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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Apr 24. 2017

09. 목적을 알면 창조적 대안이 보인다.

<돈을 남겨둔 채 떠나지 말라>

2006년 8월, 한국철도시설공단은 호남고속철도 정읍역사의 기존 역사를 철거하고 지상역사를 신축하는 기본계획을 마련했다. 이후 설계를 완료해 2011년 12월 공사를 시작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공단이 역사 신축 및 역세권 개발에 시간이 걸린다는 이유를 들어 기존 역사를 활용하는 방안으로 계획을 변경한 것이다. 이에 지자체 및 지역사회가 일제히 반발했다. 정읍시는 역사 신축과 지하차도 건설을 통한 역세권 개발을 주장했다.

정읍시와 의회는 2009년 5월부터 공단에 정읍정거장 구간 교량화를 건의했으나, 공단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정읍시는 다시 정읍역을 통과하는 지하차도 및 선상역사 건설을 요구했다. 이 안을 공단이 받아들여 공사를 착공하는 단계에까지는 이르렀으나 시설규모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이유로 다시 공사발주가 보류되었다. 결국 이 문제는 2012년 들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며 지역사회 갈등이 첨예해졌다. 정읍시는 항의 성명을 내고 공단 이사장과 국토부 장관실을 항의 방문했다. 공단 이사장이 정읍시를 방문해 설명하고 지역사회 지도층 인사와 차례로 면담했지만 갈등은 해소되지 않았다.

이들의 입장이 이렇게 대치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먼저 한국철도시설공단은 호남고속철도 건설사업의 비용 부담이 크고, 부채가 지나치게 증가할 우려가 있으므로 신중하게 예산을 집행해야 했다. 경부고속철도 건설개통으로 이미 많은 부채가 생겼던 터라 예산을 절감하기 위해 단계별 역사 건설이라는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반면 고속철도가 들어서면 정읍은 전라남도와 전라북도를 잇는 교통 중심지가 될 것이므로, 정읍시로서는 그에 걸맞은 대규모 투자가 필요했다. 이미 기존의 설계에 맞춰 20년간의 사업비 및 역세권 개발계획을 세웠으며, 용지 보상비 13억 원 등 70억 원의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터였다. 또한 지하차도와 선상역사를 만들지 않으면 역과 철로를 기준으로 정읍시가 동서로 단절되는 문제도 있었다.


이들의 협상이 타결되는 데는 무려 6년의 시간이 걸렸다. 묘수는 ‘단계별 건설’을 활용하는 데 있었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은 호남고속철도 건설사업 1단계 준공에 맞춰 선상역사를 건설하고 왕복 4차선 규모의 지하차도를 건설하기로 했다. 정읍시는 이 사업이 적기에 준공될 수 있도록 정주고가교 철거, 토취장 개발 및 개별 법령에 의한 인허가 등 제반 행정절차 이행에 적극 협조하기로 했다. 또한 지하차도 및 선상역사 신설에 대해 더 이상의 이의를 제기하지 않기로 했다.

도시철도공사는 단계별 건설을 추진함으로써 원하던 대로 예산을 절감하고 정읍시의 행정적 협조를 얻어 적기에 호남고속철도를 준공할 수 있었다. 정읍시 또한 선상역사 개발에 따른 경제효과를 기대할 수 있고, 지하차도를 개통해 도시의 균형발전을 꾀할 수 있게 되었다. 겉으로 보이는 갈등 이면의 이해관계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모두가 만족할 대안을 찾은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는 입장이 무엇이든, 이면에는 협상을 통해 얻고자 하는 다양한 목적이 있다. 더욱이 조직과 조직, 국가와 국가 간 협상처럼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있는 협상은 목적과 입장도 다양하게 마련이다. 심지어 협상에서 한 팀을 이룬 사장과 실무자의 목적도 같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A사와 B사가 공동 제품개발을 위한 제휴협상을 한다고 가정해보자. 제휴를 통해 파이를 키우고 서로의 이익을 극대화한다는 기본 목적은 같으나 세부적으로는 다양한 목적과 그에 따른 다양한 입장이 존재하게 된다. 실무자는 기술적으로 조금 미진한 점이 있어도 하루 빨리 제품을 출시해 단기적인 성과평가를 좋게 받는 것이 목적일 수 있다. 반면 CEO는 장기적인 성과가 개선돼 자신의 스톡옵션 가치가 극대화되기를 원할 수 있다. 이처럼 다양한 목적들 가운데 자신과 상대방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공통된 입장, 즉 합의안을 찾는 것이야말로 협상을 잘하는 첩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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