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굿북 Apr 06. 2017

44. 고급 식기는 특별한 때를 위해 아껴야 한다? ♬

아이들에게는 없는 걱정거리, <너무 일찍 어른이 될 필요는 없어>라는 책에서 만나는 무기력하고 우울하고 힘겹고 이상한 고정관념에서 탈출하는 방법, 이번 주제는 아끼는 고급 식기에 관한 것입니다.


물론 멋진 식기가 있다면 자랑하고 싶을 만하다. 식기의 주인 대부분은 멋진 식기를 멋진 유리 보관함에 안전하게 보관하면서 ‘특별한 때’를 기다린다. 이 식기를 사용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점을 고려하면, ‘특별한 때’에 관한 우리의 기준이 상당히 높은 게 확실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특별한 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감각 자체를 잃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사람들은 교황이나 대통령이 집에 전화해서 “그 근처에 갈 일이 있는데요. 저녁 먹으러 집에 가도 될까요?”라고 전해오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 하지만 만약, 그 멋진 식기를 그냥 아무 수요일에나 꺼내 쓰면 어떨까? 그날, 그저 평범한 수요일에 특별한 식기와 싱싱한 꽃장식 그리고 아끼던 식탁보를 꺼내 쓰는 것이다. 재즈와 클래식 음악도 틀어놓고, 메뉴가 ‘마카로니 앤드 치즈’와 ‘우유’에 불과할지라도 포도주잔에 음료를 따라 마시는 것이다. 안될 이유라도 있을까?


멋진 그릇이 없더라도 이런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 조명을 어둡게 하고 초를 몇 개 켜놓으면, 금세 멋진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하면 그 어떤 식사 시간도 배우자, 친구, 가족처럼 사랑하는 사람만 있다면 그 자체가 ‘특별한 때’가 된다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특별함을 넘는 축복의 경험, 심지어는 경건한 경험이 될 수도 있다.


바쁜 일상은 식사 시간을 업무 미팅과 아이들을 축구경기에 데려다줄 시간 사이에 끼워 넣는다. 그저 식사 시간이 또 하나의 일정에 불과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식사 시간의 의미가 이렇게 퇴색되면 누구에게 피해가 갈까? 결국, 그 피해를 보는 사람은 가족이다. 가족과의 근사한 행사가 다른 일정 사이의 그저 그런 일정이 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삶을 마감하는 시점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추억을 공유해야 한다면 과연 무엇을 가장 소중하게 공유할까? 디즈니 월드나 그랜드캐니언 여행 이야기도 나누겠지만, 대부분은 저녁 식사 시간에 나눴던 소박한 순간들을 떠올리지 않을까? 저녁 식사 시간 동안 공유했던 우리 가족의 전통과 웃고 울던 이야기와 같은 소소한 추억 말이다.


“너, 그날 가족들 앞에서 엄청 울던 그때 기억나?”

“예전에 넌 뭐든 엄마에게 다 말했었잖아. 저녁마다 속삭이던 그때 기억나?”

“항상 당신이 내게 해주던 이야기 기억나요?”


이 모든 것이 바로 오늘 저녁 식사 시간 동안 만들 수 있는 순간이며 추억이다. 너무 쉽지 않은가? 


내 강연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한 여성 참가자가 자기 경험을 얘기해줬다. 그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다른 형제자매들과 함께 집을 청소하다가 고급 식기가 담긴 상자를 발견했다. 어머니가 결혼하던 날 부모님에게 선물로 받은 식기였는데, 선물 받았을 때의 모습 그대로 하나하나 곱게 포장된 채 그대로였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50년 동안 결혼생활을 하셨고 넷을 낳아 키웠으며 열세 명의 손자가 있었다. 그런데도 그 식기는 한 번도 쓰이지 못하고 그대로 상자 안에 있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다른 사연도 있다. 솔트레이크시티에서 만난 한 여성에게 들은 이야기다. 그녀의 어머니는 매주 일요일 저녁 그리고 가족에게 특별한 휴일에는 좋은 식기를 꺼내 썼다. 시간이 흐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접시나 컵이 한두 개 깨지고 말았다. 하지만 어머니는 좋은 식기가 깨졌다며 한숨을 내쉬는 대신 재고처리 매장이나 중고 상점에서 깨진 그릇을 대체할 식기를 찾아내곤 했다. 쓰던 식기와 똑같이 생겼는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원래의 식기세트는 서로 짝이 맞지 않았지만, 독특한 식기들의 집합체로 바뀌어 갔다. 그러면서 접시 하나, 그릇 하나에 서로 다른 사연이 깃들었다. 어떻게 하다가 이 식기가 여기에 있게 되었는지, 이 식기는 가족에게 어떤 의미인지 말이다. 이 식기들에 담긴 사연을 통해 한 가지 분명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인생이란 어떤 상황에도 축하해야 할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두 사연을 접한 지금, 당신에게 어떤 생각이 들까? 나는 뒤의 사연이 더 마음에 들었다. 


이번 주 수요일이 축하해야 할 가치가 있는 날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면, 당신이 사랑했던 사람 중 돌아가신 분을 한번 떠올려보라. 할아버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 친구, 배우자, 형제자매, 누구라도 좋다. 그 돌아가신 분과 수요일 저녁 한 끼를 함께 할 수 있다면, 당신은 무엇이라도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한 가지 더 생각해보자. 당신이 사랑하는 바로 그 사람과 다가오는 수요일에 저녁 식사를 함께하는 것은 특별한가, 아닌가? 그렇다. 바로 지금이 당신이 기다리는 소중한 사람을 만날 그 고급 식기들을 자유롭게 해줘야 할 때다. 




북 큐레이터 | 김혜연
티브로드, KBS DMB에서 아나운서와 리포터로 일했으며 MBC 아카이브 스피치 강사이다. 더굿북에서 <책 듣는 5분> 북 큐레이터로 활약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43. 주름은 정말 가려야 할까?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