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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Apr 24. 2017

10. 보조를 맞추며 통나무를 굴려라. (마지막 회)

<돈을 남겨둔 채 떠나지 말라>

GM은 1972년 신진자동차와 186억 원의 자본금에 50대 50으로 합작해 GM코리아를 설립하면서 한국에 진출했다. 그 후 1976년 경영부실로 한국 측 지분이 산업은행으로 넘어가면서 상호를 새한자동차로 변경했고, 2년 뒤인 1978년 대우가 산업은행의 지분을 인수하면서 대우와 GM의 제휴관계가 시작되었다. 이후 1983년 대우가 GM으로부터 경영권을 인수받아 상호를 대우자동차로 변경하고 지분은 그대로 50대 50을 유지했다.


제휴의 목적은 분명했다. GM은 한국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해 일본 기업에 빼앗긴 미국의 소형차 시장을 탈환하고자 했다. 한편 대우는 업계 선도기업인 GM의 첨단 엔진기술을 배우고 미국시장에 진출할 기회를 찾고자 했다. 이러한 각자의 요구가 맞물려 GM은 경영관리와 기술자문을, 경영은 대우가 맡아서 하기로 합의했다.

대우자동차는 GM의 유럽 자회사인 오펠 사의 소형차를 생산해 미국에서 GM의 폰티악 르망 모델로 판매했는데, 정작 생산이 본격화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1980년대 한국의 민주화 흐름을 타고 몇 년 사이에 임금이 두 배로 뛰어 저임금의 매력이 없어진 것이다. 게다가 한국에서 생산된 르망 자동차는 고장이 잦았다. 이 때문에 미국 소비자들의 신뢰를 잃었고, 1991년에는 1988년의 최고치에 비해 86%나 줄어든 3만 7000대를 판매하는 데 그쳤다.

각종 문제가 누적되면서 잠재해 있던 내부 갈등도 본격화됐다. 1989년 대우가 르망을 동구권에 7,000대 판매하려고 하자 GM이 제동을 걸고 나왔다. GM의 글로벌 전략에서 동구권은 오펠 사의 시장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대우는 3,000대로 판매대수를 줄이고 다시는 동구권을 넘보지 않기로 GM에 약속해야 했다. 심지어 GM은 대우자동차가 개발한 신형 중형차의 미국시장 판매도 허락하지 않았다. GM이 고압적 태도로 일관하자 대우 내부의 불만도 고조돼, 르망의 미국 판매 부진은 품질 때문이 아니라 GM의 마케팅 노력 부족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대우는 양사가 각각 1억 달러를 더 투자해 대우자동차의 생산시설을 두 배로 늘리자고 제안했지만, GM은 시설확장이 아니라 품질관리가 우선이라며 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당시 GM이 대우로부터 받은 기술제공료가 과했으며, 이윤배분도 공정하지 않고 일방적이었다는 지적도 있다. 양자는 충분히 주고 충분히 받음으로써 윈윈을 이룬다는 전략적 제휴협상의 핵심을 지키지 못했다. 결국 1992년 11월, GM의 지분을 대우가 인수함으로써 합작관계는 종료되었다. 만일 GM이 대우가 원하는 기술과 미국진출 기회를 충분히 주고 자신이 원하는 값싼 노동력을 받을 수 있었다면, 동시에 대우가 GM이 원하는 것을 충분히 주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충분히 받았다면 윈윈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협상가들은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충분히 주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충분히 받는 지혜를 ‘통나무 굴리기(logrolling)’에 비유한다. 무거운 통나무를 굴리려면 파트너와 서로 보조를 맞추어야 한다. 특히 정치에서 이 용어를 많이 사용하는데, 서로 의견이 다른 정당 간에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주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두 정당 또는 두 의원이 자신이 발의한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법안을 지지해주고 자신이 추진하는 법안에 대해 지지를 받아야 한다.

경제학자와 정치학자들은 이와 같은 의안 주고받기의 효용성에 대해 많은 연구를 진행해왔다. 두 정당 간에 서로 법안을 주고받아 통과시키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방식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필요한 법들이 만들어지는 것은 곧 파레토의 최적점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러나 법안 주고받기가 궁극적으로 실효를 거두려면 필요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통과시키는 각각의 법안이 발생시키는 비용보다 만들어내는 공공의 이익이 커야 한다는 것이다. 국회의원이 국가의 이익을 도외시하고 특정 지역의 이익만 챙기는 법안 주고받기를 한다면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통나무 굴리기는 이처럼 다양한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의미로 사용되지만 협상에서는 윈윈을 위해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충분히 주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충분히 받음으로써 최대한의 협상효과를 끌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무거운 통나무를 굴리기 위해서는 보조를 맞춰 힘을 모아야 하는 것처럼, 상대방과의 신뢰를 쌓아가고 보조를 맞추며 공동 문제해결의 관점에서 접근(joint problem-solving approach)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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