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진영의 KBS 시사고전 2>
4대 1의 승부였습니다. 이세돌 9단은 단 한 번의 승리에 만족하며 인공지능 알파고의 대단함을 몸으로 느껴야만 했지요. 대국 결과를 보며 위기십결(圍棋十訣) 중 사소취대(捨小就大)가 떠오릅니다.
사소취대(捨, 버릴 사), 소(小, 작을 소), 취(就, 취할 취), 대(大, 큰 대)
이는 북송(北宋)의 반신수(潘愼修)가 지어 태종(太宗)에게 헌납한 바둑을 두는 데 필요한 열 가지 요결이란 위기십결에서 비롯된 것으로, 부득탐승(不得貪勝)에서 세고취화(勢孤取和)에 이르는 열 가지 가운데 다섯 번째인 사소취대는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하라’는 의미입니다. 곧, 작은 것에 연연해 대세를 그르치지 말고 큰 것을 얻기 위하여 작은 것을 희생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뜻이지요.
사실 이번 대국에서 작은 것은 네 번의 패배이지만, 큰 것은 이세돌 9단의 불굴의 의지와 품격이 빛난 한 번의 승리입니다. 구글 딥마인드사의 CEO인 하사비스는 이세돌 9단이 4국에서 놨던 78수는 1만 번에 한 번 나올 수 있는 ‘명수’였다고 평가하기도 했고, 또 이세돌 자신은 3국에서 3연패 한 뒤 “인간이 아닌 이세돌이 진 것”이라고 자신을 내려놓는 품격까지 보였지요.
그런데 또 하나 더 큰 것이 있으니 이번 대국의 진정한 승자가 인간 이세돌을 이긴 인공지능 알파고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법인인 구글이라는 점입니다. 구글은 이번 대국을 위해 200만 달러를 투자했는데, 이 중 100만 달러는 알파고가 4승 1패로 승리하면서 사실상 회수해 100만 달러(한화 약 11억 원)로 대회를 마감했지요.
하지만 홍보 효과는 환산하기 어렵습니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세기 대국은 전 세계로 타전됐고, 연일 전 세계 주요 외신의 머리기사를 장식했기 때문입니다. 다섯 번의 대국이 끝나면서 구글의 시가총액이 대국 전보다 무려 58조 원이 늘었습니다. 결국, 대국의 진정한 승자는 구글이지요.
하지만 이것도 작게 만드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겪은 거대한 생각의 변화일 것입니다.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하라’는 사소취대(捨小就大)를 생각하며, 인간이 인공지능과 단순히 한 분야에서 경쟁해서 이겨야 한다는 작은 마음보다는, 이를 활용해서 더욱 풍요롭고 행복한 미래를 만들 수 있는 큰 생각의 변화를 가지는 것이 진정 큰 것을 취하는 것이 아닐까요?