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콘서트>
이 새로운 가설이 대중에게 공개되도록 허락해주십시오. 낡은 가설들은 이제는 개연성이 없습니다. 새 이론은 훌륭하고 쉽습니다. 또 막대한 분량의 관측 데이터가 있습니다.
1.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다. 우주의 중심은 태양이다.
2. 지구와 태양의 거리는 지구와 별의 거리에 비해 아주 작다.
3. 별들이 뜨고 지는 것은 지구가 자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4. 지구의 자전축은 기울어져 세차운동을 한다.
5. 지구는 태양을 공전한다.
6. 모든 행성은 태양을 공전한다.
7. 행성들의 역행운동은 공전하는 지구에서 관측하기 때문에 보이는 겉보기 현상이다.
이것이 태양중심이론의 골자다.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중심이론에 관한 글을 처음으로 쓴 것은 1506년 이탈리아에서 공부를 마치고 폴란드로 귀국한 직후라고 전해진다. 이후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원고를 완성한 것은 1530년, 그의 나이 57세 때의 일이다.
다시 이 원고가 책의 형태로 세상에 공간이 된 것은 1543년, 그의 나이 70세 때의 일이다. 책이 나온 해 그는 숨을 거두었다. 36년 동안 비밀리에 간직해온 자신의 사상이 책이라는 물질적 형태로 전환된 것을 목격하고 죽었는지, 자신의 정신적 아들을 보지 못한 채 죽었는지, 사료들은 애매하게 전하고 있다.
한국인이 초등학교에서 태양중심이론을 공부하게 된 시점을 1945년이라고 친다면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이론이 우리나라에서 상식으로 정착하기까지 무려 400년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지구 중심의 천체 이론이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한 모든 실마리는 행성들의 불규칙 운동 때문이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태양 가까이에서 빠르게 돌고 있고, 화성과 목성 그리고 토성은 태양에서 멀리 떨어져 천천히 돌고 있다고 생각하면 행성들의 불규칙한 운동을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음을 간파했다.
지구는 목성이나 화성, 토성보다 빨리 돌고 있으므로 이들 행성을 뒤에서 따라가다가 앞서가기도 하는 것이다. 뒤에서 따라갈 때는 행성들의 순행운동이 관찰되고 앞서갈 때는 행성들의 역행운동이 관찰되는 것이다.
태양중심이론은 당시로써 매우 위험한 주장이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자신의 저서를 교황에게 바치면서 기나긴 고뇌의 과정을 이렇게 밝힌다.
“성하, 저는 본 저술을 통하여 천구 회전의 몇몇 운동이 지구 때문에 일어난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저는 잘 압니다. 사람들은 저의 책을 읽자마자 저와 저의 견해를 무대 밖으로 내팽개치라고 고함 지를 것입니다. 저 자신에게도 저의 연구가 만족스럽지 못합니다. 하물며 다른 사람들은 저의 연구를 얼마나 혹평할까요? 저는 이런저런 평가에 대해 개의치 않습니다. 모든 사물 속에 내재하는 진리를 찾는 것이 철학자의 간절한 임무입니다. 신께서 인간의 이성에 진리를 허락하시는 한도 안에서겠지만요. 철학자의 생각은 군중의 판단 너머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올바르지 못한 의견은 배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올바름, 진리의 편에 서야 한다고 말하는 이 사람은 지금 목숨을 걸고 있다. 실제로 코페르니쿠스의 책이 출간되고 나서 57년 후인 1600년 조르다노 브루노는 태양중심이론을 옹호한 죄로 화형에 처했다. 만약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가 출간된 뒤에도 코페르니쿠스가 살아 있었다면 그의 운명은 어찌 되었을지 모른다.
출간하자마자 무덤 속으로 도망가버린 사람, 코페르니쿠스. 그는 자신의 주장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철학자의 사상은 군중의 판단 너머에 있으며, 진리를 찾는 것이 철학자의 간절한 임무라고 말하는 이 사람의 영혼 속에는 소크라테스가 부활해 있다. 철학의 자유를 위해 기꺼이 죽음을 선택했던 소크라테스 말이다. 올바름과 거리가 먼 견해들은 버려야 한다.
인간의 의식은 보수적이다. 젊은 날에 익힌 사유와 가치의 체계는 평생 간다. 보수적인 당파의 사람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진보적인 인사라 자처하는 사람들도 그러하다. 한번 지어놓은 사유의 집을 부수어버리고, 그 폐허의 자리에 새로운 사유의 집을 짓는 것은 매우 두려운 일이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특정의 사유 체계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지독한 두려움을 견딜 수 있는 사람, 그가 곧 철학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