서부터 아기와 교감을 나눴던 내가 부러울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워낙 아이를 좋아하고 육아에 협조적인 남편이었지만, 그래도 평소엔 밤늦게 귀가하는 일이 많아서 아무래도 나보다는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올해 초, 내가 두 번째 복직을 한 뒤엔 상황이 좀 달라졌다. 내가 남편보다 일찍 출근하게 되는 바람에 두 아이가 아침마다 두 시간 정도씩 아빠와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다. 몇 달이 지나자 아빠와 아이들의 관계가 눈에 띄게 긴밀해지고 스스럼이 없어졌다(물론 원래도 친했지만 더욱 세세한 부분까지 서로 알게 되는 효과가 있었다. 엄마는 모르는 비밀 공유 같은 것 말이다).


남편은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생활하게 되면서, 둘째가 오늘 언니를 흉내 내면서 어떤 표정을 지었다든지, 오늘 어떤 단어를 처음으로 말했다든지, 정강이에 멍 자국이 하나가 생겼다는 식의 아주 사소한 변화도 알아채고서 내게 알려주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혼자서 두 딸아이와 매일 아침 두 시간 가까이 함께한다는 게, 남편 자신도 처음에는 무척 걱정스러워 했었지만, 이런 경험이 누적되면서 이제는 이 과정을 본인도 특별하게 느끼고 있는 것 같다. 내게 “출근 준비도 해야 해서 몸이 바쁘긴 하지만, 내 아이들을 더 잘 알게 된 것 같아서 좋다. 만족스럽다.”라고 하는 걸 보면 말이다.

워킹맘으로서 두 아이를 키우다 보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쳇바퀴 속에 들어앉은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허겁지겁 출근하고 퇴근하고, 또 퇴근 후에는 저녁을 차리거나 아이들을 재우는 식의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금세 나 자신을 잃어버리고 지치기도 쉽다. 하지만 이럴 때 버틸 수 있는 힘은 바로 가족들에게서 나온다. 특히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남편이 절대적으로 내 편이 되어주지 않으면 이런 생활을 지속하기가 상당히 고되고 힘들겠다는 점을 절실히 느낀다.

내가 일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나가는 데 대한 서로의 이해와 지지, 공감대를 확보하고, 일과 가정의 성공적인 양립을 위해서 부부가 각자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지 터놓고 이야기하는 기회를 가지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둘이 합심하여 아이를 만들었듯이,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도 남편은 아내의 공동 운명체이자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남편의 적극적인 지지가 없으면 워킹맘의 성공적인 복직은 요원하다. 요컨대, 남편이 가장 중요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00. <도널드 트럼프의 빅뱅> 연재 예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