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굿북 Mar 08. 2017

02. 두 번째 방, 이름 찾기

<일곱 개의 방>

언제까지 이렇게 참고 살아야 할까요? 제 자신이 너무 한심해요. 아빠한테 한 번만이라도 “싫어!”라고 말해보고 싶어요. 근데 막상 아빠 얼굴을 보면 입이 떨어지지 않아요. 오늘도 부모님 잔소리에 그냥 알았다고, 안 가겠다고 하고 말았어요. 친구들이랑 여행 가기로 했는데, 안 보내주실 줄 알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고 물어봤는데 역시……. 저 통금 시간이 9시예요. 저 같은 분 또 있나요? 그냥 우울해서 끄적거리고 갑니다. 그래도 이렇게나마 털어놓고 나니 마음이 좀 편하네요. 



댓글

원더걸 토닥토닥, 님 힘 내세여!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는 것도 방법이라는~~
↳ 토토로 넵, 감사합니당~ 독립은 힘들 것 같아요. 부모님이 절대 허락 안 하실 거예요. 규규 

크림파스타 헐, 통금 시간이 9시라……. 나이가 어떻게 되시는지? 
↳ 토토로 ㅠㅠ 20대 후반이에요. 
↳ 크림파스타 님도 그렇고 님 부모도 그렇고 비정상이네요~ 아직 정신적으로 미성숙한 거 아닌가요? 
↳ 토토로 너무 함부로 말씀하시네요. 님이 그렇게 말씀 안 하셔도 충분히 힘든 상황이에요. ㅠㅠ 

밝은생각 에휴,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남의 일 같지 않네요. 님 심정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그냥 포기하지 마세요. 위 분이 좀 함부로 쓰긴 했지만 아예 틀린 말은 아니에요. 20대 후반이면 부모에게서 독립할 나이가 맞아요. 님도 그러지 못해 괴로운 것 같은데……. 용기를 내셔서 한번 부모님과 진지하게 얘기 나눠보세요. 처음에는 떨리고 겁도 나겠지만 같이 얘기 나누다 보면 해결 방법이 생길 거예요. 정 안 되면 친구 집에 잠시 가 있거나 해서 좀 떨어져 지내는 것도 방법이고요. 어쨌든 기운 내세요! 
토토로 앗, 밝은생각님이시다! 지난번에도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셨죠? 혹시 밝은생각님 부모님도 저희 부모님이랑 비슷하신……? 
밝은생각 ㅎㅎ 네, 저희 부모님도 한 성격하신다는~ 저를 너무 믿고 의지하셔서 그런 것 같아요. 그래도 저는 떨어져 지내고 나서 사이가 한결 좋아졌어요. 일단 어떻게든 독립해보세요. 
토토로 네,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봐야겠어요. 밝은생각님, 고맙습니다. 고민 글 올릴 때마다 늘 친절하게 상담해주셔서 정말 힘이 돼요! 
밝은생각 에구, 별거 아닌 일인데요, 뭘. 힘이 되었다니 저도 기분 좋아요. 토토로님, 좋은 하루! 

댓글을 달다 보니 어느새 해가 기울어 방 안이 어두컴컴했다. 오늘도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온 글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회사를 그만둔 지 벌써 석 달이 지났다. 그리고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 지는 며칠이나 되었는지 모르겠다. 잠에서 깨어나 멍하니 눈을 뜨면, 오늘도 뭘 할까 생각하다 컴퓨터를 켠다. 다른 사람들이 올린 글을 읽고 고민 상담을 해주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내가 주로 활동하는 곳은 이삼십 대 젊은 여성들이 모이는 커뮤니티다. 내가 운영하는 곳도 아니고 게시판지기나 관리자 같은 직책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종종 글을 올리고 댓글도 달고 하다 보니 어느새 내 닉네임 ‘밝은생각’은 사이트 내에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내 댓글에 공감하고 고마워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있으면 뿌듯하다. 커뮤니티 안에서의 나‘밝은생각’은, 언제나 긍정적이고 다른 이의 고민에 공감하고 좋은 대안까지 제시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나 송은주는 문을 걸어 잠근 채 며칠째 집 밖에 나가지 않았고, 이제는 마트에서 사람들과 마주치는 일조차 싫어 모든 물건을 인터넷에서 구매한다. 사실은 할 일이 없어서, 이렇게 인터넷 커뮤니티에 열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번 부모님과 진지하게 얘기 나눠보라고? 토토로님에게 쓴 댓글을 다시 읽다가 헛웃음이 나왔다. 

‘야, 송은주. 누가 누구한테 이런 충고를 하냐?’ 

토토로님에게는 부모님과 얘기 나누고 나면 좋은 방법이 생길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사실 나는 한 번도, 단 한 번도 부모님에게 대든 적이 없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직장을 그만둔 사실이 집에 알려지면 난 다시 지옥 같은 집으로 돌 아가야 한다. 겨우 탈출한 집인데, 다시 돌아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이렇게 직장도 없이 혼자서 살 생각을 하니, 앞이 막막했다. 



두 번째 방, 장녀 콤플렉스 벗어나기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내담자들을 종종 만나곤 합니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는 이와 더불어 ‘장녀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여성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은주도 장녀로서의 책임감과 희생정신에 과도하게 짓눌려 자신을 스스로 억압하는 삶을 살아왔습니다. 늘 감정을 억누르다 보니 행복하지 못했고, 대인관계에서도 만족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감정 조절과 대인관계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은주는 DBT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DBT 치료 방법 중 마인드풀니스 기술이 있습니다. DBT의 중심이 되는 기술이자 가장 처음 배우는 기술이기도 합니다. 명상 훈련과 더 불어 자신의 행동과 마음을 그대로 들여다보도록 합니다. 은주는 이 마인드풀니스 훈련을 통해, 그간 가족에게 느낀 서운함과 아픔을 있는 그대로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큰딸은 희생적이어야 한다는 인식은 ‘전통’이라는 이름 아래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공정하게 판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 이러한 인식을 극단적으로 파괴하고 부정하다 보면 주변 사람들과 충돌을 빚게 됩니다. 하지만 은주는 DBT 기술들을 통해 슬기롭게 자신과 가족의 관계를 재정립해나갔습니다. 이제는 무거운 짐이었던 장녀의 역할을 벗어버리고 당당한 모습으로 부모님과 동생들을 대할 수 있게 된 은주를 언제나 응원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08. 단식은 2차 중독 가능성을 키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