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더굿북 Apr 19. 2017

53. 휴머니즘 ♬         




공감의 시대에 만나는 공감 작가 강원상의 <공감사색>을 만나고 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인간으로서 얼마나 인간적인지 생각해봅니다.


대전에서, 운전하다 의식을 잃은 택시기사를 놔두고 승객들이 자리를 떠나 사회적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승객 두 명은 어떤 구호조치도 하지 않고 골프백을 챙긴 후 곧장 다른 택시로 갈아타고 현장을 떠났다. 택시기사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결국 숨을 거뒀다.

이 사건을 보고 두 가지가 떠올랐다. ‘제노비스 사건’과 ‘착한 사마리아인 법’이다. 1964년 미국 뉴욕 퀸스 지역의 주택가에서 28세의 여성 제노비스가 괴한에게 칼에 찔린다. 큰 목소리로 구조요청을 하자 주택가 창문의 불빛이 하나둘씩 켜졌고, 주민들이 창문에 나타났다. 그러나 35분간 계속된 상황에서도 주민들은 지켜보기만 할 뿐, 누구도 도와주거나 신고하지 않았다. 결국, 제노비스는 강간까지 당하고 수차례 찔린 후 숨을 거두었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벌어진 걸까?

인간은 주위에 사람이 많을수록 각자가 느끼는 책임감이 줄어들어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을 도와주는 걸 주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방관자 효과’라고 한다. 결국 ‘누군가 경찰에 신고하겠지.’ 하는 마음이 이런 잔인한 참사를 부른 것이다.

이럴 때 돕지 않은 사람을 처벌할 수 있을까? 위험에 처한 사람을 보고도 돕지 않으면 처벌하도록 하는 것이 바로 ‘착한 사마리아인 법’이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위급한 운전기사를 두고 떠난 두 명의 방관자를 처벌할 그 어떤 법적 대안도 없다. 그러나 세상은 점점 흉흉해지고 강력범죄는 나날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개인의 도덕심에 의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여론조사로는 약 53%의 사람들이 이 법안이 필요하다고 지지했고, 39%는 도덕적인 영역이라며 법제화에 반대했다.

우리 사회는 점점 더 타인보다 나만을 우선시하는 이기주의와 사람보다 돈이 먼저인 물질 만능주의에 지배당하는 듯하다. 그러나 법적인 처벌을 고려하기에 앞서 사회의 공동체 의식을 높이고 인명 존중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하지 않을까.

철학자 사르트르는 말했다.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사르트르는 인간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의식이 있으며, 이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즉 스스로 결정해 자신의 본질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타인의 시선을 통해 나를 발견하기도 하고, 반대로 나의 시선이 타인의 존재에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다. 이러한 시선이 없다면 인간은 서로에게 사물일 뿐이다.

그리고 인간은 자기가 속한 환경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나’는 세계에 던져진 개인이며, 따라서 세계와 나는 연결되어 있다. 나를 잃으면 세계에 잠식되며, 나만 지키면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은 곧 나와 너는 세계 속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하며, 그래야 공존할 수 있다는 말이다. 사르트르는 또한 인간이 ‘자기 자신의 입법자’라는 것을 강조했다. 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입법자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 휴머니즘의 정신이며 보편적 인간성이다.

행동하지 못한 후 느끼는 죄책감은 최소한 우리 가슴 속에 ‘입법자’가 존재한다는 방증이 된다. 그 찝찝함이 남아있는 한 아직은 이 사회에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당시 죽음의 문턱에 있던 운전기사를 버리고 떠난 그들의 가슴속에도 입법자만큼은 평생 제대로 작동하길 바란다. 




북 큐레이터 | 김혜연
티브로드, KBS DMB에서 아나운서와 리포터로 일했으며 MBC 아카이브 스피치 강사이다. 더굿북에서 <책 듣는 5분> 북 큐레이터로 활약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52. 희망을 파는 사람들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