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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Apr 18. 2017

03. 양보만 하다가 끝나면 어쩌지?

<돈을 남겨둔 채 떠나지 말라>

가장 큰 걸림돌은 상대방의 의중을 알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내가 윈윈을 추구했는데 상대방이 이를 악용하면 나만 손해다. 나는 양보해서 서로에게 좋은 조건을 제시했는데, 상대방은 자신에게 좋은 점만 취하고 양보는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제품을 공동으로 개발하고 판매하려는데 상대방은 적게 투자하고 이익만 챙기려 한다면 우리가 기대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다.


상대방을 전적으로 믿을 정도가 아니라면 일단 의심하는 것이 당연하다. 상대방도 당연히 우리를 그렇게 바라볼 것이다. 협상에서 윈윈을 추구해야 서로에게 득이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실제로는 상대방을 믿지 못해 밀고 당기는 협상을 하고,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곤 한다. 흔히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라 표현하는 이 현상을 협상가들은 ‘협상가의 딜레마’ 또는 ‘기이한 파이 나누기 현상(mythical fixed pie syndrome)’이라 부른다. 협상을 시작하기 전에는 ‘파이를 키워야지’ 하고 생각하지만 이상하게도 협상 테이블에만 앉으면 ‘파이 나누기’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앞서 예로 든 이 사장이 그랬던 것처럼.


사실 상대방이 이 사장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것도 이유는 있다. 그들이 제작하는 기계에는 다양한 부품이 필요하며, 일부는 외부에서 구매해서 사용한다. 외부에서 조달할 때에는 좋은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구매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 사장의 회사는 신생업체여서 품질이 정말 좋은지 검증되지 않았다. 문제는 또 있다. 제품을 판매해도 대금회수가 제때 안 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납품업체 계약을 새로 할 때에는 가능한 대금지급기일을 늦추고 싶어 한다. 결론적으로 상대방으로서는 이 사장의 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양측의 입장이 이러한데 윈윈할 수 있을까?

협상가들이 딜레마에 빠지는 이유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공동으로 투자해 회사를 운영할 때 서로 믿고 노력을 아끼지 않고 일하면 모두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 두 사람도 이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나는 열심히 일할 마음이 있지만 상대방은 자기 몫을 챙기는 데에만 열심이라면? 그야말로 죽 쒀서 뭐 준 꼴이 된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강탈문제(hold-up problem)’가 발생하는 것이다. 상대방으로 하여금 두 손 들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고서 물건을 빼앗아가는 것에 빗댄 것이다. 공동의 사업에 더 많이 투자하고 노력한 쪽은 이미 들어간 매몰비용이 크므로 사업 성공에 더 매달릴 수밖에 없다. 반면 투자한 게 없는 쪽은 아쉬울 것도 없다. 상대방이 이렇게 나오면 고매한 인격자가 아닌 다음에야 누가 당하고만 있겠는가. 나도 손해 보지 않겠다고 결심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솔선수범하여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기보다는 자기 몫을 먼저 확보하려는 게임이 시작된다.

우리 사회 곳곳에 퍼져 있는 집단 사이의 갈등도 상대방에 대한 신뢰의 부재 때문인 경우가 많다. 우리는 옳은 일을 하고 있고 상대방과 협의할 의사가 있지만 상대방이 어떻게 나올지 알 수 없고, 상대방이 우리의 선의를 오해하거나 악용한다면 우리만 피해를 입는다는 강박관념이 작용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두터운 신뢰 속에 시작하는 협상은 없다. 따라서 처음에는 일단 협상을 진행하면서 상대방을 어느 정도 믿을지 탐색하고, 신뢰를 얻으려 노력해야 한다. 단, 무조건 착하거나 정직한 사람이 최고라는 뜻은 아니니 오해하지 말자. 그보다는 서로 협조해서 긍정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사람인지 여부가 더 중요하다. 상대방이 단순히 착하고 정직한 사람이라고 인식한 경우에 협상자들은 오히려 분배적 협상 행동을 보이는 경향이 있다. 신뢰는 당사자 간 상호작용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지, 일방적인 신뢰는 협상결과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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