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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Mar 16. 2017

07. 일곱 번째 방, 엄마와 딸 (마지막 회)

<일곱 개의 방>

너무 어색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머릿속에서 또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왜 웃었어? 넌 나쁜 애야.” 


현주가 넘어진 걸 보고 너무 많이 웃었나 보다. 웃지 말걸, 후회가 된다. 하지만 현주가 넘어지는 걸 본 다른 아이들도 모두 웃었다. 나도 따라 웃었을 뿐이다. 복도에서 혼자 벌러덩 넘어지는 현주 모습이 조금 우습기도 했다. 웃다 보니 기분이 좋아져서 나도 모르게 다른 애들이 모두 웃음을 멈췄을 때도 혼자 계속 웃고 있었다. 


‘어쩌지. 현주가 기분 나쁜가? 내가 비웃었다고 생각할까?’ 


현주 표정이 일그러진 것 같다. 웃고 떠들던 아이들도 갑자기 조용해진 것 같다. 다들 나를 보고 있는 것 같다. 또 김지수 쟤가 분위기 망쳤어, 하며 나를 비난하는 것 같다. 


“김지수, 넌 나쁜 애야.” 


머릿속에서 목소리가 계속 들린다. 친구가 넘어진 걸 보고 웃다니 내가 나빴다. 현주한테 미안했다. 난 왜 이렇게 못됐을까. 손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었다. 옆에 있던 애들은 하나둘 교실로 들어가 버렸다. 복도에는 나 혼자 남았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지? 어색해.’ 


수업 시작종이 울렸다. 하지만 교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섞여 앉기가 너무 어색하다. 나는 터덜터덜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휴대전화를 꺼내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엄마 목소리다.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엄마…….” 


“지수야, 무슨 일 있어?” 


“아니요, 그건 아닌데…….” 


“너 울어? 왜 그래? 누구랑 싸웠어?” 


“그런 게 아니라……. 엄마, 나 그냥 집에 가면 안 돼요?” 


“무슨 소리야? 지금 수업 시간 아니니? 너 지금 어디야?” 


“화장실…….” 


“지수야, 뚝 그치고 얼른 교실로 들어가. 엄마 바쁘다는 거 너도 알잖아? 집에 가서 얘기하자.” 


“네…….” 


휴, 한숨이 나온다. 엄마는 항상 바쁘고 나에게 화가 나있다. 그래 도 도움을 청할 사람은 엄마밖에 없다. 바쁜 엄마를 또 괴롭혔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밀려든다. 그냥 집에 가고 싶다. 학교는 너무 힘든 곳이다. 아이들은 너무 많고 친한 친구는 하나도 없다. 나 혼자 섬처럼 둥둥 떠 있는 것 같다. 아이들과 친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나도 껴서 같이 놀고 싶은데 아이들은 나를 잘 끼워주지 않는다. 늘 분위기를 깨고 재미없는 말만 해서 그런 것 같다. 


나는 휴대전화를 주머니 깊숙이 숨겨 넣고 다시 터덜터덜 교실로 향했다. 



** 
징- 징-. 


휴대전화 진동이 울린다. 지수다. 시각을 보니 한창 수업을 듣고 있을 때다.
 
“엄마, 나 그냥 집에 가면 안 돼요?” 


‘또 시작이구나.’ 


지수가 중학생이 된 지 두 달이다. 잘 참고 다니는 듯하다가도 한 번씩 나에게 이렇게 전화를 한다. 울지 말고 교실로 돌아가라고 단호하게 말하긴 했지만 마음이 너무 아프다. 나를 꼭 닮은 딸이기에. 


‘지수야, 집에 가고 싶은 건 엄마도 마찬가지야…….’ 


지수가 학교에서도 친구들 틈에서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떠도는 것처럼, 나도 회사에 오면 언제나 어색하다. 사람들과 어떻게 사귀어 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차장님과 김대리와 함께 외근을 나가는 길이다. 김대리는 운전을 하고 박차 장님은 뒷좌석에 앉아 있다. 나는 김대리 옆 앞좌석에 앉았다. 이럴 땐 무슨 얘길 꺼내야 할까? 


김대리는 운전을 하면서도 싹싹하게 차장님에게 이런저런 얘기로 말을 붙이고 있다. 두 사람은 아까부터 요즘 인기리에 방영 중인 드라마 얘기에 빠져 있다. 나는 모르는 얘기다. 나는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 아니, 볼 시간이 없다. 집에 가면 두 아이와 엉망진창이 된 집이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까. 


나는 혼자 다니는 게 편하다.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차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는 시간이 못 견디게 어색하다. 


‘차라리 일 얘기를 했으면 좋겠는데…….’ 


혼자만 아무 말없이 앉아 있으려니 눈치가 보인다. 회사에선 늘 이런 식이다. 대화에 잘 끼지도 못하고 동료들도 날 잘 끼워주지 않는다. 동료들은 날 재미없는 사람, 일만 열심히 하는 사람으로 여긴다.




일곱 번째 방, 진정한 내 모습을 찾아주는 DBT

                    

지수와 지수 부모님을 처음 만났을 때, 부모님은 지수가 무척 똑똑한 아이임에도 왜 무엇 하나 제대로 정리하고 치우지 못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심리학적 평가를 해보니, 지수는 언어이해 능력은 아주 뛰어났지만 시공간적 정보를 정리 통합하고 사건을 해결하는 속도는 아주 낮은 아이였습니다. 어딘가 어설프고 뭔가 빠뜨리는 것이 지수의 타고난 약점이었던 것입니다. 반면 언어이해 능력이 아주 뛰어났기에, 부모나 선생님은 지능이 높다고만 여겼을 뿐 이러한 약점이 있을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지수 역시 이러한 부조화로 인해 학교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고, 왕따를 당해 우울과 불안 증상을 보였습니다. 


                    

DBT 가족청소년 수업을 통해, 지수는 아주 작은 것부터 스스로 조직화하고 정돈하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지수 어머니 역시 훈육 방식을 바꾸고 대인관계 기술을 배워나갔습니다. 이처럼 DBT는 자신과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의 기회를 주고, 미처 몰랐던 나 자신과 타인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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