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그 시절, 우리가 동경했던 그

<그때 당신이 거기에 있었다>

by 더굿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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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운 일도 잊어야 하고,
평생 놓지 못할 것 같은 일도 언젠가 놓아야 한다.
이 페이지를 넘겨야 다음 페이지를 써내려갈 수 있고
그래야만 인생이라는 책이 조금씩 완성되어 간다.
먼 훗날 이 책을 다시 꺼내어 읽어보면
지난 일들은 아름답고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저 앞의 모퉁이를 돌기만 하면 된다.

광저우의 날씨는 덥고 습하다. 공항을 빠져나가자마자 찌는 듯한 더위에 숨이 턱턱 막혔다. 숨을 쉴 때마다 뜨거운 물을 들이마시는 것 같았다.

나는 샤오바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뭐하고 있어?’

잠시 후 답장이 왔다.

‘네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지.’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능청스러운 녀석….’

이내 또 하나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넌 뭐하고 있어?’

내가 대답했다.

‘숨쉬기 그리고 네 생각 하기.’

곧바로 답장이 왔다.

‘싱겁기는.’

내가 물었다.

‘오늘 저녁에 볼까?’

그가 대답했다.

‘그래. 저녁에 봐.’

샤오바이와 나는 자주 만나는 편은 아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기껏해야 2년에 한 번 만나는 정도다. 그러나 어떤 도시에 살든, 어떤 환경에서 만나든, 주위에 어떤 사람들이 있든 우리의 관계는 기숙사의 이층침대를 나눠쓰던 학생 시절과 다르지 않다. 마치 그 시절의 빛바랜 사진 속에서 막 튀어나온 것처럼.

대학교에 입학해 기숙사에 들어갔을 때 샤오바이와 나는 이층침대를 나눠 써야 했다. 나는 침대 위층을 바라보고는 아주 잠깐 망설였다.

그런데 그때 샤오바이가 유창한 표준어로 말했다.

“제가 위층을 쓸게요. 당신이 편하게 아래층을 쓰세요.”

나 역시 그에게 아래층을 양보하려던 참이었다. 그래야 어른스러워 보일 테니까. 하지만 당시 나는 표준어가 서툴렀고 말솜씨도 없어서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그의 호의를 받아들여야 했다.

나는 첫 만남 때부터 샤오바이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는 다른 사람을 잘 배려하고, 예의 바르며, 도움을 줄 때도 상대방이 거절할 수 없게 만드는 카리스마가 있었다.

샤오바이는 공부도 잘했으며, 글솜씨가 좋을 뿐만 아니라 글씨도 잘 썼다. 피부는 여학생보다 고왔고 운동이면 운동, 노래면 노래, 못 하는 것이 없었다. 조각같이 잘생긴 얼굴은 아니었지만 드라마 <상속자들>의 김우빈처럼 개성 있고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그런 얼굴이었다. 그는 어떤 무리에 속하든 단연 돋보였다.

나는 샤오바이와는 전혀 딴판으로, 뭘 하든 서툴렀고 한참이 지나서야 관심을 갖게 되는 유형의 남학생이었다.

학교에서 단체로 소풍을 가면 가장 먼저 들리는 소리는 이런 것이었다.

“샤오바이, 너 정말 꼼꼼하게 챙겨왔구나.”

친구들은 소풍이 끝나갈 무렵이 되어서야 내가 챙겨온 것들을 발견하고 이렇게 말했다.

“류통, 너도 준비 많이 해왔네.”

단체로 아침 달리기를 할 때 가장 먼저 들리는 소리도 이것이다.

“샤오바이, 너 정말 몸 좋다!”

달리기가 끝나고 나서야 몇몇 여학생이 나를 발견하고는 이렇게 말했다.

“류통, 너도 생각보다 몸이 좋네.”

샤오바이와 함께 다니다 보니 점점 ‘너도’라는 말에 익숙해졌다. 어쩌면 그와 함께 다녔기 때문에 내가 가진 장점들이 조금이나마 사람들 눈에 띌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샤오바이는 입학한 지 일 년 만에 ‘전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학생’이 되었다. 나는 그와 이층침대를 나눠 쓰는 사이였기 때문에 자연스레 ‘전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남학생의 침대 아래층 친구’로 소문이 났다.

학창시절 나는 굉장히 소심하고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여서 일탈은 꿈도 꾸지 못했다. 오늘날 내가 후회하는 두 가지 일도 바로 이러한 성격과 관련이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날, 엄마는 친구들과는 표준어로 이야기하라고 내게 신신당부하셨다. 그런데 내가 표준어로 말하기 시작하자마자 친구들은 사투리로 놀려대기 시작했다. 친구들의 놀림을 견딜 수 없었던 나는 곧장 원래대로 사투리를 썼고, 그 때문에 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야 표준어를 익히느라 한동안 애를 먹었다.

또 한 가지는 이것이다.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는 수요일마다 영어 동아리에 가서 영어회화를 공부했다. 그런데 기숙사에 돌아와 룸메이트들에게 영어로 말을 걸면 그들은 내 억양이 인도식 영어와 똑같다고 놀려댔다. 결국 나는 영어로 말하기를 그만두었다.

당시 주변 환경이 나빴다고 원망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때 나는 왜 그렇게 자신감이 없었을까 후회할 뿐이다. 어쩌면 우리는 남들이 모두 자기 자신과 똑같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종종 자신의 기준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자신과 같아지기를 강요한다.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른 사람도 이상하게 생각해야 하고, 내가 보기에 타당하지 않은 것은 다른 사람도 계속하면 안 된다고 여기는 것이다.

어쨌든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12년 내내 같은 동네, 같은 친구들 속에서만 지내다가 대학교라는 새로운 환경에 발을 들이자 나는 마음이 너무나 설렜다. 어느 날, 교내 노래경연대회 광고문을 보고 심장이 마구 뛰었는데, 상을 받고 싶다기보다는 내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지 담력을 시험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눈에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이는지도 알고 싶었다.

강의실에 갈 때마다 나는 매일 멈춰 서서 노래경연대회 광고문을 바라보았다. 신청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꼭 참가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어떤 노래를 불러야 할지도 몰랐다. 친구들에게 말해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럴 만한 용기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마감 날짜가 다가오도록 고민만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샤오바이가 내 고민을 알아차린 듯 이렇게 말했다.

“노래경연대회, 정말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샤오바이가 말했다.

“나도 참가해 볼까 봐.”

그가 참가한다는 말을 듣자 나는 자신감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언젠가 그의 노래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때로는 섬세했고, 때로는 굉장히 박력이 넘쳤기 때문이다. 나는 차라리 그의 팬클럽이나 결성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말했다.

“그래. 네가 참가한다면 내가 가서 팬클럽을 결성해올게.”

그러자 샤오바이가 말했다.

“그러지 말고 우리 같이 나가자. 너도 노래 잘 부르잖아. 함께 남성 듀오를 만드는 거야.”

“뭐?”

나는 그의 제안을 듣고 어리둥절했다. 늘 조연만 하던 내게 갑자기 주인공 역할을 같이 하자고 하다니….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러나 이번에 그의 제안을 거절하면 앞으로 다시는 용기를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샤오바이에게 말했다.

“정말 내가 같이 나가도 괜찮겠어?”

그가 웃으며 말했다.

“너만 좋다면 함께 나가고 싶어. 준비되면 신청하러 가자. 내가 있는 데 무슨 걱정이야.”

내가 대답했다.

“그래. 좋아.”

우리는 당시 유명한 남성 듀오의 곡을 골라 노래방에서 밤새워 연습했다.

사실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시간이다.

첫 번째 선발전에서 노래를 부르는데 학생들의 박수와 함성소리에 묻혀 내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너무 긴장한 탓에 음정도 빗나갔지만 다행히 샤오바이가 바로잡아줬다.

나는 대기실로 돌아와 샤오바이에게 사과했다.

“미안해. 내가 너무 긴장해서 음정이 다 틀려버렸어.”

샤오바이가 말했다.

“무슨 소리야. 반주 소리가 너무 커서 네 목소리는커녕 내 목소리도 안 들리던걸.”

그의 말이 맞았다. 심사위원들도 내가 음정이 틀린 것을 듣지 못했는지 우리는 2등으로 결선에 진출하게 되었고 교내 노래경연대회에서 최종적으로 준우승을 차지했다.

그 후 학교에서 행사가 열리면 모두들 샤오바이와 나를 초청했다. 나는 더 이상 광고문 앞에서 망설이던 소심한 남학생이 아니었고 음정을 틀리는 법도 없었다. 기분이 좋을 때는 학생들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여유까지 생겼다.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포기할 뻔했던 소심한 남학생은 이렇게 마지막 순간에 등 떠밀리듯 무대에 서게 되었고, 그 이후로 우리는 소위 ‘절친’이 되었다.

샤오바이와 절친이 되기 전에는 그가 어떤 일에든 오케이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가까워지고 보니 그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모든 것을 다 가지려고 하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따라다니는 여학생이 많았지만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 사귀어 온 여자친구 단 한 사람에게만 충실했다.

샤오바이와 그녀는 서로 다른 지역에 있는 대학교에 합격해 멀리 떨어져 지내고 있었는데, 두 사람은 밤마다 통화하며 그리움을 달랬다. 종종 내가 잠들기 전부터 아침에 일어날 때까지 통화가 계속될 때도 있었다.

내가 물었다.

“매일 똑같은 사람과 똑같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지겹지 않아?”

샤오바이가 되물었다.

“매일 똑같은 사람과 똑같은 이야기를 나누는데 부럽지 않아?”

나는 그 후로 몇 년이 지나 내게 그런 사람이 생기고 나서야 비로소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느 주말, 샤오바이의 여자친구가 기차를 타고 그를 만나러 왔다. 그녀는 우리가 상상하던 그대로 상냥하고 지적이며 누구와 함께 있어도 잘 어울렸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교정을 거닐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어찌나 달콤하고 따뜻하던지 세상이 모두 녹아버릴 것만 같았다. 샤오바이는 대학을 졸업하면 그녀와 결혼해 고향으로 내려가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살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나를 비롯해 대부분의 친구들은 당장 졸업 후의 뚜렷한 목표조차 없었다. 그런데 샤오바이는 이미 인생의 정상에 서서 모든 것을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어느 날 밤 기숙사에서 친구들끼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누군가 샤오바이에게 “세상은 넓고 다양한데 왜 그렇게 일찍 인생의 결말을 내리려 해?” 하고 물은 적이 있다. 샤오바이는 그것은 인생의 결말이 아니라 또 다른 인생의 시작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방 안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성공한 사람들만이 이야기할 수 있는 행복의 철학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한단 말인가!

나는 샤오바이와 생각이 완전히 달랐다. 내가 생각하는 세상은 굉장히 넓었고 나는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고 싶었다. 반면 샤오바이는 세상이 생각보다 넓지 않으며 운명의 상대를 만나면 일찍 자리를 잡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안타깝게도 샤오바이가 운명의 상대라고 생각했던 그녀는 대학교 3학년 때 그에게 이별을 고했다. 이별의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가 필요로 할 때 그가 옆에 없다는 것이었다. 연애 경험이 거의 없었던 나는 그녀의 말도 일리가 있다며 샤오바이를 납득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말없이 고개를 저으며 혼자서 밤새 술을 마셨다.

그녀와 헤어지기 전 샤오바이에겐 매주 거르지 않는 취미생활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글을 써서 그녀에게 보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 그가 글을 쓰는 모습은 다시 볼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나 역시 두 번의 연애 실패를 경험했고 헤어질 때마다 상대방에게서 샤오바이의 여자친구와 비슷한 이유를 들었다. 그런데 최근에야 깨달은 사실이 있다. 그녀들이 필요할 때 내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그녀들 옆에 아무라도 있었으면 할 때 내가 없었던 것뿐이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외로움을 달래줄 누군가 필요했던 것이다.

샤오바이에게 그녀는 세상에서 유일한 사람이었지만 그녀에게 샤오바이는 외로울 때 옆에 있어 주어야 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실연당한 이후 샤오바이의 웃는 얼굴은 거의 볼 수가 없었다. 그는 외출도 거의 안 하고 침대에만 줄곧 누워 있으면서 배가 고프면 친구들에게 먹을 것을 사다 달라고 부탁했다. 수업을 밥 먹듯 빠지고 시험 기간이 되어서야 겨우 책 몇 장 들춰볼 뿐이었다. 그는 마치 몸속의 피가 모두 말라버린 듯 생기가 하나도 없고 영혼이 어디론가 빠져나간 사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친구는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어 새 남자친구와 함께 유학을 떠난다고 말했다. 샤오바이는 말없이 전화기를 내려놓고는 나를 바라보며 힘겹게 말했다.

“그녀가…정말…떠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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