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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굿북 Jun 15. 2016

01. 만남·첫 번째

<엽기적인 그녀>

# <엽기적인 그녀>를 출판사 저작권 허가를 받아 매주 수요일 12회에 걸쳐 만납니다. 영화로도 제작된 <엽기적인 그녀>는 1988만큼이나 그리웠던, 행복했던 시절로 여러분을 안내할 것입니다. 많이 사랑해주세요~~ 



제1화. 이 세상엔 우연이란 없다.

다만 우연을 가장한 필연이 있을 뿐!



서울 시내에는 딱하면 딱 떠오르는 명물 동네들이 몇 군데 있습니다.

떡볶이 하면?? 신당동!!!
족발 하면?? 장충동!!
순대 하면??
네, 순대하면 신림동이 떠오릅니다.

서울에 안 살아도 신림동을 모르시는 분들은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요즘은 ‘순대 타운’이라는 이름 아래 큰 건물이 들어섰지만, 제가 고등학교를 다니던 당시인 1990년대 초반의 순대 타운 경관은 보통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시장의 안쪽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여기저기 구멍이 뽕뽕 뚫린 허름한 천막으로 하늘을 가리고 그 아래는 다리 한쪽이 부서져서 잘못 앉으면 넘어갈 거 같은 기다란 나무의자와 군데군데 담배빵이 있어 시커먼 탁자들을 놓고 여러 순대 가게가 빼곡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손님을 부르는 아줌마의 손짓과 목소리,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여전하지만 왠지 그때의 그 정겨움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야 띱때야! 제대한 게 언젠데 이제 연락을 하고 지랄이야!”

“난, 너 제대한지도 몰라짜나!”

“너 내 친구냐?? 형님 제대하는 것도 모르다니!”

“네가 연락을 안 했잖아! 우리 인연을 끊는 게 어때?”

“하하핫~ 짜식! 성질 더럽긴!! 그래그래, 미안하다. 학교 다니고 사회에 적응하느라고 좀 바빴다.”

“짜식이! 군대를 갔다 와도 어떻게 그렇게 여전하냐?”

“느지막하게 군대 가서 진짜 수고 많았다.”

“그래, 고맙다. 한잔 받아라.”

지금 제 옆에는 어렸을 때부터 그것을 만지고 놀던 친구 두 개가 있습니다.

그거여??
그거 알잖아요 … 화이어 달걀 …!

저는 이 녀석들이 전부 제대를 하고 나서야 느지막하게 입대를 하는 바람에 어느 한쪽도 군인이 아닌 사회인으로 만나는 것은 근 4년 만의 일입니다.

“견우야, 애인은 있냐?”

“야! 이제 겨우 제대한지 두 달 됐는데 애인이 어디 있냐, 임마!”

“짜식, 요즘은 두 달이면 만리장성을 쌓는 시대얌마!”

“아직 사회물을 덜 먹었구만.”

“하하하하!”

남자들끼리 모인 술자리 치고 여자 이야기 안 들어가는 술자리 있습니까??지휘고하를 막론하고 여자 이야기 안 들어가는 술자리 있으면!!
저 좀 불러주세여!!! 술 얻어먹게 ….^^;

근데 여자들도 그런다면서여? 여자들은 술자리 아니고 차 마시면서도 그런다구 하던데 ….

암튼!! 그렇게 친구들과 오랜만에 해후를 풀다보니 시간은 벌써 저녁10시쯤 되더군여.

“야! 이제 난 가봐야겠다. 오늘 고모집에 인사 가려고 했거든.”

“그래? 그럼 이제 일어나자.”

“견우 너 연락 좀 자주해라. 안 그러면 진짜 왕따 시켜버릴 꺼야.”

“하핫! 그래 아라따~~ 담에 보자.”

편한 화이어 달걀 친구들과 편한 마음으로 술을 마셨더니 취기가 좀 오릅니다. 그래도 부평에 사시는 고모님과 할머님께 전역을 했다고 인사를 드리러 가야 했기에 지하철을 타야 했습니다.

신림역에서 부평역까지 가자면 신도림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는 게 젤 빠릅니다. 

당연하다구여?

그런데 그 시간의 신림역은 정말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이 많더군요. 더군다나 오늘은 토요일.

일주일의 스트레스를 약주로 푸셨는데 술에 취해 잠바를 어깨에 처억~~! 걸치고 비틀거리는 아저씨와 손을 꼭 잡고 있는 연인들이 눈에 띕니다. 

아앗!!! 저기 …저 저 …저 옆에!!!

아예 술에 맛이 간 여자가 누워있다시피 앉아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남자친구로 보이는 녀석이 여자를 달래고 어르고 난리가 났습니다.

푸하하하하하!!!! 구경꺼립니다.

여자가 갑자기 울기 시작합니다! 흐흐흐~~!

“엉엉~! 훌쩍~! 엉엉~!”

“왜 울어? 울지마. 응? 울지마아~!”

지하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전부 그 커플을 쳐다봅니다. 저는 아예 그 옆에 착 달라붙었습니다. 이런 건 젤 가까이서 구경을 해야 합니다. 얼마나 재밌습니까!!

불구경 하는 거, 쌈 구경하는 거 그리고 옆집 누나 샤워하는 거 구경하는 거 … 그 다음으로 재밌습니다.

“삐리리리리릭~~! 지금 인천행 열차가 ….”

에잇!!! 지하철이 옵니다. 더 구경하고 싶은 마음은 진짜 굴뚝같지만 시간도 늦었고 빨리 가야 했기에 지하철에 올랐습니다. 그 커플은 결국 못 타더군여. 쩝 아까비~! 

지하철 안 역시 사람들이 뿜어대는 열기로 인해 5월의 기온을 훌쩍 넘어버려 매우 덥습니다. 제 앞에는 아이를 포대기에 둘둘 말아서 등에 업고 있는 아줌마가 서 계십니다.가뜩이나 사람이 많은 지하철 안에서 모두들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며 스트레스를 받는 건 아는데 그래도 웬만하면 자리 양보 좀 해주지. 사람들 쫌 너무하더군요.

엄마 등에 업혀서 얌전히 자고 있던 아이가 갑자기 칭얼칭얼 대기 시작합니다.

지하철 안의 사람들 모두가 표정 없는 얼굴로 앞을 옆을 또는 신문을 아님 창밖을 견우는 옆에 있는 여자를 바라보고 있다가 아이가 큰소리로 칭얼대자 모두들 아주머니를 보며 인상을 찌푸리더군여.

‘그러길래 양보 좀 해주지. 어으!’

아이의 엄마는 미안했던지 등에 업은 아이를 들썩들썩 거리며 재우려고 노력을 합니다.

저는 그 아주머니의 바로 뒤에 서 있습니다. 그 아이의 얼굴이 보입니다. 사람들의 짜증 섞인 목소리도 들립니다. 아이 엄마가 좀 불쌍해 보였습니다.

‘저 아줌마를 도와줘야겠다.’

‘어떻게 아이를 재우지?’

‘주먹으로 한 대 칠까?’

‘아니야, 그럼 더 울지도 몰라.’

‘어떡하지 …?’

‘앗! 그래, 그거다!!!’

저는 소주와 순대를 먹었습니다. 입에서 술 냄새가 진짜 풀풀 납니다. 흐흐 …!

‘애기니까 술 냄새만 맡아도 분명히 곯아떨어질 거야. 음 ….’

아이의 얼굴 쪽으로 제 입을 가따 댔습니다. 아이가 저를 힐끔 쳐다보더군요. 온화한 미소를 지어주었습니다. 요렇게 ….

그리곤 크게 숨을 들이쉰 다음 아이의 입에 저의 입김을 불었습니다.

“하아아아아아아~!”

“으아아앙~ 으앙~ 으으으앙~!!!”

“으헉!”

좀 전까지는 칭얼대기만 하던 아이가 갑자기 소리를 빽빽 지르면서 울어 댑니다.

젠장! 아이의 엄마가 뒤를 돌아 저를 힐끔 보더군여. 저는 잽싸게 지하철의 광고판을 보며 딴청을 부렸습니다.

결국 다음 역에서 어쩔 수 없이 아주머니가 내리더군여.

저는 어쨌든 순수한 마음으로 아이를 재우려는 것이였습니다. 진짭니다!! 믿어 주세여!!

이제 제가 내릴 신도림역입니다. 여기서 인천행 1호선으로 갈아타야 합니다. 보통 갈아타는 역은 사람도 많고 갈아타는 곳까지 걸어가려면 발을 몇 번이나 밟혀야 하는데 제가 시간대를 잘 맞춘 거 같습니다. 신림역과는 달리 한산합니다.

사람도 그렇게 많지 않고, 주위도 조용합니다. 1호선을 타는 곳 역시 사람이 많지는 않더군여. 그래서 인천행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옆에 술에 만땅 취한 여자가 서 있습니다.

‘음 …, 어디보자아 ….’

술에 취해서 기둥에 착 달라붙어 있는 그 여자를 자세히 봤습니다.

‘허억~!! 이쁘자나 ……!!!’

그 여자는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처럼 한눈에 예쁘지는 않지만 개성 있고 매력 있는 깔끔한 외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이 적당히 잘 빠진 청바지를 입고 있고, 그 청바지에 잘 어울리는 노란색 티셔츠와 자주색 가방을 메고 있습니다.

나이는 한 스물넷이나 다섯 정도 돼 보이는데, 기둥에 기대서 비틀거릴 때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생머리가 마치 샴푸선전을 하는 것처럼 출렁거립니다.

‘취해서 비틀거리지만 안는다면 정말 매력적이고 괜찮은 아가씨인데. 쩌어~업!’

이런 생각을 하며 아가씨를 유심히 봤습니다.

술기운에 눈은 게슴츠레 초점이 없고, 까딱까딱 하며 고개가 꺾이면서 옆에 기대고 있는 기둥에 주기적으로 머리를 부딪치더군여.

“우욱 … 우우욱 … 우우우욱 … 욱~!”

‘으헉! 이 여자가 임신했나? 헛구역질까지 …!’

드디어 인천행 지하철이 도착했습니다. 그 술에 취한 여자와 저는 같은 문으로 지하철을 타게 되었습니다. 물론 서로가 모르는 사이기 때문에 저는 지하철을 탄 반대편 문 쪽으로 가서 섰습니다.

지하철 의자의 끝부분에는 애기 손목 두께 정도 되는 쇠기둥이 있지 않습니까? 물론 의자를 받히는 역할도 하지만 사람이 기댈 수 있도록 만들어 논 것입니다.

또 기둥과 지하철 몸체 사이에도 허리 정도 되는 위치에 다른 기둥이 가로질러 있습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이 기둥에 등이나 엉덩이를 거치고 서 있지 않습니까? 가끔 그 옆에 앉아서 기둥에 팔을 올려놓고 있으면 예쁜 아가씨가 엉덩이를 걸칩니다. 오예에~!

역시 그녀도 지하철을 타자마자 바로 그 쇠기둥에 몸을 기대더군여.. 그런데 보통 사람들처럼 등을 기대는 것이 아니라 그녀는 배를 대고 섭니다.

‘푸하하핫~~! 진짜 특이하다.’

그리곤 상체를 끄떡끄떡 하며 불안한 자세를 보입니다. 저러다가 앞에 앉아 있는 사람, 그러니까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의 머리와 박치기를 할 거 같습니다.

저는 그녀가 술에 취해서 하는 행동이 너무 귀여워서 힐끔거리며 그녀를 계속 지켜보았습니다. 그녀의 앞, 그러니까 쇠기둥의 옆이자 의자의 맨 가장자리에 앉아 계시는 아저씨는 대머리였습니다.

지하철의 형광등 불빛이 비춰 머리가 반짝반짝 거리더군여. 그 아저씨는 그녀가 위에서 끄덕거리고 있는 것도 모르고 열심히 신문을 보고 있습니다.

괜히 그녀를 빤히 쳐다보고 있으면 주위 사람들로부터 흑심품은 남자로 보일까봐 광고판도 보는 척 하고, 지하철 문에 있는 창문을 통해 밖을 내다보는 척도 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그녀에게 신경을 쓰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저만이 곁눈질로 그녀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어라라~?

그녀가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내뱉지를 않습니다. 배는 기둥에 기댄 채 고개를 들어 머리를 위로 향하더니 몸을 미세하게 부르르 떱니다.

‘이런, 왜 저러지 …?’

‘먼가 좀 불안하다.’

“우웨에에엑~~우웨엑~~좌르르르르르~~.”

뜨아악!!!

네, 그렇습니다!

그녀가 앞에 앉아 있는 대머리 아저씨 머리 위에 순식간에 일을 친 거였습니다!!!

그 엄청난 순간을 오로지 저만이!! 저만이 생생하게 지켜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바이트를 하는 소리가 나자마자 지하철 그 칸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리더군여.

그리고 나서 사람들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이 오바이트를 받은 대머리 아저씨에게 눈이 돌아가면서 모두들 뒤집어집니다. 주위가 갑자기 술렁거립니다.

“으헉~!! 저거 봐.”

“자기야 자기야! 일어나봐. 빨리 일어나바바바바~~!!!!”

“킥킥!!”

“허헉~!”

형광등 불빛을 받아 반짝반짝 하던 그 대머리 아저씨의 머리 위는 이제 면발이 머리카락처럼 걸쳐 있습니다. 그리곤 흘러내립니다. 빨간 면발이 퉁퉁 불어서 미끄러져 내립니다. 아마도 골뱅이 사린 것 같습니다.

그리곤 어깨로, 배로 건더기와 국물이 뚜욱~뚝!뚝!

그 대머리 아저씨는 지금 자신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깨닫지 못하는 눈치입니다. 한 10초 정도 눈만 껌뻑껌뻑 거리더니 보던 신문으로 머리를 쓰윽~~~! 하고 닦아 내리더군요.

얼마나 기가 막혔으면 아무 말씀도 못합니다.

그 아저씨 너무너무 불쌍합니다. 흑흑흑~~~!

주위의 모든 시선을 한 몸으로 받으면서 꿋꿋이!! 묵묵히!! 아무런 말도 없이 신문으로 머리와 옷을 닦고 있습니다. 옆에 계시던 아주머니가 말씀하시더군여.

“어머머! 이 아가씨 좀 봐. 대체 제 정신이야? 요즘 애들은 쯧쯧쯧 ….”

전 바로 앞에 있었던 터라 소리 내어 대놓고 웃지도 못하고 큭큭거리며 그 광경을 너무나 재밌게 보고 있었습니다.

‘오늘 지하철에서 별거 별거 다 보는구나. 우는 여자를 보질 안나. 이번엔 …, 킥킥킥!!!’

그런데 일은, 일은!!!! 거기서부터 터지고 말았습니다.

오바이트를 시원히 하던 그녀가 거슴츠레한 눈빛으로 저를 보더군여. 그리곤 넘어지기 바로 직전에 저한테 이러는 겁니다.

“자기야~! 어어억~ 우욱~ 자기~ 웩!!!”

쿵~!

“뜨아아아악~~~!!!”

그녀가 넘어지기 직전 저를 보며 자기라고 한 그 순간 지하철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저에게 쏠리더군여.

“으아아악!! 뜨악!! 아가씨! 아가씨!!! 누, 누 누구세여? 자, 자기라녀!!”

나도 미친 듯이 악을 썼습니다.

악악악!!!!!

하, 하지만 … 이미 늦었습니다.

저의 결백을 증명해 줄 그 아가씨는 이미 뻗어버렸습니다. 아무도 저의 외침은 들어주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모두들 저를 쳐다봅니다.

웃겨서 죽으려고 하는 옆자리 아줌마와 옆문에 서 있던 여고생, 술 취해 자다가 벌떡 일어난 아저씨와 한밤에 선글라스를 쓰고 있는, 쌍꺼풀 수술한 것으로 추정되는 아가씨, 그리고 제 또래의 남녀 대학생들.

제 옆에 서 있던 아저씨는 들고 있던 신문을 둘둘 말아서 저를 찌르려고 합니다. 아까 그녀에게 제정신이냐고 물었던 아줌마가 큰소리로 외치더군여.

‘아아니잇!! 학생 뭣하고 있는거엿!’

“헉 …! 네?? 저 …저여?”

그렇습니다. 저는 졸지에 술 취한 그녀의 애인이 되어 버렸습니다. 마치 큰 죄를 지어서 모든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듯한 기분입니다. 한 번 더 미친 듯이 소리쳤습니다.

“으악~!! 저 이 아가씨 모르는 사람이예여. 정말이에여. 엉엉~!”

그 대머리 아저씨는 그녀가 시원하게 해놓은 오바이트를 닦다 말고 저를 부르더군여.

“학생! 뭐해? 이리 와 밧!!”

헉! 저 아저씨가 날 죽이려는 게 분명합니다. 전 쫄았습니다. 안 쫄 수가 있습니까??

찔끔찔끔 …주춤주춤 …그 아저씨에게 다가갔습니다.

“모헷? 빨리 학생이 뒤처리 햇!!”

“네?”

“뒷처리 하라굿!!”

더 이상 결백을 외쳐봤자 미친놈 될 거 뻔합니다. 포기했습니다. 으으으으 …….

“헉헉~! 아저씨!! 정말 죄송해요. 이걸 어째요?”

“대체 여자 친구가 저렇게 술을 마셨는데 옆에 안 있고 뭐하고 있는 거얍!”

“ …….”

“자네 지금 제 정신이얍!”

“얼른 닦아 드릴게여. 훌쩍~! 아저씨 죄송해요.”

솔직히 뭐를 어떻게 해야 할지, 어떻게 수습을 해야 할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급한 김에 메고 있던 가방을 뒤졌습니다. 물론 당근 휴지가 없다는 것은 뻔히 압니다.

하지만 이 마당에 마땅히 할 행동이 없는데 어캅니까. 지금 뭘 하건 뭐라도 바쁜 척 하지 않으면 몰매 맞아 죽을 분위기 입니다.

저는 손수건 같은 것을 가지고 다니는 젠틀한 남자도 아닙니다. 그 아저씨가 닦던 신문을 조금 찢어서 닦아 드리고 싶지만 아무래도 예의가 아닌 것 같습니다. 불난 집에 휘발유 뿌리는 거 밖에 안 될 거 같습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티셔츠를 벗었습니다.

우리 여동생이 오빠가 전역해서 입을 옷이 없다고 용돈 모아서 사준 티셔츤데 ….

진짜 눈물납니다. 츄르르~!

여동생의 얼굴이 눈앞에 아른거립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을 어떻게든 수습을 하고 모면을 해야겠기에 그 티셔츠로 아저씨 옷을 열심히 닦았습니다.

아저씨가 신문으로 매고 있던 넥타이를 닦는 동안 저는 티셔츠로 아저씨의 머리를 닦았습니다. 몇 가닥 되지도 않는 머리카락 사이사이를 골뱅이 사리가 교묘하게 엉켜있더군여.

혹, 닦다가 잘못해서 머리카락이라도 몇 개 뽑히는 날이면 바로 주먹이 날아올 거 같습니다. 아까 그 아주머니가 또 저한테 뭐라고 말을 하려는 듯 했는데 제가 바쁜 척 하니까 그 옆에 있는 다른 아주머니한테 말을 걸더군여.

“요즘 애들은 저래서 안 된다니깐. 우리 딸은 술도 안 먹고 공부도 잘하고 이렇게 밤에 밖에 나돌아다니지도 않아요.”

“네~, 그러세요? 우리 딸도 그래요. 얼마나 착한데요.”

“쯧쯧쯧."

일이 어느 정도 수습됐습니다. 그 아저씨는 외관상으로 옷이 젖은 것을 제외하곤 그럭저럭 괜찮은 편입니다. 하지만 벌써 옷에 베어버린 그 시큼한 냄새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아, 아, 아저씨. 정말 죄송해요.”

“죄송하다구요? 이 사람이 말이면 다야!”

“죄 죄송해요. 세탁비라도 ….”

“이봐! 보아하니 학생인데 됐어. 나 원 참, 살다 보니 별꼴을 다 당하네.”

“ …….”

일은 이렇게 마무리 됐습니다.

그러고 나니 제 애인(?) 제 자기한테 신경이 쓰이더군여. 그녀는 지하철 문 앞에 대자로 뻗어서 자고 있더군여.

마침 지하철이 역에 도착해서 문이 열립니다. 잽싸게 뛰어가서 문 밖으로 떠밀어버리고 싶습니다.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이 문 앞에 누워있는 그녀를 보고 훌쩍 뛰어 넘기도 하고, 여학생들은 옆에 문으로 뛰어가서 지하철을 타더군여. 그리곤 무슨 일인가 눈을 껌벅거리며 나와 대머리 아저씨, 그리고 누워 있는 그녀를 번갈아 가면서 힐끔거립니다.

여전히 지하철 안 모든 사람들은 저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저와 눈이 마주친 사람들은 눈을 피하며 키득거립니다.

미치겠습니다. 동물원의 원숭이 보는 듯 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거 같습니다.

저 여자, 아무래도 문 앞에 저렇게 자고 있으면 다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세상 모르고 자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갔습니다. 제가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도 한 걸음씩 옮겨지더군여. 제기랄!!!

전 그녀를 번쩍 들어서 성큼성큼 의자로 걸어와 앉혔습니다.!!!

으하하핫~!!!

제가 미쳤습니까??

사실은 그녀의 다리 한 짝을 잡고 의자 쪽으로 질질 끌고 갔습니다. 그리곤 의자에 앉혔습니다. 그 의자에 앉아 있던 사람들 모두가 피하더군여.

그렇게 모두의 철저한 따돌림 속에서 지옥 같은 몇 정거장을 갔습니다.

“이번 정차역은 부평, 부평역입니다. 내리실 분은 ….”

드디어 제가 내려야 할 역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아무 것도 모르고 자고 있는 이 아가씨는 어떡합니까??

열라 꼬집었습니다. 아무리 흔들어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냥 두고 내려야 하나? 아니면 또 질질 끌고 내려야 하나 고민을 했습니다. 아까부터 지하철의 사람들은 저만 봅니다.

제가 이 아가씨를 내버리고 혼자 지하철을 내려버리면 저는 사람들에게 술 먹고 뻗은 애인을 버리고 가는 놈이라고 손가락질 받을게 불 보듯 뻔합니다.

젠장,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들쳐업고 비틀대며 지하철을 내렸습니다. 날씬한 아가씨였지만, 웬걸! 축 늘어져서 온몸에 힘을 빼고 있으니깐 몸무게가 배가 되었는지 진짜 무겁습니다. 평소에 운동을 열심히 했는데. 숨쉬기 운동을 ….

‘젠장, 운동이라도 좀 해둘 껄.’

머!!! 그래도 그녀를 처음 업었을 때는 괜찮았습니다. 술에 취해 있긴 했지만 등에 전해지는 감촉이 따뜻하고 물컹한 게 이성과 접촉한 느낌이란 역시 좋더군여.

하지만 업은 채로 계속 걷게 되고, 특히 계단을 올라갈 때는 접촉이고 뭐고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다리가 후들거립니다.

츄르르~!

‘계단에서 떨어뜨려 버리고 잽싸게 튈까’ 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어쩌다 보니 부평역 광장까지 그녀를 업고 나오게 되더군여. 이마에 땀이 흘러 자꾸 눈으로 들어갑니다. 눈이 따끔따끔하고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습니다.

부평역 광장 한가운데서 하늘을 쳐다봤습니다.

어무이~~!!!

한숨이 저절로 나옵니다. 이일을 대체 어떡합니까???

저?? 그래도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닙니다. 술 먹고 뻗은 여자 대꾸 다니기 싫습니다. 물론 업구 다니는 건 더 싫습니다.

난생 처음 보는 여자!!! 더군다나 인사불성인 여자한테 수작부리는 건 마음이 내키지 않습니다. 이 여자가 제정신이라면 혹시 모르겠지만. 흐흐흐~!

하지만 기회라구여??

그냥 덮칠까요??

네, 잘 알겠습니다. 좋은 조언 감사합니다.

어쩔 수 있습니까?

근처의 여관을 찾았습니다.

인사불성인 여자를 업고 이 골목 저 골목 여관이라고 쓰여 있는 간판을 찾아 헤맸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얄딱꾸리한 눈빛으로 보더군여. 진짜 개똥도 약에 쓸라면 없다고 평소엔 여기저기 잘만 보이던 여관이나 모텔 간판들이 오늘은 왜 이렇게 눈에 안 띠는 겁니까!!!

“헉!!! 저기다! 저기 이따앗~!!!”

드디어 여관입니다. ‘억수장’ 네온사인 반짝반짝.

기쁨의 눈물이 츄르르~~ 흐릅니다.

동시에 기쁨의 탄성이 터져 나옵니다.

“심봤다아아아아~~~!!!!”

잔잔한 감동!

까르르르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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