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굿북 Mar 02. 2017

10. 때로는 벼락치기가 정답이다. (마지막 회)

<오늘은 내 인생의 첫날이다>

“고통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성과는 기초 없이 세운 집과 같아서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_<채근담>


제일 잘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서슴없이 ‘벼락치기’라 답한다. 영어에도 ‘cramming’이라는 비슷한 표현이 있다. 번역하면 ‘벼락치기’ 또는 ‘초치기’다. 영어사전에 “Cramming, the act of attempting to learn large amounts of information in a short period of time, esp. for a test in high school or college.”(단기간에, 특히 고등학교나 대학시험을 위해 많은 양의 정보를 익히고자 하는 행위)이라 설명되어 있다. 

어릴 적부터 나는 시간에 쫓기고 엄청난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학습능력이 놀랄 만큼 증대되었다. 예전에 대학시험에서 수석입학자 인터뷰를 하면 다들 판에 박은 듯 

“교과서 위주로 평소에 예습, 복습을 꾸준히 했습니다.”

라고 답했다.

내 여동생도 이화여자대학교 영문과에 문과 수석으로 입학했다. 그때 우리 집에 기자들이 찾아와 어머니와 여동생 인터뷰를 하고 갔는데 기사에는 여동생도 “꾸준히 책상에 앉아서 예습 복습한 것이 비결이었다”라고 소개되었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도 어릴 때부터 꾸준히 앉아서 예습이나 복습을 하면 머리에 잘 안 들어왔다. 자꾸 다른 잡생각이 났다. 그래서 나에게 맞는 공부 방법이 벼락치기라고 스스로 진단을 내렸고 지금까지도 벼락치기를 하고 있다. 

요즘 가끔 어머니를 만나면 내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 말이 있다. 

“어머니, 그때 미리미리 공부 안 하고 만날 벼락치기 한다고 혼내셨잖아요? 그런데 그때부터 벼락치기 연습을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변호사로 일해 보니까 모든 일이 벼락치기가 아니면 진행이 안 되더라고요.”

물론 과장을 좀 보태어 어머니께 건네는 치기 어린 농담이지만, 나는 “평소 교과서 위주로 꾸준히 예습, 복습했습니다”라는 천편일률적 대답이 과연 공부 잘하는 비결이고, 그래서 인생에 성공하는 비결일까?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평소에 꾸준히 예습, 복습하는 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다. 매우 중요한 자세이며 길러야 할 습관이다. 하지만 누군가 “공부 잘한 비결이 무엇입니까?” 물었을 때 

“저는 주로 그때그때 몰아서 벼락치기를 했어요.” 

라고 답하는 사람은 없을까 하는 재밌는 상상을 해 보았다. 벼락치기는 사실 ‘고도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뇌의 기억 능력을 극대화하는 방법이다. ‘스트레스’와 ‘학습한 내용의 기억’이라는, 어찌 보면 어울리지 않는 요소를 섞어서 사람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시간이 촉박하고 마감이 임박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오히려 뇌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다. 

이 벼락치기 전법이 발상의 전환만 하면 이 땅의 젊은이들이 자신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는 전략이 된다. 3포니, 5포니 하면서 자포자기하게 하는 스트레스 상황, 이제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를 갔다 오니 취업은 안 되고 꽃다운 20대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절박함이 젊은이들을 내리누르고 있다. 말 그대로 시간에 쫓겨 무언가를 끝내야 하는 벼락치기 상황에 몰려있는 것이다. 나는 오히려 이때 자신의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한계상황까지 몰고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노력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 

살아보니 인생이라는 게 ‘수석 입학한 모범생’처럼 꾸준히 예습, 복습하면서 살아갈 수만은 없다는 것을 체득했다. 어차피 편안히 책상에 앉아 꾸준히 예습, 복습하면서 공부하듯 살 수 있는 게 인생이 아니라면, 절박한 상황을 이용해 벼락치기 하는 자세로 준비하고 도전하는 것이 어떨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서울대학교에 들어가고, 미국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비결을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저는 그때그때 밤을 새워 벼락치기밖에 한 게 없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02. 신발은 예뻐야 하나, 편해야 하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