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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Apr 24. 2017

07. 대안에 대한 착각에 빠지지 말라.

<돈을 남겨둔 채 떠나지 말라>

이사할 집을 구하기 위해 부동산 업체를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점이 있다. 내가 관심 있는 매물은 항상 인기가 있더라는 것이다. 실제로도 그런지는 모르지만, 중개인들은 그 부동산을 보러 올 사람이 많다면서 수첩을 꺼내 보이곤 한다. 오늘 당장 결정하지 않으면 계약할 수 없을 것처럼 말한다. 안 그래도 마음에 들었는데 경쟁자가 있다고 하니, 괜히 마음이 급해져서 얼른 먼저 계약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더러는 원래 예산을 초과하는데도 깎아달라고 요구하지 못하고 부담스러운 계약을 하기도 한다. 상대방이 가진 실제 대안이 아닌, 대안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좇아 판단하고 협상한 결과다.


대안이 협상의 향방을 좌우하긴 하지만, 개별적인 협상에는 저마다의 특수한 상황이 있다. 앞에서 본 마이다스아이티는 구조분석 소프트웨어 업체가 많지 않고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있기에 협상상대가 어떤 대안을 확보할 수 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는 상대방에게 대안이 있는지, 그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안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여기에서 이른바 ‘심리전’이 실제 상황보다 협상에서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서로가 ‘실제로’ 가지고 있는 대안과 별개로, 서로의 대안에 대해 ‘내가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가 협상결과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더라도, 상대방이 강력한 대안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 순간 내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내가 가진 대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내가 가진 대안의 ‘객관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상대방이 얼마나 가치 있게 평가하는가 하는 ‘주관적 인식’도 협상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다. 서로의 객관적 상황과 주관적 인식의 상호작용이 얽히고설켜 협상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코미디 영화에서 하루 종일 손님을 기다리던 신생회사의 사장이 막상 고객이 방문하면 오지도 않은 전화를 받는 척 바쁜 시늉을 하는 장면을 흔히 보는데, 이 또한 자신의 보잘것없는 대안을 숨기고 상대방의 인식을 바꾸어놓으려는 시도다. 따라서 상대방의 대안을 평가할 때에는 우리의 판단 근거가 상대방에 대한 객관적 자료인지, 상대방에 의해 만들어진 우리의 주관적 인식인지 구분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대안에 대해 상대방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알고 잘 관리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렇다고 무작정 우리의 대안을 부풀리라는 것은 아니다. 한 번의 협상을 위해 꼼수를 쓰다가 장기적인 신뢰를 잃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상황에 대한 인식이 실제 상황보다 협상결과에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인간의 제한된 합리성 때문이다. 보통의 인간은 합리성을 추구한다. 즉 협상상황에서 서로에게 가장 좋은 것을 잘 알고 있고, 각자의 대안을 알고 있으며, 서로에게 가장 좋은 협상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느 누구도 그처럼 완벽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완전히 합리적으로 의사결정하거나 상호작용하지도 못한다. 어떤 협상결과가 자신에게 최선일지 확실히 알지 못하고, 자신의 대안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이거나 비관적으로 오해하기 쉬우며, 상대방의 대안에 대해서도 자신의 주관을 더해 평가하게 된다. 나아가 상대방의 의도를 오해하기 쉬우며, 서로 양보한 것에 대한 가치나 상대방의 의견에 대해서도 자의적으로 해석한다.

협상자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대안은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판단하고 상대방의 대안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협상에서 자신의 통제범위를 과대평가하고, 심지어 객관적 상황이 전혀 그렇지 않은데도 자신이 상대방의 결정을 통제할 수 있다고 오판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에 대해 어떤 과대평가를 할까? 대기업이 가장 흔히 하는 과대평가는 바로 이 장의 첫 질문, 즉 규모나 자금력에서 협상력이 나온다는 믿음이다. 이들은 회사의 규모나 자금력을 자신들의 실제 대안과 섞어서 생각하곤 한다. 반대로 중소기업은 같은 이유로 자신들의 대안과 협상력을 과소평가하곤 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대기업의 소위 ‘갑질’ 횡포가 쉽사리 개선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이 인식하든 못하든, 중소기업에도 최후의 대안은 있다. 협상결렬이다. 물론 이는 파괴적 대안이다. 협상이 결렬되면 중소기업은 도산할 수도 있고, 대기업도 거래처를 잃거나 사회여론이 악화돼 시장을 잃을지 모른다. 어쩌면 대기업은 가진 것이 많으므로 잃을 것도 더 많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더 큰 피해를 입는 것은 대기업이 될 수도 있다. 협상당사자들은 직접 또는 간접적인 형태로 사회적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협상결과는 양쪽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협상에서 일방적인 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후의 대안이 가지는 파괴적 영향력은 사안의 크기에 비례한다. 개인 간의 협상보다는 기업 간의 협상, 그보다는 국가 간의 협상에서 ‘결렬’이 초래하는 결과는 더 심각해진다. 북한의 핵무기 벼랑끝 전술이 통하는 이유는 자신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적어도 그렇게 연출하는 데 성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벼랑끝 외교와 자살적인 도발위협을 통해 한미 양국으로부터 북한 정치권의 실체 인정, 체제의 안전 보장, 경제적 지원을 획득해왔다. 그동안 북한은 회담을 진행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핵무기를 지속적으로 개발하는 이중적인 전략을 취해왔다. 협상이 결렬될 경우 핵전쟁도 불사하겠다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보내는 것이다. 말하자면 핵전쟁은 북한의 배트나(협상 결렬 시 가지고 있는 차선책)인 셈. 그 피해는 당연히 북한에 한정되지 않는다. 협상이 결렬될 경우 양측은 극한 대립에 돌입하거나 함께 파국을 맞을 수 있다. 국가 간 협상, 특히 첨예한 갈등상황에서의 협상이 특히 어려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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